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인기를 원한다 - 관심에 집착하는 욕망의 심리학
미치 프리스턴 지음, 김아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독서 모임에 새로운 사람이 참석하면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요즘은 모임 내에서 자기소개할 때 나이와 직업이 아닌 ‘관심사’를 얘기한다. 한 번은 내 소개할 때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내 소개가 끝나자마자 독서모임 지인 한 분이 나를 ‘알라딘 파워 블로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파워 블로거는 아니라고 말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이 든 것은 파워 블로거라고 불릴 만한 기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당연히 파워 블로거는 인기가 많다. 하루 평균 블로그 방문자 수, 이웃 수, 포스트의 ‘좋아요’ 수, 댓글 수 등이 많으면 파워 블로거로 볼 수 있다. 내 블로그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100~150명이다. 가끔 200명 이상이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구글의 검색 로봇 작동으로 인해 방문자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오는 경우일 수 있다. 현재 내 블로그를 즐겨 찾는 이웃 수는 1655명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파워 블로거라고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스럽다. 2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웃을 잘 받지 않는 편이고, 자체적으로 이웃 수를 줄이고 있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관심사를 알리고 싶지 않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이웃들의 글만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게 됐고, ‘좋아요’ 수와 댓글 수는 일 년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많이 줄어들었다.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무리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도 인기에 향한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블로그나 SNS를 계속하면 친밀감뿐만 아니라, 자기 현시 욕구나 ‘자신의 좋은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감정 욕구도 생긴다. 블로그와 SNS는 인정의 욕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자신의 사진이나 글을 봐줄 사람이 없다면 블로그와 SNS는 무용지물이다. 이 두 매체는 타인에게 자신을 전시하는 행위, 그리고 이에 동참하는 타인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결합은 곧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오래전 블로그 활동에 푹 빠져 있었을 때, 내가 알라딘에서 인기가 많은 줄로만 알았다. 시간을 지난 뒤에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엄청난 착각이었다.

 

《모두가 인기를 원한다》는 내 과거 속의 착각을 되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인기와 타인의 인정을 얻고 싶은 인간의 심리와 그 원인을 치밀하게 밝힌다. 저자는 2001년 예일대 교수 시절에 ‘또래 집단에서의 인기’라는 제목의 강연을 열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누구나 인기를 원한다. 우리가 인기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뇌의 반응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정말 어렵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호감을 사고, 박수를 받는 게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남들한테 잘 보이려고 적극적으로 다가왔더니만 오지랖 부린다며 싫어하고, 그냥 조용히 지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왠지 상대방의 무심한 반응에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이렇듯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흔히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그의 입맛에 맞게 나를 바꾸거나 ‘대화 좀 하자’는 식으로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애쓴다. 결국, 우리는 혼자가 되거나,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타고난 욕망은 우리 삶에 지속해서 영향을 준다.

 

그런데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면 행복할까? 인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원만하고 폭넓은 인간관계의 척도를 SNS상의 ‘좋아요’ 수치나, 자신에 대한 언급 즉 ‘태그’를 통해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정을 받아야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인생을 사는 셈이다. 저자는 인기를 ‘지위(status)‘호감(likeability)으로 나누어 인기의 속성을 분석한다. 지위형 인기는 누구나 원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호감형 인기는 상대방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게 만든다. 호감은 함께 하면 즐겁거나 친근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저자는 호감형 인기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은 지위형 인기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영향력이 높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지위형) 인기를 향한 욕망을 조절하기는커녕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답답해하며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인기 없는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린다. 상대방을 손쉽게 통제할 정도로 지위를 가진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서열화한다. ‘인간관계의 서열화’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과도하게 지위를 통해 자기 존재 증명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들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불쾌감을 주는지 깨닫지 못한다.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뇌는 타인을 우등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분류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호감’이다. 인간관계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혼자 끙끙 고민하는 대신 이 책을 읽어보자. 어떤 유형의 인기를 추구했는지, 호감을 얻는 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따라 어떻게 삶이 변화했는지 추적한 연구 결과는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인기의 강력한 영향력을 증명하는 동시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알려준다. 블로그와 SNS은 갈등과 변화 대신 안정과 평안만을 갈구하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을 받을 때 삶 전체가 행복하고 의미 있다고 느끼고,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은 불행하고 살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친구’와 ‘추종자’만 남아 있는 거울로 이루어진 온라인 공간은 우리의 뇌를 취하게 한다. 과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 Trivia

