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문화시민연대가 올해 9월 첫째 주(91~97)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정했다. 독서의 달을 맞아 금서로 지정되어 나쁜 책으로 낙인찍힌 책들을 다시 읽어 보자는 취지로 진행된다. 금서 목록은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홈페이지(www.bookreader.or.kr)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목록에 있는 금서는 총 46권이며 계속 금서가 추가될 예정이다. 금서 목록을 확인해 보니까 의외의 이유로 금서로 오명을 받아야 했던 책이 몇 권 있었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이 초등학교 도서관 금서 목록에 올랐던 사실을 처음 알았다.

 

금서 목록을 꼼꼼하게 읽어보면서 이 책이 없는 사실에 의아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금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책은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외설 시비 때문에 금서로 지정되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인류는 늘 그랬듯이 금서를 읽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위대함을 눈여겨본 헤밍웨이는 이 작품이 미국 독자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도 율리시스에 출판 금지령을 내렸다. 헤밍웨이는 금서를 미국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율리시스출간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서점 셰익스피언 앤 컴퍼니의 주인 실비아 비치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헤밍웨이의 친구에게 율리시스를 소포로 보냈다. 캐나다인은 매일 바지 속에 율리시스책 한 권씩 숨겨서 미국으로 밀반입했다. 캐나다는 율리시스출판 금지령이 내려지지 않은 국가였다.

 

이 정도 이력(?)이라면 율리시스는 금서 읽기 주간에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다. 아니, 금서의 역사를 논할 때 율리시스가 빠지면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해서 금서 목록에 포함될 수 없다면, 이 또한 독서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태가 된다. 책이 엄청나게 두꺼워서 국내 번역본이 무려 1,000쪽이 넘는다. 그래도 넉넉하게 일주일을 잡아서 율리시스를 읽기 시작하면 완독할 수 있다. , 독자의 눈을 괴롭히는 장황한 문장과 주석의 지루함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또한, 율리시스을 제대로 읽으려면 해설서도 같이 읽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율리시스가 음란물로 오해를 받았던 이유를. 율리시스에 다가서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을 인용하여 소개해 본다. 얼마나 야한지 한 번 확인해보시라. (글이 길기 때문에 인용한 문장만 확인해도 된다)

 

    

 

 

 4장 칼립소

 

버들 무늬의 접시 위에 핏방울이 흘러나온 한 토래 콩팥: 마지막 남은 것, 그는 카운터의 옆집 처녀 곁에 섰다. 그녀도 저 콩팥을 사려는가. 손이 종이 쪽지로부터 품목을 읽으면서? 손이 튼 채: 세탁용 소다. 그리고 데니 점의 소시지 1파운드 반, 그의 눈이 그녀의 활기 찬 엉덩이 위에 머물렀다. (중략) 돼지 푸줏간 주인은 쌓아 놓은 더미에서 두 장을 집어, 그녀의 상등품 소시지를 말아 싼 뒤, 붉은 얼굴을 찌푸려 보았다.

- , 아가씨. 그는 말했다.

그녀는 대담하게 미소지으며, 굵은 팔목을 내밀어, 한 닢 동전을 치렀다.

고마워요. 아가씨. 그리고 거스름돈이 1실링 3페니. , 댁은?

블룸씨는 재빨리 가리켰다. 그녀는 뒤쫓아 따라잡기 위해 만일 그녀가 천천히 걸으면 그녀의 움직이는 햄 엉덩이 뒤를 아침에 맨 먼저 그걸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야. 서둘러요. 젠장. (중략) 이클레스 골목길에서 그녀를 끌어안는 한 비번(非番) 순경. 사내들은 끌어안기에 꼭 알맞은 여자를 좋아하지. 상등품 소시지야. 오 제발, 순경나리, 나는 어쩜 좋아요.

 

(김종건 역, 154~156)

    

레오폴드 블룸은 가수인 아내 몰리의 아침 식사를 차리기 위해 혼자 시장에 나선다. 돼지 콩팥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려고 정육점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옆집에 사는 하녀를 만난다. 그런데 하녀의 엉덩이를 보는 순간, 블룸은 충동적으로 야한 자극을 받는다.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를 소시지로 비유하는 블룸의 생각은 야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여성을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남성 우월적 시선이 드러난다.

