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접속하면 긴장할 때가 있다. 상대방의 생각이 담긴 글에 대해 소신 있게 비판적 의견을 댓글을 다는 순간이다. 댓글을 달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한다. 상대방이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말을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댓글에 달고 싶은 말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자체 검열을 한다. 내 의견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확인한다. 내 의견에 논리적 허점이 발견되면 상대방은 반론을 내세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댓글 하나 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5분이 걸린다. 오래 생각해서 댓글을 달면 10분을 넘기기도 한다. 댓글을 다는 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신중한 자세가 건전한 토론을 유연하게 펼칠 수 있는 방어적 자세인 동시에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남의 입장을 무시한 채 내 의견을 일방적으로 드러내면 상대방으로서는 불쾌할 수 있고, 사소한 토론이 서로 감정을 험악하게 만드는 말싸움으로 변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겪은 일이다. 그때 일베의 인격 모독적 발언과 반사회적 행동으로 인해 일베를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자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나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모 일간지의 대학생 칼럼 공모 페이스북 페이지에 멘토로 활동하고 있었다. 멘토의 역할은 이렇다. 대학생들이 올리는 글을 꼼꼼하게 읽어서 고쳐야 할 부분을 댓글로 알려준다. 또 잘 쓴 글이 있으면 대학생 칼럼으로 추천한다. 내가 추천한 글이 신문 오피니언에 실릴만한 칼럼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를 맡은 논설위원이 한다. 대학생 칼럼으로 선정되면 토요일에 나오는 신문 오피니언에 논설위원들의 칼럼 옆에 게재되는 영광을 누린다.

 

칼럼이라는 글 형식상 대중이 관심 가지는 사회 문제들을 주제로 한 내용이 많은 편이다. 당연히 일베 논란에 대한 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베 문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데다가 자칫하면 감정적 문제도 번질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주제다. 사실 이런 주제의 글이 나오면 일단 긴장한 상태에서 읽는다.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글을 두 세 번 이상 읽기도 한다. 예상 반론도 미리 염두에 둔다. 칼럼을 응모하는 대학생 필자들이 무조건 멘토의 의견을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자신이 쓴 글의 허점이 지적되면 반론으로 응수하는 필자도 있다.

 

필자의 공격을 각오하고 내 의견을 댓글로 밝혀야 한다. 한번은 일베 폐쇄 찬성론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에 댓글을 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글이 일방적으로 일베 폐쇄 찬성론자들을 목표물로 삼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장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이 나서 글을 쓴 필자에게 논점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좀 더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예상했던 대로 반론 댓글이 나왔다. 필자가 아닌 필자의 지인이 먼저 총대를 메고 내 의견을 공격했다. 이제 여기서부터 댓글 싸움이 시작되었다. 필자의 지인과 일대일로 댓글과 답글을 주고받다가 드디어 필자가 댓글 싸움에 뒤늦게 참전했다. 토론 양상이 2대1이 되었다.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지만 무턱대고 두 사람의 의견이 틀렸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댓글 전쟁을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나자 내 의견을 반대하는 댓글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혼자였다. 영화 ‘신세계’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칼부림에 맞서는 황정민과 같은 상황이었다. 드루와 드루와

 

토론에 정답은 없다. 정답을 도출하도록 강요하는 토론을 한다는 것은 이 토론을 끝낸다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시간과 힘만 낭비하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무의미한 말싸움이 이어진다. 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되 내 입장을 그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면 그만이다. 특정 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의 시선이 무조건 A만 있는 것이 아니라 A와 B 그 이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면 된다. 그런데 토론하면서 제일 피곤하고 맞서기 싫은 사람의 유형이 무조건 하나의 의견이 옳다고 우기거나 그 입장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여서 합심하기도 한다. 이들은 상대방의 의견이 불리하도록 끝까지 몰아붙인다. 사실 대학생 칼럼을 선정하는 멘토는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멘토 활동을 하는 대학생이 두 명 더 있다. 그러나 나는 동료나 다름없는 다른 멘토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들도 사람이다. 내 의견과 같으면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지지만 항상 내 의견과 같을 수 않다.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불리한 상황에 처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토론한다. 더 이상 토론이 끝날 것 같지 않으면 상대방 의견을 인정하고, 수없이 내뱉었던 토론 내용을 정리하는 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그런데 토론을 좋게 끝내려는 상대방의 원만한 태도를 자신의 의견에 굴복하는 반응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토론의 승리자가 된 거 같은 착각에 빠진다. 상대방이 더 이상 토론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진행을 거부하면 토론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토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서 이기는 것이 장땡으로 본다. 일단 내 의견에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한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이발사’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주장하고 싶은 자와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집단 세력이 만나서 생기는 양상을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함축해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발소라는 협소한 공간 안에서도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언어적 집단 린치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다.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지적해도 이를 무마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은폐, 입막음하거나 그를 선동가,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패거리를 재수 없게 만난다. 패거리는 상대방을 목표물로 삼아 일방적으로 집단 린치를 가한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면 집단 사고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논리에 포획된 채 그들만의 잣대로 오도된 의사결정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해당 집단만의 공유된 가치와 판단 기준, 객관성을 상실한 무비판의 환상,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모두 합리성을 파괴하는 집단주의의 적폐다. 아무리 논리적이 뛰어난 사람도 이러한 집단주의 성향으로 이끄는 토론에 휘말리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없다. 오히려 상대방은 궁지에 몰린 상대방을 무시하고 조롱한다. 고양이 여러 마리가 모여 쥐 한 마리를 장난감처럼 앞발로 눌러대고 굴리는 것처럼. 쥐를 한 번에 죽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족할 때까지 쥐를 끝까지 괴롭히다가 서서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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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04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도 사실 의견이 비슷한 블로거들만 끼리끼리 모이잖아요? 전 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도 보고싶어요^^