 

 

리뷰 제목은 타니가와 니코(谷川ニコ)의 만화 제목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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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02 17:07   좋아요 2 | URL
알라딘에 접속해서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못하더라도) 책 얘기만 해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느낌이 나지 않네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 알라딘의 ‘늙다리’가 된 것 같네요.. ㅎㅎㅎㅎ

독서모임 활동하고 있어서 그런지 얼굴 보면서 책 얘기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영감을 얻거나 좋은 책을 알게 돼요. ^^

오후즈음 2018-11-0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사실 인기 많은것보다 진짜 소통할수 있는 몇이 더 소중할수 있긴합니다

cyrus 2018-11-04 17: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신뢰감을 느낄만하고,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레삭매냐 2018-11-02 2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기가 있고 싶고 좋아요~를 백개
받고 싶습니다.

이웃도 사양하지 않고 받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
이 들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책
읽고 독후감 쓰고를 반복한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서모임에 나가서
신나게 떠드는 게 이제 유일한 삶의 낙
이 되어 버렸네요.

cyrus 2018-11-04 17:42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진행되니까 모임에 자주 오는 분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느껴져요. ^^

북프리쿠키 2018-11-03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셀 할부지가 책을 읽는 이유는 첫째는 좋아서, 둘째는 자랑하고 싶어서 ^^; 라고 이야기 했네요.
때로는 부질없는 일들을 하며 사는 게
인생 아닌가 합니다.ㅎㅎ
파워블로거 맞습니다. 맞구요^^

cyrus 2018-11-04 17:48   좋아요 1 | URL
러셀 옹의 말씀이 제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네요. ㅎㅎㅎ

저는 남들이 좋아하는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는 성격이라서 ‘아싸형 독서‘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제 알라딘 서재 블로그 이름이 ‘개썅마이리딩‘입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책이 뭔지 알고, 잘 고르는 인싸형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파워블로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

카알벨루치 2018-11-0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런 담론은 너무 좋은 듯합니다 진짜~ㅋㅋ담론까진 아닌가 ㅎㅎ

cyrus 2018-11-04 17:50   좋아요 1 | URL
담론은 아니더라도 평소에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터놓고 얘기하는 건 좋은 일이에요. ^^

stella.K 2018-11-0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알라딘 파워 블로거. 재미있는 소개야.
근데 그거 사실 아니니? 빼기는...
그래도 자기 소개는 좀 계발할 필요는 있겠어.
좀 없어 보인다. 알라딘에서는 있어 보이는데. 이상하지? ㅋㅋ

예전에 나도 하루 조회수 그 정도는 됐는데
북플 생기고 나서 급격히 줄어들어서 아예
조회수 카운터 제거해 버렸잖아.
나름 그게 내 인기도를 반영했었는데 말야.ㅠ

cyrus 2018-11-04 17:57   좋아요 0 | URL
저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알라딘 블로그 있다고 얘기 안 해요. 알라딘은 아는데, ‘알라딘 서재‘, ‘북플‘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걸요. 북플은 책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세상이
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마을 같아요.. ㅎㅎㅎ

블로그을 기반으로 한 ‘서재‘에서 SNS형 ‘북플‘로 바뀌면서 글 쓰는 스타일, 글 선호도도 달라졌어요. 이제는 사진 위주의 게시물이나 일상을 주제로 한 글을 좋아하죠. 저처럼 오로지 책 얘기만 하는 사람의 글은 재미 없어서 보는 사람들이 없어요. ^^;;

꼬마요정 2018-11-04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제 맘대로 책 읽는 타입이라 정말 아싸형 입니다. 사실 글도 잘 못써서 북플이 그냥저냥 기록장이 되어버렸지만요. 북플 하면서 긴 글 쓰기가 어려워졌어요. 폰으로 하다보니 글이 길어지지가 않아요ㅠㅠ 밀린 리뷰가 너무 많아요ㅠㅠ

글구 cyrus님 알라딘 파워 블로거 맞지 않나요? ㅎㅎㅎㅎㅎㅎ

cyrus 2018-11-05 11:48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 열군데 가서 ‘cyrus’가 누군지 물어보면, 저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ㅎㅎㅎ
 

