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불결한 생선 비린내가 풍기는 파리의 한 시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부적인 후각으로 모든 냄새를 소유하려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신만의 고유한 체취를 풍기지 못한다. 사람 체취를 향으로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 이야기다. 후각에 민감한 주인공은 ‘변태’ 혹은 타락한 하층계급의 후손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정 사회계층을 차별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악취가 난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18세기 계몽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곳곳에 근대적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오직 자신의 노동력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의 좁은 곳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는 도시빈민층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주거조건은 전염병의 발병과 전파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상류층 사람들은 냄새나고 더러운 것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 따라서 향수는 생활필수품인 동시에 높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데 악취를 없애려고 향수를 자꾸 뿌려봤자 소용없었을 것이다. 악취를 맡지 않으려면 그냥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문필가 루이 세바스티엥 메르시에《파리의 풍경》에 대도시의 역겨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소개한다. 이때 당시 파리의 위생상태는 최악이었다. 18세기의 파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 무척 더러운 곳이었다. 도시는 나날이 발전하는데도 위생에 대한 관심은 후퇴하고 있었다.

 

 

 

좁고 잘못 난 길들, 너무 높고 공기의 자유로운 순환을 가로막는 집들, 푸줏간과 생선가게, 하수구, 묘지들 때문에 대기가 나빠지고 불순한 입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이 폐쇄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과도하게 높은 집들 때문에 1층과 2층 주민들은 태양이 가장 높이 솟아올랐을 때에도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시민이 휴일이나 일요일에 시골의 맑은 공기를 쐬려고 나가면, 성문 밖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똥거름이나 다른 오물에서 나오는 악취를 맡게 된다. (《파리의 풍경》 1권, 92쪽)

 

 

인용한 문장만 딱 놓고 본다면 그루누이가 살던 도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속이 울렁거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악취 문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악취의 원인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분뇨였다. 오늘날 화장실을 의미하는 ‘toilet’은 프랑스어 ‘toile’에서 유래된다. ‘toile’은 망토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거리를 걷다가 뱃속에 신호가 느껴지면, 망토를 들고 다니는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내고 볼일을 봤다. 그런데 문제는 급한 용변 때문에 화장실 업자에게 돈을 내는 것이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 몰래 볼일을 보는 것이 더 간단했다. 이러니까 거리나 강 주변에 분뇨가 여기저기 방치되고 말았다. 따로 분뇨를 모아 놓은 구덩이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분뇨처리장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파리의 대기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또한, 분뇨구덩이 주변에 있는 우물도 오염되었다. 파리를 대표하는 센 강에서도 오물이 흘러들었다. 위생에 무지한 파리지앵들은 분뇨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수많은 분뇨 구덩이에서 오염된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밤에 분뇨 구덩이의 오물을 수거하면 구역 전체로 오염이 확산되고, 불쌍한 사람들이 몇 명씩 목숨을 잃는다. 분뇨 구덩이들은 엉성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이웃 우물로 오물이 흘러들기도 한다. 항상 우물물을 쓰는 빵장수가 그런 이유 때문에 우물물을 안 쓰지는 않는다. 분뇨 수거인들 또한 시 밖까지 오물을 운반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새벽에 하수구나 개천에 쏟아버린다. 이 가공할 찌꺼기는 천천히 길을 따라 센 강으로 향하고, 강가를 오염시킨다. 아침이면 물장수들이 강가에서 물동이에 물을 긷고, 무감각한 파리인들은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젊은 외과의사들이 해부학 실습을 하려고 훔치거나 산 시체들이 많은 경우 토막나서 분뇨 구덩이에 버려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뇨 구덩이를 파보면, 때로는 끔찍한 해부용 시체 토막에 충격을 받고, 때로는 중범죄가 떠오른다. 오, 위대한 도시여! 그대의 성 벽 안에는 어찌나 많은 역겨운 공포가 감추어져 있는지! (《파리의 풍경》 1권, 93~94쪽)

 

 

