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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와 정복 - 아스테카 신화, 콜럼버스와 베스푸치의 보고서, 필리핀 정복 문헌 ㅣ 라틴아메리카 고전 1
박병규.김선욱 지음 / 동명사 / 2017년 12월
평점 :
1492년은 아메리카 대륙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역사적인 해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를 보내 이 대륙을 발견한 스페인에게는 국운이 도약하는 감격의 해로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던 원주민들에게는 비극과 고통을 예고하는 불행한 해였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 이후 원주민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의 한 부분이라 착각하여 ‘서인도’라고 명명했으며 원주민을 인도 사람들, 즉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신대륙을 인도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고 그 나름의 지도를 그리면서 나름의 공간에서 살다 갔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항해사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달랐다. 그는 콜럼버스가 착각한 그 땅이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라고 확신했다. 베스푸치가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에게 보낸 편지들은 1503년 『신세계』란 제목의 소책자로 출간돼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베스푸치가 남긴 기록에는 그가 네 차례나 신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네 번이나 신대륙에 도착했는지 지금 확인할 길은 없다. 신대륙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베스푸치가 아니라 1507년 세계지도를 만든 독일의 지리학자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üller)였다.
《항해와 정복》은 ‘동명사’ 출판사가 펴낸 ‘라틴 아메리카 고전’ 시리즈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신대륙 원주민들의 세계관과 신대륙 항해의 경위를 알 수 있는 당대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책의 1부는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고대 아스테카(azteca, 아즈텍) 문명의 태양 신화를 소개한다. 뜨고 지는 태양은 매일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태양을 ‘시간’, ‘날’, ‘세계’, ‘역사’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섯 개의 태양(세계)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중 네 개가 이미 멸망해 마지막 다섯 번째 태양(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태양들은 오실롯(Ocelot, 고양잇과 동물, 아스테카 신화를 번역한 유럽인들은 ‘호랑이’ 또는 ‘재규어’라고 썼다), 바람, 물, 불에 의해 차례로 멸망했고, 다섯 번째 태양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이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2부는 콜럼버스의 항해 목적과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인도에 갈 결심을 한 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 부부(Isabel I, Fernando II, 가톨릭 양왕)를 찾아갔다. 항해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 후원자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은 인도로 가는 신항로 개척을 두고 포르투갈과 경쟁하고 있었기에 가톨릭 양왕은 콜럼버스의 후원자로 나선다. 콜럼버스는 항해를 떠날 때 가톨릭 양왕의 이름이 있는 친서를 소지하고 있었고, 이 친서는 동양의 군주를 만날 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렸을 적 위인전에 나온 콜럼버스만 보면, 이 사람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용기 있는 모험가였다. 그런데 과연 콜럼버스가 훌륭하기만 한 사람일까?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가 정말 훌륭한 사람일까? 오늘날 신대륙 발견의 일등공신으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는 도전 정신이 강한 모험가라기보다는 사기꾼이며 구시대적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했다. 《항해와 정복》의 2부는 우리 머릿속에서 과대평가 된 콜럼버스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신대륙 도착을 알리는 콜럼버스의 편지』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가톨릭 양왕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된 편지다. 이 편지에서 교활한 책략가의 면모를 지닌 콜럼버스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왕과 여왕의 후원을 많이 받기 위해 신대륙의 이점을 과장하여 보고했다. 흔히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확신한 항해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구가 둥글 테니까 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하면 언젠가는 세계를 한 바퀴 돌아서 인도와 중국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3차 항해에서 가톨릭 양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콜럼버스는 지구가 서양 배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에 지상낙원이 있다고 믿었다.
3부는 이미 언급한 『신세계』를 포함한 베스푸치의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4부에 수록된 문헌들에는 동양 진출에 대한 스페인의 야심이 드러내 있다. 펠리페 2세(Philip Ⅱ)가 통치했던 시절(1556~1598년) 스페인은 필리핀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고, 이곳을 거점으로 해서 중국과의 교역을 시도하려고 했다. 정복욕이 넘칠 대로 넘친 스페인 군인들은 왕에게 중국 점령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1565년 필리핀은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후 초대 총독 레가스피(Legaspi)의 지배를 받는다. 그가 펠리페 2세에게 보낸 서한에는 필리핀의 지리적 환경, 원주민에 대한 기록이 내용의 주종을 이루지만, 필리핀 원주민과 그들의 토속 문화를 ‘야만’의 범주에 집어넣으면서 관찰한다. 이처럼 유럽은 신대륙에서 강제 수탈과 학살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문명화와 진보라는 용어로 호도하였다. 16세기 스페인의 아메리카 및 동양 정복 이후 그들이 내세운 보편적 가치는 기독교였다. 그들이 보기에 원주민들은 야만 상태에 빠져 우상숭배와 인신 공양의 관습에 젖어 있었다. 따라서 잔인한 지배자로부터 양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기독교 전파는 야만과 작별하기 위한 필연적인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 군인과 선교사들은 무고한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그리고 스페인 제국의 동양 정복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고, 이는 신대륙을 위한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즉 미개한 원주민밖에 없던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의 문명을 전해주고 원주민의 삶을 향상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가장 발전한 문명의 중심지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신대륙 도착은 지금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대륙을 피로 물들게 했다.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 성공 소식과 베스푸치의 『신세계』 출간은 라틴 아메리카를 약탈과 살육의 무대로 만든 서막이었다.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보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식민지인이 되면서 엄청난 희생이 강요되었다. 서양 근대문명은 이러한 희생으로 발전했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은 원주민에게 구원이 아니라 침략과 희생의 역사인 것이다. 《항해와 정복》은 지배와 정복을 정당화했던, 오래된 서구 중심주의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 Trivia
* 105쪽
확실한 사실은, 1500년부터 1501년까지는 포르투갈 리스본의[‘에’의 오자] 이주하여 포르투갈 왕실의 명의로 신대륙으로 항해했고,
* 163쪽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비교적 수월하게 필리핀를[‘을’의 오자] 점령했다.
* 241쪽
중국의 명나라[‘의’를 빼야 함]를 방문한 첫 번째 기독교 사제 중의 한 명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