 

 

사람들은 두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불안을 피하려고 ‘회피 전략’을 쓴다. 만일 공포에 당당히 맞서려 한다면 우선 당면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맞설 대상도 파악이 되지 않고, 이 무서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예측할 수 없게 되면, 공포의 긴장은 한없이 고조된다. 이 때 나타나는 회피 전략이 ‘희생양’을 만드는 방법이다. 공포를 분노로 바꿔 희생양을 향해 분출시킴으로써 공포의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내부에서 일어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희생양은 우선 밖에서 찾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내부에서라도 만들어 낸다. 13∼17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마녀사냥은 바로 집단적 회피 전략의 대표적 예였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18, 리커버 특별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열린책들, 2009)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인간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다. 이때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사고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전환을 성취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어느 역사책보다 흥미진진하게 재현했다. 에코가 소설에서 재현한 시대는 ‘암흑의 중세’가 아니다. 신성함과 세속이 섞여 있는, 그야말로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회색의 중세’이다. ‘회색의 중세’는 이성과 과학의 빛이 조금씩 세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지성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마녀재판을 하는 광기의 시대였다.

 

흉작이나 천재지변, 전염병 등 갑작스런 재앙의 원인에 대해 당시 학문의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국가는 흉흉해진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방책이 필요했다. 더불어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교황권이 약해지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단들의 거센 도전에 부딪치면서 고전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52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Innocentius Ⅳ)는 마녀 재판을 이단 심문의 관할 하에 두도록 교서를 내림으로써 이단 심문관에게 마녀사냥을 허용하고 연이어 마녀사냥 강화령을 발표하게 된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베르나르도 귀(Bernardo Gui)는 실존 인물이며 이단 심문관으로 활동했다. 그의 이단 심문이 얼마나 악명이 높았으면 ‘피에 굶주린 호랑이’라는 별명이 생겨날 정도였다. 마녀라는 소문이 나거나 밀고가 들어오면 고문을 병행한 심문이 시작된다. 고문 방식은 다양하다. 옷을 벗긴 뒤 온몸의 털을 깎고 침으로 찌른다. 꽁꽁 묶고 채찍질한다. 매달았다가 떨어뜨리고 뼈가 으스러지게 밧줄로 죈다. 마녀사냥은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했다. 처음에 마을 외진 곳에 혼자 살면서 민간 처방이나 전통 주술을 행하던 노파 정도로 인식되던 마녀가 점차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전염병이나 기근, 전쟁 등 재난이 닥쳐오면 마녀의 저주 때문이라 하여 무고한 여성과 남성 들이 마녀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 [절판] 기류 미사오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 (자음과모음, 2007)

* 제프리 버튼 러셀 《마녀의 문화사》 (르네상스, 2004)

* [절판] 브라이언 이니스 《고문의 역사》 (들녘코기토, 2004)

* [절판] 브라이언 P. 르박 《유럽의 마녀사냥》 (소나무, 2003)

 

 

 

 

마녀사냥의 전성기는 중세가 아니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이 악화한 시기(1560~1660년)였다. 후에 영국의 왕 제임스 1세(James I)가 되는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는 마녀의 존재를 믿었다. 그는 <악마론>이라는 책을 널리 유포하여 마녀사냥과 고문을 허용했다. 제임스 1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아들 찰스 1세(Charles I)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찰스 1세 시대에도 마녀사냥은 계속되었는데, 1645년에서 1646년 사이에 매튜 홉킨스(Matthew Hopkins)는 사회의 불안을 잠재운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마녀사냥을 집행했다. 자신의 (영국 의회가 인정하지 않은 비공식) 임무에 자부심이 넘쳤던 홉킨스는 자신을 ‘마녀 색출 장군(Witchfinder General)이라고 불렀다.

