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월 30일 화요일에 공개한 <아마노자쿠와 천탐녀>라는 글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천탐녀와 아마노자쿠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썼다”, “소세키가 ‘천탐녀=아마노자쿠’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아마노자쿠를 ‘여신’으로 오해한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오늘 일문학을 전공하신 분<아마노자쿠와 천탐녀>에 대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아마노자쿠의 유래를 설명한 사전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면서 아마노자쿠가 천탐녀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천탐녀는 원래 미래나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샤먼(shaman)과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탐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 그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요괴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요괴가 바로 천사귀(天邪鬼), 즉 아마노자쿠입니다.

 

저는 <아마노자쿠와 천탐녀>에서 천탐녀가 여신이고, 아마노자쿠가 요괴이기 때문에 둘 다 비슷해도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설 『몽십야』에서 천탐녀를 아마노자쿠로 쓴 표현이 문제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문학 전공자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노자쿠와 천탐녀는 같은 존재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쓰메 소세키의 표현은 문제가 없는 것이고, 번역본에 천탐녀를 아마노자쿠로 옮긴 표현은 오역이 아닙니다.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현인, 2018)

 

 

 

저는 일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일본어도 잘 모르는 독자입니다. 그런데도 어설픈 논리로 작가와 번역가를 지적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제가 댓글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을 ‘이름만 전집인 선집’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이 말 또한 잘못된 내용이기에 이를 바로 잡습니다.

 

알라딘에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검색하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문구가 나옵니다. 제가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총 10편의 중단편 소설을 썼다. 그 수가 많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중편소설과 단편소설을 하나로 묶은 책이 없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의 중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단편 소설 및 수필 등을 모아 하나로 엮은 책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의 번역에는 심각한 오류가 산재해 있어서 나쓰메 소세키의 올바른 번역서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독자에게 나쓰메 소세키 아닌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전부를 하나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소설 전부를 우리 독자들에게도 올바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금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소설을 전부 읽었다 할지라도 그건 진짜 나쓰메 소세키가 아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남긴 업적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번역된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 전집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에 수록된 작품은 총 10편입니다. 다른 단편소설 전집(하늘연못 출판사에 나온 중단편소설 전집)에 포함된 『런던 소식』, 『칼라일 박물관』 등의 소품은 ‘수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에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으려는 독자가 있으시다면 제일 먼저 알라딘에 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출판사 제공 책 소개’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번역한 분이 직접 쓴 ‘해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에는 해설이 없습니다. 저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지 못한 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은 바람에 이 책을 ‘선집’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특정 번역본과 번역가를 성급하게 비판한 점 그리고 <아마노자쿠와 천탐녀>를 읽은 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책 한 권 꼼꼼하게 읽을 것이며 글을 쓸 때 더욱더 신중히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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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0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리뷰에 이어지는 내용인가요. 해당 리뷰를 다시 한번 읽고 왔습니다.
이 페이퍼에 부가되는 설명을 읽으면서 저도 조금 더 배우고 갑니다.
cyrus님, 오늘부터 설연휴가 시작인 것 같습니다.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cyrus 2019-02-10 14:32   좋아요 1 | URL
오자 덕분에 저도 모르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야마노자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책과 책을 쓰는 사람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잘못된 건 고쳐야 합니다. ^^

2019-02-01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0 14:33   좋아요 0 | URL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휴일이 후딱 지나간 것 같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2-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연휴 잘 보내시고 늘 즐거운 글쓰기의 시루스박사님 기대합니다 🎶

cyrus 2019-02-10 14:35   좋아요 1 | URL
일주일동안 글을 안 쓰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글 안 쓰고 책만 읽는 것도 즐겁네요. ^^

짜라투스트라 2019-02-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배우네요.ㅎㅎㅎ cyrus님 설연휴 잘 보내세요.^^

cyrus 2019-02-10 14:38   좋아요 0 | URL
제가 쓴 글의 내용 대부분은 ‘알아도 쓸모없는 잡식’이라서 배울만한 게 많지 않을 겁니다.. ^^;;

2019-02-0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0 14: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syo 2019-02-01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 박사님, 작작 읽는 명절 되시라구요 좀 ㅋㅋㅋㅋㅋㅋ 명절은 읽는 게 아니라 먹는 거예요 먹는 거....

