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에게 배울 것은 없다!!!>

 

대충 살자, 자기가 한 일도 기억 못하는 K교수처럼

 

 

K교수처럼 살려면?

성추행 하고도 내가 그랬다면 미안하다라고 가정법 쓰면서 사과해 버리기!

성추행하고도 당당하게 성폭력 상담소장 해 버리기!

성추행 하고 연구실 이전 처분받자 산격 2호점 생겼다자랑 해 버리기!

.

.

언제까지 성폭력 가해자를 교단에 서게 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학교가 우리를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참아야 합니까?

.

.

부디 함께해주십시오.

.

.

성폭력 가해자는 교단을 떠나라!

성폭력 가해 교수도 유죄!

가해자 싸고도는 경북대도 유죄!

 

  

  

서명 링크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5JnL0Acuyn1dzaERp2XUinAYqJVcUHWf5ZppOX94zOhydQg/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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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05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명했다. 아직도 저런 정신 빠진...

2018-10-05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10-06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명했습니다. 성추행범이 성폭력 상담소장... 갑갑합니다 정말.
 

 

 

서양 중세의 어두운 면을 논할 때 많이 언급되는 사례로 초야권(初夜權)이 있다. ‘농노의 결혼 첫날밤에 신부를 차지하는 영주의 권리’라는 뜻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가 농노의 결혼을 허락한 조건으로 농노의 신부와 첫날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폭정에 대항하는 중세 스코틀랜드인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영국 왕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영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초야권을 부활시킨다.

 

 

 

 

 

 

 

 

 

 

 

 

 

 

 

 

 

 

 

* 필리프 브르노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 (다른, 2017)

* 김응종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 김응종 《서양사 개념어 사전》 (살림, 2008)

 

 

 

초야권은 오랫동안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아 왔다. 나 역시 중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초야권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초야권이 있다’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초야권이 실제로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주장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초야권의 실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김응종 교수는 중세의 영주가 농노의 성을 착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도, 초야권은 ‘날조된 신화’라고 주장한다. 초야권(droit de cuissage)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의 책에 언급된다. 계몽주의자들은 중세를 ‘암흑기’로 몰아세우고, 구제도(ancien régime)의 정점에 위치한 봉건 영주와 그들에게 예속된 가톨릭(구교도)을 비판했다. 계몽주의자들은 중세의 몽매함을 비판하기 위해 초야권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중세는 ‘전근대’를 상징하는 시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보마르셰 《피가로의 결혼》 (문예출판사, 2009)

 

 

 

보마르셰(Beaumarchais)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은 18세기 귀족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 작품이다. 수잔느와의 결혼을 앞둔 백작의 하인 피가로가 초야권을 부활시키려는 바람둥이인 알마비바 백작의 흉계를 미리 알아채고, 백작의 부인을 끌어들여 백작을 골탕 먹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본 루이 16세는 귀족에 대한 풍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공연을 금지했다. 보마르셰는 이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3년 동안 수정 작업을 했다. 기득권에 위치한 귀족층은 이 작품에서 솔솔 풍기는 혁명의 냄새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귀족을 ‘야만적인 중세의 악습’을 행사하는 구시대적 인물로 묘사된 설정은 중세의 전근대적 면모를 비판하는 계몽주의자들의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초야권을 언급한 사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연구가는 사료의 신빙성을 의심한다. 초야권의 실재를 부정하는 입장을 보이는 책은 김응종의 《서양사 개념어 사전》 (살림, 2008),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필리브 브르노의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 (다른, 2017)가 있다.

 

 

 

 

 

 

 

 

 

 

 

 

 

 

 

 

 

 

 

* [절판, No Image]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 (까치, 1990)

*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

* 후쿠다 가즈히코 《섹슈얼리티 성문화사》 (어문학사, 2011)

 

 

 

그렇지만 여전히 중세에 초야권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초야권이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판매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접할 때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강간의 역사를 집대성한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는 1975년에 나온 페미니즘 고전이다. 그러나 이 책도 시대적 흐름에 반영하지 못한 오류가 곳곳에 보이는데, 브라운밀러는 중세의 야만적인 강간 문화를 열거하면서 초야권을 언급한다.