 

 

 

 

 

 

 

 

그가 즐겨 썼던 고문 방식은 마녀 혐의자를 묶은 채 물속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홉킨스의 논리에 따르면 마녀 혐의자가 물 위에 떠오르면 마녀로 판정되는 것이고, 가라앉으면 마녀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마녀 혐의자는 익사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홉킨스의 반인륜적 고문이 얼마나 심했으면 영국 의회까지 나서서 중재할 정도였다. 하지만 홉킨스는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고, 다른 고문 방식을 생각했다. 마녀 혐의자가 자백할 때까지 잠도 못 자게 하면서 계속 걸어 다니게 하거나 송곳으로 악마의 표식으로 여기는 신체 부위를 찔렸다. 홉킨스는 고문을 이용해서 수많은 마녀를 찾아냈다고 확신했으며 자기 일에 협력할 마녀 사냥꾼을 모집, 임명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고문 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국, 2년 만에 홉킨스의 마녀사냥은 중단되었고, 그 이듬해에 홉킨스는 결핵에 걸려 사망했다.

 

마녀로 인식된 타자를 처벌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위안은 집단 전체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비정상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근대 인권이 중시되며 마녀사냥에 대한 반성이 촉구됐지만,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고문이나 처형식이 있는 날이면 군중은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했다. 이 ‘끔찍한 볼거리’를 최대한 이용한 것이 당시 군주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 구경꾼들도 언젠가는 처형장의 눈요깃감이 될 수도 있었다. 권력은 늘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마녀 재판과 관련된 고문과 처형의 기록은 약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탄압과 인간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 사람을 희생하게 만드는 집단적 광기는 논리적 근거를 상실했고, 처형에서 비난으로 변질해 현대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잔인함은 여전히 유지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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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와 정복 - 아스테카 신화, 콜럼버스와 베스푸치의 보고서, 필리핀 정복 문헌 라틴아메리카 고전 1
박병규.김선욱 지음 / 동명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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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은 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역사적인 해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를 보내 이 대륙을 발견한 스페인에게는 국운이 도약하는 감격의 해로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던 원주민들에게는 비극과 고통을 예고하는 불행한 해였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 이후 원주민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의 한 부분이라 착각하여 ‘서인도’라고 명명했으며 원주민을 인도 사람들, 즉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신대륙을 인도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고 그 나름의 지도를 그리면서 나름의 공간에서 살다 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항해사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달랐다. 그는 콜럼버스가 착각한 그 땅이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라고 확신했다. 베스푸치가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은 1503년 『신세계』란 제목의 소책자로 출간돼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스푸치가 남긴 기록에는 그가 네 차례나 신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네 번이나 신대륙에 도착했는지 지금 확인할 길은 없다. 신대륙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베스푸치가 아니라 1507년 세계지도를 만든 독일의 지리학자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üller)였다.

 

《항해와 정복》‘동명사’ 출판사가 펴낸 ‘라틴 아메리카 고전’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신대륙 원주민들의 세계관과 신대륙 항해의 경위를 알 수 있는 당대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책의 1부는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고대 아스테카(azteca, 아즈텍) 문명의 태양 신화를 소개한다. 뜨고 지는 태양은 매일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을 ‘시간’, ‘날’, ‘세계’, ‘역사’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섯 개의 태양(세계)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중 네 개가 이미 멸망해 마지막 다섯 번째 태양(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태양들은 오실롯(Ocelot, 고양잇과 동물, 아스테카 신화를 번역한 유럽인들은 ‘호랑이’ 또는 ‘재규어’라고 썼다), 바람, 물, 불에 의해 차례로 멸망했고, 다섯 번째 태양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이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2부는 콜럼버스의 항해 목적과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인도에 갈 결심을 한 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 부부(Isabel I, Fernando II, 가톨릭 양왕)를 찾아갔다. 항해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 후원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은 인도로 가는 신항로 개척을 두고 포르투갈과 경쟁하고 있었기에 가톨릭 양왕은 콜럼버스의 후원자로 나선다. 콜럼버스는 항해를 떠날 때 가톨릭 양왕의 이름이 있는 친서를 소지하고 있었고, 이 친서는 동양의 군주를 만날 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렸을 적 위인전에 나온 콜럼버스만 보면, 이 사람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용기 있는 모험가였다. 그런데 과연 콜럼버스가 훌륭하기만 한 사람일까?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가 정말 훌륭한 사람일까? 오늘날 신대륙 발견의 일등공신으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는 도전 정신이 강한 모험가라기보다는 사기꾼이며 구시대적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했다. 《항해와 정복》의 2부는 우리 머릿속에서 과대평가 된 콜럼버스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신대륙 도착을 알리는 콜럼버스의 편지』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가톨릭 양왕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된 편지다. 이 편지에서 교활한 책략가의 면모를 지닌 콜럼버스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왕과 여왕의 후원을 많이 받기 위해 신대륙의 이점을 과장하여 보고했다. 흔히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확신한 항해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구가 둥글 테니까 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하면 언젠가는 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 인도와 중국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3차 항해에서 가톨릭 양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콜럼버스는 지구가 서양 배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에 지상낙원이 있다고 믿었다.

