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크(baroque)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를 먼저 보는 게 효과적이다. 이 책은 바로크가 어떤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책의 저자는 르네상스(Renaissance)와 종교개혁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바로크가 출현한 과정과 이를 문학과 예술 등 각각 장르가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바로크에 대한 예술사가들의 비평을 조망하면서 다양한 정의와 특징을 가진 바로크의 무궁무진한 힘을 보여준다.

 

 

 

 

 

 

 

 

 

 

 

 

 

 

 

 

 

 

 

* 앙리에트 르빌랭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

* 한명식 《바로크, 바로크적인》(연암서가, 2018)

* 프레데릭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시공사, 2000)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약간 결을 달리한다. 둘 다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르네상스가 이성과 조화를 지향한다면 바로크는 감성과 직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유럽에서 어떻게 찌그러지고 과장된 바로크 예술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종교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 올리비에 크리스텡 《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시공사, 1998)

* 이동희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넥서스CROSS, 2015)

 

 

 

종교개혁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장 칼뱅(Jean Calvin)을 위시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종교 개혁은 새로운 신앙 원리에 바탕을 둔 시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 운동은 칼뱅이 등장하면서 철저하게 가톨릭과 결별했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칼뱅은 신도들도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앙과 윤리를 결합하였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술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공세에 대항하고, 기독교 미술의 부흥을 위해 반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예술 작품이야말로 신도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매체라고 여겼다. 이 과정에 이용된 게 바로크 미술이다. 바로크 미술은 반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미술이다. 가톨릭은 신 중심의 전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교회와 성당뿐만 아니라 궁전과 예배당을 세웠다. 이 모두는 현세와 내세, 생활과 믿음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17~18세기 프랑스로 건너간 바로크 미술은 절대주의의 영향 속에서 왕권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사치스러운 건축물이 등장했다. 바로크 미술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웅장한 규모의 작품을 통해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그래서 낯설고, 과장된 바로크에 대해 과거에는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겨진 적도 있었다. ‘비뚤어진(찌그러진, 울퉁불퉁한) 진주’를 뜻하는 바로크는 처음부터 썩 좋은 의미의 용어는 아니었다.

 

 

 

 

 

 

 

 

 

 

 

 

 

 

 

 

 

 

* [No Image]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 개념》(시공사, 1994)

* 빅토르 L. 타피에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

 

 

 

19세기 말까지 바로크는 르네상스 예술의 쇠퇴를 보여주는 사조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스위스의 예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은 바로크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의 양식적 형태를 비교하여 두 예술을 구분 짓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공간성을 폐쇄적 구조로 보고, 바로크 미술의 개방성과 대립시켜 설명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은 선적이어서 윤곽이 뚜렷한 특징이지만, 바로크 미술은 색채의 효과를 위해 윤곽의 명료함을 포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뵐플린은 두 예술의 특징을 대조하면서 설명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관계를 ‘대립’ 또는 ‘단절’로 보지 않는다. 그는 바로크를 르네상스의 ‘변형’으로 평가했다.

 

스페인의 철학자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는 1935년에 발표한 《바로크론》에서 바로크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수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바로크론》은 바로크의 정의를 설명하는 개론서로 보기 어렵다. 바로크에 대한 도르스의 애정이 듬뿍 담은 ‘바로크 예찬론’ 정도로 봐야 한다.

 

1950~1960년대에 ‘바로크 재평가’ 붐이 일어났고, 1957년에 나온 토르 뤼시앵 타피에(Victor Lucien Tapie)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는 그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평가받던 바로크를 복권한 책이다. 타피에는 16~18세기 유럽 시대의 상황을 주목하면서, 종교개혁 이후에 바로크가 태동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또 군주의 절대 권력이 강화되었던 17세기 프랑스가 바로크를 수용하는 과정을 살핀다. 바로크를 바라보는 타피에의 관점은 이미 앞서 언급했다. 즉, 바로크는 종교개혁과 절대 왕정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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