분뇨 가스와 시체 토막이 썩는 냄새가 한데 어우러진 파리의 공기. 도대체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태연하게 살았던 것일까. 그들은 악취를 참고 살다 보니 위생상태에 너무 무감했다. 화장실이 없었던 베르사유 궁전에 귀족들은 정원이나 커튼 뒤에 숨어서 볼일을 봤다. 궁전 안에 진동하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향수를 마구 뿌려댔고, 내부 인테리어도 자주 바꿨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도시 파리는 역겨운 악취의 공포를 감추려고 점점 화려하게 변신했다. 아름답고 쾌적한 풍경이 있는 신작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메르시에는 신작로를 ‘도시개발의 상징’으로 보았다. 알고 보면 프랑스는 역으로 말해 세상에서 가장 더럽게 지냈기에 최고급 향수와 멋진 신작로, 그리고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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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5-08-2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서 향수가 발달한것은 말씀하신대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귀족들이나 왕조차 세수같은 것을 거의 하지 않고 간단히 물수건으로 얼굴등을 데충 닦은뒤 몸의 냄새를 가리기위해 향수를 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쓰신대로 파리시내가 온통 오물투성이여서 여성들의 경우 똥구덩이를 피하기위애 높은 굽의 신발을 신었는데 이게 오늘날 하이힐의 원조라고 할수 있지요^^

cyrus 2015-08-28 16: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때 당시 사람들은 목욕을 잘 하지 않았었죠. ‘향수’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쓰다 보니 하이힐의 발명을 깜빡 잊고 있었어요. ^^

인디언밥 2015-08-28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처음에 알고 엄청 충격을...ㅠ 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책 읽으면 소설이 더 생생하게 와닿을 것 같아요. 교양서도 더 잘 들어올 것 같고.. 우와

cyrus 2015-08-28 16:56   좋아요 1 | URL
옛날 배경으로 쓴 외국소설이 지루하게 느끼는 이유가 배경에 너무 낯설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 유럽의 중세, 계몽주의 시대 문화가 낯설어서 힘들었습니다. 과정이 번거롭지만, 시대 상황이나 문화, 풍속을 설명해주는 역사책을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훨씬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08-28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에 화장실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이런 인간들이 나중에 조선에 와서 더럽다고 욕하고 다녔다니 기가 찰 노릇이네요.ㅎㅎ 신나게 먹고 마시다가 계단 난간에서 불대포를 쏘았을 궁정시대의 귀족이 떠오르네요.ㅎㅎㅎ

cyrus 2015-08-28 16:5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잘 보면 서양인들도 몇 가지 약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때 자신들을 우월한 민족으로 여겼어요. 파리 토박이인 메르시에도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파리 사람들이 한심스러웠던 거죠. ^^

stella.K 2015-08-2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향수를 영화로 봤는데 거기서 첫 장면이 그거였지.
그 장면이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지금도 생각난다.

우리나라도 저때의 프랑스와 다르지 않았을텐데
다른 것이 있다면 향수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거라고 해야할까?ㅋ
그래서 신발의 굽이 높은 것도 그 이유라잖아.ㅎㅎ

cyrus 2015-08-28 17:04   좋아요 0 | URL
영화 <향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땔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 압권이에요. 저도 영화 시작 장면을 보면서 아이를 혼자 출산하는 그루누이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 조선 시대의 위생 상태가 궁금해요. ^^

해피북 2015-08-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에도 한양인근이 오물로 넘쳐났다는 글을 본적 있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향수를 만들지 못했는지 앗. 저두 stella.k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ㅎㅎ

cyrus 2015-08-28 17:0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우리나라가 향수를 못 만들었다고 해서 프랑스와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선 시대 생활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위생을 청결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의도하지 않게 뜻밖의 물건이 탄생될 수도 있고요. ^^
 

 

 

 

 

 

 

 

 

 

 

 

 

 

 

 

 

 

 

 

 

독서문화시민연대가 올해 9월 첫째 주(91~97)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정했다. 독서의 달을 맞아 금서로 지정되어 나쁜 책으로 낙인찍힌 책들을 다시 읽어 보자는 취지로 진행된다. 금서 목록은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홈페이지(www.bookreader.or.kr)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목록에 있는 금서는 총 46권이며 계속 금서가 추가될 예정이다. 금서 목록을 확인해 보니까 의외의 이유로 금서로 오명을 받아야 했던 책이 몇 권 있었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이 초등학교 도서관 금서 목록에 올랐던 사실을 처음 알았다.

 

금서 목록을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이 책이 없는 사실에 의아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책은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외설 시비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인류는 늘 그랬듯이 금서를 읽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위대함을 눈여겨본 헤밍웨이는 이 작품이 미국 독자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도 율리시스에 출판 금지령을 내렸다. 헤밍웨이는 금서를 미국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율리시스출간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서점 셰익스피언 앤 컴퍼니의 주인 실비아 비치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헤밍웨이의 친구에게 율리시스를 소포로 보냈다. 캐나다인은 매일 바지 속에 율리시스책 한 권씩 숨겨서 미국으로 밀반입했다. 캐나다는 율리시스출판 금지령이 내려지지 않은 국가였다.