cyrus 2015-02-05 00:46   좋아요 0 | URL
저도 치열하게 진행하다가 마무리로 서로 인정하면서 좋게 끝내는 토론을 좋아합니다. 그것보다는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재밌긴 하죠... ㅎㅎㅎ

CREBBP 2015-02-0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발소>를 그렇게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는데. 아 맞긴 맞는 말씀이신데, 살짝 제가 받은 느낌과 각도가 다른 듯해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15-02-05 01:00   좋아요 0 | URL
‘이발소’에서 이발사가 레이버의 정치적 견해를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을 잘못된 의견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이 생각났어요. 그런 경험을 겪은 레이버는 자신이 굴복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한 번 이발소에 가기 전에 미리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토론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맙니다. 사실 레이버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이발사는 애초에 레이버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고, 그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바라보죠. 아예 그를 구경거리로 만듭니다. 이발소에 있는 지인들을 불러 놓고 레이버의 연설을 구경하는 것이죠. 비록 지인들은 레이버의 연설에 대해 지적하거나 반론을 펼치지 않았지만, 이발사처럼 레이버의 연설을 무시하고 비웃습니다. 저는 여기서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패거리 토론의 잘못된 행태가 떠올렸습니다. 이런 행동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심리를 압박하고,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위축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을 읽다가 개인적 경험이 중첩되는 바람에 저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석했습니다. 혹시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

yamoo 2015-02-0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론을 하다보면 별 사람을 다 봅니다.ㅎㅎ
토론이 아니라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인상이 험악해지지요.

공감하며 글 잘 읽었습니다!ㅎ

cyrus 2015-02-05 01:03   좋아요 0 | URL
야무님은 토론을 잘 하실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토론을 하게 되면 처음부터 내가 이긴다는 생각을 포기합니다. 이래서 자신감이 위축되고 토론에서 이기지 못할 때가 많아요. ㅎㅎㅎ

수이 2015-02-0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주의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고 마네;

cyrus 2015-02-05 15:34   좋아요 0 | URL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은 살면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타인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편안하게 느껴요. 저도 그래요. 무리에 속하면 남과 다른 성향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심슨 핼러윈 특집 오프닝 영상,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TV만화 <The Simpsons> 핼러윈 특집(Treehouse of Horror XXIV) 오프닝은 역대 심슨 시리즈 오프닝 중에서 가장 퀼리티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판의 미로’, ‘헬보이’ 등을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고전 오컬트 및 공포물의 주인공, 관련 인물들을 만화로 만들어 패러디했다. 어지럽게 지나가는 영상을 잘 보면 감독 본인이 제작한 영화 캐릭터들도 나온다. 당신이 오컬트 마니아라면 영상에 나오는 장면들 속에 숨겨진 공포영화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찾기에 자신이 없다면 유명 인사를 찾아보자.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누굴 패러디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바트 심슨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돌연변이 낙지 같은 거대한 괴물을 만난다. 운동신경이 좋은 바트는 괴물의 길쭉한 촉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지나간다. 바트가 탄 보드가 빠르게 지나갈 때 카메라는 괴물 촉수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마른 체격의 남자와 그 옆에 수염 있는 남자를 비춘다. 수염 있는 남자의 팔 한쪽에 까마귀가 앉아 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른다 치더라도 까마귀와 함께 있는 수염 있는 남자는 그 사람의 얼굴을 비슷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누군지 잘 알 것이다. ‘갈까마귀’라는 시를 쓴 에드거 앨런 포다. 포 왼쪽에 있는 사람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다. 바트가 만난 촉수 달린 거대한 괴물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Cthulu)라는 외계 생명체이다.

