♣ 꿈의 작업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꾼다. 이 꿈에 대한 해석은 많은 선각자들의 숙제 중 하나였다. 히포크라테스도 꿈을 통해 몸을 치료하고자 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와 의학자들도 꿈의 존재와 인식에 대해 수많은 고찰을 해왔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실체가 요원한 분야는 아직 도처에 산재되어 있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분야와 현상들이 과학으로 완벽한 해석을 하기 어려운 바가 존재하는데, 꿈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한다.

 

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면서도 꿈을 꾸는 것은 현실세계와의 통로를 열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자극에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든 사이에 온도나 촉각, 소리에 대한 자극이 꿈으로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몸은 잠들었어도 지각신경은 살아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꿈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무의식적 활동에 이를 수 있는 왕도라고 봤다. 그렇다면 자는 동안 수없이 꾸게 되는 꿈은, 의식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원했던 소망이 환각적 경험 속에서 충족되는 과정의 편린들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꿈은 현실의 반대'라는 속설처럼, 꿈속에서 표현된 소망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채 늘 위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에 관한 기억은 '꿈의 내용'이란 것과 '꿈의 사고'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실제 드러나는 꿈 속 세계에서 있었던 직접적이고 현시적인 꿈이다. 이에 반해 후자는 그 드러난 세계 이면에 있는 보다 간접적이고 잠재적인 꿈이다. 다시 말하자면, '꿈의 내용'이 우리가 경험하거나 기억하는 것으로서의 꿈이라면, '꿈의 사고'는 꿈의 진정한 뜻과 의미를 파악하게 해주는 측면으로서의 꿈이다.

그렇게 '꿈의 내용'이 '꿈의 사고'로 전환되는 과정을 프로이트는 '꿈의 작업(Traumarbeit)'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압축', '전치', '표상'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세 과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꿈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일은 늘 현실 세계의 조건과 맥락을 초월한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빙산이 전체 얼음 덩어리의 극히 작은 일부이듯이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꿈은 잠재적인 꿈보다 늘 작은 내용을 갖도록 축소된다(압축). 또한 실제의 소망은 그대로 나타나지 않고 다른 얼굴로 변장을 한다(전치). 그리고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떠올리던 것들은 꿈속에서 생생한 이미지로 치환되어 나타난다(표상). 이처럼 꿈이란 것을 꾸게 됨으로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정서를 우회적으로 충족시키거나, 망각하거나, 억압하거나, 퇴행시키는 것이다.

 


 ♣ 인생은 꿈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서 나온 것이든, 혹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라는 철학적 자세에서 나온 것이든 인간이 한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게 혹시 꿈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는 것은 본능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고래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의문에 빠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깊은 단계까지 가는 사람은 공연히 정말로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꿈이 아니라면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나만의 비정상이라든가 과도함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셰익스피어도 그의 작품 『뜻대로 하세요』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라며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다. 그는 『맥베스』에서도 “인생은 변하는 환영(幻影)일 뿐/ 짧은 순간 무대 위에 있다 사라지는/ 아무 뜻도 없는”이라고 설파한다. 더 나아가 “이 짧은 인생은 한순간의 잠일 뿐”이라고까지 발전한다.

 

셰익스피어와 비슷한 시기의 바로크 시대 문인들도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지 않으면 꿈에 비유했다. 스페인 작가 칼데론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이라는 희곡에서 “한순간의 꿈이 인생”이라고 했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루드비히 홀베르는 <산(山)사람 에페>의 줄거리를 ‘인생은 꿈’이라는 모티브를 칼데론에게서 빌려왔다

 

에페란 사람이 도랑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작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래서 꿈속에서 자기가 가난한 농부였을 뿐이라고 믿게 됐다. 다시 남작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사람들이 도랑 옆으로 옮겨 놓았다. 이제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에페는 자기가 남작의 침대에 누워 있던 것이 꿈일 거라고 생각한다.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지만 인생을 꿈에 비유한 것은 훨씬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고대 인도나 중국에서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다.

