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이튼스쿨에 다니던 시절에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준 교사는 오웰의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다. 이때 헉슬리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그러나 헉슬리는 눈이 너무 좋지 않았다. 10대 때부터 걸린 각막염으로 인해 시력이 반쯤 상실된 상태였다. 그의 시력 장애는 이튼스쿨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오웰은 헉슬리 선생을 잘 따랐다. 그는 헉슬리 선생에게서 프랑스 문학 작품들을 접했고, 가끔 그와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오웰은 헉슬리에게 프랑스어를 잘 배운 덕분에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 스테판 말테르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제3의공간, 2017)

 

 

 

 

오웰은 인도 제국 경찰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와 일 년간 지내다가 파리로 건너갔다. 1928년 초에 그는 가난한 노동자와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살아온 경험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작품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쓰게 됐다. 오웰이 파리에 정착하는 데 경제적으로 도움을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모 넬리 리무진(Nellie Limouzin)이다. 넬리는 페이비언 사회주의(Fabian socialism: 영국에서 만들어진 점진적 사회주의) 협회에 소속된 회원이었고, 유명 인사들이 모이는 살롱의 주인이기도 했다. 오웰 평전인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제3의공간)은 오웰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아주 상사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그 책에 넬리의 살롱에 드나든 유명 인사들이 누군지 언급된 내용도 있다.

 

 

 

 페미니스트이자 페이비언협회 회원인 넬리는 자신의 집을 작가들의 살롱으로 제공했다. [중략] 그러나 불행히도, 에릭은 역시 이 살롱에 드나드는 신랄한 논조로 유명한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이나, 공포 이야기와 공상과학 소설가 P. M. 실,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의 우상인 웰스와는 마주친 적이 없었다.  (67~68쪽)

 

 

 

그런데 내가 인용한 문장에 오류가 있다. 이 문장의 오류는 ‘공상과학 소설가 P. M. 실이다. 작가 이름이 잘못 적혀 있는데, 오류라기보다는 ‘오식’에 가깝다. 퍼스트 네임과 미들 네임의 순서가 잘못 적혀 있다. ‘P. M. 실’이 아니라 ‘M. P. 실’이다. 사족이지만 P와 M, 그리고 실(Shiel)의 첫 글자인 S가 합쳐지면 ‘PMS’가 된다. PMS는 월경 전 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의 약자이다.

 

넬리의 살롱에 드나든 G. K. 체스터턴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각각 추리소설가(대표작: 브라운 신부 시리즈), 《타임머신》과 《투명 인간》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M. P. 실은 어떤 사람인가? 실은 체스터턴과 웰스의 인지도에 비해 한참 못 미치지만, 장르문학의 역사를 논할 때 한 번쯤은 언급되는(언급되어야 할) 작가다.

 

 

 

 

 

 

 

풀 네임은 매튜 핍스 실(Matthew Phipps Shiel)이다. 카리브 해에 있는 영국령 몬세라트(Montserrat) 섬에 태어났고, 주로 미스터리물이나 공상과학소설을 썼다. 생전에 실의 작품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실은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실이 죽고 난 후에 극소수의 미스터리 마니아와 장르문학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재평가했다.

 

 

 

 

 

 

 

 

 

 

 

 

 

 

 

 

 

 

 

* M. P. 실 《The Purple Cloud》 (Penguin Group USA, 2012)

* H. 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북스피어, 2012)

 

 

 

실의 대표작은 1901년에 발표된 <The Purple Cloud>이다. ‘자줏빛 구름’ 또는 ‘보랏빛 구름’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 지구가 파괴되어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래서 <The Purple Cloud>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세계 종말 이후의 상황을 그리는 SF문학의 한 하위 장르)의 서막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는 공포 문학 작품들을 비평한 자신의 글《공포 문학의 매혹》(북스피어)에서 <The Purple Cloud>의 작품성을 호평했으나 이 작품의 종반부가 아쉽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곁들었다.