 

 

 

 

 

 

 

 

 

 

 

 

 

 

 

 

 

 

 

 

 

 

 

 

 

 

 

 

 

 

 

 

포와 러브크래프트, 공포 오컬트 문화를 논할 때 이 두 사람을 제외한다면 기원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미국 공포문학의 아버지, 그것도 두 명의 아버지는 공포 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모체가 되었다. 시기상 작품 활동을 먼저 한 포가 첫 번째 아버지가 되어야 하지만, 포와 러브크래프트 둘 중에 과연 누가 공포소설의 창시자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이다. 러브크래프트도 포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지만, 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업적을 간과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불후한 유년 시절,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 그리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공포문학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흡사한 면이 있다. 포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담배 상인의 양자가 되었다. 포는 의붓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잠깐 화해한 적이 있었으나 포의 지독한 도박벽과 무절제한 생활을 참지 못한 의붓아버지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러브크래프트의 가족사도 순탄치 않았다. 러브크래프트가 세 살 때 그의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러브크래프트는 어머니와 외조부 밑에서 자랐는데 병약한 체질이라서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은둔 생활이 많아질수록 러프크래프트의 마음에 우울한 그늘이 넓어졌다.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우울한 기질은 어린 시절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포와 러브크래프트는 단편소설을 많이 남겼다. 포가 먼저 단편소설 형태를 구축했고, 러브크래프트가 포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단편소설은 공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인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여기에 포와 러브크래프트는 공포의 근원을 인간의 심리적 변화에서 찾는다. 소설 전체를 가득히 채우는 작중 인물들의 불길한 감정과 공포는 독자에게 생생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만하다. 흡인력이 강한 이야기는 독자를 무시무시하고 충격적인 절정으로 도달하게 한다.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우울하고, 내성적이며 매우 예민하다. 강렬한 공포를 경험하면 반쯤 미쳐버리고 파국의 운명을 맞는다.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의 어셔는 음울하고 쇠잔해져 가는 어셔 집안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수록)의 화자는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로 인해 현실의 감각이 무너져 끔찍한 망상에 시달린다.

 

 

 

 

 

 

 

 

 

 

 

 

 

 

 

 

 

러브크래프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아마도 그가 탐독했던 도서목록 중에 포의 작품도 포함되었으리라. 문학 작품에 나오는 공포를 비평하고, 결과물을 공포문학사로 정리한 《공포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에서 포를 설명하는 데 꽤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러브크래트프는 포의 문학을 상당히 높게 평하고 있으며 당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포 작품 속의 예술적 기교를 알아봤다. 보들레르가 포의 문학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유럽에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했지만, 포가 남긴 수많은 시의 문학적 평가에 가리는 바람에 외면받을 뻔했던 공포소설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러브크래프트다.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러브크래프트는 포의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방식으로 여전히 살아있다고 썼다. 자신을 포함한 후대 작가들이 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조상을 부활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포의 소설 속에 남아있는 그로테스크 문학 DNA를 복원했다. 포의《검은 고양이》는 인간의 감정을 광기의 소용돌이로 빠뜨리게 하는 불길한 고양이를 통해 공포를 한껏 고취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울타르의 고양이》(러브크래프트 전집 3권에 수록)는 《검은 고양이》에 비해 공포를 조성하는 분위기가 많이 떨어지지만, 고양이 살육에 이르는 인간의 편집증이 초래하는 섬뜩한 파멸은 《검은 고양이》의 결말과 유사하다. 《벽 속의 쥐》(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수록)는 평범하게 보이는 찢어진 벽지만으로 오싹한 장면으로 연출하는 이야기가 압권이다. 공포의 절정에 급속도로 향하도록 독자의 감정을 끌어들이는 이야기의 효과는 포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벽 속의 쥐》의 주인공 이름은 델라포어(Delapore)다. 델라포어는 포(Poe)를 위한 러브크래프트의 오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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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2-03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우울과 몽상>은 책꽂이에서 꽂힌 채 늘 저에게 음산한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 말도 합니다. ˝도대체 언제 날 읽을래?˝
러브크래프트가 누군지 몰랐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기네요.^^

cyrus 2015-02-04 18:31   좋아요 0 | URL
<우울과 몽상>이 소설 전집이라는 유일한 메리트를 제외하면 번역이 시원찮습니다. 문장 일부를 빼먹은 채 번역한 글도 있고요. 책이 나온 지 13년이나 지났는데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보물선 2015-02-04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궐님. 미투요^^

단발머리 2015-02-0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돌궐님과 같아요. 미쓰리요^^

2015-08-23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3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3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3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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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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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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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16: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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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1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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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1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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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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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탄생 -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0
안미선.김보성.김향수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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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아는 엄마 얘기

 