 

 

 중세시대에는 야만적인 아내 구타, 궁정 성매매를 비롯해 봉건적 압제와 무법 상태가 어디랄 것 없이 만연했으나, 대륙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은 영국보다 훨씬 더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초야권 혹은 대감의 권리는 장원의 영주 밑에 있는 농노나 봉신 신분인 신랑 신부가 영주에게 일정량의 생산물을 기한 내로 지불하지 않으면 영주가 그 대가로 신부의 처녀성을 취할 권리를 갖는 관습으로 분명 일종의 강간이었다. (45쪽)

 

 

브라운밀러는 초야권을 ‘일종의 강간’으로 규정했다. 그녀는 주석을 통해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여성론》 (까치, 1990)을 참고했음을 밝혔다(미주, 640쪽). 《여성론》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1879년에 발표되었다. 베벨은 초야권을 부정하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초야권이 근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초야권의 존재여부는 종종 부인되어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미풍과 신앙의 규범으로 삼고자 하는 바로 그 시기에 이 같은 제도가 시행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초야권이 중세시간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근세까지도 남아 있었으며, 중세 봉건법전 속에서 하나의 분명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76, 77~78쪽)

 

 

 

후쿠다 가즈히코 《섹슈얼리티 성문화사》 (어문학사, 2011)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성에 관한 토막 상식을 백과사전 형태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초야권을 ‘결혼세’와 동일한 풍습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결혼세의 목적을 잘못 전달할 수 있다. 중세 농노에 속한 여성은 다른 장원의 남성 농노와 결혼해 이주하려면 영주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 초야권을 결혼세 징수의 명분으로 볼 수 있지만, 결혼세는 농노의 성이 아닌 노동력을 보상받기 위한 목적으로 내는 세금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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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0 11:40   좋아요 0 | URL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물건으로 취급하는 남성들이 많아요. 그런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은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 발언입니다. 대부분 남자는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해요.

syo 2018-10-0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우리가 한 번 보긴 해야 할 텐데요.
봅시다 말 나왔다가 엎어진 게 작년 연말이었으니, 얼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cyrus 2018-10-10 11:46   좋아요 1 | URL
연말에 유레카님과 같이 뵈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일정은 잡혀 있지 않지만, 연말에 레드스타킹은 ‘페미니즘 부흥회’를 열어요. 독서모임 멤버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노는 날이니 그 날 ‘카페 스몰토크’에 오셔도 되요. ^^

이하라 2018-10-1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야권이 실재한 줄만 알았었네요. 막연히 상식이 되어 버린 것들로만 바라보면 안되겠군요.

cyrus 2018-10-13 07:38   좋아요 0 | URL
국내에 초야권을 깊이 있게 분석한 문헌이 전무해요. 초야권을 중세에 관한 토막 상식 정도로 언급되다보니 쉽게 와전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 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크로마뇽 시리즈 4
피터 콘래드 지음, 정준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머리를 감으면 열 가닥 이상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물에 둥둥 떠 있는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원래 이마가 넓은 편인데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것 같아서 두렵다. 나이가 들면 나이 때문이라고 위로라도 해보겠지만, 젊은 나이에 머리숱이 줄어들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머리카락은 발생, 성장, 퇴화, 휴지기 순으로 생장한다. 휴지기에 돌입한 머리카락은 하루에 보통 60∼80개 정도 자연스럽게 빠진다. 빠지는 머리카락의 수는 계절, 나이,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예전에 탈모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만 나타나는 노화 현상이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탈모는 노화 현상이 아니라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과거에는 탈모가 나이가 들어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탈모는 중년 남성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30대의 젊은 층에서도 급증하고 있으며 여성들도 탈모를 겪고 있다.

