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전투비행단의 불온서적 리스트  

 

 

출처: 오마이뉴스 

      

군의 불온서적 리스트와 관련한 신문기사의 제목을 바로 보는 순간, 국방부가 이번에도 '또 한 번 한 건(?) 해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국방부 내에서 새로운 불온도서를 추가해서 만든 리스트가 아니었다.  알고보니 문제의 리스트는 공군 전투비행단에서 만든 것이었다.  리스트에 올라있는 서적은 모두 42권으로 2008년에 물의를 일으켰던 군대 내 불온서적 23권에 19권이 새로 추가되었다. 항목별로는 북한찬양 11권, 반정부·반미 10권, 반자본주의 21권 등이다.  2008년과 2011년 불온서적 리스트를 비교하면 이번에 추가된 19권은 모두 ‘반자본주의’ 항목에 속한다.  

불온서적 리스트가 언론에 공개되고 난 뒤, 국방부는 불온서적 리스트에 대해 국방부 차원에서 관련 공문을 내려보낸 일은 없으며 2008년의 목록을 새로 추가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시사IN이 입수한 공문에 의하면 9월 1일부터 13일까지 불온서적에 대한 점검을 실시한다는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포착했는데 아마도 불온서적 점검에 맞춰 문제의 공군 전투비행단 자체에서 불온서적 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군의 불온서적   

군대에서 말하는 '불온서적'이란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절한 서적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장병의 정신전력'은 단순히 전투에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전투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병으로서 국가의 방위에 충성을 다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신 역시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장병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잘 표현하고 있는 내용의 예가 바로 장병이라면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 '복무 신조'이다.   복무 신조의 첫 번째 내용은 이렇다.  

   "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  

 

그런데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서적들이 무조건 장병의 정신력에 반하는 내용,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반정부, 반자본주의, 북한 찬양 등과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이런 책들만 불온서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08년에 국방부에 의해서 불온서적 리스트로 공식화되었지만 리스트에 소개된 책 이외에도 군대에서는 암묵적으로(?) 장병들이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불온서적들이 많이 있다.   

비록 내 군 복무 시절의 경험에서 유추한 것이라 각기 부대의 특성마다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 

필자는 2008년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불온서적 리스트가 처음 공개된 시점이 이제 내가 훈련병이었을 때거나 혹은 이제 막 부대에 배치되어 이등병 생활 했을 무렵이라고 짐작된다. 

각 부대 안의 생활관(군 장병들이 생활하는 장소인 내무반을 말하는데 부대마다 다르지만 아무래도 '좋은 생활환경이 구축된' 군대의 이미지를 표방하기 위해서 요즘에는 '생활관'이라고 불리우는 군 부대도 있다) 안에는 작은 책꽂이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그 책꽂이에는 국방부에서 장병들의 문화 생활을 장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진중문고와 장병들이 휴가 및 출타를 하면서 각자가 구입한 책들이 꽂혀 있다.     

 

진중문고는 쉽게 비유하자면, 정말로 지식 함양을 위해 도움이 되면서도 정신적으로 좋은 내용이 있는 '착한 도서'들이다.  이 책들은 하얀 속표지에 국방부 마크에 '진중문고'라는 도장 마크가 찍여 있는 특징이다.   

내가 군 복무 시절, 생활관에 비치되었던 진중문고들은 다음과 같다. 

 

 

 

 

 

 

 

 

  

진중문고들은 대체로 소설, 에세이 장르가 많은 편이라 장병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책장에 과연 이런 책들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병들은 군 생활이 가져다주는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남성 잡지를 많이 보는 편인데 주로 출타할 때 잡지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생활관의 책장에는 1년 치 분량의 남성 잡지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곳도 있을 정도다.   남성 잡지는 진중문고에 비해 헤지고 너덜너덜한 상태이다.    

2년 가까이 여성을 제대로 만나볼 수 없는 답답한(?) 생활을 해야하는 그야말로 남성들만 있는 군대에서는 어여쁘고 섹시한 여성들의 사진이 있는 남성 잡지를 안 쳐다볼 수가 없다!  

내가 복무한 부대에는 <에스콰이어><GQ코리아><MAXIM>을 많이 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MAXIM> 같은 경우에는 다른 남성 잡지에 비해 수위가 살짝(?) 높아서 불온서적이라고 딱히 규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부대 내에서는 반입이 불가한 남성 잡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장병들은 출타를 하고 나면 꼭 <MAXIM>을 구입했다.  으레 출타를 하고 난 뒤에 부대에 복귀하면 부대에 반입된 물품들을 검사하기 마련인데 안 걸리기만 하면 되었다.  얼마든지 불온서적을 읽어볼 수 있으며 또는 휴대폰, MP3까지 부대 반입 금지 물품까지도 몰래 사용할 수 있다.   

즉, 군의 불온서적은 장병들의 성적 욕구를 강하게 유발할 수 있는 서적 역시 될 수 있는 것이다.  군대 내에는 정말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데 장병들 간의 성추행 사건 역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성들과 오랫동안 생활해야 하는 군 부대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성추행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남성들의 자연스러운 성적 본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장병들은 주말을 통해 체력 단련 등으로 건전한 부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장병들의 성적 욕구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장병들에게 널리 알려진 하루키의 명성(?) 

 

 

 

 

 

  

 

 

 

지금도 불온서적이라고 하면 항상 먼저 떠오르면서도 지금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은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소설이 국방부 불온서적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부대 내에서 이 책 역시 장병들 사이에서는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혔다는 점이다.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남녀 등장인물의 정사 장면과 여성 인물의 동성애적 장면 등 19세라면 읽기에는 아직 이른(?) 내용이 있다.   단지, 그 장면 탓이었을까?  <상실의 시대>를 완독해보지 않은 장병들까지도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생각하며 되도록이면 안 읽으려고 외면하였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외면받고 있는 금서라고 해서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금서의 내용이 궁금해서 호기심이 발동한 사람도 존재하는 법.    

부대 내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선임병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소문처럼 퍼지게 되자 평소에 독서와 친하지 않았던 장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하루키라는 작가의 명성을 알고 싶어서 읽었다기보다는 소설 속 정사 장면이 얼마나 야한지 무척 궁금해서 읽은 것이었다.    참... 장병들의 성적 호기심이란...  ^^;;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점은 부대 내에서 하루키의 명성(?)이 알려지고 난 후부터 부대에 비치된 <상실의 시대> 속에 등장인물의 정사 장면이 있는 내용의 장들이 찢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복무한 부대 내에서 <상실의 시대>는 단 두 권만 있었는데 두 권 다 똑같이 야한 장면이 있는 장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뒤늦게서야 하루키의 명성을 알게 되어서야 <상실의 시대>를 읽은 필자와 그 밖의 장병들은 유명한 그 부분이 자체적으로(?) 삭제되어서 무척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리고 장병들은 왜 하필 그 내용만 훼손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훼손했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유독 그 책만 읽고 있었던 선임병이 있었는데,,,   장병들 사이에서는 혹시 그 선임병이 하루키의 소설 훼손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야릇한 상상(?)까지 덧붙여 지나친 추측을 할 정도였다.

어쨌든 사건의 진실은 지나간 시간의 기억 속으로 묻혀진 지금, 웃지 못할 불온서적에 대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  

 

  '붉은 색 표지'라서 불온서적? 

 

 

 

 

 

 

 

  

 

필자는 군 복무를 하면서 당시 국방부에서 내려진 불온서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젇저 단순하게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부대에 반입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휴가 복귀를 하면서 <체 게바라 평전>을 구입해서 부대에 반입했었는데 마침 평소에 친한 선임병이 내가 구입한 <체 게바라 평전>을 보면서 부대에 반입하기에는 부적절한 도서라고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선임병이 했던 말이 수긍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체 게바라는 친미 성향의 바티스타 정부를 쓰러뜨린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내가 책을 구입하면서 그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던 선임병이 나처럼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다행이었지 선임병 그 누구도 나의 서적 반입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이 책 한 권의 반입 때문에 직속 분대장부터 소속 간부까지 면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부대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불순분자 장병으로 오해의 낙인이 찍혀 군 생활 제대로 꼬였을지도...