cyrus 2019-02-10 14:40   좋아요 0 | URL
이번 설날에는 실컷 먹었는데요... ㅎㅎㅎㅎ 음식도 먹고, 책도 먹고.. ㅎㅎㅎ
통풍이 재발하지 않아서 다행일 정도로 많이 먹었어요. ^^
 
성性 정치학
케이트 밀렛 지음, 김전유경 옮김 / 이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은 여성 혐오(misogyny)와 함께해왔다. 문학 속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페미니즘 비평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누군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젠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남성 작가 또는 남성 비평가 여러 명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문단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속해 있다. 이들은 지금도 문단을 주름잡는 대선배들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너 서클에 속한 남성 작가와 남성 비평가들은 자신의 패거리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권위는 이너 서클 자체를 거부하는 작가나 비평가들을 공격하는 데 활용한다.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에 반영된 여성 혐오를 지적한 페미니스트 작가나 비평가는 문단을 파괴하는 악마로 취급받아왔다. 어느 사회나 페미니즘은 잘못된 특권 의식을 지닌 여성을 조롱하기 위한 수사로 소비되곤 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ity is the political)라는 구호로 제2세대 페미니즘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1970년대에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남성 작가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쓴 박사학위 논문 성 정치학(Sexual Politics)1970년에 출간된 이래 지금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렛은 이 책에서 사회 곳곳에 침투한 가부장제라는 권력 구조를 역사와 문학비평을 통해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헨리 밀러(Henry Miller),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등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밀렛은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성 정치학의 제3(문학적 고찰)의 첫 장(‘D. H. 로렌스’)에서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야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로렌스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남근 우월주의자. 그들은 남근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배하려고 하며 여성들은 남근을 숭배하거나 남근을 과시하는 남성성에 억압당한다. 소설 내용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야한 묘사조차, 엄연히 따져보면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밀렛은 여성의 억압, 즉 남성의 여성 지배는 가부장제가 가져온 뿌리 깊은 토대를 지니고 있으며, 이제는 여성을 통제하는 거대한 권력 구조로 발전되었다고 지적한다.

 

밀렛은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념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이론과 그의 추종자들도 비판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여자아이는 자신은 남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클리토리스와 남자아이의 남근을 비교하면서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되고, 남근을 가지고 싶어 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남근 선망(penis envy)이라고 하였다. 밀렛은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 이론을 비판한다. 그녀가 보기에 남근 선망 이론은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남성 우월적인 개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는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밀렛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남성 작가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장 주네(Jean Genet)이다. 밀은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의 영향을 받아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테일러와 함께 여성의 종속을 썼다. 장 주네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희곡을 썼는데, 주네가 묘사한 동성애자들은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다. 그들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권력 관계를 폭로하고 해체하려고 한다.

    

성 정치학은 가부장적인 남성지배의 문화에 익숙한 남성 작가들의 책에 침을 뱉은 도발적인 책이다. 성 정치학의 초판 서문에 그녀가 지향하는 문학비평과 글쓰기 정신이 드러나 있다. 밀렛은 책의 저자이기 전에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문학에 저항하는 독자가 되어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그녀의 확고한 신념을 본받고 싶다.

 

 

 

  문학비평이라는 모험적 작업에 대한 나의 신념은 이러하다. 비평은 작품에 충실하게 아첨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문학이 묘사하고 해석하며 심지어 왜곡하기까지 하는 에 대한 폭넓은 통찰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초판 서문, 26)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저항하는 독자들’이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페미니즘 비평은 다양한 분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성 정치학도 후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프로이트 이론을 분석 도구로 삼는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밀렛을 비롯한 급진(radical) 페미니스트의 프로이트 비판이 가혹하다고 반박한다.