 

이 정도 이력(?)이라면 율리시스는 금서 읽기 주간에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다. 아니, 금서의 역사를 논할 때 율리시스가 빠지면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해서 금서 목록에 포함될 수 없다면, 이 또한 독서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태가 된다. 책이 엄청나게 두꺼워서 국내 번역본이 무려 1,000쪽이 넘는다. 그래도 넉넉하게 일주일을 잡아서 율리시스를 읽기 시작하면 완독할 수 있다. , 독자의 눈을 괴롭히는 장황한 문장과 주석의 지루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또한, 율리시스을 제대로 읽으려면 해설서도 같이 읽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율리시스가 음란물로 오해를 받았던 이유를. 율리시스에 다가서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인용하여 소개해 본다. 얼마나 야한지 한 번 확인해보시라. (글이 길기 때문에 인용한 문장만 확인해도 된다)

 

    

 

 

 4장 칼립소

 

버들 무늬의 접시 위에 핏방울이 흘러나온 한 토래 콩팥: 마지막 남은 것, 그는 카운터의 옆집 처녀 곁에 섰다. 그녀도 저 콩팥을 사려는가. 손이 종이 쪽지로부터 품목을 읽으면서? 손이 튼 채: 세탁용 소다. 그리고 데니 점의 소시지 1파운드 반, 그의 눈이 그녀의 활기 찬 엉덩이 위에 머물렀다. (중략) 돼지 푸줏간 주인은 쌓아 놓은 더미에서 두 장을 집어, 그녀의 상등품 소시지를 말아 싼 뒤, 붉은 얼굴을 찌푸려 보았다.

- , 아가씨. 그는 말했다.

그녀는 대담하게 미소지으며, 굵은 팔목을 내밀어, 한 닢 동전을 치렀다.

고마워요. 아가씨. 그리고 거스름돈이 1실링 3페니. , 댁은?

블룸씨는 재빨리 가리켰다. 그녀는 뒤쫓아 따라잡기 위해 만일 그녀가 천천히 걸으면 그녀의 움직이는 햄 엉덩이 뒤를 아침에 맨 먼저 그걸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야. 서둘러요. 젠장. (중략) 이클레스 골목길에서 그녀를 끌어안는 한 비번(非番) 순경. 사내들은 끌어안기에 꼭 알맞은 여자를 좋아하지. 상등품 소시지야. 오 제발, 순경나리, 나는 어쩜 좋아요.

 

(김종건 역, 154~156)

    

레오폴드 블룸은 가수인 아내 몰리의 아침 식사를 차리기 위해 혼자 시장에 나선다. 돼지 콩팥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려고 정육점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옆집에 사는 하녀를 만난다. 그런데 하녀의 엉덩이를 보는 순간, 블룸은 충동적으로 야한 자극을 받는다.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를 소시지로 비유하는 블룸의 생각은 야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여성을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남성 우월적 시선이 드러난다.

 

 

    

 

 8장 레스트리고니언즈

    

 유리창에 달라붙은 파리 두 마리가 윙윙거린다.

불타는 듯한 포도주가 그의 입에서 머물다가 목으로 넘어갔다. 포도주 압축기에서 으깨지는 버건디 포도송이. 그것은 태양열이다. 비밀의 감촉에 닿아 나의 희미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그것은 그의 축축해진 감각을 자극하여 생각나게 했다. (중략) 그녀의 머리는 내 코트를 베개 삼고, 히스나무 집게벌레가 그녀 목 아래에 낀 내 손을 긁었다. 나 두둥실 뜰 것 같아요. 어머, 멋져요! 향유 때문에 차가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나에게 닿아 애무했다. 나에게로 향한 그녀의 눈은 딴 곳으로 비껴나지 않았다. 나는 황홀한 기분으로 그녀 위에서 입을 벌리고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 그녀는 살며시 나의 입 속으로 따뜻하게 씹은 시드케이크를 넣어 주었다. 그녀의 입으로 씹은 달고 시큼한 덩어리. 환희. 나는 그것을 먹었다. 환희. 젊은 생명, 입을 내밀고 나에게 준 그녀의 입술. 그녀의 눈은 꽃이었다. 나를 드릴게요 하는 적극적인 눈.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 그녀는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중략) 나는 거칠게 그녀를 덮쳐 키스했다. 눈을, 입술을, 뒤로 젖힌 목덜미를, 엷은 블라우스 속에서 고동치고 있는 유방을, 단단해진 둥근 젖꼭지. 나는 나를 잊은 채 혀를 그녀 입 안에 넣었다. 그녀도 나에게 키스했다. 나도 키스를 받았다. 몸을 내맡기고 그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키스했다. 그녀도 나에게 키스했다.

나를. 그리고 지금 이 나를.

달라붙은 파리들이 윙윙거렸다.

