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준비의 어려움
항상 학기중은 언제나 바빴지만, 이번 주 같은 경우에는 조별 과제가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시기였다. 조별 과제는 여러 명의 조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 과제보다는 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별 과제는 어떤 조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작업하는 데 편할 수도 있거나 아니면 본인이 힘들어 질 수 있다. 조원 중에는 전혀 친하지도 않는, 타 과 학생이 한 두 명 있는데 조별 과제를 준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면 본인뿐만 아나리 다른 조원들 입장에서는 피곤하고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렇다면 친한 친구들이 나와 같은 조원이라면? 많은 학생들이 조별 편성할 때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다. 과제를 준비하는 데 서먹한 기분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도 믿을게 못 된다. 아무래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름 열심히 참여하려고 하지만, 꼭 한 명은 슬쩍 눈치를 보면서 참여하는 척만 하는 친구 녀석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 과제는 혼자를 하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든... 결론은 쉬운 게 없다. -_-;;
상금에 눈이 멀다
과제 타령은 여기까지만 하고, 사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과제라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는 '리포트'(Report)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포트를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리포트의 정의를 논문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논문'이라고 하면 자신이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 또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작성하는 글이다. 평소에 글쓰기에 대한 훈련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리포트 한 개 쓰는 데 고역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래도 필자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리포트를 작성하는 방법을 습득했으며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리포트 쓰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올해 2학년 1학기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3학기를 수학(修學)했는데 단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리포트 점수는 상위권에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리포트 작성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가진 상태라서 최근에 학교에서 주최한 리포트 공모전에 참가해보려고 했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하여 가장 잘 쓴 리포트에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는 대회이다. 1등이 30만원이었다!
며칠 전부터 리포트 공모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이번 학기 때 쓴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역사'라는 주제로 쓴 리포트를 제출해보려고 했다. (리포트 속 내용의 일부는 지난 달에 페이퍼 형식으로 쓴 적이 있었다) 당시 리포트를 본 교수님도 좋은 평가를 주셨고, 내용의 일부를 쓴 페이퍼 역시 나름 반응이 좋아서(^^;;) 솔직히 공모전 수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감이 너무 지나쳤던 것일까? 기존에 쓴 리포트 내용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보완하면 좋았을 것을, 다른 과목 과제 준비하느라 소홀하게 준비를 했다. 준비할 수 있었던 많은 기간동안에 어영부영하다가 제출 마감날 3일 전이 되어서야 드디어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한 리포트의 내용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준비해야 할 과제가 많은 상태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작성한 과제를 보완하는 데 열중해야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과제의 내용이 어떻게 보완해야 되는지 염두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잘 써서 리포트 공모전에 상금을 타고 싶은 마음만 앞섰다. 결국에는 주말에는 잠을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좀 더 새로운 내용으로 다듬었다.
이제 작성한 과제를 담당교수님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다 된 것이었다. 교수님은 필자가 쓴 과제를 보고 대회추천서에 과제 내용에 대한 평가를 기록해야만 했다. 리포트 대회에 교수 추천서도 같이 제출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교수님께서 추천서만 작성해주신다면 모든 게 끝인줄만 알았다.
공모전 마감 기간이 전날에 교수님에게 교수 추천서를 받으려고 연구실에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하늘 높이 찌를 것만 같았던 공모전에 대한 자신감은 하루만에 한 풀 꺾이고 말았다.
교수님은 리포트 내용이 예전보다 더 못했다고 제대로 된 지적을 하셨다. 문장 중에 간혹 주어가 빠져 있었고, 내용 결론과 느낀점이 너무 진보적인 관점으로 치우쳐서 균형적이지 않다는 등 하나하나 문제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교수님이 지적하신 부분을 들으면서 나름 표정 관리를 한답시고 웃는 얼굴로 대답했지만,,, 실상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리포트가 지적당한 사실이 부끄럽다기보다는 교수님이 지적하신 부분을 내일 제출 마감날까지 보완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막상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에 무척 난감하였다. 교수님은 제출 마감날까지라도 꼭 다시 보완해서 제출하려고 당부하셨다.
한 시간동안 교수님의 지적을 듣고 난 뒤에서야 연구실에 나오는 순간, 온 몸의 기운이 한꺼번에 쭉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정작 해야 될 과제는 많은 상황에 이미 작성한 과제를 또 수정해야 하는, 힘든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점이 혼자 감당하기가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공모전 상금' 과 '학점' 사이에서의 갈등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서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공모전 제출용 과제를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학기 학점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이제 막 시작도 해보지 않은 수많은 과제들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한 공모전을 위한 과제를 포기하면 공모전 상금이 아깝게 느껴졌고, 반대로 공모전을 위한 과제에만 열심히 하다보면 정작 해야 할 과제들을 준비하는 데 지체할 수 있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공모전 과제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공모전은 내년에도 개최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약했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구상도 하지 못한 다른 과제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1월이 끝나가기 전에 과제들을 마무리 짓게 되면 12월부터 기말고사 공부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길 수 있다. 꼭 다가올 상황, 즉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하는 목표를 위해서 공모전이라는 기회 비용을 포기한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던 리포트 공모전의 상금에 얽매였던 집착이 사라진 탓일까?
그 이후로 다른 과목 과제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준비할 수 있고, 거의 완성이 다 되어가는 상태이다. 과제가 완전히 작성되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다시 고쳐야하겠지만, 공모전 상금에 대한 욕심이 만들어 낸 집착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일이 수월하게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버릴수록 크게 얻을 수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는 난초에 대한 스님의 집착과 관련된 일화가 잘 알려진 너무나도 유명한 수필이다. 스님은 한 때 난초에 집착하다가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알고 친구에게 난초를 돌려주고 나면서부터 무소유의 역리를 깨닫게 되었다.
스님은 난초가 없어진 이후부터 서운하고 허전함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을 느끼셨고 그 이후로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필자는 스님과 같은 삶의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리포트 공모전 포기 이후로 리포트라는 글을 쓰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만약에 공모전에 교수님의 추천서 없이 개별적으로 제출했다고 상상해보자. 운이 좋게도 대회에 당선되면 좋겠지만 결과는 꼭 좋은 쪽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공모전에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한 상태에서 입선마저도 하지 못한다면 실패에 대한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이 무척 컸을 것이다.
마음 속에 생긴 소유욕과 집착을 버리면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며칠동안 나의 정신과 육체를 괴롭혔던 집착에서 스스로 벗어난 후 뒤의 느낌은 정말 '자유'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소유'의 마지막 문장 중에는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올해 리포트 공모전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단지 대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학하면서 꼭 해야 될 과제, 리포트 작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미래의 발전이라는 2보 전진을 위해 잠시 1보 후퇴한 것뿐이다. 크게 버린만큼 언젠가는 크게 얻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찾아 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