여기 내가 아는 엄마가 있다. 에바라는 이름의 여자는 한때 세계 여행을 즐기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고단함에 못 이겨 아들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엄마와의 관계가 소원해질수록 아들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아들은 반항적인 학생으로 자라고 엄마를, 가족을,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이 불행한 모녀 이야기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의 줄거리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설은 에바가 과연 일반적인 모성애가 부족했느냐고, 그러한 책임이 온전히 에바 개인에게 있는 것이냐고 독자에게 도발적으로 질문한다. 누군가는 에바의 차가운 심장 속에 반항적인 아들로 자라는 불행의 씨앗이 생겼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에바의 모습은 소설 속에만 나올 법한 특이한 장면이 아니다. 산모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산후우울증 상태와 비슷하다. 산후우울증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호르몬 변화가 심해지면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아기는 출생 후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과 양육을 받지 못해서 행복하지 못하며 엄마의 우울한 상태는 자녀의 인지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에바의 경우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놓는 기자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되기 쉽다.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엄마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뉴스는 산후우울증을 아이를 극단적으로 위협하는 정신병으로 전달한다. 이런 뉴스를 접한 아빠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가 미쳤군, 어떻게 엄마가 아이를 죽일 수 있지?” 아빠는 엄마의 극단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아이를 오랫동안 키워 본 엄마들은 충분히 이해한다. 자신도 아이가 너무 싫어서 죽이고 싶은 순간적 충동이 있었음을. 계속 울고 떼쓰는 아이를 혼자 달래다 보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아이에게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Scene #2  오늘도 엄마는 외롭게 싸운다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혼자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임신은 축복이지만 출산과 육아는 현실이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자녀 양육문제는 가장 무거운 현실의 짐이 된다. 산후조리원은 출산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긴장하고 육체적으로 지친 산모에게 ‘엄마’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역할을 알려준다.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많은 산후조리원은 상당히 과학적인 시어머니 혹은 친정어머니가 된다. 산후조리를 위한 돌봄 서비스를 하고, 아기를 돌보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모유 수유가 아기의 건강에 좋다는 산후조리원의 말에 산모는 유두가 아프더라도 꾹 참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당연히 ‘엄마’니까 아기를 위해서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시선을 받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결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 밤잠을 편히 자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이 시작된다.

 

산후조리원을 나와도 엄마 주변에는 자꾸 ‘좋은 엄마’라는 꼬리표를 달도록 부추기는 것들이 많다. 침대는, 아니 모성은 과학이라는 점을 육아 관련 업체들은 홍보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엄마 마음에 연령별로 분화된 고가의 유아용품들을 구입한다. 모성애가 뛰어난 엄마가 되려면 이 정도 소비를 감수해야 한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성도 돈으로 사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엄마는 자본주의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한쪽에는 ‘경쟁’이라는 글러브를, 다른 쪽에는 ‘모성’이라는 글러브를 끼고 외롭게 싸운다. 만약 이 싸움에서 진다면, ‘좋은 엄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럴수록 육아에 대한 강박적인 마음에 글러브를 바짝 조인다. 불행하게도 ‘엄마 노릇’하는 여성이 서있는 코너 옆에는 든든한 트레이너가 없다.

 

맞벌이 여성일수록 고민거리는 더 커진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싶어도 아이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선택은 세 가지 중 하나. 친정이나 시댁에 맡기거나 육아 도우미의 손을 빌리는 것. 셋 중 하나만 찍으면 되지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어떤 선택이든 비용이 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큰 사회문제로 주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맞벌이를 하게 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엄마는 늘 피곤하다. 전쟁 같은 삶을 산다.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칭얼대며 엄마를 찾는 아이를 돌본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반복적 가사노동에 하루를 저당 잡혀버린다. 아무리 가사노동도 어엿한 경제활동이라고 울부짖어도 여전히 현실 속에서는 세 가지 엄마가 구분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 너머의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되고 ‘나’라는 고유한 삶의 윤곽이 사라진 지 오래다.

 

 

 

 Scene #3  Mamma mia! 미아가 된 대한민국 엄마들

 

6년 전에 100만 부를 훌쩍 넘긴 신경숙《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가족에 대한 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자식을 위해 평생 희생하고 영원한 내리사랑을 주는 어머니의 사랑은 어릴 적 우상이었던 슈퍼맨보다 더 강하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 속의 엄마와 같은 인물은 거의 없다. 모성애와 무조건적 헌신의 자세로 포장된 엄마는 없다. 안타깝지만 《케빈에 대하여》 속의 엄마는 있다. 앞으로도 많아질 것이다. 사회가 소유한 모성의 강제성은 역설적이게도 아이와 엄마 간의 관계를 단절한다.

 

 

           

 

 

《엄마의 탄생》은 읽으면서 나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었다. Mamma mia! 세상에! 대한민국 엄마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구나. Mamma mia! now I really know(이젠 정말 알겠어). 엄마는 미아(迷兒)다. 그녀는 외롭다. 가족은 있으나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견뎌야 할 시간을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까. 집에 있어도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든다. 모성애라는 대의명분만으로 참으면서 이겨내기가 힘들다. 방황하는 엄마가 가는 곳은 쇼핑몰과 키즈 카페. 그러나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아이와 엄마가 놀 수 있는 시간은 소비가 된다. 편하게 쉴 곳이 없다.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 오랫동안 헤맨다.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적극적 양육자로서 아빠의 역할이 커지는 요즘, 아이들에게 친근한 슈퍼맨이 되고 싶은 아빠들이 많아져서 좋다. 엄마가 혼자 짊어진 짐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보육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 모성을 ‘안전빵’으로 생각하는 것은 엄마를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엄마에게 보육을 전적으로 맡기는 꼴이다. 엄마에게 보육을 부탁해선 안 된다. 모성은 강하다? 이것은 오해의 산물이다. 모성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늘 심장 속에 새겨야 할 책임이라는 단어가 될 수 없다.