 

(김성숙 역, 300~301)

 

 

레오폴드 블룸은 바(bar)에서 혼자 포도주를 마시다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교미하는 파리 한 쌍을 관찰한다. 그는 파리가 교미하는 것을 보면서 옛 애인 조세핀 브린과의 키스를 회상한다. 파리의 교미를 통해서 성적 본능을 불연 듯 떠올린 블룸의 심리 상태를 조이스는 아주 농도 짙게 표현했다. 마들렌과 홍차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 프루스트의 문장과 한 번 비교해보시라. 조이스는 발칙하게도 교미하는 파리 한 쌍을 보면서 온몸으로 느꼈던 뜨거운 옛사랑의 흔적을 기억한다.

 

    

 

 

 10장 배회하는 바위

    

그는 책을 펼쳤다. 생각했던 대로야.

더러운 커튼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 잘 들어 봐! 그 남자.

아니야: 아내는 그런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걸 한번 빌려다 주었지.

그는 다른 책의 제목을 읽었다: <죄의 쾌락>. 아내의 취향에 더 맞겠군. 어디 좀 보자.

그는 손가락이 펼치는 곳을 읽었다.

남편이 그녀에게 준 모든 달러 화폐는 멋진 가운과 가장 값비싼 화려한 속옷을 사느라 옷가게에서 다 써버렸다. 그이를 위해! 라오울을 위해!”

그래. 이거다. 여기 읽어보자.

그녀의 입은 달콤하고 육감적인 키스로 그의 입과 풀칠되고 한편 그의 양손은 그녀의 실내복 속에 감싼 풍만한 곡선을 다듬었다.”

그래. 이걸 사자. 결말은.

당신은 이미 늦었어. 그는 의심스런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의 검은담비 털로 장식된 외투를 벗어 던지자. 여왕다운 어깨며 요동치는 풍만한 육체가 드러났다. 그녀가 그에게 조용히 얼굴을 돌리자, 한 가닥 알쏭달쏭한 미소가 그녀의 무르익은 입술 주변에 아롱거렸다.”

블룸씨는 다시 읽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

온기가 조용히 그의 온몸을 소나기처럼 감싸면서, 그의 살을 움츠리게 했다. 헝클어진 옷 사이로 풍만하게 드러난 육체. 눈의 흰자위가 점점 풀어지면서 그의 콧구멍이 노획물을 찾아 저절로 아치형을 이루었다. 녹아 내리는 가슴 연고(“그이를 위해! 라오울을 위해!”). 겨드랑이의 양파 같은 땀 냄새. 어교(魚膠)같은 끈적끈적한 점액(“그녀의 요동치는 비만의 육체!”). 느껴요! 눌러요! 억눌린 채! 사자의 유황 빛 똥!

 

(김종건 역, 458)

    

 

 

레오폴드 블룸은 서점에서 에로소설 <죄의 쾌락>을 읽는다. 소설에 나오는 야한 장면을 읽다가 의식적으로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내연남 보일런의 삼각관계를 떠오른다. 블룸은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에 놓인 중년 남성이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에로소설을 읽으면서 충족시켜 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자꾸 아내의 내연남이 생각난다. 아내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는 블룸의 정신 상태가 안쓰럽기만 하다.

    

 

 

 13장 나우시카

    

레오폴드 블룸이 샌디마운트 해변을 걸으면서 명상에 빠져 있다가 우연히 거티 맥도웰이라는 소녀를 목격한다. 거티는 블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그녀는 속옷을 드러낸다. 블룸은 속옷을 보여주는 그녀를 응시하면서 자위를 한다. 이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 워낙 길어서 분량을 생각해서 인용하지 않았다. 블룸의 자위 행위는 율리시스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장면이지만, 율리시스관련 학술 논문 주제로 많이 정해질 정도로 해석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장면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적으로 접근하면 거티는 단순히 블룸의 성적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수동적 대상에 불과하다. 한편 또 다른 해석을 따르자면, 블룸의 관음증적 응시와 거티의 노출증적 행동이 상호적으로 대응하여 절정에 이른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의 욕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인용한 문장 때문에 글이 상당히 길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소개된 문장만 보더라도 율리시스가 음란물로 규정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율리시스가 처음 출간되었던 당시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기독교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음란한 장면만 놓고 금서로 지정되는 상황을 조이스는 상당히 억울했을 것이다. 율리시스시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왼쪽 눈을 희생하면서 조이스가 열심히 써내려간 작품이다. 율리시스출간 이후에 조이스는 왼쪽 눈을 열 번 이상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1933년에 존 M. 울지 판사가 율리시스를 새로운 문학 실험이 낳은 창작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출간된 지 11년 만에 금서 딱지를 떼어낼 수 있었다. 율리시스는 시대를 지배한 엄격한 도덕성에 갇힌 표현의 자유에 날개를 달아준 중요한 책이다. 세상을 바꾼 최고의 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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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도 있네요^^ 참 네....