 

이번 한 달 동안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성 정치학을 읽었는데, 책의 문제점과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분은 밀렛이 동양의 여성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그녀는 1970년 기준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세계에서 매춘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고 언급했다[주1]. 정말로 1970년대 중국에 매춘이 없었을까? 그러나 밀렛은 중국에 매춘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분은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밀렛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2]

 

 

 성 혁명과 이를 이끌어 온 여성운동은 기사도 정신의 가면을 벗기고, 그 정중한 예의라는 것이 교묘한 조작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해야만 한다. 또한 공동의 대의를 위해 계급의 전선을 뛰어넘어야 하고, 숙녀와 공장 노동자가, 방탕한 여성과 지체 높은 여성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2부 역사적 배경, 159)

 

※ 글꼴을 굵게 표시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표시한 것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기득권 부르주아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그녀들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부르주아 여성들은 겪는 프롤레타리아 여성들과 똑같은 형태의 억압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관심사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을 위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내가 감탄할 정도로 통찰력 있는 레드스타킹 멤버는 성 정치학을 이렇게 평가했다.좋은 책인 건 분명하나 페미니즘 문학이나 페미니즘 비평에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 분의 말에 동의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 원주, 248.

 

[2] 밀렛의 주장에 대한 레드스타킹 멤버들의 비판적 입장은 레드스타킹공식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성 정치학의 두 번째 모임(1월 14일) 후기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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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9-01-31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제적 계층의 차이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인종적인 차이도 너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 같아요.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는 흑인 남성이 당하는 억압에 더 공감할테니까요. 저만 하더라도 한국에 살고 있을때는 사실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에 공감했던 거 같은데 여기 살다 보니 흑인 여성의 이야기에 훨씬 더 공감이 가고 백인 여성 이야기는 좀 삐딱하게 보게 되거든요.

cyrus 2019-02-01 15:14   좋아요 0 | URL
교차성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래디컬 페미니즘의 한계점이 보입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즘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이론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페미니스트들 간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계층, 인종 등과 관련된 첨예한 쟁점들이 나올 것입니다.

stella.K 2019-02-0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근우월주의는 <채털리 부인...>만 있는 게 아니지.
너무 많고 많아졌어. <롤리타>도 그렇고
특히 영화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게
유명한 사람들 성추행 해 놓고 모른다고 그러고,
아니라고 그러고, 항소하고 그러는 거 보면서
정말 그게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를 성범죄로 인지하지 못하는 거.
워낙에 세상이 남성위주다 보니까 당연하고 문제로 인식 못하는 것 같아.
여자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몰랐던 것 같고.
오늘 안희정 유죄 확정 받던데 왤케 시원하던지.

cyrus 2019-02-01 20:55   좋아요 1 | URL
남근뿐만 아니라 남성의 얼굴에 나는 수염도 우월한 남성성을 과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해요. 양쪽 수염 끝이 뾰족하면서 살짝 위로 올라간 카이저 수염은 발딱 선 페니스를 연상합니다. 재미있는 건 남성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싶어 하지만, 여성의 몸이나 얼굴에 털이 나는 걸 싫어합니다.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입니다. 오늘의 판결 결과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제기한 ‘권력형 성범죄’의 법적 처분이 상식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줬으니까요. ^^

레삭매냐 2019-02-01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 메리 설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

cyrus 2019-02-01 20: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AgalmA 2019-02-04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의 판이 남성들에 의해 짜여지다 보니 구조든 언어적 표현이든 그들 중심인 거 파악은 되는데요. 여전히 ‘여성적‘이란 표현이 나약하고 어리석다, 혹은 교활하고 사악하다는 뜻으로 두루쓰이는 걸 볼 때마다 이게 바뀌기는 할까 싶어요. 애초에 상반되는 저 뜻이 문맥에 따라 이해되는 것도 웃기고ㅎ;;
마초이즘적인 니체의 책 읽다보니 바그너 욕하며 ‘여성적‘을 가져 오길래 우리의 위대한 반철학자 니체도 이 부분에선 어쩔 수 없군 하며 씁쓸 웃음을^^;; 루 살로메랑 결혼에 성공했으면 좀 나아졌을까요. 글쎄요...
테리 이글턴 <유물론> 읽으니 D. H. 로렌스가 니체를 열렬히 좋아했다고 하대요^^;;

cyrus 2019-02-10 14:43   좋아요 1 | URL
로렌스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니체도 알아야 하는군요. 로렌스가 저를 피곤하게 만드네요.. ㅎㅎㅎㅎ