 

탈모도 질병의 한 종류이다. 탈모는 특이한 질병이 아닌, 누구나 잘못된 생활 습관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 되었다. 그런데 노화 현상인 탈모가 흔한 질병으로 분류된 과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가 의학적 문제, 즉 질병의 증상으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과정을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한다. 현대인이 피해야 할 질병 대부분은 의료화와 관련이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여성 · 남성 갱년기, 발기부전, 비만, 우울증 등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생긴 의학적 문제들이다. 출산도 의료화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출산이 의료화되면서 여성들은 병원에서 분만한다. 물론 그 결과 분만 과정은 더 위생적이고 안전해졌다. 그 대신 임신과 출산 과정이 의료 영역에 더욱 공고히 예속되면서 임산부는 관리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는 의료화의 여러 가지 사례와 그로 인해 초래할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피터 콘래드(P. Conrad)는 1975년부터 의료화에 관한 연구를 해온 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이다. 아픈 곳은 없는데 자기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의학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의사의 진단을 받고 싶은 사람, 신체의 콤플렉스를 고치기 위해 성형 수술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 ‘과잉 의료화’를 지적한다. 과거엔 일상으로 받아들여졌던 질병이나 증상이 점차 진단 및 치료의 범주에 포함됐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은 늘 있었다. 오늘날 불면은 ‘수면장애’란 이름으로 알려져 치료 대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건강에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의학 및 정신의학 전문가, 대중 매체, 그리고 제약 회사까지도 우리에게 경계해야 할 증상이 하나씩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윤이나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증상들과 치료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인간의 행동 및 성향, 심지어 신체마저 ‘의료화’하여, 수많은 진단명과 환자 들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의료화에 의한 의료 영역의 확대를 20세기 후반 서구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변화 중 하나로 본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알려진 지 얼마 안 된 질병들은 의료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의료화는 의학적 관리 대상이 아닌 문제를 심각한 의학적 문제로 전환하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화는 몸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신체의 증강(enhancement)’과 ‘생의학적 증강(medical enhancements)을 부추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된 성형수술은 ‘신체의 증강’을 위한 의료화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성형수술은 의학의 힘으로 신체의 약점을 고치는 방법이다. ‘생의학적 증강’은 저자가 만든 생소한 용어이다. 생의학적 증강은 수술, 약물, 유전학적 치료를 동원하여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의학적 방식이다. 운동 경기에서 체력을 극도로 발휘시켜서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할 목적으로 선수에게 근육증강제 등의 약물을 먹이거나 주사 처방을 하는 도핑(doping)은 생의학적 증강의 부정적인 사례이다.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방송 채널마다 ‘의학 프로그램’이 편성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현재 방송 중인 모든 의학 프로그램은 열심히 건강식품을 설명(이라고 쓰고 ‘홍보’라고)한다. 정통 의학 전문 방송인지 건강식품 간접 광고로 만든 방송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방송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제약 회사나 건강식품 회사는 언론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친다. 언론에 소개되거나 언론의 전면 광고로 알려진 의약품은 채 검증되기도 전에 전국의 환자를 움직인다. 이렇듯 병원 밖에서도 의료화된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의료화 문제를 의사나 의학 전문가에게만 탓할 수 없다. 저자는 의료화 문제를 ‘의료 제국주의’와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환자 또는 언젠가 환자가 될 수 있는 일반인들도 의료화의 중심에 서는 참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원하는 환자나 건강에 지나치게 걱정하는 건강한 사람들은 의학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증상도 큰 병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중매체의 보도는 건강에 대한 불안을 부추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정확하지 않은 자가 진료로 자신의 증상을 판단한다. 따라서 의료화는 ‘건강’ 문제에 대한 전문가, 대중매체, (환자를 포함한) 일반인의 지대한 관심과 집단적 행동이 맞물려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나저나 내가 탈모를 걱정하는 것은 의료화의 시대가 만든 기우(奇遇)일까, 아니면 정말로 심각한 증상의 징조를 직감해서 나온 걱정일까. 나는 정말 탈모 환자인가, 아니면 탈모 환자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책의 앞표지에 그려진 남성의 표정이 내 심정을 대변한다.

 

 

 

 

Trivia

 

 ADHD 연구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앨런 자멧킨은 소위 “성인 ADD 산업”이라는 말로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132) 

 

‘ADD’‘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오자인 것으로 보인다.