 

 

 

 

 

 

 

 

 

 

 

 

 

 

 

 

 

 

 

 

 

 

 

 

 

 

 

 

 

 

 

 

 

* 안길환 엮음 《영국의 괴담》 (명문당, 2000)

* 정진영 엮음 《세계 호러 걸작선 2》 (책세상, 2004)

*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한스미디어, 2013)

* [e-Book] 매튜 핍스 실 《오번 가문의 비극》 (한스미디어, 2014)

 

 

 

 

실은 스무 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남겼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총 세 편인데, 나는 이 작품들을 엘러리 퀸(Ellery Queen)이 썼던 평가 방식처럼 소개하겠다.

 

 

 

 

 

 

 

 

 

 

 

 

 

 

 

 

 

 

* 엘러리 퀸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북스피어, 2016)

 

 

 

 

‘엘러리 퀸이 썼던 방식’이 무엇이냐면 그가 탐정소설을 평가할 때 사용했던 세 가지 기준을 말한다. 첫 번째 기준은 ‘역사적 중요성(Historical Significance)이다. 작품이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중요한지 평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작품이 문학적으로 우수한지(Quality) 평가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초판본의 희소가치(Rarity)다. 내 글에서 사용된 ‘R’은 초판본이 아닌 ‘번역본’의 희소가치를 뜻한다. 퀸은 탐정소설을 평가할 때 이 세 가지 기준을 뜻하는 단어의 첫 글자를 따온 ‘HQR’로 표시했다. 나는 여기에 네 번째 기준을 추가했다. ‘번역되지 않은(Untranslated) 작품’일 경우 ‘U’를 표시했다.

 

 

 

 

 

1. 지상에서 못 이룬 사랑

The Tale of Henry and Rowena (1928)

 

R

 

 

 

 

 

 

《영국의 괴담》 (명문당)에 수록된 작품이다. 자신이 사랑한 귀부인에 집착하는 한센병 환자 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귀부인은 저주의 병(20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센병은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이었다)에 걸린 귀족에 연민을 느껴 어쩔 수 없이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지만, 귀부인에 향한 귀족의 사랑은 간절하다기보다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발악에 가깝다. 번역이 영 좋지 않다. 이 작품만 번역에 문제가 아니라 《영국의 괴담》에 수록된 전 작품 모두 번역이 좋지 않다. 2000년에 나온 책인데, 국한문혼용체로 되어 있다. 문장 한 개에 들어 있는 한자어가 한글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역자가 한자어를 너무 많이 썼다. 거기에 편집자는 아주 친절하게 한자어 옆에 한문까지 같이 써주셨다…‥. 동양고전을 전문적으로 펴낸 출판사라서 한자를 많이 썼던 것일까? 한자어가 너무 많은 문장은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줄거리를 파악하는 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 귀족의 이름은 ‘헨리(Henry)’인데 번역본에는 ‘덴리’로 되어 있다.

 

 

 

 

 

 

2. 제루샤

Xélucha (1896)

 

HR

 

 

 

 

 

 

러브크래프트는 이 작품을 ‘독기 어리고 소름 끼치는 단편’이라고 평가했다. 소설 제목인 ‘제루샤’는 ‘악마 같은 여성’으로 묘사된 인물의 이름이다. 『제루샤』는 세기말에 유행했던 병적이고, 반도덕적이고, 퇴폐적인 문화 양식, 즉 데카당스(décadence)풍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메리메’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비제(Georges Bizet)의 오페라 《카르멘》의 원작자로 유명한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erimee)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3. 오번 가문의 비극

The Race of Orven (1895)

 

HRU (엘러리 퀸의 평점은 HQR)

 

 

 

 

 

실은 아마추어 탐정이 등장하는 탐정소설 네 편을 썼다. ‘잘레스키 왕자(Prince Zaleski)가 미궁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오번 가문의 비극』, 『에드먼즈버러 승려의 돌(The Stone of the Edmundsbury Monks)』, 『The S.S』는 실이 살아있을 때 발표한 ‘잘레스키 왕자’ 시리즈다. 그러나 이 작품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 [절판] 김봉석, 장경현, 윤영천 《탐정 사전》 (프로파간다, 2014)