AgalmA 2019-02-10 23:58   좋아요 0 | URL
잘 몰랐는데 D.H 로렌스가 해외에서는 인지도가 많은가 봅니다?
국내에 번역은 안 되었지만 제프 다이어가 D.H 로렌스 전기를 쓰려 하다가 실패한 이야기 <Out of Sheer Rage>도 있더군요. 하긴 영국에서 현재 국민 작가급이라는 제프 다이어도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cyrus 2019-02-11 13:54   좋아요 0 | URL
지금 서구에서의 로렌스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1960년대 말에 성해방 운동이 일어났을 때 로렌스의 인기는 엄청 났었을 거예요. 로렌스 전기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요..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몽십야(夢十夜)은 말 그대로 열 편의 꿈 이야기. 소세키가 영국 유학 생활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온 후에 쓴 단편소설들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몽십야와 같은 초기 작품에 환영의 세계와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묘사가 많다.

    

 

 

 

 

 

 

 

 

 

 

 

 

 

 

 

* [품절] 나쓰메 소세키 몽십야(하늘연못, 2004)

* 나쓰메 소세키 런던 소식(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회상(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 2018)

 

 

몽십야다섯째 밤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일본 요괴의 이름이 나온다.

 

 

 말굽 흔적은 지금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실제로 닭은 울지 않았다. 닭이 우는 흉내를 낸 것은 야마노자쿠(天探女)였다. 이 말굽 흔적이 남아 있는 한 야마노자쿠는 나의 적이다.

 

(몽십야, 몽십야, 44~45)

 

      

 말굽 흔적은 아직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닭 울음소리는 낸 것은 아마노자쿠였다. 이 발굽 흔적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한 아마노자쿠는 나의 원수다.

      

(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283)

 

    

* 원문

 

あとはいまだにっている真似まねをしたものは天探女(あまのじゃく)あまのじゃくであるこのあとのみつけられている天探女自分かたきである

 

      

첫 번째 인용문은 2011년에 세상을 떠난 노재명 씨가 번역한 것이다. 노재명 씨가 번역한 열흘 밤의 꿈몽십야(하늘연못)런던 소식(하늘연못)에 수록되어 있다. 몽십야는 소세키의 중단편 24편을 한데 묶은 번역본인데, 현재는 런던 소식회상(하늘연못)으로 분권 되어 나온 상태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에 있는 구절이다.

    

 

 

 

 

 

 

 

 

 

 

 

 

 

 

* [품절]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그런데 노재명 씨가 번역한 몽십야런던 소식모두 일본 요괴의 이름을 야마노자쿠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원문에 있는 あまのじゃく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아마노자쿠이다. 의 음(). ‘야마노자쿠는 번역가의 실수라기보다는 책이 인쇄되면서 나온 오자인 것 같다.

 

아마노자쿠는 인간의 마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요괴이다. 인간으로 둔갑하거나 인간의 말을 흉내 내면서 인간들을 속인다. 노재명 씨는 주석을 통해 아마노자쿠를 일본의 전설에서 주로 나오는 악녀의 화신이라고 설명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의 번역가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후에 악귀가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라는 내용의 주석을 달았다. 두 사람 모두 아마노자쿠를 천탐녀인 것처럼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마노자쿠는 요괴의 일종이다.

 

아마노자쿠와 첨탐녀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이다. 아마노자쿠의 한자식 표기는 천탐녀(天探女)가 아니라 천사귀(天邪鬼). 아마노자쿠의 원형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천탐녀이다. 천탐녀의 히라가나 표기는 あめのさぐめ이다. ‘아메노사구메라고 읽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세키는 천탐녀와 아마노자쿠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썼다. 그러나 천탐녀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는 여신이고, 아마노자쿠는 천탐녀와 비슷한 습성이 있는 요괴이다. 따라서 소세키가 천탐녀=아마노자쿠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아마노자쿠를 여신으로 오해한 것이다. 천탐녀가 아마노자쿠의 원형이므로 둘 다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지만, 일본 신화 속 천탐녀와 민간 설화에 묘사된 아마노자쿠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몽십야원문에 있는 天探女아마노사쿠로 번역하려면, 아마노사쿠가 누군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일본 요괴에 대해서 자세히 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아마노사쿠를 마치 천탐녀인 것처럼 대충 설명한다면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셈이 된다.