 

3부는 이미 언급한 『신세계』를 포함한 베스푸치의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4부에 수록된 문헌들에는 동양 진출에 대한 스페인의 야심이 드러내 있다. 펠리페 2세(Philip Ⅱ)가 통치했던 시절(1556~1598년) 스페인은 필리핀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고, 이곳을 거점으로 해서 중국과의 교역을 시도하려고 했다. 정복욕이 넘칠 대로 넘친 스페인 군인들은 왕에게 중국 점령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1565년 필리핀은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후 초대 총독 레가스피(Legaspi)의 지배를 받는다. 그가 펠리페 2세에게 보낸 서한에는 필리핀의 지리적 환경, 원주민에 대한 기록이 내용의 주종을 이루지만, 필리핀 원주민과 그들의 토속 문화를 ‘야만’의 범주에 집어넣으면서 관찰한다. 이처럼 유럽은 신대륙에서 강제 수탈과 학살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문명화와 진보라는 용어로 호도하였다. 16세기 스페인의 아메리카 및 동양 정복 이후 그들이 내세운 보편적 가치는 기독교였다. 그들이 보기에 원주민들은 야만 상태에 빠져 우상숭배와 인신 공양의 관습에 젖어 있었다. 따라서 잔인한 지배자로부터 양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기독교 전파는 야만과 작별하기 위한 필연적인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군인과 선교사들은 무고한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그리고 스페인 제국의 동양 정복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 이는 신대륙을 위한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즉 미개한 원주민밖에 없던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의 문명을 전해주고 원주민의 삶을 향상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가장 발전한 문명의 중심지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신대륙 도착은 지금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대륙을 피로 물들게 했다.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 성공 소식과 베스푸치의 『신세계』 출간은 라틴 아메리카를 약탈과 살육의 무대로 만든 서막이었다.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보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식민지인이 되면서 엄청난 희생이 강요되었다. 서양 근대문명은 이러한 희생으로 발전했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은 원주민에게 구원이 아니라 침략과 희생의 역사인 것이다. 《항해와 정복》은 배와 정복을 정당화했던, 오래된 서구 중심주의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 Trivia

 

* 105쪽

확실한 사실은, 1500년부터 1501년까지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의 오자] 이주하여 포르투갈 왕실의 명의로 신대륙으로 항해했고,

 

* 163쪽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비교적 수월하게 필리핀[‘을’의 오자] 점령했다.

 

* 241쪽

중국 명나라[‘의’를 빼야 함]를 방문한 첫 번째 기독교 사제 중의 한 명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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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3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야말로 서구식
사고의 글로벌리즘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을 서구식 사고의 틀에 맞춰서
생각하는. 아메리카의 원래 살던 사람들
을 인디안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
서 종교 문화 관습을 모두 야만으로 규
정하고 싹 뜯어 고쳤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컬럼버스 데이에 대한 반
성을 하자는 의견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cyrus 2018-11-01 12:27   좋아요 0 | URL
저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핍박받고 차별당한 역사를 생각하면 ‘인디언’이라고 부르면 안 되니까요.

2018-10-3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01 12:32   좋아요 1 | URL
당연하죠. 돈벌이, 맞습니다. 콜럼버스라면 분명히 자신과 함께 항해할 사람들을 꼬셨을 겁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신대륙이 ‘부자가 될 수 있는 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싶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지만, 사람을 죽일 정도로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것은 올바른 방법은 아니죠.

카스피 2018-10-3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메리카가 신대륙은 아니었죠.그곳에 수 많은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신대륙발견이라나 정말 서구중심적인 사고죠.

cyrus 2018-11-01 12:34   좋아요 0 | URL
‘신대륙’이라는 말에 서구 중심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어서 이를 대안하는 용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과학은 우리에게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세계의 모든 현상은 일정한 인과 관계의 법칙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학으로 이 법칙을 알면 세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우리는 ‘결정론’이라고 부른다.