 

 

 

 

 

 

 

   

 

  

독서 습관을 형성하지 못한 장병들이 애매모호한 불온서적의 기준을 인식하고 있다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처럼 과장으로 점칠된 서적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정확하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불온서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심리학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는 군 복무 중에 부대 내 설치된 도서실을 통해서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억압되고 강제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군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군대 동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책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는데,, 알고 있었니?"  

나는 이 친구가 일부러 농담하는 줄 알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갑자기 왠 '북한 찬양' 드립?    그리고 이 책은 속표지에 '진중문고' 마크가 찍혀 있는 책이었다. 

동기의 말을 듣고는 실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동기는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책표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빨간색' 이라서 설마 '북한' 과 연관시켰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립' 이 존재하지 않는 불온서적의 기준 

 

 

 

 

 

 

 

 

  

지난 해 헌법재판소는 병영 내에 ‘불온서적’ 반입 소지를 금지한 군인복무규율 조항이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전례가 있었다.  군의 불온서적 지정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는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지만  불온서적 반입 소지를 규정한 복무 규율이 합헌이라고 결정 난 이상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하지만 복무 규율이라는 방패만으로는 장병들의 의식, 정신 세계까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역사의 선례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한 때 금서 명령을 받던 도서들이 은밀하게 대중들의 손에 통해서 보급되었던 것처럼 불온서적의 기준이 리스트라는 공식적인 목록으로 형식화되었다고 해서 장병의 정신전력 강화에 완전히 도움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온서적 선정에 장병들 그리고 군대 외부의 시민들에게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의 군 복무 경험상으로 봐서는 현재의 불온서적 리스트들은 완전히 중립적이며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복무했던 부대의 중대장실 또는 장병들을 위해 설치된 작은 도서실에서는 뉴라이트계 역사학자들이 만든 <대안교과서>가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의 내용으로 편향된 <대안교과서>의 역사적 중립성 결여에 대해서 학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남아 있는 지금,  국방부의 불온서적 리스트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 의문점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군 부대에서는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종북세력의 활동으로 규정된 왜곡된 내용을 장병들에게 정신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불온서적 선정 그리고 장병들의 안보교육을 담당하는 국방부 및 군 부대의 신뢰는 추락할 수 밖에 없다.  굳건한 안보는 국민의 신뢰와 군인들의 균형잡힌 시각이 밑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실을 왜곡하는 우격다짐식 안보교육은 오히려 안보에 해가 될 뿐이다.  

지금까지도 종결되지 않은 채 논란이 이어져 오고 있는 불온서적 선정의 기준의 문제점은 이승만 정부 때 시작된 권위적인, 몰가치적 반공 사상의 영향이 지금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사회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관련 인용기사  

[군 '불온서적 리스트'... 19권 더 늘었다]  오마이뉴스,  2011년 11월 14일 

[민주화운동가가 종북세력이라는 ‘군’]  경향신문,  2011년 9월 22일   

[軍 '불온서적' 반입 금지 '합헌']  한국일보,  2010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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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1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이런, 올 가을엔 '불온'한 것들이 대유행하는군요.
'불온'에 구미가 당기는 건 때가 따로 없다는 걸 알겠습니다.
청년 때나 중년 때나, 오히려 중년 때 더 그런것 같기도!!

cyrus 2011-11-16 00:1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를 보니 어떤 내용인지
정말로 궁금한네요, 역시 사람이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반대로 더 하려고 하는 성격이 있는거 같습니다. ^^

카스피 2011-11-15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찬양과 반정부까진 이해하겠는데(뭐 반정부와 반국가는 다르다고 모 진보인사가 주장하긴 했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반정부를 하면 그렇겠죠^^),반미나 반 자본주의까지 불온서적으로 모는 것은 좀 거시기 하네요^^

cyrus 2011-11-16 00:12   좋아요 0 | URL
맞죠, 지금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군대 안보교육 같은 경우에는 반미, 반자본주의를 북한 사회주의식으로 동등한 의미로 생각하는거 같아요.

맥거핀 2011-11-1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군 모 부대에서 심지어 정신교육까지 꽤나 했던, 장교로 복무했던 사람으로서 상당히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까르르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군대내 비오큐 숙소에도 알고보면 이상한 책(?) 많았는데, 보안검열에 한 번도 안걸린 것 보면, 그 양반들이 잘 몰라서 그랬는지, 제가 읽어도 이해를 못할것이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지..(하..그리고 알고보면 공군장교중에 불그스레한 분들 은근히 많은데..;; 끙)

MAXIM이라면 긴긴밤 당직과 함께했던 좋은 책이지요. 절대 내 돈주고 사지 말고, 애들꺼 뺏아봐야 진리라는..끙.

cyrus 2011-11-16 00:14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

그런데 댓글 내용이 놀라운데요. 맥거핀님이 장교로 복무하셨다니,,
정신교육을 담당하셨다면 혹시 정훈장교..? ^^

ㅎㅎㅎ 간부님들도 간혹 당직서면 잡지를 보시더군요 ^^

saint236 2011-11-1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온서적 맥심 ㅎㅎㅎ 추억의 잡지입니다.

cyrus 2011-11-16 00:16   좋아요 0 | URL
역시 맥심은 군 장병들을 위한 최고의 잡지였군요, ^^
저는 제 나이 또래 장병들 사이에서 유행한 줄 알았는데,,
역사가 오래되었군요 ㅎㅎ

stella.K 2011-11-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오래된 새책>에도 이걸 다뤄놓더군.
하지만 너의 글은 좀 더 포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보게 하려면 딱 두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곧 절판될 거라는 것과 불온서적이라면 될 거야.
불친절 마케팅처럼 확실한 건 없거든.ㅋ

cyrus 2011-11-16 0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몇년 전에 불온서적 리스트 처음 나왔을 때 책이
불티나게 잘 팔렸다는 뉴스 본 적이 있어요, 특히 장하준 씨의 책 같은
경우에요 ^^ 그런데 너무 야한 내용의 책도 불온서적이
될 수있는데 리스트에서는 단 한 권도 없다는 점이 궁금하기도 해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토름의 소설이 불온서적이라는 건 이해가 안 갑니다.그거 60~70년대에도 번역된 19세기 소설인데...

cyrus 2011-11-16 00: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래서 그 책을 읽어보려고 해요. 아직 슈토름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19세기 소설이
불온서적에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

이진 2011-11-1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엊그제 책에서 불온서적에 대해서 읽었는데 말입니다 ㅎㅎ
하루키 소설은.. 중3인 제가 읽기 너무 과합니다 ㅋㅋ 1Q84도 샀는데 진도가 안나가죠...
맥심 ㅋㅋㅋㅋ 어떤 군 이야기에서 읽었답니다 ㅋㅋㅋ

cyrus 2011-11-16 00:22   좋아요 0 | URL
아니, 이진님, 중3이셨습니까? ^^
저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었군요. 중3이라..
간혹 알라딘 서재 말고도 독서 관련 온라인 카페를 자주 드나들고 있는데
그 카페에도 이진님 또래의 중2, 중3 회원분들을 온라인으로나마
친분을 맺은 적이 있었어요.

이진님이 남성분이시라면,, 음,, 맥심은,, 몰래 보시되 안 걸리면
됩니다. ^^;;

야무 2011-11-1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군 모 부대에서 불온서적을 선정하는 작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심히 궁금합니다. 뇌구조가 어떻길래 저런 책을 불온서적이라 분류해 놓는지, 어의가 없습니다..

