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바로크적인
한명식 지음 / 연암서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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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의 문화 양식을 지칭하는 ‘바로크(baroque)는 ‘비뚤어진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온 말이다. 바로크 시대 이전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였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과 문학, 인체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함으로써 자연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완전한 원형(圓形)을 그리는 것이 르네상스 미술이라고 하면, 윤곽선이 뭉개진 원형을 그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크 미술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그림에 우주의 질서를 새겨 넣었다. 특히 그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는 수학과 기하학 지식을 동원해 사람의 몸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표현된 비례는 바로 고대와 중세 때 이상적인 건축물을 짓는데 적용돼 왔다. 특히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만든 조각상 『다비드』는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의 정점을 보여준 걸작이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윤곽 전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프란스 반닝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에 나온 몇몇 순찰대원들은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뭔가 완벽하지 않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단체 초상화는 인물들을 줄지어 세우거나 탁자를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열해 그리는 것이 전통이었다. 렘브란트는 이를 무시하고, 명암 대비를 사용해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명암법(Tenebrism)을 그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화가는 카라바조(Caravaggio)이다. 그는 이 명암법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와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보다 바로크의 미(美)는 한참 뒤떨어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바로 ‘바로크’다운 아름다움이고, ‘바로크적’이다.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는 바로크의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크는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묘사하고 형상을 겹치지 않게 다 드러내는 것이 항상 더 큰 효과를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로크는 질서 정연한 완벽함보다는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세계관을 지향한다. 지나치게 화려할 것만 같은 바로크 양식 속에 바로크 시대 사람들 특유의 우울함과 진중함이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 바로크적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크적 아름다움의 참된 가치를 알아낼 수 없다.

 

《바로크, 바로크적인》은 ‘과장된 아름다움’의 시대로 알려진 바로크를 예술적인 관점으로만 분석하여 소개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한명식 대구한의대 건축디자인학부 교수는 바로크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성찰이 공존한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크의 특징은 ‘과장된 장식성’과 ‘귀족적인 화려함’이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외양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로크가 보여준 화려함은 바로크 인들의 자신감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사는 바로크 인들의 고독과 우울감이 만들어 낸 문화적 산물이다. 바로크 시대의 유럽은 혼돈의 절정이었다.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교황의 권위는 쇠퇴해가고 있었다. 지동설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로써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바로크 시대의 문학, 철학,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인들은 세상을 ‘거대한 연극’으로 인식했고,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자신의 삶이 시시각각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과 쾌락을 누릴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는 죽는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은 세상살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한한 삶에 대한 바로크 인들의 진지한 사유와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바로크적 세계관이 반영된 바로크의 아름다움이다. 바로크 인들은 완벽한 질서 속에 아름다움을 찾는 르네상스 양식을 저버리고, 어둡고 불안정한 심연 속에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이면에는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고 터지는 심연이 숨어 있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심연의 나락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심연은 불완전한 자신, 즉 ‘나’라는 인간을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내면의 심연은 몸과 정신을 병들게 하지만, 그 심연의 실체를 직시하고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바로크적 성찰이 성과주의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이라고 단언한다. 세상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자기 마음속 심연이 주는 쓰라린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면 결국 자신만 괴로울 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지옥이다. 일생을 그렇게 보낸다면 삶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덧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할 줄 아는 ‘바로크적 성찰’이 필요하다.

 

 

 

 

※ Trivia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색인’과 ‘참고문헌’이 없으면 ‘쓰다 만 듯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71쪽에 오류가 있다.

 

 

 그의 저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루터가 처음으로 독일인으로서의 국민의식적 차원에서 로마 교황 세력에 의한 재정적 수탈이나 성직매매, 그 외에 국민생활을 압박하고 올바른 신앙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악폐를 열거하며, 통치 권력을 신에게 위임받은 귀족에게 교회생활 전반의 개혁을 돕도록 호소하는 내용을 같이 담고 있다.

 

 

내가 인용한 71쪽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저자는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루터의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독일 국민에게 고함》으로 잘못 썼다.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침체된 독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쓴 것이다.

 

 

 

 

102쪽에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그림 도판이 있다. 책에는 그림 제목을 ‘합성된 머리’라고 적혀 있는데, 널리 알려진 제목은 ‘여름’이다.

 

340쪽에 있는 오자 ‘호심탐탐’을 ‘호시탐탐’으로 고쳐야 한다.

 

2쇄가 나올 때 오류와 오자를 고치고, 색인과 참고문헌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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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10-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크적인 표현 방식은 ‘시‘와 비슷했군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다는 점에서. .

cyrus 2018-10-04 12:16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크 시대의 시인들은 시를 간결하게 쓰지 않았어요. 그들이 쓴 시 대부분은 내용이 길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