 

 

 젊음을 찾거나 과거의 몸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목적으로 생의학적 개입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 인간성장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이 그 일례다. 성형수술, 비아그라 복용 역시 증강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187)

 

 

인용한 문장의 전체 문맥을 생각하면, 과거의 몸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목적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노화를 늦추는 것은 현재의 몸과거의 상태’, 즉 젊음으로 되돌리려는(젊음을 찾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몸현재의 몸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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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0-0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건 불안해요. 다른 것들도 조금씩 다 그런 불안이 생기고요.
예전에는 병이 아니었지만, 병이 되는 것들도 있고, 또 예전과 진단기준이 달라지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 점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기분입니다.
cyrus님, 어제 휴일은 잘 보내셨나요.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18-10-05 11:47   좋아요 1 | URL
요즘은 날씬한 사람도 병원에 가서 진단받아야 할 예비 환자가 되었어요. ‘마른 비만’이 제일 위험하다고 하네요.. ㅎㅎㅎ

개천절에 외출하기 참 좋은 날씨였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에 태풍의 영향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비의 양이 많지 않네요. 태풍이 빨리 지나가서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yo 2018-10-0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에 코가 시큰, 두 번째에 눈물이 글썽, 세 번째 문장에서는 탄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ㅠㅠ 으앙 이게 다 남 일이었으면 좋겠어....

cyrus 2018-10-05 11:48   좋아요 0 | URL
어른이 되니까 어렸을 때 바라보기만 했던 남의 일들이 조금씩 내 일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가는 증거인가 봅니다.. ^^;;

카스피 2018-10-0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젊은 나이에 탈모라니요.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넘 아픕니당ㅜ.ㅜ

cyrus 2018-10-05 11:49   좋아요 0 | URL
두피가 훤히 보일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안심할 수 없어요. 아버지가 탈모 환자예요.. ^^;;

사람은비로소 2018-10-04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DD는 주의력결핍장애. 문맥이나 원문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것을 의미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8-10-05 11:51   좋아요 0 | URL
ADHD를 익숙하게 느껴져서 ‘ADD’라는 용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psyche 2018-10-04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DD 는 ADHD의 일종으로 hyperactive (과잉행동)이 없는 경우를 말해요. 성인의 경우 ADHD 보다는 ADD 인 경우가 더 많을 거 같네요. 아마도 성인들의 단순한 주의력 결핍도 ADD 라고 진단받고 처방받아 약을 구입하고 그러는 일을 지적한 듯?

cyrus 2018-10-05 11:52   좋아요 0 | URL
psyche님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인용한 문장을 다시 보니 그렇네요. ^^;;

blanca 2018-10-05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남동생도 걱정이에요. 아버지가 탈모라 유전학적으로 대머리가 될 확률이 높다 해서요. 탈모는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가 아주 좋다고 하던데요. 열가닥 이상 정도야 탈모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한 뭉텅이씩 빠져도 탈모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cyrus님은 젊으시니까. 의료 과잉 문제는 참, 아이가 좀 부산하면 ADHD 약을 먹으라 하는 사회적 분위기니 예방의학과 진단의학과 치료의학의 접점을 찾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울증 진단도 그렇고요.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8-10-05 11:56   좋아요 0 | URL
우리 아버지가 원형 탈모증에 고생하셔서 모발이 거의 빠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도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원형 탈모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제가 걱정하는 건 M형 탈모입니다.. ㅠㅠ 가만히 있는데도 앞머리에 있는 모발이 하나둘씩 빠져요.

목나무 2018-10-0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는 게 병이란 생각 많이 하게 돼요.
한번 수술대에 오르고나니 조금의 증상에도 벌벌 떨게 되네요.
이럴 때일수록 심지 굳게 살아야하는데 말이죠.

cyrus 2018-10-05 11:58   좋아요 0 | URL
건강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 보면, 사소한 신체적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우리 어머니가 그래요. 제가 어디 조금 아프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건강의 적신호라고 생각해요. 가끔 어머니가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피곤해요. ^^;;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크(baroque)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를 먼저 보는 게 효과적이다. 이 책은 바로크가 어떤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책의 저자는 르네상스(Renaissance)와 종교개혁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바로크가 출현한 과정과 이를 문학과 예술 등 각각 장르가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바로크에 대한 예술사가들의 비평을 조망하면서 다양한 정의와 특징을 가진 바로크의 무궁무진한 힘을 보여준다.