 

시장논리 속에서 존재하는 모성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가리고 포장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돋보이도록 만드는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사회는 육아 지침서가 말하는 현명한 엄마,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는 세련된 엄마,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 엄마가 되라고 말한다. 여성 독자들이여, 진짜 엄마가 되고 싶은 각오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사회가 강요하는 ‘엄마 노릇’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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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2-0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얼마전에..국내 영화 현기증˝ 을 봤어요.
이거야..말로..미치고 팔짝 뛰겠네..하는
심정을..그대로..담은..영화.엄마의.영화.
라고...봐도 후회 안하실 거라고..ㅎㅎ

cyrus 2015-02-03 17:14   좋아요 1 | URL
장소님이 추천한 영화가 보고 싶군요. <엄마의 탄생>이라는 책도 읽을수록 미치고 팔짝 뜁니다. 정말 대한민국 엄마들이 안쓰러워요. 젊은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그장소] 2015-02-03 19:44   좋아요 0 | URL
음..엄마의탄생.기억해두고 읽어볼게요.
근데..뭐 저도 그에 만만치 않아서.ㅎㅎㅎ
오늘 기사를 보니 남성들 엄마에서 아내로 가정의 주된일을 그대로 갈아타기 할 뿐이라는 인식이강하다.는 설문이 눈길을 잡아 끌었어요.새삼스럽게...하는 심정으로..피식 웃음이 났고요.

감은빛 2015-02-0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 3명 중 2명이 아는 사람이네요.
친한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요.
출판사도 저자도 훌륭하네요.
이 리뷰를 읽고나서야, 저 책이 집안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네요.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15-02-03 17:18   좋아요 1 | URL
아이를 키우는 은빛님은 이 글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책을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책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엄마가 나오는 픽션을 그렇게 많이 찾고 읽었던 사회가 진짜 엄마가 나오는 논픽션을 외면하는 상황이 이상합니다.

감은빛 2015-02-03 17:34   좋아요 0 | URL
그 엄마가 나오는 픽션은 워낙 유명한 분이 썼고,
매우 영향력있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시루스님의 이 글에 대한 느낌이 궁금하신가요?
글쎄요. 이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지,
시루스님이 왜 놀랐는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아요.
이 사회에서 아직까지 육아의 부담이 여성에거 쏠려있기는 하지만,
최근 많이 바뀌는 추세이고,
육아를 부분적으로(혹은 같이) 분담하는 아빠들에게도
우울증이나 어려움은 늘 따라다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만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개념에 조금 희망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와 제가 마을 활동하면서 자주 데리고다닌 탓에
우리 아이들은 동네에서 아주 유명해졌거든요.
동네 삼촌들, 이모들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만 돌거나, 집에서 친인척(혹은 돌보미)와만 보내는 아이들과는
여러모로 다를 거라고 느껴요.
그게 전적으로 긍정적일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다름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cyrus 2015-02-03 17:40   좋아요 1 | URL
제가 댓글을 잘못 적었어요. 제 글이 아니라 책입니다. 제가 아직 미혼이라서 실제 육아에 대해서 전무합니다. 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있긴 한데 그 친구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고충을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충격적으로 느낀 것이 산후우울증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산후우울증이 산모가 겪는 심각한 병인 줄 몰랐어요.

단발머리 2015-02-06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성이 아주 많이, 턱없이 부족한 엄마로서~~ 아주 잘 읽었습니다.
결국에는 엄마의 자리를 찾는 것도 엄마 스스로의 일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편이나 아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얻으려하는 시도들은, 사실 사회와 주변의 시선 같은게 많이 작용하죠.
하지만, 나 스스로를 `00엄마`가 아니라, `000`으로 설정하는 건, 내가 해야하는 일이죠. 아이 역시 스스로의 삶을 찾아떠날테니까요.