요즘 군에는 남성잡지도 비치해 놓는군요~ 맥심과 비교해서 지큐나 에스콰이어는 교양잡지 수준이지요..ㅋㅋ 사실 제가 지큐팬이거든요~ 지큐 보면 훌렁 벗은 여자 화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진은 주로 맥심이 많지요..ㅋㅋ

cyrus 2011-11-16 00:23   좋아요 0 | URL
비치해 놓는다기보다는 장병들이 직접 구입해서 진중문고마냥 읽고 있는
거랍니다. ㅎㅎ 사실 저도 지큐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간혹 살면서 도움
되는 교양 정보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맥심은 섹시한 여자 화보가 있어서
좋고요.. ^^;; 어쨌든 남성 잡지는 다 좋습니다. ㅎㅎ

마녀고양이 2011-11-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금꽃나무나 나쁜 사마리아인도 들어있군요.
역시나... 군은 우리나라 지킴이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뇌 작업도 하는 듯한. ㅠㅠ

시루스님, 오랜만이예요, 바쁘죠?

cyrus 2011-11-16 00:25   좋아요 0 | URL
세뇌 작업,, 맞아요. 군 정신교육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세뇌입니다. ^^;;

사실 시간적 여유는 있는데 과제 걱정, 학업 관리 걱정 때문인지
쉬어도 쉰거 같지가 않네요. 주말에는 대부분 과제 준비해야 되고요.

비로그인 2011-11-1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볼만하다는 책을 여기서 다시 소개를 받는군요. 감사합니다...주문넣고 잠시 비치라고 해야겠어요.ㅎ

cyrus 2011-11-17 09: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탁님 ^^
저도 불온도서가 불온한지 몇 권은 읽어보려고 합니다.

감은빛 2011-11-1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군생활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중문고'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원칙적으로 국방부에서 배포한 책 외에는 갖고 있을 수 없었다고 기억해요.
국방부에서 배포한 책은 책이 아닌 홍보물 수준이죠.(어떤건지 아시겠죠?)
각 개인이 가져온 책들은 반드시 정훈장교의 도장을 받아야 했습니다만,
원칙적으로 이것도 복무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 대대적으로 검열이 나오면 책을 모두 모아서 산속에 숨겨두곤 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잡지들이 그 당시에도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잡지를 가져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몰래 갖고 있는 사람이 혹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걸 공개적으로 책장에 비치하다니! 이건 정말 상상하기 어렵네요.
군대가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시루스님의 부대가 상대적으로 열린 마인드로 운영되었을지도......)

어쨌거나 좋은 글 읽어서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cyrus 2011-11-17 09: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잘 지내고 계시죠? ^^

아마도 진중문고라는 개념이 들어선지 얼마 안 될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은빛님 말씀대로 검열 나오면 생활관 내에 있는 책장 역시
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특히 남성 잡지나 불온서적 혹은 장병 개인이
반입한 도서들도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곤 했지요 ^^
그러다가 검열이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원상복귀하곤 했어요 ㅎㅎ

제가 다닌 부대가 열린 마운드에다가 말 그대로 군 생활이 좋아져서
감은빛님 시절의 군 생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보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11-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문고는 70년대 부터 있었죠.큰 도장으로 진중문고라고 찍혀 있고...우리 부대에 있던 대단히 낡은 삼성미술문고,박영문고 등을 보면 70년대에 배포된 것이더라고요.90년대 중반 이후 헌책방에 가보니 진중문고라고 찍혀진 삼성미술문고 박영문고가 팔리기 시작하더라고요.아마 그 무렵부터 70년대 책들을 군대에서 정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이거 좋은 책들이 많았어요.세계적인 명저도 꽤 있고...지금도 헌책방에 나온 것들 중 괜찮은 것은 사고 있습니다.

cyrus 2011-11-17 09:22   좋아요 0 | URL
저도 간혹 헌책방에 가면 옛날 진중문고 도장이 찍혀 있는 서적을
발견하곤 합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11-17 17:15   좋아요 0 | URL
발견하면 구입해 놓으세요.진중문고에는 인문사회 명저 중 지금은 안 나오는 책들도 꽤 있으니까요.값도 싸고...

누리로 2011-11-2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검색으로 우연히 들어와서 글 남깁니다.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2008년의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도서 말고는 반입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은 부대에서 간부가 불온도서라고 해버리면 그걸로 끝이죠.

저는 05년부터 07년까지 대대급 부대에서 복무했는데 거기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녀석이 그의 친구가 소포로 보내준 책을 보안성 검토 도장 안받고 읽다가 좀 싸이코스러운 간부한테 걸렸는데 그 책의 제목은 체게바라 평전... 만일 그 책이 흔한 소설이나 에세이였다면 별 문제 안 생겼겠죠. 결과는?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영창10일 나왔으나 대대장이 휴가삭감 5일로 감경해 주었습니다. 그나마 영창 안 간게 다행이었달까. 체게바라 평전은 오래전에 베스트셀러였고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내용은 그 책에 전혀 없는데 이런책도 읽어서는 안된다니 참...

누리로 2011-11-2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이루어지는 정신교육(정훈교육) 내용도 가관입니다. 조중동은 완전 저리가라 수준이죠. 가령 fta같은것에 대해서는 'fta는 좋은거다'는 식의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아래와 같은 식이죠. 국방일보 사이트에서 찾은 한미fta 협상당시의 기사입니다.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writeDate=20061124&writeDateChk=20061124&menuCd=3001&menuSeq=3&kindSeq=2&menuCnt=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아마미야 가린 지음, 김미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자리의 ‘질’은 매년 떨어져 가고 있는데,. ‘고용 대박’ 이라고요..?   

2011년은 유독 국민들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망언이 많은 해로 기억될 거 같다. 이런 걸요즘에는 ‘개드립’이라고 부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헛소리',  좀 심하게 말하자면 ‘개소리’라는 것이다.  2011년도 이제 한 달 남짓도 안 남은 시점에서 이번에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님께서 참으로 ‘대박’스러운 ‘개드립’을 남기셨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 동향’을 놓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두고 “신세대 용어를 빌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고용 대박’”이며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도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 발언 이후로 여. 야당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박 장관의 발언을 보고 이 정부 각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이런 인식 밖에 없다면 당의 앞길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박 장관의 발언만 본다면 분명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평가이다. 고용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실업률이 줄었다는 점은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본 통계청의 10월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모두 2467만 3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만 1000명 늘었다. 분명 수치상으로는 좋다.    

 

 

출처: 조선일보

 

 