cyrus 2015-08-27 16:00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금지시켰어요. ^^;;

인디언밥 2015-08-2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서 읽기 주간이라니 잼있네요! 인용하신 글 보니 야하긴 야한 것 같아요. 크크크... 가끔 금지된 것들이 그 시대를 보여주기도 하나봐요. 우리나라도 비교적 최근까지 그렇고.. 금서의 역사라던가.. 금지된 것들을 다룬 책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용..

cyrus 2015-08-27 16:02   좋아요 1 | URL
베르너 폴트의 <금서의 역사>, 니컬러스 J. 캐롤리드스의 <100권의 금서>를 참고하면 됩니다. ^^

인디언밥 2015-08-27 17:12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당 ㅜㅠㅠ

페크pek0501 2015-08-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서, 라고 하니깐 끌리는 걸요. 도대체 왜 금서인가 싶어서 말이죠.
예전에도 금서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시대가 바뀌면 금서 목록도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금서가 양서가 되기도 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우리의 생각이란 게 시간을 타고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도 할 테니까요.
님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고 갑니다. ^^

cyrus 2015-08-27 16:04   좋아요 0 | URL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종북주의로 의심되는 책을 선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
 

 

 

 

 

 

 

 

 

 

 

 

 

 

 

 

 

 

 

 

 

* La Grande Bretèche (1831, <인간 희극> 1부 풍속 연구 사생활 장면’)

** 이야기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자크는 무명작가 시절에 짧은 분량의 고딕소설을 많이 썼다. 인간의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낭만주의가 확산하면서 일상적인 공간과 괴이한 사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고딕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발자크는 오라스 드 생토뱅’, ‘비레르글레와 룬 경이라는 가명으로 자신의 고딕소설을 출판했다. 이 때 경험을 작가 본인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라고 말하지만, 훗날 더 좋은 작품을 낳게 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의 작품 곳곳에 고딕소설의 향기가 느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책 공포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에서 발자크 작품에 드러나는 환상적인 요소를 공포문학에 부합된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러브크래프트는 발자크의 작품을 비평하는 내용을 상당히 짧게 썼다. 최소한 발자크의 환상문학을 논하려면 영생의 묘약을 언급해줘야 하는데 러브크래프트는 이 작품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딕 분위기가 짙은 발자크의 작품으로는 그랑드 브러테슈(La Grande Bretèche)도 있다. 사실 이 작품이 <인간 희극>에 포함되지 않은 발자크 초창기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구글에 열심히 검색해본 결과, 그랑드 브러테슈<인간 희극> 1부 풍속 연구 중 사생활 풍경수록 작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딕소설은 항상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오래된 유적에 관심이 많은 의사가 방돔이라는 마을에 버려진 채 남아있는 브러테슈 저택을 발견한다. 의사는 이 저택의 비밀이 궁금하다. 의사는 마을 주민으로부터 저택이 방치된 사연을 알게 된다. 과거에 이 저택에 백작 부부가 살았다. 남편이 출장으로 타지에 머무르고 있을 때, 백작부인은 스페인 출신의 남자와 정분을 맺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 생각보다 일찍 저택에 돌아오게 되자, 위급한 부인은 스페인 남자를 옷장에 숨긴다. 남편은 부인의 태도를 의심한다. 그는 이미 부인이 자신 몰래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남편은 부인에게 옷장을 열어보라고 한다. 부인은 옷장에 아무것도 없다면서 십자가 앞에 맹세하기에 이른다. 다행히 스페인 남자는 남편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은 자신의 거짓된 행동 때문에 끔찍한 상황이 초래하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남편은 외출하면서 하인에게 옷장 주변에 벽을 쌓아 막아놓으라고 지시한다. 남편이 없는 사이에 부인은 옷장에 갇힌 스페인 남자를 구출하려고 곡괭이질을 하다가 그만 남편에게 들킨다. 남편은 구멍으로 스페인 남자의 눈빛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옷장에 아무것도 없다고 맹세한 부인의 말을 강조하면서, 부인이 보는 앞에서 벽에 난 구멍을 메운다. 이제 부인은 옷장에 갇힌 남자를 도와줄 수 없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굶어 죽어가는 스페인 남자의 신음을 들어야만 했다. 부인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긴다. 브러테슈 저택에 새 주인을 받아들이지 말고, 사람 손길이 닿치 않도록 내버려둘 것.