 

 

 

 

잘레스키 왕자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창조한 아마추어 탐정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과 흡사하다. 두 사람 모두 앞날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력이 있으나 신분이 몰락한 상태가 되었고, 세상과 단절되다시피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도락가로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잘레스키는 골동품을, 뒤팽은 책을 수집한다. 실과 포의 탐정소설에 나오는 화자의 역할도 비슷하다. 작품 속 화자는 탐정에게 미궁의 사건을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탐정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하여 논리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렇다 보니 뒤팽과 잘레스키는 종종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그들은 너무 진지하게 현학적인 발언을 하는데 대부분은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철학적인 내용이다.

 

『오번 가문의 비극』은 ‘잘레스키 왕자 시리즈’에 속한 작품 중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번역된 작품이다. 그래서 1895년에 『오번 가문의 비극』과 함께 발표된 나머지 두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U’를 표시했다. 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알려진 『The Return of Prince Zaleski』도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45년에 쓰였으나 실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한동안 잊히고 말았다. 다행히 실과 공동으로 집필 작업을 했던 존 고스워스(John Gawsworth)가 이 작품의 원고를 엘러리 퀸에게 보내게 되면서, 잊힐 뻔했던 ‘잘레스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오번 가문의 비극』이 수록된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한스미디어)의 작품 해설에 오류가 있다.

 

 

『Prince Zaleski: three detective stories』(1895)에는 잘레스키가 활약하는 「오번 가문의 비극」과 「에드먼즈버리 승려의 돌」 「The SS」「The Return of Prince Zaleski」로 네 편의 단편이 실렸다

 

 (해설, 658족)

 

 

 

『Prince Zaleski: three detective stories』의 부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해설을 쓴 글쓴이는 이 단편집에 「The Return of Prince Zaleski」이 실려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단편집에 네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면 ‘three detective stories’라는 부제가 삭제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The Return of Prince Zaleski」는 실 사후에 나온 단편 선집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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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9-07-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조지 오웰 평전에 등장하는 이름 오류에서 출발해,
그 작가가 쓴 작품들까지 평가하는 이 글, 너무 너무 멋지군요!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3편 밖에 없다니, 아쉽네요.

시루스님의 이 글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 읽어야겠어요.

cyrus 2019-07-09 11:11   좋아요 0 | URL
<The Purple Cloud>가 우리말로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왠지 이 소설은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아름다움의 진화 -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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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윈(Darwin)《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장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기존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엎은 이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은 지금도 중학생 정도면 다 아는 과학 이론이 되었다. 《종의 기원》이 나오고 12년이 지난 후에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고, 성 선택이 자연 선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은 철저히 외면당했고, 다윈을 지지하던 진화론자들도 이 책을 비난했다. 하지만 다윈이 더욱더 뼈아팠던 것은 따로 있다. 다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을 증명하여 그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한 앨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is)가 성 선택을 공격하는 선봉장으로 나선 것이다.

 

조류학자인 다윈주의자 리처드 프럼(Richard O. Prum)이 쓴 《아름다움의 진화》는 백여 년 동안 진화론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은 자연 선택에 밀려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성 선택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조류의 짝짓기와 수컷 조류의 구애 행동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연구 주제에 도전하게 된다. ‘조류의 성 선택이 진화의 다양한 측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성 선택은 간단히 말하면 수컷은 배우자가 될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암컷은 배우자 수컷을 고른다는 주장을 발전시킨 이론이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줄 자식을 늘리기 위해 섹스(교미)에 집착하고, 성적 욕구가 있는 암컷은 (자신이 보기에 섹시하고 멋진) 수컷을 고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컷에 대한 암컷의 성적 선호와 이런 선호를 충족시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수컷의 깃털 장식들이 진화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암컷의 성적 선호는 다음에 태어날 암컷에게 대물림되고, 수컷의 깃털 장식들은 점점 더 세련되고 화려해진다. 프럼은 이 과정을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성 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aesthetic evolution)라고 부르면서 배우자가 될 수컷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암컷의 미적 감각과 짝짓기 행위가 이루어지면 자기 결정권을 갖는 암컷의 태도에 주목한다. 암컷을 반하게 만드는 수컷의 몸에 난 장식들, 즉 크고 화려한 깃털은 ‘성적 상징물(sexual ornament)이다.