하지만 통계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게 된다면 일자리의 ‘양’은 늘었을 뿐, ‘질’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핵심 활동 계층인 20, 30대의 일자리는 같거나 줄어들고 50, 60대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현상만 봐서 이것이 과연 ‘고용 대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우리나라와 다른 OECD 국가들은 통계수집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취업애로계층을 조사하면 20% 가까운 실업률이 나오기도 한다“ 면서 ”이 내용만 가지고 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599만 5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일자리 수가 느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찬영 연구원은 "고용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젊은이들이 취업 의사를 계속 잃어가는 현상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윤상하 책임연구원은 “좋은 일자리에 안착하고 싶어하는 청년층에는 이번 고용동향 통계가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에는 현재 고용 통계는 우리나라 고용의 질이 점차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 대박’ 이 아니라 ‘실업 대박’이라는 심각한 문제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들어 낸 프레카리아트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성'이란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서 '신자유주의화 세계 아래서 불안한 사람들' 을 뜻한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의 시간제 노동자나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직업을 찾지 못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단순히 그들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사회계층으로의 의미로서 프레카리아트라 부르지는 않는다. 이 말에는 새로운 변혁의 주체로서 구상되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처음 쓰여 유럽에 번진 말이 일본으로 들어온 것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유럽과 라틴의 신좌파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개념이다. 의미 맥락상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하다. 일본에는 '자유(free)'와 '아르바이트(arbeiter)'의 합성어로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프리터 족(族)’ 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0대 프리터 족의 증가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번영을 누려왔던 부동산 버블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고용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프리터 족들 역시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게 되었다. 경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경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대 프리터 족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을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작가이자 반(反)빈곤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마미야 가린이다. 그녀는 프리터들의 생존권을 위한 노조활동 참여를 조성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무직, 실업자와 함께 노동절 행사를 치르는 등 ‘프레카리아트’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일본 프레카리아트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담아 낸 것이 바로 국내에 번역된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프레카리아트’라는 단어 자체만 생소할 뿐이지 그 의미를 따져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88만원 세대’ , ‘비정규직 노동자’ , ‘워킹푸어’ 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포 작가답게 젋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서 프레카리아트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높이 살 만하지만, 일본 사회의 구조에 생경한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일본에는 '오오마에'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일본에서만 국한되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프레카리아트, 즉 일본의 프리터 족들이 처한 현실이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프리터들이 일을 하면서 벌 수 있는 평균적 최저 임금은 시급 673엔 수준이다. 임금 가격을 원화로 환산을 해보면(2011년 7월 기준, 1엔은 약 13원) 대략 8740원 정도이다. 이런 수준의 시급을 받으면서 프리터들은 그 수입을 통해서 월세, 식비 등 전체적으로 생활비에 쓰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낮은 임급은 시급 610엔, 원화로는 7930원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위원회가 책정한 내년 최저임금 4580원과 비교하면 높은 가격이지만 단순히 금액만 조금 높다고 해서 생활하는 데 보장할 수 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성급하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서 집세는 연일 고공행진이며 낮은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비정규직 시급보다 조금 더 많은 8000원 정도 번다고 해서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 먹고 잘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당일 해고, 임금 체불 등의 불평등한 대우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지만 건강만 더 악화될 뿐 시중에 들어오는 임금은 쥐꼬리만 하다.

일본 내에 분포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실태를 파악해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파견 노동자 역시 많은 편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유연한 조직의 기업 경영 바람이 불고 온 노동 법제의 규제 완화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다.    

 

 

 

2007년에 일본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파견의 품격>의 주인공 오오마에  

 

   
  우리나라에서는 '만능사원 오오마에' 라는 제목으로 모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여주인공 오오마에는 어떠한 일에도 자신이 맡은 임무를 똑부러지게 수행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능력과 자신감이 충만한 파견 근로자이다.  드마라 속 오오마에는 정규직 근로자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파견 근조자로서 자신의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나가고 있지만 드라마 밖에서의 파견 근로자의 현실은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환경 속에서 적은 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야만 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  
   

 

일명 노동자 파견법은 1986년에 처음 시행되었을 때만 해도 비서, 번역, 통역, 등 전문성 높은 직종에 한해 노동자 파견을 인정했지만 2001년에 고이즈미 정권 이후부터는 모든 전 직종으로 노동자 파견이 합법화되었으며 하나의 직종에만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다양한 직종을 전전해야만 하는 파견 노동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일본의 파견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다름없다. 회사나 공장 내에서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만 헐값으로 고용되어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렇듯, 아무리 일해도 저임금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기에는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그만큼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와도 커져만 가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자리 부족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면 해결하기가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 비정규직에 대해 "노력을 안 하고 의욕이 없다" 고 치부하는 인식이 있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젊은이들은 '자기 책임론' 에 빠지게 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임금을 받지 못한 상황을 자신의 부족한 능력 탓으로 돌리게 된다.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비관하게 되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이르게 된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의 현실을 단순하게 바라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청년층들이 이전 세대와 다르게 부족한 점은 없다.  다만 기성 세대들처럼 어디라도 마음 먹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기는 악화되면 될수록 일한만큼 받게 되는 노동의 대가도 점점 줄어드는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고용의 이중고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안정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진 채 하루하루를 불안한 나날로 살아가고 있다.   

 ***

아마미야 카린은 이런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고 한다. ‘프리터전반노동조합’ 등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드는 운동은 그런 분노와 반격의 시작이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아마미야 카린뿐만 아니라 열악한 고용 현실에 분노를 느끼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 운동가들과 함께 노조를 조직하여 노동생존운동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은이가 펼쳐 보이는 일본 사회의 현실은 우리 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비정규직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책들에 소개된 일본 비정규직자들의 적극적 분노를 표출하는 사회적 운동의 모습들이 너무나 강렬한 탓일까?    

젊은 그들의 분노가 부러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분노에만 그치고 있다다는 점에서 괜시리 염려스럽게 느껴진다.   극소수의 비정규직자들의 분노만으로는 우리나라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만 하게 된다면 우리 세대 역시 불안정한 생활을 살아야하는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자본주의 앞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는 시대를 지나서 신자유주의 앞에서 '프레카리아트' 가 단결해야 할 시대가 도래된거 같다. 

  

 

 

* 인용 관련 기사

[1년간 일자리 '양'만 늘고 '질'은 나빠졌다]  조선일보  2011년 11월 10일  

[박재완은 “고용 대박”이라는데 … 주변엔 왜 한숨소리만]  중앙일보  2011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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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본다면 내가 오늘 수능시험을 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수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가 지금 수능시험을 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수능시험을 치는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서 수능 고사장인 학교까지 가는 데 동행해주고 왔다가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날씨가 예전에 비해 덜 춥다보니 많이 쌀쌀한 정도는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쳐야하는 당사자인 친구도 날씨가 별로 춥지 않다고 너스레떨었다.   

하긴...  이번에 치는 시험이 그 친구에게는 '세 번째' 응시라서 이제는 시험에 대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거 같았다.   작년에 군 제대하자마자 다니고 있었던 2년제 전문대를 중퇴하고 재수에 도전하게 되었다.  부모님 그리고 친구의 할머니까지도 많은 지원을 할 정도로 정말로 열심히 했는데, 아쉽게도 작년 수능에서는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에도 다시 수능에 재도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냥 일을 하면서 돈을 벌 것이라고 하였다.  

 

 

중학생 때부터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이어져왔던 벗이라 이번 시험만큼은 좋은 결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매달 한 두번씩 만나 같이 밥도 먹으면서 자주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험치기 이틀 전에 찹쌀떡이 들어간 과자를 사주기도 했다.  비록 팥앙금이 꽉차게 들어있는 찹살떡은 아니었지만 괜히 내가 사온 음식을 잘못 먹다가 탈이 날까봐 그냥 '찹살파이' 를 사왔다.    다행히도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라면서 내가 준 선물에 무척 고마워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는 외국어 영역 시간일 것이다.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인 고등학생 수험생들로 가득한 넓은 학교 안에서 혼자서 시험을 치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을 친구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  

 

방금 올해 수능시험에 출제된 언어영역 지문을 확인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수능시험이 치는 날이 되면 항상 언어영역 지문을 꼭 확인하는 편이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국어 선생님이 되는 꿈을 가졌고 지금도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을 치게 되면 제일 먼저 시험이 쉽게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나 본 시험인 대학수능 시험을 쳤을 때 문제의 난이도 여부보다는 과언 언어영역 시험문제에는 어떤 문학작품이 지문으로 나올까 기대하였다.  

EBS 문제집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작품이 모의고사 시험지에서 만나게 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반가웠고, 생전 처음 보는 작품이 지문으로 나오게 되면 더 반가웠다.  일반적으로 수험생이라면 친숙한 작가가 쓴 낯선 작품이 나오면 더 긴장하고 당황하는 게 정상이다.   