전 다른 일은 안 하고 살림만 하는, 살림을 못하지만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인데, 항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나는 누구인가... ^^

cyrus 2015-02-06 14:49   좋아요 0 | URL
저는 <엄마의 탄생>을 읽으면서 여성이 엄마가 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본능을 자식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자질로 생각하면 육아를 담당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시선에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 있고요. 알고 보면 별 것 아닌데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엄마를 탓하잖아요. 이걸 또 모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건 아니라고요. 이러면 엄마는 자존감이 떨어질 겁니다. 저는 단발머리님을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모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노블우드 클럽 5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에서 비중 있는 조연은 범인과 탐정의 조수 및 동료이다. 탐정의 동료에 형사도 포함된다. 형사가 추리소설의 주인공, 그러니까 주연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도 있다. 그렇지만 탐정이 주연이 되면 형사는 탐정의 추리력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누구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사건을 형사가 아닌 밖에서 굴러들어온 탐정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해결해버린다.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의 전개 방식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일개 사립탐정이 높은 직위에 있는 형사 몇 명들보다 사건 해결에 뛰어난 수완을 보이도록 하는 인물 설정은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런던 경시청에 소속된 경감, 형사들은 어려운 사건이 있으면 홈즈의 조언을 듣기 위해 그가 사는 하숙집에 직접 찾아간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주홍색 연구》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건에 자주 등장하는데 홈즈는 두뇌 회전력이 둔한 레스트레이드를 무시한다. 홈즈의 추리 실력은 경시청뿐만 아니라 지역 경찰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몇몇 형사는 홈즈가 사건에 개입해서 수사하는 것을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자신이 맡는 사건에 탐정이 개입해서 수사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 약간의 경쟁심과 시기심이 생긴다. 사건을 해결하면서 얻을 수 있는 명예가 사립탐정이 차지한다면 형사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고 경찰의 위상이 떨어진다. 그래서 홈즈는 가끔 사건 해결의 공로를 경찰에게 돌린다. 사건은 홈즈가 해결했지만, 신문에서는 경찰이 해결했다는 식으로 알려진다.

 

머리 좋은 탐정과 이보다 한 수 아래 형사의 조합은 지금까지도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도일의 문학적 유산은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으로 이어진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겐모치 이사무(한국어판에서는 이사무)와 《명탐정 코난》의 메그레 쥬죠(골롬보 반장)은 머리 좋은 젊은 주인공들(김전일과 코난)의 활약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의 존재감은 음식의 싱거운 맛에 간을 맞춰주는 소금과 같다. 특히 메그레 반장은 소설과 영화를 통틀어 추리물 중에서 가장 관대한 '대인배'다. 코난과 소년 탐정단(아름이, 세모, 뭉치)이 사건 현장에 함부로 들어와도 쫓아내지 않는다. 일단 코난의 추리력을 믿어 본다. 코난이 사건 현장에 나타나면 사건이 술술 잘 풀렸으니까.

 

독자는 형사보다 월등히 앞서는 탐정의 활약상에 열광하지만, 추리작가 입장에서는 진부한 전개 방식에만 안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전작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담한 트릭과 이전 작품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구성을 선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의 운명은 늘 그렇듯이 신작에 대한 독자의 기대감을 부담스러워 한다. 홈즈 시리즈로 가난한 의사에서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된 도일도 창작의 압박감을 피할 수 없었다. 도일은 하늘을 찌르는 홈즈의 인기를 감당하지 못해 1893년에 《마지막 사건》을 발표한다. 이 작품에서 홈즈는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 싸우다가 죽는다. 그러자 독자들의 항의 편지가 빗발치는 바람에 10년 뒤에 홈즈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런던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빈집의 모험》을 발표했다.

 

도일 이외에도 개성 있는 탐정을 창조한 추리작가들이 많지만, 그중에 존 딕슨 카는 도전 정신이 넘치는 추리작가다. 카가 창조한 주인공만 해도 앙리 방코랭, 기드온 펠 박사 그리고 헨리 메리베일 경이 있다. 또 카는 해마다 작품 한 권씩을 발표할 정도로 다작 작가에 속한다. 카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커피를 마시고 줄담배를 피울 정도로 왕성한 창작욕을 보여줬다.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The Arabian Nights Murder)은 《세 개의 관》(동서문화사, 2003)을 발표한 이듬해에 나온 작품이다. 두 작품 다 기드온 펠 박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은 이전에 나온 펠 박사 시리즈와 사뭇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건 발생-제2의 사건 발생(혹은 제3, 4의 사건까지 발생)-추리-사건 해결'이라는 추리소설의 단순한 전개 구조를 취하면서도 사건 진술과 수사 방식의 비중이 꽤 많은 편이다. 연속으로 발생하는 기이한 사건들을 경찰 관계자 세 명의 시선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경찰 부서장 존 캐러더스 형사, 영국 출신 경찰 부국장 암스트롱 경 그리고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펠 박사 시리즈의 명조연 해들리 총경, 이 세 사람은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사를 펼친다. 세 사람은 셰에라자드가 되어 자신들이 조사한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사건의 전모를 펠 박사에게 밤새도록 들려준다.