 

라플라스(Laplace)는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프랑스의 수학자이다. 그는 자신이 수많은 계산을 하는데 필요한 자료와 계산력만 있다면 향후 전체 운행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만사 별자리 운행하듯이 계산만 다 한다면 향후 어떻게 움직일지를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필요한 계산을 다 할 수 있는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한다. 고전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연결로 이루어진 인과율이 작용하므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보았다. 단지 수많은 변수와 복잡하고 많은 계산을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미래란 인과율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있다고 믿었다.

 

 

 

 

 

 

 

 

 

 

 

 

 

 

 

 

 

 

* 카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민음사, 1984, 2006)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책세상, 2018)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가 등장하면서 비결정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불확정성의 원리란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입자의 속도가 정해지는 순간 위치가 달라지고, 반대로 입자의 위치를 정하려고 하면 속도가 달라진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관찰 장비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입자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확률로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사회과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불확정성의 원리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는 적절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영향을 받은 카를 포퍼(Karl Popper)《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에서 인류의 운명과 역사가 결정되거나 닫혀 있지 않으며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반드시 무너지고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한 마르크스(Marx)의 결정론적 역사관을 비판했다. 포퍼는 개인의 존엄과 자유의지가 존중되고 비판이 보장되며 자아실현의 길이 열려있는 ‘열린사회’를 인간과 사회 발전의 이상향으로 보았다. 그의 입장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반영되어 있다.

 

결정론의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정론은 학문의 세계뿐만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한때 유전자가 외모는 물론 지능 · 기질과 질병까지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유행한 적이 있다.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의 본성을 오랜 진화과정을 겪어 온 유전자의 관점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이런 주장은 요즘 과학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형편이다. 오히려 환경이 유전형질에 끼치는 영향이 밝혀지면서 유전자와 환경이 얼마나,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을유문화사, 2018)

 

 

 

1976년에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유전자 결정론을 설파한 책으로 오해받곤 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머리카락, 피부색, 키 등 외모는 유전되지만, 사회적 행동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학습이나 경험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도킨스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도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보존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대로 살 수밖에 없다. 번식(생식)도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것이며, 생명체는 유전자를 보존시키기 위해 번식을 하게 된다. 그의 도발적인 책은 진화론적 관점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을 촉진했다.

 

사실 이 열띤 논쟁은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기 일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1975년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사회생물학》(민음사)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사회적 반향이 생겨난다. 이 책 역시 《이기적 유전자》처럼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을 분석하고 있지만, 일반 대중을 위해 쓰인 책은 아니었고 대학 교재였다. 그런데 《사회생물학》이 진화생물학자들 간의 논쟁을 일으킬 정도로 문제작이 되었을까? 사회생물학은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의 행동이 종(種)의 유전적 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도킨스는 윌슨의 입장을 응용하여 ‘이기적 유전자’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클래식, 2011)

* 케빈 랠런드, 길리언 브라운 《센스 앤 넌센스》 (동아시아, 2014)

 

 

 

우리나라에 번역된 《사회생물학》은 절판된 상태라 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회생물학》의 후속편 격이라 할 수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분석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1978년에 나왔으니 올해가 출간 40주년이다. 진화론 논쟁을 주제로 다룬 책들에서 《사회생물학》이 당대에 끼친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어서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화론 논쟁의 역사와 그 핵심을 잘 정리한 《센스 앤 넌센스》(동아시아)는 사회생물학의 주요 입장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이 책에 따르면 윌슨은 사회생물학으로 인간의 성적 차이, 공격성, 종교, 동성애 등을 설명하려고 했으며 “머지않아 사회과학은 생물학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사회과학자들의 비판이 거셌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윌슨의 도발적인 주장은 ‘사회생물학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함께 하버드대학교에서 활동했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윌슨을 ‘환원주의자’라고 비난했다.