 

이 소설은 부정된 사랑이 초래한 끔찍한 비극을 보여준다. 불륜을 저지른 부인을 복수하는 남편의 광기 어린 행동도 주목할 만하다. 발자크 작품 특유의 환상적인 요소는 없지만, 이야기의 극적인 결과는 독자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그랑드 브러테슈는 공포문학 선집에 수록되는 몇 안 되는 발자크 작품 중 하나다.

 

 

 

 

발자크의 작품이 수록된 책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 고전편(황금가지, 2003) - 그랑드 브러테슈

등대지기(작은키나무, 2006) - 라 그랑드 브르테슈

고전공포걸작선(바른번역, 2011 / eBook) - 브러테슈 저택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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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08-2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장에 갇힌 스페인 남자가 가엾군요. 사랑의 대가가 혹독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다급한 상황에선 옷장이 요긴하고.
그런데 그 장면이 재밌게 느껴집니다.

cyrus 2015-08-27 15:59   좋아요 0 | URL
바람피우려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참고해야 할 겁니다. 옷장에 숨는 방법도 안심할 수 없어요. ㅎㅎㅎ
 
파리의 풍경 1 파리의 풍경 1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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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불평등은 문명 자체, 범위를 좁히면 잘못된 체제에 주된 원인이 있다. 구조화한 불평등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장 자크 루소는 1755년에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발표했다. 루소가 생각한 불평등 원인은 문명 그 자체였고, 그것을 정당화할 자연법은 없었다. 이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당시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함을 내포했다. 한 세대 뒤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루소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진리를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려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했다. 이런 와중에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라는 작가 겸 언론인은 혁명의 기운이 닿지 않는 파리의 땅을 한가롭게 밝으면서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글로 기록했다. 책 제목은 《파리의 풍경》. 1781년부터 1788년까지 총 12권으로 출판한 책(국내 번역본은 총 6권)은 위조본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책 때문에 메르시에는 파리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사실 위조본은 경찰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출판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인기를 식을 줄 몰랐다. 출간 당시 《파리의 풍경》의 인기는 볼테르와 루소의 책과 맞먹을 정도였다. 이 책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이 피어오르기 전 나름대로 평화로웠던 파리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파리를 찾는 다른 유럽 관광객이나 파리에 진출하려는 지방 사람들을 위한 신변잡기 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는 화려하고 평화로운 파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메르시에는 감상에 현혹됨이 없이 파리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정면으로 읽어낸다. 그는 파리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전체를 돌며 “파리는 어떠한 곳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구한다. 관찰과 사유를 통해서 얻은 결과물은 천여 개가 넘은 단상으로 정리했다. 메르시에의 글쓰기 방식은 20세기 초 근대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관찰했던 것을 짧게 메모한 발터 벤야민보다 훨씬 앞선다. 메르시에가 바라본 파리는 종잡을 수 없는 곳이다. 계몽주의 사상의 나라답게 자유와 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고, 지배의 타성에 젖어 무기력한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전제 군주시대의 색채가 너무나도 짙다. 책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귀족들, 신분 상승을 위해서 파리 중심부로 모여든 지방의 젊은이들, 그리고 가난에 허덕이는 시민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메르시에는 점점 사람들이 모여 넘쳐나는 파리를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를 가진 존재로 비유한다.

 

파리는 나라라는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 혹을 잘라내기보다는 내버려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번 뿌리가 내리면 근절이 불가능한 잘못된 일들이 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파리는 인류를 집어삼키는 구렁텅이라고 볼 수 있다. (10쪽, 발췌 인용)

 

그가 걱정하는 ‘잘못된 일’이란 게 무엇일까. 메르시에는 물질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파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부자와 빈자와의 경제적 격차는 점점 커지고, 빈자를 도와주어야 할 종교인들마저도 마몬의 유혹에 사로잡혔다. 이제 파리에는 검소, 절제, 미덕을 찬양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잘못된 일’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다. 전제정치와 불평등은 파리지앵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조차 보이지도 않는다.

 

파리인들은 계속적인 성찰과 노력에 의해 자유를 조금 더 얻어보았자 별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다. 파리인은 도시의 불행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들은 고통을 기록해 두지 않는다. (52쪽)

 

다행히도 메르시에가 걱정했던 매너리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파리의 풍경》이 출간하고 나서 일 년 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서 《파리의 풍경》은 자유와 평등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책이다.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부의 균등분배가 이루지 못한 파리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기록했기에 당연히 정부는 이 책의 인기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메르시에의 책이 불티나게 팔린 사건은 사회적 모순을 감지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부터 메르시에의 책은 파리 시민들의 기억 속에 잊혔다. 인기 작가 대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은 루소와 볼테르였다. 메르시에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은 풍속과 각종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간략하게 적은 칼럼을 연상시킨다. 그의 글은 다소 지루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파리의 풍경》이 혁명 이후에 잊힌 책이라고 해서 단순히 프랑스 혁명의 등장을 예고하는 텍스트 정도로만 평가한다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한다. 메르시에는 우리의 도덕관과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율배반과 변화무쌍한 파리를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했을 뿐이다.

