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접속하면 긴장할 때가 있다. 상대방의 생각이 담긴 글에 대해 소신 있게 비판적 의견을 댓글을 다는 순간이다. 댓글을 달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한다. 상대방이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말을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댓글에 달고 싶은 말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자체 검열을 한다. 내 의견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확인한다. 내 의견에 논리적 허점이 발견되면 상대방은 반론을 내세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댓글 하나 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5분이 걸린다. 오래 생각해서 댓글을 달면 10분을 넘기기도 한다. 댓글을 다는 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신중한 자세가 건전한 토론을 유연하게 펼칠 수 있는 방어적 자세인 동시에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남의 입장을 무시한 채 내 의견을 일방적으로 드러내면 상대방으로서는 불쾌할 수 있고, 사소한 토론이 서로 감정을 험악하게 만드는 말싸움으로 변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겪은 일이다. 그때 일베의 인격 모독적 발언과 반사회적 행동으로 인해 일베를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자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나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모 일간지의 대학생 칼럼 공모 페이스북 페이지에 멘토로 활동하고 있었다. 멘토의 역할은 이렇다. 대학생들이 올리는 글을 꼼꼼하게 읽어서 고쳐야 할 부분을 댓글로 알려준다. 또 잘 쓴 글이 있으면 대학생 칼럼으로 추천한다. 내가 추천한 글이 신문 오피니언에 실릴만한 칼럼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를 맡은 논설위원이 한다. 대학생 칼럼으로 선정되면 토요일에 나오는 신문 오피니언에 논설위원들의 칼럼 옆에 게재되는 영광을 누린다.

 

칼럼이라는 글 형식상 대중이 관심 가지는 사회 문제들을 주제로 한 내용이 많은 편이다. 당연히 일베 논란에 대한 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베 문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데다가 자칫하면 감정적 문제도 번질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주제다. 사실 이런 주제의 글이 나오면 일단 긴장한 상태에서 읽는다.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글을 두 세 번 이상 읽기도 한다. 예상 반론도 미리 염두에 둔다. 칼럼을 응모하는 대학생 필자들이 무조건 멘토의 의견을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자신이 쓴 글의 허점이 지적되면 반론으로 응수하는 필자도 있다.

 

필자의 공격을 각오하고 내 의견을 댓글로 밝혀야 한다. 한번은 일베 폐쇄 찬성론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에 댓글을 단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글이 일방적으로 일베 폐쇄 찬성론자들을 목표물로 삼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장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이 나서 글을 쓴 필자에게 논점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좀 더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예상했던 대로 반론 댓글이 나왔다. 필자가 아닌 필자의 지인이 먼저 총대를 메고 내 의견을 공격했다. 이제 여기서부터 댓글 싸움이 시작되었다. 필자의 지인과 일대일로 댓글과 답글을 주고받다가 드디어 필자가 댓글 싸움에 뒤늦게 참전했다. 토론 양상이 2대1이 되었다.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지만 무턱대고 두 사람의 의견이 틀렸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댓글 전쟁을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나자 내 의견을 반대하는 댓글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혼자였다. 영화 ‘신세계’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칼부림에 맞서는 황정민과 같은 상황이었다. 드루와 드루와

 

토론에 정답은 없다. 정답을 도출하도록 강요하는 토론을 한다는 것은 이 토론을 끝낸다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시간과 힘만 낭비하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무의미한 말싸움이 이어진다. 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되 내 입장을 그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면 그만이다. 특정 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의 시선이 무조건 A만 있는 것이 아니라 A와 B 그 이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면 된다. 그런데 토론하면서 제일 피곤하고 맞서기 싫은 사람의 유형이 무조건 하나의 의견이 옳다고 우기거나 그 입장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여서 합심하기도 한다. 이들은 상대방의 의견이 불리하도록 끝까지 몰아붙인다. 사실 대학생 칼럼을 선정하는 멘토는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멘토 활동을 하는 대학생이 두 명 더 있다. 그러나 나는 동료나 다름없는 다른 멘토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들도 사람이다. 내 의견과 같으면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지지만 항상 내 의견과 같을 수 않다.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불리한 상황에 처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토론한다. 더 이상 토론이 끝날 것 같지 않으면 상대방 의견을 인정하고, 수없이 내뱉었던 토론 내용을 정리하는 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다. 