 

      

 

[] 박현석 옮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현인, 2018,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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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3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 있어요, 저 두꺼운 <몽십야> ㅎㅎㅎㅎ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cyrus 2019-01-30 16:58   좋아요 0 | URL
혹시 syo님이 가지고 있는 책에도 ‘야마노자쿠(天探女)’라고 적혀 있습니까?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재미있네요. ^^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다가 재미없어서 포기했어요. 일단 <그 후>를 읽었어요. syo님이 추천한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세키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syo 2019-01-30 17:2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면, 시루스 박사님과 저는 넓고 긴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멀리 서 있는 상황이겠어요 ㅋㅋㅋㅋㅋ

cyrus 2019-01-30 20:58   좋아요 0 | URL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나쓰메 소세키 전작 읽기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솔직히 이번 달 안에 읽는 건 무리였어요. 읽어야 할 책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소세키를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어요... ^^;;

stella.K 2019-01-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한길사에서 전집이 나오면서 몽십야가 안 나왔단 말야?
언제고 나오려나?

cyrus 2019-01-30 17:11   좋아요 0 | URL
소세키의 단편 선집이나 단편 전집 번역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하늘연못 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전집이고요, 작년에 현인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이름만 전집인 선집’입니다. ^^;;

2019-02-0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15: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일문학을 전공한 적이 없고, 일본어를 쓰고 말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처지에 제가 나쓰메 소세키와 번역가, 그리고 번역본을 함부로 지적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탐녀가 천사귀의 원형이라고 해도 천탐녀는 여신이고, 천사귀는 악귀이기 때문에 서로 다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님이 인용한 사전의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제 생각이 틀렸어요.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말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는 알라딘에 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지 못한 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오해를 했고, 번역자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책을 함부로 평가했습니다. **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봤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책에 꼭 있어야 할 ‘해설’인데, 다음 쇄를 찍을 때 ‘출판사 제공 책 소개’가 ‘해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글로 책에 수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사과문과 정정문을 써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 단편소설이라서 제가 이 작가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너무 몰랐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대충 읽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설픈 글을 올려서 정말 죄송하고요, 제가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2-0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노자쿠와 천탐녀>의 오류에 대한 정정문입니다. 이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10648987
 
인형의 집 (예술의전당 에디션)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인생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앞으로 살아가면서 매번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전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다. 어떤 이는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기 위한 성취욕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내 집을 마련해서 예쁜 마누라 혹은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도 말할 것이다.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Nora)는 우리의 이런 세속적인 물음에 “그래, 네가 원하는 데로 사니까 행복하니?, 행복하게 살고 있는 너는 ‘인형’이니, ‘인간’이니?”라고 다시 질문한다.

 

《인형의 집》은 여권신장운동에 불을 댕긴 사회극이다. 노라 헬메르(Nora Helmer)는 변호사인 남편 토르발 헬메르(Torvald Helmer)와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지난 8년간의 결혼생활을 보낸 ‘아내’이자 ‘어머니’다. 그녀는 중병이 걸린 남편이 이탈리아에 요양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남편의 동료 변호사 닐스 크로그스타드(Nils Krogstad)에게 돈을 빌린다. 그 당시에 여성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경제적 권한이 없었다. 노라 헬메르는 친정아버지의 연대 보증을 받아서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친정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서 자신이 대신 서명하는 위증을 했다. 남편이 총재로 취임할 은행에 몸담고 있었던 크로그스타드는 해임 통고를 받아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했는데 그는 자신과 노라와의 거래를 빌미로 노라 헬메르에게 자신의 해임을 번복시켜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내의 뒷거래와 위증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오직 자신의 출세와 명예에만 집착한다. 이에 노라 헬메르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아내란 인격도 개성도 없는 존재이며 종달새나 같은 한낱 인형에 불과한 것인가? 마침내 노라 헬메르는 인간으로서의 ‘노라’가 되고자 집을 박차고 나간다. 시민사회가 기대했던 ‘예쁘고 상냥하고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조건을 완벽히 갖췄던 노라가 자아를 찾기 위해 가정을 버린다는 결말은 당시로써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인형의 집》이 초연된 지 올해로 140주년이 된 지금 자신의 자아를 찾아 집을 떠나는 노라의 결정은 우리에게 더 이상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노라를 ‘여권주의자’로 바라보는 해석은 다소 진부하다. 노라는 주체적인 자아를 자각해가는 한 여성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또는 연극 공연을 보면서) 봉건 윤리와 사회적 인습에 순응하여 살아 온 ‘헬메르의 인형 아내’가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습에서 깨달음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노라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다음과 같은 그녀의 외침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토르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이 옳다고 할 거예요. 그리고 책에도 그런 비슷한 말들이 있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인형의 집》 3막 중에서, 164쪽)