 

어떤 기술을 완전히 익힌다는 구실로 지방을 떠나서 멘토도 친구도 없이 이 유혹의 도시를 찾아온 순진한 풋내기는 화를 당할지어다! 뻔뻔스럽게 쾌락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방탕의 덫들이 사방에서 그를 둘러싼다. 그는 부드러운 사랑이 아니라 그 모조품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교태의 거짓말과 탐욕의 간계가 진심의 토로와 감정의 불꽃을 대신한다. 쾌락은 돈을 주고 사는 기만적인 것이다. (25쪽)

 

공교롭게도 프랑스 혁명 이후의 파리는 다시 유턴을 시작했다. 구체제보다 훨씬 빨리 부활한 것이 향락이었다. 단두대의 공포가 사라지기 무섭게 무도회장이 파리 곳곳에서 문을 열었고, 사기꾼, 투기꾼, 부패 정치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의회 의원들의 부패행위는 공공연해졌으며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세인의 부러움을 샀다. 메르시에는 프랑스의 최초 공화정을 무력하게 만든 나폴레옹 제정의 몰락(1814년)까지 지켜보고 눈을 감는다. 만약에 그가 십 년을 더 살았으면 물질주의에 지배된 파리를 더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대도시는 끝없이 타락할 것임을. 그래서 파리를 꿈과 성공의 도시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신기하게도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순진한 라스티냐크의 등장을 예고한다. 메르시에는 ‘인류를 집어삼키는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파리지앵이다. 이 위대한 생존자는 타락한 도시의 영혼들이 사는 시대의 천태만상을 기록하는 데 성공한다. 발자크가 생전에 해내지 못한 <인간 희극> 작업을 12권으로 정리했다. 12권의 《파리의 풍경》은 90여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발자크의 <인간 희극> 전체와 맞먹는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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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역사적 책도 있었군요. 국내에서도 12권으로 출간된 책 중 이것이 첫 권인가요?

cyrus 2015-08-26 10:05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국내 번역본 권수를 언급하지 않았군요. 총 6권으로 완역본입니다. ^^;;

프레이야 2015-08-2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이군요. 완전히 새롭게 발견하게 된 책입니다. 리뷰 감사해요^^

cyrus 2015-08-26 10:07   좋아요 1 | URL
최근 프랑스 역사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이 서울대학교가 주관하는 문화연구기관 이름으로 출판되었어요. 이런 좋은 책이 알려지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국내 번역본 권수는 6권입니다. 제가 깜빡 잊고 국내 번역본 권수를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8-2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12권이라니~ 다 읽으려면 몇년이 걸릴까요? ㅎㅎ
좋은 책 감사해요~^^

cyrus 2015-08-26 10:09   좋아요 0 | URL
글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12권은 처음에 나왔을 때 권수고요, 국내 번역본은 6권으로 나왔습니다. ^^;; 한 권당 400쪽 조금 넘습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사회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알아야 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8-26 15:50   좋아요 0 | URL
확 끌립니다. 일단 책값이 후덜덜하군요 ㅎㅎ
소장가치는 있겠어요., 제가 힘들면 도서관에라도 소장하도록 하든지 해야겠어요 ~^^

cyrus 2015-08-26 15:58   좋아요 0 | URL
공공도서관에 찾기 어려운 책일지도 모릅니다. 스무 개 넘는 대구 도서관 중에 6권 모두 소장되어 있는 곳이 딱 한 군데뿐이었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8-26 16:02   좋아요 0 | URL
정말요? 이런 책이야말로 도서관에 소장해줘야 하는데요~~ 희망도서로 일단 신청을 해봐야겠어요 ~ ^^

AgalmA 2015-08-2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보면 참 부러워요. 그에 비해 한국은 참 여러모로 안타까운...왜곡하려는 자들은 득실하고...

cyrus 2015-08-26 10:14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가면 갈수록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고발하는 사람들을 자꾸 거짓으로 모함하는 세력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5-08-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가 테마가 되는 책이군요. 이런 책이 나오기 힘든 한국의 풍토가 아쉽습니다.

cyrus 2015-08-26 10:15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번역되지 못하는 풍토도 아쉽습니다.