 

 

 

 

 

 

 

 

 

 

 

 

 

 

 

 

 

*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사이언스북스, 2016)

 

 

 

굴드는 평생 결정론의 함정에 빠진 과학의 어두운 이면을 비판하는 일에 앞장선 학자이다. 그는 윌슨뿐만 아니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비판했다. 《판다의 엄지》(사이언스북스)도킨스를 비판한 칼럼(8장 『이타적인 집단과 이기적인 유전자』)이 수록되어 있다. 굴드는 도킨스의 주장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매인 악습’, 즉 환원주의, 결정론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 리처드 도킨스 《악마의 사도》 (바다출판사, 2015)

 

 

 

그렇다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기적 유전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는 앞서 이 책이 ‘유전자 결정론을 설파한 책’이라고 오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 결정론’을 옹호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유전자 관점(gene’s-eye view)을 옹호하는 책으로 봐야 한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 과정을 이해하고, ‘다음 세대에서 출현빈도가 증가할 형질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도킨스는 자신의 주장이 ‘유전자 결정론’으로 변질하는 것에 대해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이 책, 아니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만 보고 도킨스를 ‘유전자 결정론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 도킨스는 《악마의 사도》 (바다출판사)에 수록된 『유전자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유전자 결정론을 ‘도깨비’로 비유하면서 매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도킨스는 인간을 자유 의지가 전혀 없는 유전자의 노예라고 절대로 주장하지 않았다. ‘유전자 관점’과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아주 작은 차이가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왜곡돼는 바람에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다. 자유 의지에 기반한 비결정론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환경 영향을 극복하고 주체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물론, 자유 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분명한 점은 인간은 주변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다. 자유 의지는 우리를 조종하는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할 수 있는 힘이다. 나는 《이기적 유전자》 11장에서 그 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서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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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9 16:36   좋아요 0 | URL
<센스 앤 넌센스>에서 본성과 양육을 확실하게 구분하거나 양자 중 한쪽만 옹호하는 자세를 ‘넌센스’라고 말해요. 북사랑님이 읽으려는 책이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이 책의 저자는 본성과 양육을 상호작용한다고 주장하네요. 저 역시 저자의 주장에 공감해요.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

2018-10-29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9 16:37   좋아요 0 | URL
제가 ‘입자’를 양자로 착각해서 잘못 썼네요.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18-10-29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극복할 힘이 있다고 설파한 도킨스의 글에서
저는 오히려 그럴 힘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우리는 힘을 합치면 어떤 자연 재해가 일어날지라도 다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자연재해의 위력이 크다는 걸 말하듯이, 도킨스의 말은 유전자의 힘이 세다는 걸 말해 주고 있는 것 같거든요.
어쨌든 도킨스의 그 말은 우리 인간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사실 인간이란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못할 게 없는 존재니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8-10-30 17:0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인간은 완벽하지 않지만, 연대하는 힘을 잘 이용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어요. ^^
 
여성의 진화 - 몸, 생애사 그리고 건강
웬다 트레바탄 지음, 박한선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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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과 채집 시대의 인류는 수명은 짧았지만, 체력은 좋았다. 윤택한 삶을 살며 장수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각종 알레르기 질환을 비롯한 암, 당뇨와 같은 생활습관병에 시달리고 있다. 진화 의학자들은 이 난제의 해법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찾고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질병과 건강을 새롭게 해석하는 학분 분야를 진화 의학(evolutionary medicine)이라고 부른다. 진화 의학은 1990년대에 진화생물학자 랜돌프 네스(Randolph Nesse)[주1]조지 C.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가 연구하기 시작한 새로운 의학이다. 진화 의학자들은 질병의 증상을 없애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현대 의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질병에 걸리게 되는 궁극적인 원인을 인류의 진화 과정과 인체의 구조적 특성을 통해 밝혀내고자 한다. 진화 의학이 나온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본격적으로 의학계에 도입되고 있지 않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기존 의학계의 이해 부족 때문이다.

 

진화 의학은 인간의 몸을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쳐 만들어진 산물로 본다. 예를 들어 음식을 비만의 원인은 게으른 생활 습관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가 구석기 시대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채식, 어류와 해산물을 주로 먹었다. 풍요로운 음식을 즐기기 시작한 지는 겨우 1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 농경 시대의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곡식, 감자 등 탄수화물 섭취가 갑자기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서 섭취 열량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비만, 고혈압, 당뇨 등 ‘현대의 문명병’의 위험에 노출된 이유가 우리의 식생활이 너무 빠르게 진화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의 유전자는 구석기 시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농업 혁명으로 우리의 식생활만 엄청나게 달라져 버린 것이다.