 

※ 글꼴을 굵게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가부장제 사회 속에 사는 여성은 너무나 수동적이었고, 인형 같은 존재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나만의 생각’, ‘나만의 꿈’,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여성들은 ‘자기 삶의 의미’ 또는 ‘삶의 목표’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뚜렷한 언어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타자가 아닌 주체로 살아가는 것. 실존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궁극에 절대적 자유를 얻는 주체적 존재가 되는 것.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기 삶에 관한 어떠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노라는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인형의 집》은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기 전에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종의 성장 소설 같은 희곡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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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2 16:33   좋아요 0 | URL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공연작이 <인형의 집>이라서 거기에 맞춰 나온 특별판입니다. 저도 한때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서 여주인공의 이름을 ‘로라’로 생각했어요. 아마도 변진섭의 노래 제목 때문에 노라를 로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
 

 

 

 우드하우스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들은 우드하우스가 코믹 작가이자 조크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력적인 플롯이나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혹은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고마워요, 지브스』[주1] 항목 중에서)

 

 

 

 

나는 나이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아재다. 그래서 아재 개그를 좋아한다. 아재 개그는 흔히 말장난이 주를 이룬다. 동음이의어를 사용하거나,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활용한다. 분위기를 한순간에 얼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개그는 뻔뻔하게 해야 한다. 체면도 내려놓고, 나이도 내려놓고, 눈높이도 낮추면서 자신을 낮춰야 개그가 나오고 펀펀(fun fun)해진다.

 

 

 

 

 

 

 

 

 

 

 

 

 

 

 

 

 

*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편집자는 후회 한다 외 38편》

(현대문학, 2018)

 

 

 

영국 출신의 작가 P. G. 우드하우스(P. G. Wodehouse)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대부분은 귀족이다. 그런데 그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권위나 체면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있다. 그들은 명석하지 않다.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엉뚱한 방식으로 대처한다. 그들의 엉뚱하고 어리숙한 모습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에 나오는 귀족인 버티 우스터(Bertie Wooster)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에 마주치면 집사 지브스(Jeeves)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지브스는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면서도 가끔 그에게 딴죽을 건다. 집사에게 트집 잡히고 툭 하면 무시당하는데도 우스터는 그걸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활기차고 재미 넘치는 작가의 성격은 순진하고 낙천적인 우스터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에 나오는 남성 인물들은 재치 있는 말장난에 의존하는 영국식 유머를 구사한다. 우스터는 귀족이 아니라 ‘영국 아재’이다. 귀족 같지 않은 귀족. 이러한 인물의 특징은 우드하우스의 작품이 사랑받게 된 비결 중 하나이니라.

 

그런데 번역가들은 유머를 번역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에 나온 유머, 즉 영국식 유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다. 일상적인 대화는 그대로 번역해도 의미 전달에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말장난, 농담, 비꼬는 말 등은 해당 언어에 특화된 유머 코드나 언어 표현으로 바꾸지 않으면 청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말장난은 청자의 취향에 좌지우지되는 부분이기에 재미를 못 느낄 수가 있다. 그렇지만 번역가는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원문을 우리말로 맛깔나게 번역하지 못하더라도 원문 속에 숨어있는 유머 코드를 파악하여 주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일례로 우리말로 번역된 『모든 것은 지브스 손에』라는 소설에 지브스와 우스터가 처음 만나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무심결에 보고 있으면 작가가 의도한 웃음을 지나쳐버린다. 왜냐하면 번역가는 지브스가 언급한 ‘우스터소스’가 무엇인지 주석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한번 마셔 보시겠습니까?” 그[지브스]가 마치 환자를 대하듯이 말했다. 병든 군주에게 기운을 북돋는 음료를 권하는 궁중 의사 같았다. “이건 제가 직접 개발한 음료인데, 색이 이런 것은 우스터소스 때문입니다. 날달걀을 넣었으니 영양가도 좋지요. 빨간 고추가 매콤한 맛을 내고요. 저녁 늦게 귀가한 뒤 이것을 마시면 아주 기운이 난다고 많은 신사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아침 나[우스터]는 무엇이든 생명줄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냉큼 달려들고 싶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것을 꿀꺽 삼켰다. 순간적으로 누가 내 머리 속에 폭탄을 터뜨린 뒤 횃불을 들고 내 목구멍을 느긋하게 걸어 내려가는 것 같더니만,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창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고, 나무에서 새들이 지저귀었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희망이 다시 밝아 오고 있었다.