 

그런데 토론을 좋게 끝내려는 상대방의 원만한 태도를 자신의 의견에 굴복하는 반응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토론의 승리자가 된 거 같은 착각에 빠진다. 상대방이 더 이상 토론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진행을 거부하면 토론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토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서 이기는 것이 장땡으로 본다. 일단 내 의견에 따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한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이발사’는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주장하고 싶은 자와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집단 세력이 만나서 생기는 양상을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함축해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발소라는 협소한 공간 안에서도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언어적 집단 린치가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다.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지적해도 이를 무마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은폐, 입막음하거나 그를 선동가,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패거리를 재수 없게 만난다. 패거리는 상대방을 목표물로 삼아 일방적으로 집단 린치를 가한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면 집단 사고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논리에 포획된 채 그들만의 잣대로 오도된 의사결정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해당 집단만의 공유된 가치와 판단 기준, 객관성을 상실한 무비판의 환상,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모두 합리성을 파괴하는 집단주의의 적폐다. 아무리 논리적이 뛰어난 사람도 이러한 집단주의 성향으로 이끄는 토론에 휘말리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없다. 오히려 상대방은 궁지에 몰린 상대방을 무시하고 조롱한다. 고양이 여러 마리가 모여 쥐 한 마리를 장난감처럼 앞발로 눌러대고 굴리는 것처럼. 쥐를 한 번에 죽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족할 때까지 쥐를 끝까지 괴롭히다가 서서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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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04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도 사실 의견이 비슷한 블로거들만 끼리끼리 모이잖아요? 전 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도 보고싶어요^^

cyrus 2015-02-05 00:46   좋아요 0 | URL
저도 치열하게 진행하다가 마무리로 서로 인정하면서 좋게 끝내는 토론을 좋아합니다. 그것보다는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재밌긴 하죠... ㅎㅎㅎ

CREBBP 2015-02-0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발소>를 그렇게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는데. 아 맞긴 맞는 말씀이신데, 살짝 제가 받은 느낌과 각도가 다른 듯해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15-02-05 01:00   좋아요 0 | URL
‘이발소’에서 이발사가 레이버의 정치적 견해를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을 잘못된 의견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이 생각났어요. 그런 경험을 겪은 레이버는 자신이 굴복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한 번 이발소에 가기 전에 미리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토론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맙니다. 사실 레이버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이발사는 애초에 레이버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고, 그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바라보죠. 아예 그를 구경거리로 만듭니다. 이발소에 있는 지인들을 불러 놓고 레이버의 연설을 구경하는 것이죠. 비록 지인들은 레이버의 연설에 대해 지적하거나 반론을 펼치지 않았지만, 이발사처럼 레이버의 연설을 무시하고 비웃습니다. 저는 여기서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패거리 토론의 잘못된 행태가 떠올렸습니다. 이런 행동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의 심리를 압박하고,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위축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을 읽다가 개인적 경험이 중첩되는 바람에 저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석했습니다. 혹시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

yamoo 2015-02-0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론을 하다보면 별 사람을 다 봅니다.ㅎㅎ
토론이 아니라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인상이 험악해지지요.

공감하며 글 잘 읽었습니다!ㅎ

cyrus 2015-02-05 01:03   좋아요 0 | URL
야무님은 토론을 잘 하실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토론을 하게 되면 처음부터 내가 이긴다는 생각을 포기합니다. 이래서 자신감이 위축되고 토론에서 이기지 못할 때가 많아요. ㅎㅎㅎ

수이 2015-02-0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주의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고 마네;

cyrus 2015-02-05 15:34   좋아요 0 | URL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은 살면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타인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편안하게 느껴요. 저도 그래요. 무리에 속하면 남과 다른 성향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