 

 

    

 

 8장 레스트리고니언즈

    

 유리창에 달라붙은 파리 두 마리가 윙윙거린다.

불타는 듯한 포도주가 그의 입에서 머물다가 목으로 넘어갔다. 포도주 압축기에서 으깨지는 버건디 포도송이. 그것은 태양열이다. 비밀의 감촉에 닿아 나의 희미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그것은 그의 축축해진 감각을 자극하여 생각나게 했다. (중략) 그녀의 머리는 내 코트를 베개 삼고, 히스나무 집게벌레가 그녀 목 아래에 낀 내 손을 긁었다. 나 두둥실 뜰 것 같아요. 어머, 멋져요! 향유 때문에 차가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나에게 닿아 애무했다. 나에게로 향한 그녀의 눈은 딴 곳으로 비껴나지 않았다. 나는 황홀한 기분으로 그녀 위에서 입을 벌리고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 . 그녀는 살며시 나의 입 속으로 따뜻하게 씹은 시드케이크를 넣어 주었다. 그녀의 입으로 씹은 달고 시큼한 덩어리. 환희. 나는 그것을 먹었다. 환희. 젊은 생명, 입을 내밀고 나에게 준 그녀의 입술. 그녀의 눈은 꽃이었다. 나를 드릴게요 하는 적극적인 눈.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 그녀는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중략) 나는 거칠게 그녀를 덮쳐 키스했다. 눈을, 입술을, 뒤로 젖힌 목덜미를, 엷은 블라우스 속에서 고동치고 있는 유방을, 단단해진 둥근 젖꼭지. 나는 나를 잊은 채 혀를 그녀 입 안에 넣었다. 그녀도 나에게 키스했다. 나도 키스를 받았다. 몸을 내맡기고 그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키스했다. 그녀도 나에게 키스했다.

나를. 그리고 지금 이 나를.

달라붙은 파리들이 윙윙거렸다.

 

(김성숙 역, 300~301)

 

 

레오폴드 블룸은 바(bar)에서 혼자 포도주를 마시다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교미하는 파리 한 쌍을 관찰한다. 그는 파리가 교미하는 것을 보면서 옛 애인 조세핀 브린과의 키스를 회상한다. 파리의 교미를 통해서 성적 본능을 불연 듯 떠올린 블룸의 심리 상태를 조이스는 아주 농도 짙게 표현했다. 마들렌과 홍차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 프루스트의 문장과 한 번 비교해보시라. 조이스는 발칙하게도 교미하는 파리 한 쌍을 보면서 온몸으로 느꼈던 뜨거운 옛사랑의 흔적을 기억한다.

 

    

 

 

 10장 배회하는 바위

    

그는 책을 펼쳤다. 생각했던 대로야.

더러운 커튼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 잘 들어 봐! 그 남자.

아니야: 아내는 그런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걸 한번 빌려다 주었지.

그는 다른 책의 제목을 읽었다: <죄의 쾌락>. 아내의 취향에 더 맞겠군. 어디 좀 보자.

그는 손가락이 펼치는 곳을 읽었다.

남편이 그녀에게 준 모든 달러 화폐는 멋진 가운과 가장 값비싼 화려한 속옷을 사느라 옷가게에서 다 써버렸다. 그이를 위해! 라오울을 위해!”

그래. 이거다. 여기 읽어보자.

그녀의 입은 달콤하고 육감적인 키스로 그의 입과 풀칠되고 한편 그의 양손은 그녀의 실내복 속에 감싼 풍만한 곡선을 다듬었다.”

그래. 이걸 사자. 결말은.

당신은 이미 늦었어. 그는 의심스런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의 검은담비 털로 장식된 외투를 벗어 던지자. 여왕다운 어깨며 요동치는 풍만한 육체가 드러났다. 그녀가 그에게 조용히 얼굴을 돌리자, 한 가닥 알쏭달쏭한 미소가 그녀의 무르익은 입술 주변에 아롱거렸다.”