  “자네를 고용하겠어!” 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가 세계 최고의 일꾼 중 한 명이라는 것, 어떤 집에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제 이름은 지브스입니다.”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주인님.”

 

 

(『모든 것은 지브스 손에』, 180~181쪽)

 

 

※ 붉은색 글자는 필자가 표시한 것임.

 

 

 

지브스는 우스터(Wooster)의 침체된 기운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스터소스(Worcester sauce)를 첨가한 음료를 준다. 음료의 효과에 만족한 우스터는 정식으로 지브스를 하인으로 고용한다. 이 장면에 인명 ‘우스터’와 지명 ‘우스터’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유머가 나온다. 우스터소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 우드하우스의 유머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톰 닐론 《음식과 전쟁》 (루아크, 2018)

 

 

 

우스터소스는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우스터라는 도시에서 만들어졌다. 시큼함과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식초와 맵싸한 맛의 고추 추출물, 달콤함이 두드러지는 당밀과 설탕, 짭조름한 소금 등 다양한 맛을 내는 재료들을 한데 모아 숙성시켜 만든다. 우스터소스를 만든 사람은 요리사가 아니라 약사이다. 그래서 지브스가 만든 음료는 우스터소스가 들어간 일종의 ‘피로회복제’인 것이다.

 

우스터소스는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미료 중 하나이다. 특히 바다 위를 항해하는 해운회사 승무원들이 우스터소스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바다 위에 오랫동안 생활하는 승무원들은 육지에 나는 맛있는 음식들을 접할 기회가 적다. 게다가 선박의 전속 요리사들이 만들어주는 음식들의 맛은 대부분 밋밋했다. 그들은 음식이 싱거우면 우스터소스를 찾게 되었고, 우스터소스 특유의 시큼한 맛에 중독된 승무원들은 육지에 도착한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 백욱인 《번안 사회》 (휴머니스트, 2018)

* 오카다 데쓰 《돈가스의 탄생》 (뿌리와이파리, 2006)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스터소스를 생소하게 여기겠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맛보고 있었다. 돈가스 위에 뿌려진 조미료가 바로 우스터소스다. 다만 우리나라에 돈가스와 함께 들어온 우스터소스는 일본식이다. 돈가스는 일본이 고기를 막 먹기 시작한 메이지 유신 시기에 유럽에서 건너왔다. 당시 해산물 위주 식사를 하던 일본인에게 고기 자체를 먹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후 고기를 먹는 식문화에 점점 익숙해진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제조법(얇게 썬 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많은 양의 기름에 튀겨내는 방식)으로 돈가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일본식 우스터소스도 만들어졌다. 일본식 우스터소스는 기존 우스터소스에 간장을 섞은 것이다. 우리가 평소 즐겨 먹은 돈가스와 우스터소스는 서양의 음식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식으로 ‘번안’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변종’이다. 우스터소스의 기원, 일본식 우스터소스의 탄생 과정, 그리고 일본식 돈가스가 우리나라 경양식 문화 보급에 미친 영향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으면 《음식과 전쟁》(루아크, 2018)의 6장, 《번안 사회》(휴머니스트, 2018)의 2부 10장, 《돈가스의 탄생》(뿌리와이파리, 2006)을 참조하면 된다.