 

 

 

 

 

 

 

 

 

 

 

 

 

 

 

 

 

 

 

* 앙리에트 르빌랭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

* 한명식 《바로크, 바로크적인》(연암서가, 2018)

* 프레데릭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시공사, 2000)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약간 결을 달리한다. 둘 다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르네상스가 이성과 조화를 지향한다면 바로크는 감성과 직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유럽에서 어떻게 찌그러지고 과장된 바로크 예술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종교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 올리비에 크리스텡 《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시공사, 1998)

* 이동희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넥서스CROSS, 2015)

 

 

 

종교개혁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장 칼뱅(Jean Calvin)을 위시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종교 개혁은 새로운 신앙 원리에 바탕을 둔 시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 운동은 칼뱅이 등장하면서 철저하게 가톨릭과 결별했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칼뱅은 신도들도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앙과 윤리를 결합하였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술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공세에 대항하고, 기독교 미술의 부흥을 위해 반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예술 작품이야말로 신도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매체라고 여겼다. 이 과정에 이용된 게 바로크 미술이다. 바로크 미술은 반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미술이다. 가톨릭은 신 중심의 전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교회와 성당뿐만 아니라 궁전과 예배당을 세웠다. 이 모두는 현세와 내세, 생활과 믿음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17~18세기 프랑스로 건너간 바로크 미술은 절대주의의 영향 속에서 왕권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사치스러운 건축물이 등장했다. 바로크 미술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웅장한 규모의 작품을 통해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그래서 낯설고, 과장된 바로크에 대해 과거에는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겨진 적도 있었다. ‘비뚤어진(찌그러진, 울퉁불퉁한) 진주’를 뜻하는 바로크는 처음부터 썩 좋은 의미의 용어는 아니었다.

 

 

 

 

 

 

 

 

 

 

 

 

 

 

 

 

 

 

* [No Image]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 개념》(시공사, 1994)

* 빅토르 L. 타피에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

 

 

 

19세기 말까지 바로크는 르네상스 예술의 쇠퇴를 보여주는 사조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스위스의 예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은 바로크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의 양식적 형태를 비교하여 두 예술을 구분 짓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공간성을 폐쇄적 구조로 보고, 바로크 미술의 개방성과 대립시켜 설명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은 선적이어서 윤곽이 뚜렷한 특징이지만, 바로크 미술은 색채의 효과를 위해 윤곽의 명료함을 포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뵐플린은 두 예술의 특징을 대조하면서 설명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관계를 ‘대립’ 또는 ‘단절’로 보지 않는다. 그는 바로크를 르네상스의 ‘변형’으로 평가했다.

 

스페인의 철학자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는 1935년에 발표한 《바로크론》에서 바로크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수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바로크론》은 바로크의 정의를 설명하는 개론서로 보기 어렵다. 바로크에 대한 도르스의 애정이 듬뿍 담은 ‘바로크 예찬론’ 정도로 봐야 한다.

 

1950~1960년대에 ‘바로크 재평가’ 붐이 일어났고, 1957년에 나온 토르 뤼시앵 타피에(Victor Lucien Tapie)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는 그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평가받던 바로크를 복권한 책이다. 타피에는 16~18세기 유럽 시대의 상황을 주목하면서, 종교개혁 이후에 바로크가 태동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또 군주의 절대 권력이 강화되었던 17세기 프랑스가 바로크를 수용하는 과정을 살핀다. 바로크를 바라보는 타피에의 관점은 이미 앞서 언급했다. 즉, 바로크는 종교개혁과 절대 왕정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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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바로크적인
한명식 지음 / 연암서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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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의 문화 양식을 지칭하는 ‘바로크(baroque)는 ‘비뚤어진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온 말이다. 바로크 시대 이전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였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과 문학, 인체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함으로써 자연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완전한 원형(圓形)을 그리는 것이 르네상스 미술이라고 하면, 윤곽선이 뭉개진 원형을 그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크 미술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그림에 우주의 질서를 새겨 넣었다. 특히 그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는 수학과 기하학 지식을 동원해 사람의 몸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표현된 비례는 바로 고대와 중세 때 이상적인 건축물을 짓는데 적용돼 왔다. 특히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만든 조각상 『다비드』는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의 정점을 보여준 걸작이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윤곽 전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프란스 반닝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에 나온 몇몇 순찰대원들은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뭔가 완벽하지 않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단체 초상화는 인물들을 줄지어 세우거나 탁자를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열해 그리는 것이 전통이었다. 렘브란트는 이를 무시하고, 명암 대비를 사용해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명암법(Tenebrism)을 그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화가는 카라바조(Caravaggio)이다. 그는 이 명암법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와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보다 바로크의 미(美)는 한참 뒤떨어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바로 ‘바로크’다운 아름다움이고, ‘바로크적’이다.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는 바로크의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크는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묘사하고 형상을 겹치지 않게 다 드러내는 것이 항상 더 큰 효과를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로크는 질서 정연한 완벽함보다는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세계관을 지향한다. 지나치게 화려할 것만 같은 바로크 양식 속에 바로크 시대 사람들 특유의 우울함과 진중함이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 바로크적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크적 아름다움의 참된 가치를 알아낼 수 없다.