항상 언어영역 모의고사를 치게 되면 평균적으로 70~85점 정도의 점수가 나왔다.  90점을 넘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어영역을 남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90점 이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텐데 이상하게도 90점의 벽을 넘는게 쉽지 못했다.   언어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나오기 위해서는 시험지 속에 제시된 수많은 지문들을 적절하게 시간 배분을 하여 읽음으로써 문제를 풀어야 한다.   평소에 책을 읽는대로 지문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다가는 시간 부족으로 문제를 못 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독하는 독서 습관 탓인지 시험 지문을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속독을 가지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지문을 읽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언어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풀고 나면 자신이 틀린 문제들을 오답노트식으로 정리하여 수능형 문제를 완벽히 대비해야 한다.   오답노트를 만드는 방식은 학생들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틀린 문제를 노트에 기록하거나 시험지를 오려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노트를 공부하는 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어영역 같은 경우에는 오답노트를 만들기보다는 시험 지문으로 출제된 시(詩)만 노트를 적곤 하였다.  시험문제를 풀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항상 노트에 따로 적는 습관이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필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될려고 하는 마음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시를 필사하려고 했는지 지금도 그 때의 내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아마도 감수성이 충만하여 그저 시를 좋아했었나 보다.  지금도 내 책상 서랍 안에는 학창 시절 공부하던 언어영역 문제집, 모의고사 시험지에서 지문으로 나온 시들을 기록한 노트가 보관되어 있다.  

 

 

이번 올해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곽재구의 시가 출제되었다. <구두 한 켤레의 시>라는 시인데 EBS 언어영역 문제집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쑬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 곽재구  <구두 한 켤레의 시> - 

   

 

 

 

 

 

 

 

 

 

곽재구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중견 시인인만큼 언어영역 모의고사에도 그가 쓴 시가 지문으로 심심찮게 나오는 편이다.    특히 시인의 대표작인 <사평역에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모의고사 지문으로 잘 나오는 편이다.   

곽재구 시인이 쓴 시는 딱 한 번 수능시험 지문으로 출제된 적이 있다.  '2005 수능'(2004년에 시행됨) 때 <은행나무>라는 시가 출제되었다.   

수능시험을 치기 전에 한번씩 예전에 출제된 수능시험을 예비로 풀어보기도 하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이 시를 접했다.   이 시 역시 필사 노트에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이 시를 처음 보는 순간, 시를 좋아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시에 드러나 있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은행나무의 의연한 모습은 벅찬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 곽재구  <은행나무> -  

(출전: <받들어 꽃> 미래사, 1992)

 

 

 

  

곽재구 시인의 시 이외에도 다른 시 작품의 지문으로는 김동환의 <산 너머 남촌에는>이 출제되었다.  이 시를 노랫말에 붙인 가곡이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

 

 

 

 

 

  

 

 

 

 

 

 

 

 

 

   

 

 

 

 

 

 

 

 

  

언어영역은 시뿐만 아니라 현대소설, 고전소설, 고전운문(시조, 가사 등), 수필, 희곡 그리고 가끔은 연극 대본도 출제되기도 한다. 

이번 수능에 출제된 현대소설과 고전소설은 이태준의 <돌다리>박지원의 <호질>이다.  두 작품은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고 EBS를 포함한 언어영역 관련 문제집, 모의고사에도 많이 출제되는 작품이라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현대소설과 고전소설 관련 문제가 쉬웠을 것이다.  

희곡에서는 함세덕의 <산허구리>가 출제되었다.  처음 보는 작품인데 이 희곡 역시 역시 EBS 문제집에 수록된 것이라고 한다.    함세덕의 희곡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않지만 그가 쓴 <동승>(童僧)이라는 작품을 문제집을 통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줄거리는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승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불교적 성향이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친일 성향의 희곡을 썼으며 광복 이후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성향의 희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월북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져 있어서 대학수능에서도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출제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김동환이태준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정지용, 백석, 이용악 (이상 시인) 등의 작품이 대학수능시험에서 지문으로 출제된 적이 있다. 

 

 

   

 

 

 

 

  

  

 

내가 수능시험을 쳤을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수험생들이 언어영역을 풀게 되면 문학 작품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생소한 작품이 출제된다 하더라도 시험을 제대로 준비한 학생이라면 언어영역 문제 체감도가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비문학 작품만큼은 누구나 다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문학 작품에 비해서 내용이 조금 긴 편이라 빨리 읽기에는 버거운 편인데다 인문, 과학, 사회, 예술, 역사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내용들이라 문과, 이과에서 지정한 공부만 해온 수험생들에게 이해하는 데 힘들어하며 어렵게 느껴진다.  

올해 수능 언어영역에 출제된 비문학 지문 역시 수험생들에게는 문제를 푸는 데 까다롭게 느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의 주요 내용을 설명한 글과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를 설명한 과학적 내용으로 구성된 지문이 나왔다고 한다.   

만약에 이런 내용의 지문이 내가 수능시험을 쳤던 당시에 그대로 출제되었다면...   

음...   상상하기도 싫다. ^^;; 

   

 

***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고등학생 시절과 5년 전의 수능시험이 많이 생각이 났다.   

그 때 수능시험 성적이 수십번 쳤던 모의고사 평균 성적보다 못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언어영역은 80점도 넘지 못했으며 수리영역은 25점...?  (수리영역 점수 중 최악)    심지어 자신 있었던 사회탐구 영역마저도 평소 모의고사 때 나온 성적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지금도 기억하기 싫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험을 다 치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갈 때 고등학교 3년동안 짊어지고 있던 수능이라는 짐이 이제야 내려졌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3년동안 준비한 것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나 쉽게 노력의 결과가 결정되어진다는 점 그리고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기분은 수능시험을 쳐야하는 수험생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 감정의 표정이 이제 몇 시간 뒤에 시험을 다 치고 나온 친구의 얼굴에 나타나 있을 것이다.  내 친구가 재수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서 수능은 이제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친구의 수능시험을 보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이제 이 글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오후에 있을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 친구, 2년 동안 제대로 놀지도 못한 채 공부하느라 정말 수고했다.    

홀로 외롭게 공부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친구로써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네가 시험을 잘 쳤든 못 쳤든간에 너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홀로 짊어지고 있었던 수능이라는 짐을 던져 버리고  

고사장을 나오면서 걱정과 근심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활짝 웃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시험 끝나고, 오랜만에 코 삐뚤어질 정도로 술 마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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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1-1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수능이라... 친구분에 대한 우정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코가 시큰하네요.

언어영역에 저런 감성적인 시가 나온다니... 저는 어려운것만 나오는 줄 알았답니다!

cyrus 2011-11-13 11:5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소이진님 ^^

평소에 시집을 통해서 읽어보면 참으로 좋은 내용인데 시험지로 본다면
어렵게 느껴집니다. ^^;;

blanca 2011-11-1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친구분 수능 잘 치셨기를요. <산너머 남촌에는> 드라마를 꼭 챙겨 보는데 곽재구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군요. 이 페이퍼 보니 국어 선생님 하셨으면 참 잘 하셨을 것 같아요. 저도 국어를 참 좋아라 했고 언어 영역은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저는 수리 영역이 제일 무서웠어요. 대학교 갈 때도 제일 좋았던 게 수학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고요^^;;

cyrus 2011-11-13 11:53   좋아요 0 | URL
본인 말로는 시험을 그렇게 못 친거 아니라고 하던데,, 올해만 해도
두번째로 듣는 대답이에요 ^^;; 그래도 이제 시험이 끝나 기분 좋은
친구 목소리 듣으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ㅎㅎ

저는 국어 과목을 좋아했는데 수능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1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국어 선생님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제 기억속 저의 국어 선생님은 매일 시를 읊으며 창문을 내다보시던 남자 선생님..ㅎㅎㅎ

올해 수능이 이렇게 출제 되었군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시니 너무 좋은걸요!
잘 읽었어요^^ 친구분과 즐거운 시간 가지셨길 바래요^^

cyrus 2011-11-13 11:56   좋아요 0 | URL
현맘님, 잘 지내고 계시죠?
학기중이라 현맘님도 많이 바쁘실거 같아요. ^^
학창시절 때 국어 교사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ㅎㅎ

2011-11-12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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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의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봉사도 서슴지 않는다'    

- O. 헨리 -

 

 

 

 백년해로 그리고 죽음마저 같이 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이백의 <장한가>에는 양귀비가 사랑을 맹세하는 구절이 나온다.     