 

“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가 되어 있었지만 문득 깨어보니 자신은 나비가 아닌 장주였다. 그런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나 자신은 나비인데, 장주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장자(莊子)의 이름이 주(周)다. 장주(莊周)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 자기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꿈속에서 장주는 유유자적하여 자기가 장주인지 알지 못했다. 이윽고 꿈을 깨자 장주로 돌아왔다. 장주는 자기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자기가 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애매모호함’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계가 애매하고 색깔이 분명하지 않아 유심히 관찰해도 이것이 저것인지, 저것이 이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뜻. 애매모호함의 이러한 특징은 장자의 호접몽에서 잘 나타난다.

 

장주와 나비, 나비와 장주가 또렷이 변별되면서 또한 변별할 수 없으니 지극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치는 변별을 양식으로 삼는 지식 너머에 있는 것이므로 아무리 큰 성인이라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호접몽 외에도 장자는 '제물론'에서 '큰 깸이 있은 뒤에야 현실이 꿈이었음을 안다(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고 했다. 꿈이라 인식되는 현실뿐만 아니라 꿈인 줄 아는 자신조차도 꿈속의 사람이므로 주관과 객관이 모두 큰 꿈인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장자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았던 서양철학자인 데카르트도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답을 찾는 일이다. 그 해답을 처음으로 구한 것은 데카르트라 할 수 있다. 그조차도 처음에는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를 확실히 구분하는 특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성찰>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윗도리를 입고 화롯가에 앉아 있다고 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보증은 없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나온 것이다. 데카르트 이전의 많은 석학들이 바로 그 직전에서 철학적 고찰을 끝내고 말았지만 데카르트가 비로소 ‘생각하는 나’만은 틀림없는 ‘현실’이라는 답을 찾은 것이다.

 

 

 

 

  ‘다른 세계’라는 절망적인 환상

 

 

 

 

 

 

 

 

 

 

 

 

 

 

 

 

최근 자각몽(lucid dreaming, 自覺夢)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자각몽이란 수면자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꿈을 꾸는 현상을 말한다. 꿈을 꾸면서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꿈의 내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자각몽을 꾸는 비결이 있다. 꿈속에서 초현실적인 현상이나 비정상적인 사물을 발견하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고 자문한다. 처음엔 그 순간 꿈에서 깨기 쉽지만, 연습을 계속하면 깨지 않고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지각하지 못하고 꾸는 꿈의 내용에 비해 현실적이며 일관성이 있다. 또 꿈을 꾸는 동안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수면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차이가 거의 없다. 아직까지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루시드 드림』의 저자 스티븐 라버지는 드림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 슬럼프 극복, 악몽 극복 등 자기를 괴롭히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루시드 드림은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는 도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자각몽으로 현실 속의 고민을 해결하는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는 어느 날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다. 아무리 애써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공이 원하는 대로 잘 맞기에 살펴봤더니 자신이 평소와 다르게 클럽을 쥐고 있음을 알았다. 다음날 현실에서 꿈속의 방식대로 스윙을 해보니 공이 잘 맞아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원자량에 따라 원소를 분류하는 법을 발견하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1869년 어느 날, 그 문제와 씨름하다 지쳐 쓰러져 잠에 든 그는 꿈속에서 어떤 표를 보게 됐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꿈에서 본 그 표를 종이에 옮겨 적었다. 그 표 가운데 잘못된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늘자 국민일보는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자각몽 열풍이 불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젊은 층에서 자각몽이 대유행하는 것은 만화, 소설, 게임 등 개인적으로 현실 도피를 접할 수 있는 세대인 만큼 현실과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 때문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각몽’ 관련 글들이 속속들이 올라오며 현실과 다른 세계인 꿈에서나마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은이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후기들 중에는 부작용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한 자각몽 경험자는 “꿈 속에서 자해를 했는데 깨어난 후에도 몇 주일간 고통을 느꼈다. 악몽이 두려워 불면증이 생겼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자각몽 경험자는 “꿈속에서 내가 해를 입힌 사람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 어린 시절 당했던 학교폭력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무리한 자각몽 시도로 피곤한 상태가 계속되거나, 자각몽에 몰입하다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실을 인식하는 주체도 객체인 현실도 몽땅 한바탕 큰 꿈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가 모두 꿈속의 허망한 일이라면 눈앞에 엄연히 전개돼 시시각각 접하는 사물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물을 인식할 때 사물과 인식 주체인 자기 사이에 '나'란 관념 또는 이러저러한 상념들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무너지고 허망한 꿈도 사라진다. 이것이 큰 꿈을 깨 변별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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