 

 

 

 

 

 

 

 

 

 

 

 

 

 

 

 

 

 

 

 

 

 

 

 

 

 

 

 

 

 

 

 

 

* 존 키츠 《키츠 시선》 (지만지, 2012)

* [e-Book] 존 키츠, 김천봉 옮김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 존 키츠 시선》 (글과글사이, 2017)

* [절판] 김천봉 옮김 《19세기 영국 명시 낭만주의 시대 3》 (이담북스, 2011)

* [품절] 존 키츠 《가을에 부쳐》 (민음사, 1991)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2011)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에 속한 『설교 대회』라는 소설에 유명한 시구를 이용한 재미있는 대화가 나온다. 우스터의 친구 빙고(Bingo)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날씨 상태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이 눈치 없는 우스터는 런던 날씨가 화창하다면서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빙고는 시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씁쓸한 처지를 계속해서 강조한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무의미한 대화는 우드하우스의 유머로 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의 번역가는 대화에 나온 시구가 무엇인지 설명한 주석을 달지 않았다. 이러면 독자는 작가의 지적인 유머를 그냥 쓱 지나치게 된다.

 

 

 

[빙고] “지난 몇 주는 힘든 시간이었어, 버티. 햇살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우스터] “그것 이상하군. 런던 날씨는 아주 화창했는데.”

[빙고]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설교 대회』, 104쪽)

 

※ 붉은색 글자, 글꼴을 굵게 표시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표시한 것임.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No birds sing)…‥”라는 구절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무자비한 미녀(La Belle Dame Sans Merci)[주]에 나온다. 이 구절은 1962년 살충제 폐해로 봄이 와도 숲에서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예견했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책의 제사(題詞)로도 유명하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편집자는 후회 한다 외 38편》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 유머 작가의 작품을 수록한 최초의 선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 영국 작가의 유머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잘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우드하우스의 유머’라고 주장한 것들은 가정(假定)에 불과하다. 우드하우스 선집의 번역가는 ‘영국 아재’의 영국식 유머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주1] 원제는 ‘Thank You, Jeeves’이다. 집사 지브스에게 늘 도움을 받는 주인 우스터가 하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마워요, 지브스’보다는 ‘고마워, 지브스’로 옮기는 게 적당하다.

 

[주2] 민음사 판본의 번안 제목은 ‘매정한 아가씨’, 지만지 판본의 번안 제목은 ‘무자비한 미녀: 발라드’, 이담북스와 글과글사이 판본(모두 김천봉 교수가 번역함)은 ‘무정한 미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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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29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역시 넌 이름값을 하는구나.
역시 박사네. 시루스 박사.
나중에 너만의 백과사전 하나 편찬해도 좋을 것 같아.^^

cyrus 2019-01-29 20:14   좋아요 1 | URL
며칠 지나면 제가 뭘 썼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면 나중에 다시 참고할 수 있어요. ^^

2019-01-30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9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9 20:18   좋아요 0 | URL
외국영화에 나오는 유머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때가 제일 힘들어요. 간혹 유머를 직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웃음 포인트를 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29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개를) 절레절레~👍

cyrus 2019-01-29 20:22   좋아요 2 | URL
이 글은 한 작가를 덕질하는 자세로 임하면서 썼는데,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작가라 글을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psyche 2019-01-29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보다 유머가 제일 어려운 분야인거 같아요. 언어로 말장난 하는 건 그 언어를 잘 알고 있어야 이해가 되고 당시의 문화나 시대상을 알아야 웃기거든요.

cyrus 2019-01-30 16: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대부분의 외국 유머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고차원 유머인 것 같습니다... ^^;;

목나무 2019-01-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아재 개그가 문득 궁금해지는 리뷰입니다. ㅎㅎ
우스터소스라고 하니 저는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문득 떠올랐어요.
늘 그렇지만 오늘도 리뷰 보고 몰랐던 지식 얻고 갑니다! ^^

cyrus 2019-01-30 16:33   좋아요 1 | URL
글을 쓰면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돼서 좋긴 한데, 대부분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식’들이네요... ㅎㅎㅎ

북깨비 2019-01-3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저도 cyrus님 아재 개그가 궁금합니다. 갑자기 돈까스도 먹고 싶고 ㅠㅠㅠ 우스터소스와 간장의 만남이었군요. 오늘도 깨알상식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