 

   
 

“하늘에 있을 때는 비익조가 되길 원하오며, 땅에 있을 때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비익조는 날개가 하나 뿐인 새이다. 두 마리가 합쳐야 비로소 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연리지처럼 부부의 깊은 애정을 뜻하는 말이다.  두 나무가 각기 자라다가,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져 한 나무가 된 것을 '연리지'라 한다.   '연리'(連理)라는 말은 처음에는 효성의 뜻으로 쓰였지만, 후대에는 부부간의 깊은 사랑을 표시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 우리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현대인의 사랑에는 깊은 울림이 없다. 목적을 갖고 연애하고 작업으로 사랑을 얻으려는 것이 이제는 현대인의 사랑의 정석인 듯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는 장정일의 시처럼 쉽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진다.  그리고 한 번 결실 맺은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 까지 변치 않은 사랑을 다짐 했건만 단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는커녕 틀리다고 단언하고 과감하게 돌아서는 성격차이의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도하다.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의 의미와 부합되는 연인 또는 부부를 만나기란 보기 드물어졌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평생을 같이 즐겁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죽음마저도 한날 한시에 맞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이 만들어낸 숭고함 힘이라면 그 어떤 현실의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는 행동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신좌파의 이론가로서 사회개조와 생태주의의 이념을 추구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앙드레 고르는 불치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자신의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2007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58년 간의 사랑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 때 고르의 나이는 84세, 아내 도린의 나이는 83세였다.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사르트르가 평가했을 정도로, '유럽 최고의 지성' 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그가 왜 길고 긴 사랑의 역사를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것일까? 

 

 

  '지식'보다는 '사랑'을 추구하다  

아무리 앙드레 고르가 사랑하는 부인 도린을 위해서, 그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을 받는 지성인이 '자살' 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의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의 입장을 좀 더 깊게 이해해본다면 고르가 부인과의 동반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젋은 시절의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  

 

고르 자신에게는 '앙드레 고르'라는 이름을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해 준 자신의 저작물이나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명성 그리고 '사상가'라는 지적인 명함이 단지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유지하게 만드는 본질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본질적인 것, 즉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가치는 바로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아내 도린이었다.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인 아내를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지식이나 사상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한 소원은 잠시 미뤄 둘 수도 있거나 기꺼이 포기할 수도 있는 비본질적인 가치에 불과했다.    

 

 

귀스타브 모로  <에우뤼디케의 무덤을 지키는 오르페우스>  1891년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pp 88~89)

  

편지의 마지막 내용은 죽음마저 초월하려는 도린을 향한 고르의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애써 아내의 부재를 믿으려는 하지 않는 남편의 심정이 무척 가슴 절절하다.  인생의 일부분이나 다름없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하는 도린을 먼저 보내는 두려움에 고르는 '함께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pp 89)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부부가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죽어서도 끝까지 도린과 함께 하고 싶은 고르의 사랑 앞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방해요소가 될 수가 없었다.  오직 사랑을 위해서 고르는 주체적인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곁을 먼저 떠난 연인 에우뤼디케를 만나기 위해서 혼자서 금단의 영역인 저승의 세계로 넘어 온 이승의 오르페우스처럼 말이다.    

  

 

  '사랑'이라는 예술을 위해서 봉사하다 

미국의 소설가 O. 헨리'누구나 자기의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봉사도 서슴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와 부합되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을 꼽으라면 앙드레 고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애틋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더 뜨거웠던 노부부의 사랑이 만들어 낸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고르가 선택한 방식이 단지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선택으로서 올바른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르의 '사랑을 위한 함께 죽음'은 현해탄 한가운데서 투신한 김우진 & 윤심덕이 겪어야했던 상황과는 다르다.   동 서양 두 커플은 사랑의 감정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극한의 한계에 마주치게 되자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김우진 & 윤심덕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에서 '함께 죽음'을 택한 것이라면 고르 & 도린의 '함께 죽음'은 죽어서도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오고 인연의 끈을 돈독하게 유지지할 수 있는 오직 자신들을 위한, 긍정적인 입장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부언을 하자면, 절대로 '사랑을 위한 자살'을 미화하는 입장을 밝히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내용면에 그런 문제점이 될 여지가 있다면 문제되는 부분을 수정하거나 또는 삭제를 하겠다)     

지금까지 쓴 내용과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부재한다고 해서 고통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선택의 결과과 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사랑'을 위한 봉사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사랑을 위한 '동반자살'이라는 현상의 결과보다는 오랫동안 서로의 곁을 지켜주며 희노애락을 함께 한 노부부의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 

고르의 편지는 젋은 시절 때의 첫 만남부터 노부부가 되기까지 사랑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편지 내용이 시작되는 처음 부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의 밤을 뜨겁게 보내는 장면을 묘사한 내용이 있다. 은근히 에로틱한 뉘앙스가 묻어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년경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러자 현실과 상상이 기적처럼 맞아 떨어져, 난 살아있는 밀로의 비너스 상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pp 12) 

 

사랑을 나누었던 일을 회상한 이 장면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실물 크기의 여인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갈라테이아'라는 이름까지 붙여줄 정도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결국 비너스의 도움으로 대리석 조각상에 생명이 불어넣게 됨으로써 자신의 소원대로 갈라테이아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소원 끝에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게 되었듯이 고르 역시 몇 번의 데이트 끝에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해준 '예술'은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 수 있는 조형 기술도 아니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식도 아니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예술' 은 곧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무식하게 목숨까지 바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곁을 언제나 지켜주고 있는 인생의 동반자에게 변함없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사랑이 유지되기 위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봉사이며 결국에는 그 어떤 명화(名畵)보다도 아름다운 '백년해로'라는 자신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위대한 걸작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걸작' 정도는 아니더라도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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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11-0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작년에 후배가 읽고 인상 깊은 리뷰를 남겨서 살려구 하다가 다른 책 때문에 밀려서 못 산건데,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사이러스님 서재에서 볼 줄은 몰랐네요~ㅎ 이 책이 괜찮긴 괜찮나봐요~~^^

아, 후배 구슬려서 내 책 하나하고 바꿔야 겠당~~ㅎㅎ

cyrus 2011-11-10 13:3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이 책 좋았어요. 예전에 다른 서재 이웃분들이 쓴 리뷰를 보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랑의 감정을 읊조리는 듯한 편지 속 몇 몇 구절이
너무나 좋았어요 ^^
 

 

 

 주원의 앨리스 증후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면서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 드라마 <시크릿가든> 12회, 주원의 독백 -

  

 

작년 12월,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그 겨울,  주말 밤 10시만 되면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워주던(?) TV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한번쯤 '주원앓이' 를 일으키게 만들든 [시크릿가든]이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주원'으로 분한 현빈을 대한민국 최고 스타로 우뚝 서게 만들 정도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회가 TV에 방영되고난 뒤에도 드라마 속 대사와 장면들이 시청자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장면 중간에 삽입된 OST뿐만 아니라 주원으로 분한 현빈이 읽은 책들까지도 때아닌 인기 열풍을 얻게 되었다.   드라마 덕분에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책이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수백년 전에 쓰여진 고전 동화는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앨리스' 는 드라마 내용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원이 읽은 책으로만 그치지 않고 드라마 대사에 인용될 정도로 '깨알 같이' 등장하였다. 

드라마 12회분에서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은 '다모'가 되어 액션 장면을 멋지게 소화하는 장면이 있다.  혼자 속으로 라임에 대한 연정을 키워 나가고 있었던 주원(현빈 분)은 스턴트 촬영하는 장소까지 따라오게 되는데 라임의 액션 장면을 넋을 놓으면서까지 바라보다 속마음으로 되뇌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면서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라임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앨리스'로 비유하여 낭만적으로 표현한 이 대사 덕분에 라임의 스턴트 액션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현빈의 모습이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으며 동시에 '앨리스 증후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앨리스 증후군' 의 증상은 아주 신기한 시각적 환영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편두통을 가지고 있는데 물체가 작아보이거나 커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이거나 하는 증상을 호소한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동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환상적인 현상들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나도 주원처럼 <앨리스>를 읽어봤지만... 