stella.K 2015-08-2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작에 무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 싶어. 발자크도 그렇고.
현재는 6권만 번역된 거고, 앞으로 6권이 더 번역되어 완역한다는
목표겠지?
뭐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처럼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읽을지는 장담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 탐나는 책임엔 틀림없어.

cyrus 2015-08-26 15:26   좋아요 0 | URL
우리말로 번역해서 나온 책이 총 6권이에요. 이 책 번역에 참여한 사람이 7명이나 됩니다. 그만큼 국내에 덜 알려진 책을 번역한 분들이 대단해요. 그런데 책값이 대학교재 가격이랑 비슷해요.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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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의 도시다. 한강의 기적과 그것이 빚어낸 명암, 꿈을 갈망하고 욕망을 소비하는 메트로폴리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광적으로 서울에 몰렸다. 개발 연대기 서울 행정은 인구 분산과 교통난 해소, 택지개발, 아파트 건설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는 욕망의 응집체다. 이 욕망은 재개발과 투기라는 이름으로 무한증식하며 허물고 새로 짓기를 반복한다. 한국인의 ‘내 집 갖기’ 욕망은 세계 최고 수준인 교육열 못지않다. 집의 소유 여부, 크기, 위치가 ‘계층’ 판단의 기준이 되다시피 해 도시서민 제1의 목표 역시 ‘내 집 마련’에 맞춰지곤 한다.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는 아파트는 모든 이의 꿈을 획일화하며, 거주자들은 자기만의 성을 쌓아간다. 하지만 꿈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수십 차례에 걸쳐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아파트 가격의 폭등을 멈추지 못했다. 이로 인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사회를 조정·통제하는 정치적·사회적 요인과 제도는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도시개념에 무지한 사람들은 이 거대한 도시를 마치 경제성장, 주거환경의 혁신적 결과로 착각한다. 사실은 서울은 그때그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허물어지고 구축됐다. 그 안에 사는 인간은 이같이 파괴적인 순환에 저절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반비, 2015)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변천 과정에 숨어있는 공공적 욕망에 주목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자본 그리고 욕망의 토대 위에 존립한다. 이 욕망의 시발점을 보려면 행정구역이 새롭게 개편되면서 점점 도시의 모습으로 갖추기 시작하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시는 1960년대 초반부터 시민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시가 아파트의 골조만 짓고, 입주자가 내부공사 일체를 맡는 방식이었다. 실적 위주로 밀어붙인 아파트 짓기는 1970년에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는 대형사고를 낳았다. 70년대에는 유신정권이 민간부문에 의한 주택건설을 확대하기 위해 세금 면제, 재정 지원 등 다양한 유인책을 내놨다. 압구정동, 여의도, 잠실 등지의 아파트는 대부분 이때 지어졌다. 각종 개발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아파트 개발 사업에 참여한 대형 건설업체들을 끌어모아 힘을 얹어주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건설업체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80년대 말부터 주택난이 발생했지만, 정권수립에 도덕성이 없는 전두환 정권은 국민 불만을 물가안정으로 잠재우려고 했다. 멈출 줄 모르는 집값 폭등이 민심이반 현상으로 크게 번지게 되자 노태우 정권은 승부수를 걸었다. 수도권 주변의 5개 신도시 개발이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아파트’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투자를 넘어서 투기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투기 광풍 속에 건설업체는 입맛대로 분양가를 책정하여 고수익을 챙겼다. 정권과 대형 건설업체는 서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연대를 구축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독자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통해서 개발사업의 성공신화에 가려진 불편한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 욕망이 무수히 교차하는 도시 ‘서울’은 일종의 무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정부의 조종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 인형이다. 정부의 정책 블루스로부터 시작된 도시의 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금 어디선가 커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욕망은 수십 년 후의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모두 궁금해하지만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주식 투기에 뛰어들었다가 잠시 지옥에 경험했다는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모를 것이다. 뉴턴은 주식시장 전망을 묻는 한 투기꾼에게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뉴턴 같은 천재에게도 우리 삶을 지배하는 욕망의 힘은 알쏭달쏭한 불가해의 영역이다. 하지만 확실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고전경제학이 말했던, 그 꼭대기 위에 앉아 욕망을 제어한다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대해진 도시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셈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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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원주 2015-08-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 권력은 한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이기심을 끌고 가는 세력이라고 생각해요. 거대도시 서울의 흥망성쇠에 대한 담론을 대담 형식으로 잘 담아놓은 책이라서 저도 읽어보려해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8-31 16:46   좋아요 1 | URL
지리학에 낯설어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대담 형식으로 풀어서 그런지 책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