 

카의 작품이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실제로 일어나면 미제로 남을법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고 일어난다는 점이다.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뭐, 이런 사건이 다 있냐?"라고 하면서 적잖이 놀랄 것이다. 가짜 흰색 수염을 붙인 정체불명의 노인이 담 위에서 스파이더맨처럼 갑자기 나타나 호스킨스 경사를 공격한다. 경사는 갑자기 공격하는 노인을 주먹 한 방에 쓰러뜨려 기절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호송차를 부르기 위해 경사가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길바닥에 쓰려져 있던 노인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캐러더스 형사는 여러 증언을 토대로 유령 같은 노인이 동서양 고대 유물을 소장한 웨이드 박물관으로 향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혼자 직접 그곳에 간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박물관 지하에서 캐더러스는 혼자 춤을 추는 박물관 안내원 프루언을 만난다. 그는 프루언에게 노인을 목격했냐고 물어보지만, 확실한 증언을 얻지 못한다. 캐러더스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박물관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다가 오래된 영국식 마차 안에 가짜 수염을 단 노인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발견한다. 그런데 시체의 얼굴에 붙어 있는 수염은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다. 살인 사건의 실체를 한 꺼풀씩 벗길수록 수상한 인물들이 한 명씩 등장한다. 일부러 사건의 범인을 숨기려고 하듯이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들의 진술은 점점 늘어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해들리의 활약이다. 그동안 펠 박사 앞에서면 그의 느긋한 추리력에 된통 혼쭐났던 해들리가 혼자서 살인 사건을 거의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설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자는 묵묵히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 펠 박사가 된다. 이 소설에서 펠 박사가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다. 심지어 캐러더스 형사, 암스트롱 경, 해들리보다 등장 횟수와 대사가 적다. 펠 박사가 나오는 장면은 경찰 관계자 세 사람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는 프롤로그와 펠 박사가 복잡하게 꼬인 사건 해결의 매듭을 단번에 풀어버리는 에필로그뿐이다. 해들리는 사건의 범인을 지목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를 뒤집는 진술이 나오는 바람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으로 사건이 일단락된다. 해들리는 사건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1%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놓친 1%는 범인이 가까스로 포위망에 탈출하는 골든타임이 된다. 펠 박사는 세 사람의 긴 진술만 듣고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을 찾는다.

 

펠 박사의 존재감은 항상 소설이 끝나가는 무렵에 드러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진술을 끝까지 듣고 난 뒤에 펠 박사는 꾹 닫고 있던 입을 연다. 그만큼 펠 박사 시리즈를 읽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제게는 놀랍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그렇군요."(384쪽) 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펠 박사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다. 펠 박사의 말은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을 다 읽고 나면서 느낀 나의 소감이라고 보면 된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사건이 펠 박사가 너무나 쉽게 해결해버리는 결말에 놀라웠고, 세 명의 경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지나치게 진술 위주로 진행되는 이야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커버린 작품이 되고 말았다.  

 

 

 


※ 소설을 읽다보면 《아라비안 나이트》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정보가 까메오처럼 나온다. 58쪽에 언급된 흰색, 푸른색. 노란색, 빨간색의 물고기로 변하는 사람들은 《천일야화》 1권(열린책들)의 '어부 이야기'에 삽입된 한 장면이다. 하룬 알 라시드(64쪽)는 《천일야화》 에 많이 등장하는 바그다드의 군주이다. 안토니 갈런드(94쪽)는 프랜시스 버턴보다 먼저 유럽에 《천일야화》 를 소개한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어는 '앙투안 갈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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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서 만나는 우주!

독일의 인기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별과 우주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들

 

★ 독일 2014 올해의 과학도서상 수상작 ★

 

우주 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게 되었나?

냄비요리 안에는 어떤 우주원리가 담겨 있을까?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천문학 입문서

저 멀리 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우리의 삶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구가 생긴 지는 46억년이나 지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하나도 둘도 아닌 데다,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까지의 거리만도 4,500만 킬로미터나 될 정도라니, 어마어마한 숫자들에 오히려 무감각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는 우주가 그렇게 먼 세상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에서도 우주를 만날 수 있으며, 소박한 한 끼의 밥상과 이제는 필수품이 된 내비게이션에도 어김없이 우주의 원리는 작동하고 있단다. 그러니 살짝 관심을 가져보라고. 천문학을 만나는 건 작은 관심이면 된다고 설득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하늘과 지구에 대해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져왔다. 최근 국내 개봉되었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201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흥행만 보아도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주에 대해 마음 한켠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우주의 끝은 어디이며, 우리는 우주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독일어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저자는, 유명한 과학 블로거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답게 쉽고 재미있게 우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 아침 불어오는 바람에서 시작해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탐색하며 일상에 숨겨진 우주의 흔적을 찾아낸다.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산책하듯이 걷다보면 누구나 우주가 간직한 아름다움과 그 원리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 우리가 먹고, 걷고, 머무는 도시에서 우주를 만나다