  

 

최근에 <앨리스>를 읽으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는  

내심 은근히 이런 모습을 바래왔건만... 

 주위 사람들은 내가 책 읽는 모습은커녕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조차 

그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ㅠ_ㅠ (크흑..) 

 

 

 

 

 

 

  

 

 

 

 

 

 

 

 

지난 달에 시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틈틈이 독서를 하곤 했었다.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앨리스>다.    친한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독서를 하고 있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이 책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학교 교과서 이외에는 책과는 아예 담 쌓은 남정네들이라 그런지 내가 책 읽는 모습에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도 단 한 명도 물어보지 않았다.    비록 무의미한 상상이지만 공부를 같이 하는 동료들 중에 단 한 명의 이성이라고 있었으면 어떤 반응이 찾아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왠만한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현빈이 나온 [시크릿가든] 정도는 분.명.히 시청했을 터이고 드라마에 나왔던, 주원이 열심히 읽었던 <앨리스> 역시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실 <앨리스>를 이름만 들어왔을 뿐이지 온전한 이야기를 접해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년에 드라마로 인한 앨리스 열풍이 일어났을 때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앨리스>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재미난 책을 읽기 위해서 고른 것이 바로 <앨리스>였다.  

하지만 <앨리스>는 장르가 분명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쉽게 읽혀지지 않는 작품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뒤죽박죽되어 전개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묘사나 대사 속에서는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의도적으로 삽입한 풍자와 넌센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수수께끼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틴 가드너 (1914~2010) 

   
  가드너는 대중들을 위한 과학을 널리 알리는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독자들을 위한 유희 수학 게임을 컬럼 형식으로 연재할 정도로 수학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유희 수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 덕분에 가드너는 수학적 유희가 가득한 <앨리스>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앨리스'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앨리스>는 위대한 영문학 작품이 되는 동시에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 연구되고 해석되어지는 텍스트로 남게 되었다.  미국의 대중 과학 저술가로 유명한 마틴 가드너 가 광범위한 주석을 단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출간하게 됨으로써 그동안 <앨리스> 속에 오랫동안 숨겨져왔던 수학적 유희와 넌센스들이 봉인 해제되듯이 독자들에게 공개되었다. 

나는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국내에 번역된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에 수록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같이 읽었다.  한 페이지마다 박혀 있는 어마어마한 주석 때문에 <앨리스> 텍스트만 온전히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오리혀 가독성 떨어지게 만드는 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된 <앨리스> 텍스트를 다 읽고 난 뒤에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처음에 읽었던 텍스트에서 알지 못했던 넌센스와 언어 유희의 의미를 <주석 달린 앨리스>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의 탄생과 관련된 뒷이야기

 

 

(左)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右) 캐럴이 직접 촬영한 7살의 앨리스 리델 (1860년)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뿐만 아니라 국내에 번역된 <앨리스>에 수록된 역자 해설를 읽었다면 <앨리스>라는 소설이 작가 캐럴이 친분이 있었던 리델 가(家)의 자매들 중 둘째 앨리스 리델을 위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지금까지도 그의 생애와 관련된 수많은 추측과 의문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루이스 캐럴' 은 필명이며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다.  그는 원래 수학자로 활동했으며 수학과 관련한 논문 몇 편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내향적이었으면서 말을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말을 더듬지 않은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 소녀들 앞에서뿐이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는 자신보다 많이 어린 예쁘고 가냘픈 몸에 영리하고 활발한 소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린 남자 아이들은 유독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수학 교수를 지내던 학교의 학장인 딸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훗날 <앨리스>라는 명작을 탄생케 한 캐럴의 인생에 유일한 '뮤즈' 앨리스 리델이었다.  

캐럴은 앨리스가 동행한 리델 가의 딸들과 함께 템즈 강을 따라 보트를 타면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러자 앨리스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고, 소녀의 호의적 반응에 신이 난 캐럴은 앨리스 리델을 위해 직접 글을 쓰고 손수 삽화를 그린 이야기 책을 크리스마스 기념일에 맞춰 선물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땅 속 나라의 앨리스' 이다.   이듬해, 이야기 책은 내용을 좀 더 손질한 끝에 '루이스 캐럴' 이라는 필명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이 때, 당시 영국의 유명한 삽화가인 존 테니얼이 그린 삽화가 추가되었다.  

   

 

[존 테니얼이 그린 <앨리스>의 삽화 일부] 

 

 

 

 

 * 앨리스가 전면으로 나오는 삽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아기 돼지를 껴안은 앨리스의 모습이 귀엽다. 

 

 

* 앨리스와 체셔고양이와의 만남

 

 

하지만 스무살 남짓 차이가 나는 내성적인 숫총각과 귀여운 소녀와의 교류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질 수가 없었다.  캐럴은 사진 촬영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여자아이들의 사진을 즐겨 찍었다.  그래서 지금도 캐럴이 직접 찍은 앨리스 리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이 몇 장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캐럴과 앨리스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 이유는 캐럴의 독특한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어린 소녀를 찍은 사진들 중 일부는 누드 사진이었다.  어린 소녀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들은 캐럴이 죽고 난 뒤에 불에 태워져 사라졌지만 일부 몇 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며 벌거벗은 리델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델의 부모는 앨리스에 대한 캐럴의 기이한 집착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으며 그가 앨리스에게 보낸 편지도 모두 파기시켰다.  심지어 앨리스 리델의 후손들마저도 캐럴와 앨리스와의 친분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의도적으로 파기시키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캐럴과 앨리스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단절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또다른 배경으로는 캐럴이 11살이 된 앨리스에게 청혼했기 때문이라는 원인도 있다.   그리고 어린 소녀에 대한 그의 유별난 관심은 캐럴이 소아성애자였을 가능성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앨리스>, 알고 보면 사랑의 순애보?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한창 어린 소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상적인 사랑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앨리스> 속에는 귀여운 소녀 앨리스 리델을 향하는 내성적이면서 상상력과 동화적 감수성이 충만한 캐럴의 애틋하고 각별한 감정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캐럴과 앨리스와의 관계 그리고 <앨리스>가 처음에는 앨리스를 위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비추어 본다면 <앨리스>는 내성적인 말더듬이 수학자가 사랑하는 앨리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면서도 간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일종의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앨리스와의 행복한 추억을 잊지 않으려는 캐럴의 순정적인 마음 역시 엿볼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앨리스를 동행한 자매와 함께 한 템스 강에서의 소풍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은 아름다운 내용의 서시(序詩)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황금빛 오후 내내
우린 한가로이 배를 저었네.
솜씨는 없었지만
작은 팔로 부지런히 노를 저었지.
작은 손은 헤매는 우리를
이끌어주는 척 손직했다네.

아, 잔혹한 세 사람이여!  그런 시간에
꿈을 꾸는 듯한 날씨에,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다니.
깃털 하나도 살랑일 수도 없을 만큼 숨이 약한 이에게!
하지만 불쌍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말하는 세 명의 목소리를 어찌 당해 내겠는가!