블룸씨는 다시 읽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

온기가 조용히 그의 온몸을 소나기처럼 감싸면서, 그의 살을 움츠리게 했다. 헝클어진 옷 사이로 풍만하게 드러난 육체. 눈의 흰자위가 점점 풀어지면서 그의 콧구멍이 노획물을 찾아 저절로 아치형을 이루었다. 녹아 내리는 가슴 연고(“그이를 위해! 라오울을 위해!”). 겨드랑이의 양파 같은 땀 냄새. 어교(魚膠)같은 끈적끈적한 점액(“그녀의 요동치는 비만의 육체!”). 느껴요! 눌러요! 억눌린 채! 사자의 유황 빛 똥!

 

(김종건 역, 458)

    

 

 

레오폴드 블룸은 서점에서 에로소설 <죄의 쾌락>을 읽는다. 소설에 나오는 야한 장면을 읽다가 의식적으로 자신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내연남 보일런의 삼각관계를 떠오른다. 블룸은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에 놓인 중년 남성이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에로소설을 읽으면서 충족시켜 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자꾸 아내의 내연남이 생각난다. 아내 생각에 혼란스러워하는 블룸의 정신 상태가 안쓰럽기만 하다.

    

 

 

 13장 나우시카

    

레오폴드 블룸이 샌디마운트 해변을 걸으면서 명상에 빠져 있다가 우연히 거티 맥도웰이라는 소녀를 목격한다. 거티는 블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그녀는 속옷을 드러낸다. 블룸은 속옷을 보여주는 그녀를 응시하면서 자위를 한다. 이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 워낙 길어서 분량을 생각해서 인용하지 않았다. 블룸의 자위 행위는 율리시스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장면이지만, 율리시스관련 학술 논문 주제로 많이 정해질 정도로 해석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장면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적으로 접근하면 거티는 단순히 블룸의 성적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수동적 대상에 불과하다. 한편 또 다른 해석을 따르자면, 블룸의 관음증적 응시와 거티의 노출증적 행동이 상호적으로 대응하여 절정에 이른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의 욕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인용한 문장 때문에 글이 상당히 길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소개된 문장만 보더라도 율리시스가 음란물로 규정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율리시스가 처음 출간되었던 당시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기독교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음란한 장면만 놓고 금서로 지정되는 상황을 조이스는 상당히 억울했을 것이다. 율리시스시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왼쪽 눈을 희생하면서 조이스가 열심히 써내려간 작품이다. 율리시스출간 이후에 조이스는 왼쪽 눈을 열 번 이상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1933년에 존 M. 울지 판사가 율리시스를 새로운 문학 실험이 낳은 창작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출간된 지 11년 만에 금서 딱지를 떼어낼 수 있었다. 율리시스는 시대를 지배한 엄격한 도덕성에 갇힌 표현의 자유에 날개를 달아준 중요한 책이다. 세상을 바꾼 최고의 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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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도 있네요^^ 참 네....

cyrus 2015-08-27 16:00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금지시켰어요. ^^;;

인디언밥 2015-08-2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서 읽기 주간이라니 잼있네요! 인용하신 글 보니 야하긴 야한 것 같아요. 크크크... 가끔 금지된 것들이 그 시대를 보여주기도 하나봐요. 우리나라도 비교적 최근까지 그렇고.. 금서의 역사라던가.. 금지된 것들을 다룬 책이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용..

cyrus 2015-08-27 16:02   좋아요 1 | URL
베르너 폴트의 <금서의 역사>, 니컬러스 J. 캐롤리드스의 <100권의 금서>를 참고하면 됩니다. ^^

인디언밥 2015-08-27 17:12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당 ㅜㅠㅠ

페크pek0501 2015-08-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서, 라고 하니깐 끌리는 걸요. 도대체 왜 금서인가 싶어서 말이죠.
예전에도 금서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시대가 바뀌면 금서 목록도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금서가 양서가 되기도 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우리의 생각이란 게 시간을 타고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도 할 테니까요.
님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고 갑니다. ^^

cyrus 2015-08-27 16:04   좋아요 0 | URL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종북주의로 의심되는 책을 선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