우주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어디서 우주를 발견할 수 있을까?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집집마다 갖추고 있는 텔레비전의 위성 안테나는 인공위성의 원리와 역할을 알려준다. 특별한 날에 비싸게 주고 산 귀금속에 소행성 충돌의 역사가 남겨져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공원 땅바닥에는 우주에서부터 날아와 먼지가 되어 내려앉은 별의 흔적에 있고, 꽃들을 헤집으며 꿀을 채취하는 벌의 눈동자에는 항성들의 빛이 담겨있다. 이뿐 아니다. 우리가 삼시 세끼 먹고 마시는 음식에는 오래전 태양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숨겨져 있고 낯선 길을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에는 우주에 떠 있는 위성들과의 교류가, 사계절의 순환에는 기울어진 지구와 달의 만유인력이 존재한다. 그렇다.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의 일상은 참으로 우주적이다! 이 책은 이처럼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우주의 원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일상에서, 도시에서 우주를 만날 수 있게 한다.

 

▼ 왜 우리는 여전히 별을 사랑하는가

우주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시와 노래 그리고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낙사고라스는 당대를 지배하던 종교적 교리를 벗어나 태양은 신의 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고향에서 추방당했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를 두지 않았다고 해서 미치광이 취급을 당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최초로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그의 스승 티코 브라헤의 지적 유산을 바탕으로 우주의 법칙을 밝히기 위한 ‘전쟁’을 치렀고, 아이작 뉴턴은 공식을 사용해 물체간의 만유인력을 계산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시공간이 갖는 근본적 구조를 밝혀 상대성이론을 발견했다.

높고 푸른 밤하늘이 주는 낭만과 철학적 사색은 과학과 만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별 한줌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도 우리는 별을 꿈꾸고,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 존재를 진실로 알고자 탐구한다. 지나간 역사에서 우주를 탐구함으로써 학문적 발전을 이루고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꾸었듯이, 앞으로도 우리 또한 팽창하는 우주를 향해 나아갈 몫이 많이 남아있다. 저자는 이 책을 넘어 각자의 책꽂이에서 관련된 책을 찾고 더 깊게 생각하며, 더 깊은 우주로 나아가기를 독려한다. 이제 독자들이 이 책을 시작으로 거인의 어깨를 밟고 서서 더 앞으로 나아갈 차례다.

 

책 속으로

지구는 우주의 일부이고, 우주에서 움직이는 행성 중 하나다. 행성이란 항성 주위를 맴도는 천체를 말한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 태양은 항상 중 하나로, 다른 수천억 개의 다른 항성과 함께 우리 은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우리 은하마저도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 하나일 뿐이니, 우리 존재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구성 성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일상에서 아주 또렷하게 맞닥뜨리고 있다. -8쪽

 

‘낯선’ 생명체는 말 그대로 낯설다. 그 생명체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면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탐색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원칙상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생명체인지를 근본적으로 밝혀내지 못하는 한, 그 생명체를 찾을 수도,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껏 찾아낸 843개의 행성에 우리가 인식 가능한 종류의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수십 년 이내로 그 생명체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나뭇잎들이 자신이 존재한다는 신호를 전 우주로 내보내고 있는 것처럼, 다른 행성의 식물 또한 존재의 신호를 내보낼 테니 말이다. -95쪽

 

한 숟가락에 담긴 음식물 안에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탄소가 들어 있다. 그중 대부분은 평범한 탄소-12고, 그 외 일부가 탄소-13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일지라도, 방사성인 탄소-14가 존재한다. 음식을 섭취하면서 방사능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인체에 해를 끼치기에는 너무도 적은 양이니. 방사성은 특정 정도 이상일 경우에만 신체에 손상을 입힐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작은 손상 정도는 저절로 치유되기도 한다. 어찌됐든 아주 미약한 정도일지라도 전 세계 도처에 방사성 원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146쪽

 

지은이와 옮긴이, 감수자

 

지은이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Florian Freistetter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천문학 연구소에서 소행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나의 프리드리히-쉴러 대학 천문물리학 연구소, 하이델베르크 루프레흐트-카를스 대학 천문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2008년에 개설한 우주과학 블로그는 매달 수십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 외 여러 권의 천문학 책을 썼으며, 팟캐스트를 운영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우주의 신비와 천문학의 즐거움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우주, 일상을 만나다》로 ‘2014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수상했다.

블로그 : www.scienceblogs.de/astrodicticum-simplex

 

옮긴이 최성웅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통번역가로 일하며,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KBS 스페셜>의 프랑스어 영상을 번역한 바 있고, 옮긴 책으로 《단단한 독서》, 《창조적 사진 전략》, 《폴, 행복을 찾아서》, 《돌아온 검은 고양이 네로》 등이 있다.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프랑스어 학습 카페(cafe.naver.com/pasdequoi)를 운영 중이다.

 

감수 김찬현

경기과학고등학교 졸업 후 오사카대학교 이학부를 거쳐 도쿄대학교 대학원 이학계 연구과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반물질의 최소 단위인 반수소원자 합성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서 진행중인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 ASACUSA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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