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 핼러윈 특집 오프닝 영상,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TV만화 <The Simpsons> 핼러윈 특집(Treehouse of Horror XXIV) 오프닝은 역대 심슨 시리즈 오프닝 중에서 가장 퀼리티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판의 미로’, ‘헬보이’ 등을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고전 오컬트 및 공포물의 주인공, 관련 인물들을 만화로 만들어 패러디했다. 어지럽게 지나가는 영상을 잘 보면 감독 본인이 제작한 영화 캐릭터들도 나온다. 당신이 오컬트 마니아라면 영상에 나오는 장면들 속에 숨겨진 공포영화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찾기에 자신이 없다면 유명 인사를 찾아보자.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누굴 패러디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바트 심슨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돌연변이 낙지 같은 거대한 괴물을 만난다. 운동신경이 좋은 바트는 괴물의 길쭉한 촉수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지나간다. 바트가 탄 보드가 빠르게 지나갈 때 카메라는 괴물 촉수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마른 체격의 남자와 그 옆에 수염 있는 남자를 비춘다. 수염 있는 남자의 팔 한쪽에 까마귀가 앉아 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른다 치더라도 까마귀와 함께 있는 수염 있는 남자는 그 사람의 얼굴을 비슷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누군지 잘 알 것이다. ‘갈까마귀’라는 시를 쓴 에드거 앨런 포다. 포 왼쪽에 있는 사람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다. 바트가 만난 촉수 달린 거대한 괴물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Cthulu)라는 외계 생명체이다.
포와 러브크래프트, 공포 오컬트 문화를 논할 때 이 두 사람을 제외한다면 기원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미국 공포문학의 아버지, 그것도 두 명의 아버지는 공포 소설 작가들의 작품에 모체가 되었다. 시기상 작품 활동을 먼저 한 포가 첫 번째 아버지가 되어야 하지만, 포와 러브크래프트 둘 중에 과연 누가 공포소설의 창시자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이다. 러브크래프트도 포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지만, 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업적을 간과할 수 없다.
두 사람은 불후한 유년 시절,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 그리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공포문학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흡사한 면이 있다. 포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담배 상인의 양자가 되었다. 포는 의붓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잠깐 화해한 적이 있었으나 포의 지독한 도박벽과 무절제한 생활을 참지 못한 의붓아버지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러브크래프트의 가족사도 순탄치 않았다. 러브크래프트가 세 살 때 그의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러브크래프트는 어머니와 외조부 밑에서 자랐는데 병약한 체질이라서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은둔 생활이 많아질수록 러프크래프트의 마음에 우울한 그늘이 넓어졌다.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우울한 기질은 어린 시절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포와 러브크래프트는 단편소설을 많이 남겼다. 포가 먼저 단편소설 형태를 구축했고, 러브크래프트가 포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단편소설은 공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인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여기에 포와 러브크래프트는 공포의 근원을 인간의 심리적 변화에서 찾는다. 소설 전체를 가득히 채우는 작중 인물들의 불길한 감정과 공포는 독자에게 생생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만하다. 흡인력이 강한 이야기는 독자를 무시무시하고 충격적인 절정으로 도달하게 한다.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우울하고, 내성적이며 매우 예민하다. 강렬한 공포를 경험하면 반쯤 미쳐버리고 파국의 운명을 맞는다.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의 어셔는 음울하고 쇠잔해져 가는 어셔 집안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수록)의 화자는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로 인해 현실의 감각이 무너져 끔찍한 망상에 시달린다.
러브크래프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아마도 그가 탐독했던 도서목록 중에 포의 작품도 포함되었으리라. 문학 작품에 나오는 공포를 비평하고, 결과물을 공포문학사로 정리한 《공포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에서 포를 설명하는 데 꽤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러브크래트프는 포의 문학을 상당히 높게 평하고 있으며 당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포 작품 속의 예술적 기교를 알아봤다. 보들레르가 포의 문학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유럽에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했지만, 포가 남긴 수많은 시의 문학적 평가에 가리는 바람에 외면받을 뻔했던 공포소설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러브크래프트다.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러브크래프트는 포의 이야기는 다른 작가들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방식으로 여전히 살아있다고 썼다. 자신을 포함한 후대 작가들이 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조상을 부활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포의 소설 속에 남아있는 그로테스크 문학 DNA를 복원했다. 포의《검은 고양이》는 인간의 감정을 광기의 소용돌이로 빠뜨리게 하는 불길한 고양이를 통해 공포를 한껏 고취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울타르의 고양이》(러브크래프트 전집 3권에 수록)는 《검은 고양이》에 비해 공포를 조성하는 분위기가 많이 떨어지지만, 고양이 살육에 이르는 인간의 편집증이 초래하는 섬뜩한 파멸은 《검은 고양이》의 결말과 유사하다. 《벽 속의 쥐》(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수록)는 평범하게 보이는 찢어진 벽지만으로 오싹한 장면으로 연출하는 이야기가 압권이다. 공포의 절정에 급속도로 향하도록 독자의 감정을 끌어들이는 이야기의 효과는 포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벽 속의 쥐》의 주인공 이름은 델라포어(Delapore)다. 델라포어는 포(Poe)를 위한 러브크래프트의 오마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