 

질병은 인류의 발전과 함께 그 탄생과 진화를 반복하고 있다. 과연, 실제 문명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더 건강해지고 있는 걸까. 과거와 비교하면 질병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운 걸까. 진화론적 관점으로 여성의 몸과 건강을 살피는 《여성의 진화》는 바로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책의 저자인 생물 인류학자 웬다 트레바탄(Wenda Trevathan)은 초경, 임신, 출산, 완경[주2]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하나하나 톺아보면서 진화적 요인이 여성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생물학적 · 의학적 지식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여성의 건강과 연관 지어 논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여성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질환은 여성의 몸이 문명화에 따른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긴 결과다. 예를 들어 유방암이 나날이 급증하는 원인을 해부학적 구조에서 찾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진화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 여성들은 초경이 늦었고 그 직후 임신을 했으며 완경을 빨리 맞이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여성들은 이들보다 초경이 일찍 시작하며 생리 횟수가 많다. 구석기시대 여성들이 평생 150번 정도 생리를 한 데 반해 현대 여성은 400번 정도 생리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성 호르몬이 유방암의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초경이 빠르고 완경이 늦으면 그만큼 여성의 몸은 호르몬에 노출된 기간이 길기 때문에 유방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임신과 출산 횟수가 많으면 유방암 발병률이 낮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임신과 출산 경험이 적거나 없으면 발병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포유류의 성장에서 접촉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갓 태어난 동물이 살아남으려면 어미가 반드시 새끼를 핥아줘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어미가 핥아주지 않은 새끼 양은 일어서지도 못한 채 죽어버린다. 접촉은 인간에게도 중요하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아기를 업고 다니고, 끼고 자고,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젖을 물리는 육아 방식은 아기와 산모 모두에게 너무나 적합하다. 옥시토신(oxytocin)은 출산 후 아기를 돌볼 때에도 그 분비량이 많이 늘어나는데, 아이와 산모 사이의 유대감을 크게 만들고 모유 수유를 돕는다. 코르티솔(cortisol)은 신체가 스트레스에 반응하고 감염에 맞서 싸우도록 하는 호르몬이다. 아기를 안아서 달래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코르티솔 수치가 내려간다. 하지만 안아주지 않고 계속 울게 내버려 두는 일이 잦아지면 아기의 코르티솔 분비가 촉진되면서 아기의 성장과 정서, 뇌 발달까지 저해할 수 있다. 모유 수유의 장점은 아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옥시토신은 임신으로 이완된 산모의 자궁을 임신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역할을 하며, 출산 후의 출혈을 멎게 한다.

 

이 책에서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여성의 몸이 번식(생식, 출산과 육아) 성공에 초점을 맞춰 진화해온 과정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여성의 유일한 삶의 목표가 번식이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348쪽). 《여성의 진화》는 ‘여성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다이어트를 위해 구석기 시대의 식단으로 바꾸자는 식의 실현 불가능한 건강 비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모르는 여성을 비난하지 않는다. 결국 책이 가장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소녀에서 할머니까지 아우르는 여성 전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다. 남성이 이 책을 읽고 여성의 생리 · 임신 · 출산의 수고로움을 안다면 건강한 여성들이 정말 살만한 사회가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1] 《여성의 진화》 19쪽에 랜돌프 네스가 ‘랜디 네스’로 되어 있다. 랜디가 ‘랜돌프’의 애칭이라서 틀린 표기는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정확한 이름은 ‘랜돌프 네스’이다.

 

[주2] 책에서는 ‘폐경’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폐경은 ‘여성으로서 생명이 끝난다’는 부정적 어감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이 리뷰에선 ‘폐경’ 대신 ‘완전한 성숙’이란 긍정적 의미를 담은 ‘완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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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28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녀에서 할머니까지 아우르는 여성 전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다 - 그래야 하는 것인데 여성에게 함부로 대하는 남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또는 불행해진 여성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cyrus 2018-10-29 15:16   좋아요 1 | URL
임신과 출산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몰상식한 남성들은 임신을 ‘벼슬‘이라고 말하는데,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여성의 몸을 잘 모르니 여성의 건강권 보장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없어요. 여성도 건강권을 지킬 수 있는 국민이에요. 정부는 모든 연령의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먼저 만들어야하는데, 출산 장려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어요. 제가 봐도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