(후략)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펭귄클래식코리아, pp 106 -

 

시 속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템스 강 위에 띄운 보트를 타면서 캐럴이 들려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리델 가의 세 자매를 가리킨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캐럴은 직접적으로 앨리스에 대한 연정을 드러내고 있다.   <앨리스>가 원래 앨리스 리델, 단 한 명의 소녀를 위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애정이 담긴 일종의 헌정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헌정사 속에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다.  '먼 나라에서 온 꽃들로 만든 화관' 은 오랜 세월이 지난 시들어지듯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잊혀질까봐 걱정하는 캐럴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앨리스!  이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를 가지렴.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이 이야기를 놓아두렴.
어린 시절의 꿈이
신비로운 기억의 띠로 얽혀 자라는 그곳에.
저 먼 나라에서 꺾은 꽃들로 만든
순례자가 쓴 시든 화관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3장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편에는 인간처럼 대화를 하는 각종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널리 알려진 동물이 바로 도도새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 중에서 앨리스를 가장 호의적으로 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 코커스 경주의 우승자로서 앨리스에게 상으로 골무를 수여하는 도도 (pp 137)   

   
 

재미있게도 테니얼의 삽화 속 도도의 날개 밑에는 인간의 손이 달려 있다. 아무래도 골무를 집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인간의 손을 그려넣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도도의 양 날개는 퇴화되어서 날 수 있는 기능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도도는 일반 새와는 다르게 날아다니지 못하는 '바보, 얼간이  새'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되었고 인간의 지나친 수렵으로 인해서 17세기 말에 멸종되고 말았다.

 
   

 

자신이 제안한 코커스 경주에서 모든 동물들 그리고 앨리스가 우승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상을 수여하게 되는데 도도는 엉뚱하게도 앨리스의 주머니에 있던 골무를 자신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 것처럼 전달한다.  

<이상한 나라>에 등장한 도도는 루이스 캐럴, 작가 자기 자신을 희화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자기 이름을 '도-도-도지슨(Do-Do-Dodgson)'이라고 발음한 것에서 차용하여 '바보, 얼간이 새'로 상징되는 '도도(Dodo)'로 소설 속에서 분장한 것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부상(副賞) 중에 왜 하필이면 '골무'를 수여했던 것일까?   

아쉽게도 마틴 가드너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용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앨리스>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해석의 대상이 되어지듯이 도도가 앨리스에게 수여하는 '골무'에 대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직접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   

 

'골무'는 영어로는 Thimble이다.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 찾아보게 되면 골무라는 뜻 이외에도 '고리'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골무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헝겊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플라스틱, 금속제품으로 된 것도 있으며 손가락 끝에 끼우는 캡 모양과 가운데 손가락에 끼는 링 모양,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포털사이트에 '영국 골무'로 검색하게 되면...  예쁜 무늬가 그려진 영국 골무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과연 사진 속 고급(?) 골무가 진짜로 영국산인지 제대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

캐럴이 활동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후반) 때 부유한 사람들이라면 도자기 형태의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고급 골무를 사용했을 것이다.  특히, 리델의 아버지은 유명한 영국의 명문대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처지 학장이기 때문에 고급 골무를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가졌을 것이다.

 
   

   

영국산 골무는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조그만한 도자기를 연상케 한다.  바느질할 때 주로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이면서도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소중히 보관할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앨리스 수준의 연령의 소녀라면 작고 아름다운 물건에 한창 관심을 가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앨리스 수준에 딱 어울리는 작고 아름다운 선물로도 알맞다.   

캐럴이 이런 의도를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지 않았을테지만...  ^^;;  

앨리스가 가지고 있던 골무를 자신이 직접 상품으로 수여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오히려 앨리스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캐럴의 조크(Joke)로도 볼 수 있다. 

 

 

 한 소녀를 향한 사랑이 만들어낸 판타지  

'앨리스 증후군'에 시달렸던 주원은 끝내 길라임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라는 작품 하나만으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되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주원은 '라임앓이'로 인한 앨리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소심한 루이스 캐럴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앨리스 앓이'를 하는 독신으로 살아야만했다.    

지금까지도 캐럴이 실제로 앨리스 리델과 사랑에 빠졌는지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말로 자녀뻘인 앨리스 리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하려고 했는지 확증할만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캐럴은 어린 소녀들에 대한 순수하면서도 각별한 애정을 자신만의 이성애로서 표출했다는 것이다.   후대의 독자들은 소녀에 대한 캐럴의 애정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에 등장하는 험버트 험버트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캐럴이 그저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기 위해서 어린 소녀들의 모습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은 아니었다.   

 " 불쌍하고 가엾은 꼬마 앨리스! "

1932년, 루이스 캐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에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G.K. 체스터턴은 <앨리스>가 학자들에 의한 텍스트의 무분별한 해석으로 인해 '오래된 비석처럼 차갑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면서 한탄하였다.  그는 <앨리스>가 재미있는 동화로서 읽혀지기보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듯이 텍스트 해석에 치중하는 독서를 문제 삼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농담과 많은 생각이 요구되는 수학적 유희 그리고 터무니없는 의미를 가진 넌센스 때문에 오히려 <앨리스> 읽기를 기피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캐럴은 독자들로 하여금 곤란하게 만드는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가 아니다.  그리고 독자들을 골탕 먹이려는 괴퍅한 의도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저 복잡하고 머리를 아프게 만들만한 언어적. 수학적 유희와 넌센스들은 오직 자신이 사랑했던 앨리스를 위한 캐럴의 은밀한 밀어(蜜語)다.  앨리스를 향한 사랑이 흥미롭고 독특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은 바로 루이스 캐럴이다. 

<앨리스>가 동명의 소녀를 위해서 말더듬이 수학자가 손수 제작한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평생동안 한 소녀를 향한 사랑앓이를 하다가 독신으로 지내야만했던 '왕소심' 말더듬이 수학자의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와 행복했던 템즈 강에서의 추억은 이제는 '순례자가 쓴 시든 화관' 으로만 남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조관우의 <늪>에는 이런 가사 구절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다. 

노랫말처럼 캐럴은 <앨리스> 속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나마 실현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고 싶어했으며 자신의 감정을 앨리스 리델에게 표출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말 더듬는 자신을 어리석은 도도새로 둔갑할 정도로 말이다.   상상력이 충만했던 캐럴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상상 속으 동화로마나 가능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지금도 <앨리스>를 읽게 되면 앨리스가 체험하게 되는 황당한 사건들이 재미있고 유쾌하다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야했던 어느 말더듬이 수학자의 슬픈 사연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루이스 캐럴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저 간직한 어느 사내의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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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0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뉘 이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당!!! ^^

cyrus 2011-11-08 14:57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읽다보면 황당한 내용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있답니다. ^^

아이리시스 2011-11-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석달린 앨리스 맨날 두 페이지 넘기다가 다시 덮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주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ㅠㅠ 주석이 나를 잡아먹고, 내가 주석에게 잡아먹히는 느낌이 든다니까요.ㅋㅋㅋ

cyrus 2011-11-08 14:58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만 먼저 읽고난 후에 다시 읽을 때 주석을 읽었어요.
그 중에 정말로 궁금한 내용과 관련된 주석을 중심으로요. ^^

노이에자이트 2011-11-07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에서도 어린 소녀가 육체적 쾌락의 대상은 아닌데,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 때문에 음란한 작품인줄 아는 이들이 많죠.정작 읽어보고 "뭐 이래~야한 소설이 아니네~" 한다는...

cyrus 2011-11-08 14:58   좋아요 0 | URL
앨리스를 읽어본 김에 이번 기회에 롤리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yamoo 2011-11-0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틴 가드너의 책들은 정말 멋지죠~ 저두 번역본은 한 권 빼놓고 모두 갖고 있습니다. 윌리엄 파운드스톤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과학 저술가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만만한 책이 아닌 거 같아요. 논리와 수학적 사고의 핵심이 담겨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랄까요~

cyrus 2011-11-08 15:00   좋아요 0 | URL
마틴 가드너가 쓴 이야기 패러독스라는 책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도 참 좋았어요. ^^

논리적, 수학적 사고가 요구되는 요소들을 이야기에 넣다보니 읽을 때
간혹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도 주석을 읽다보면 작가의 창작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카스피 2011-11-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마틴 가드너 주석달린 앨리스와 펭귄 클래식 앨리스 세트를 가지고 있어요.위 사진에 있는 합본으로 된 앨리스도 살려고 했지만 솔직히 읽기 불편해 아직 안사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분권된 앨리스가 읽기 편하서지요.하지만 약간 주석이 다르다고 하니 살까 말까 고민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