 

《바로크, 바로크적인》은 ‘과장된 아름다움’의 시대로 알려진 바로크를 예술적인 관점으로만 분석하여 소개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한명식 대구한의대 건축디자인학부 교수는 바로크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성찰이 공존한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크의 특징은 ‘과장된 장식성’과 ‘귀족적인 화려함’이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외양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로크가 보여준 화려함은 바로크 인들의 자신감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사는 바로크 인들의 고독과 우울감이 만들어 낸 문화적 산물이다. 바로크 시대의 유럽은 혼돈의 절정이었다.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교황의 권위는 쇠퇴해가고 있었다. 지동설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로써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바로크 시대의 문학, 철학,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인들은 세상을 ‘거대한 연극’으로 인식했고,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자신의 삶이 시시각각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과 쾌락을 누릴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는 죽는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은 세상살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한한 삶에 대한 바로크 인들의 진지한 사유와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바로크적 세계관이 반영된 바로크의 아름다움이다. 바로크 인들은 완벽한 질서 속에 아름다움을 찾는 르네상스 양식을 저버리고, 어둡고 불안정한 심연 속에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이면에는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고 터지는 심연이 숨어 있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심연의 나락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심연은 불완전한 자신, 즉 ‘나’라는 인간을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내면의 심연은 몸과 정신을 병들게 하지만, 그 심연의 실체를 직시하고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바로크적 성찰이 성과주의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이라고 단언한다. 세상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자기 마음속 심연이 주는 쓰라린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면 결국 자신만 괴로울 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지옥이다. 일생을 그렇게 보낸다면 삶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덧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할 줄 아는 ‘바로크적 성찰’이 필요하다.

 

 

 

 

※ Trivia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색인’과 ‘참고문헌’이 없으면 ‘쓰다 만 듯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71쪽에 오류가 있다.

 

 

 그의 저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루터가 처음으로 독일인으로서의 국민의식적 차원에서 로마 교황 세력에 의한 재정적 수탈이나 성직매매, 그 외에 국민생활을 압박하고 올바른 신앙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악폐를 열거하며, 통치 권력을 신에게 위임받은 귀족에게 교회생활 전반의 개혁을 돕도록 호소하는 내용을 같이 담고 있다.

 

 

내가 인용한 71쪽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저자는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루터의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독일 국민에게 고함》으로 잘못 썼다.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침체된 독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쓴 것이다.

 

 

 

 

102쪽에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그림 도판이 있다. 책에는 그림 제목을 ‘합성된 머리’라고 적혀 있는데, 널리 알려진 제목은 ‘여름’이다.

 

340쪽에 있는 오자 ‘호심탐탐’을 ‘호시탐탐’으로 고쳐야 한다.

 

2쇄가 나올 때 오류와 오자를 고치고, 색인과 참고문헌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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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10-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크적인 표현 방식은 ‘시‘와 비슷했군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다는 점에서. .

cyrus 2018-10-04 12:16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크 시대의 시인들은 시를 간결하게 쓰지 않았어요. 그들이 쓴 시 대부분은 내용이 길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