 

성 선택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성적 상징물은 수컷 공작의 화려한 깃털이다. 공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컷 조류들도 각자 암컷을 유혹하는 성적 상징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암컷 앞에서 교태를 부린다. 따라서 수많은 조류에서 나타난 암컷의 배우자 선택과 수컷의 성적 상징물의 공진화는 다양한 ‘성적 아름다움’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자연 선택을 지지하는 다윈주의자들은 여전히 다윈이 생각해낸 성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연 선택과 성 선택으로 갈라진 다윈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진화론의 허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본다. 진화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진화론 논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진화론자들끼리 서로 대립하는 모습이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자연 선택의 한계를 밝혀내 성 선택에 더 많이 주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 선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모든 생물의 진화를 자연 선택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쓰게 된 의도와 관련이 있다. 다윈은 자연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물들의 특성에 주목했고, 진화론의 빈틈이 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성 선택을 제시했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진화》에 나오는 ‘자연 선택 지지자와 성 선택 지지자 간의 논쟁’을 ‘진화론을 틀린 이론으로 만드는 프레임’으로 삼는 것은 난센스다.

 

성 선택을 비판하는 자연 선택 지지자들은 암컷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 선택이 짝짓기에 너무 초점을 맞춰서 설명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 선택으로 모든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게 되면 인간도, 생물도 모두 본능적으로 섹스를 선호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이러한 자연 선택 지지자들의 반응은 백여 년 전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을 발표했을 때 나온 대중들의 반응과 거의 비슷하다. 다윈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즉 유독 성에 대해 보수적인 반응을 보인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사람들은 암컷이 섹스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성 선택에 분노를 드러냈다. 성 선택은 암컷에게 짝짓기를 주도적으로 임하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론이다.

 

과학적으로 성 선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수컷은 자신의 생존에 불리한 거추장스러운 성적 상징물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되었냐고 따진다.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를테면 수컷 공작의 깃털은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깃털이 지나치게 커서 적의 눈에 띄기 쉬운 수컷 공작은 생존할 확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짝짓기를 할 확률도 낮아진다. 사실 성 선택을 주장한 다윈도 이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실용성 없는 성적 상징물’의 기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는 성적 상징물의 무용성을 근거로 성 선택을 비판하는 입장을 다시 반박한다. 그는 성 선택이 종의 쇠퇴와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짝짓기를 하는 데 유리한 이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한다. 적에게 잡혀 죽을 위험이 있더라도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에 짝짓기는 생존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수컷일수록 짝짓기에 유리하다는 성 선택을 재미있게 비유해서 설명한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잘생긴 용모를 가졌지만 무모함 때문에 요절한’ 제임스 딘(James Dean) 스타일의 수컷이 ‘책만 파면서 여든 살까지 생존한’ 범생이 스타일의 수컷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201쪽)

 

 

‘아름다움이 무기’라는 말이 있다. 요즘 이 말은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게 만드는 강압적인 말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미디어가 만들어 낸 틀에 박힌 ‘강요된 아름다움’을 탈피하고,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아름다움도 개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훌륭한 이점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의 진화》가 강조하는 미적 진화론은 모든 존재가 아름다움을 즐기며,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욕구를 가진 성적 주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진화하는(social evolution) 존재이다. 진화 속도가 더디지만, 과거에 최고로 여겨지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화장이나 성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은 부족해도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회로 진화되길 바란다.

 

 

 

 

 

※ Trivia

 

* 482쪽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두더지와 여우(The Hedgehog and the Fox)>라는 에세이에서 이러한 지적 분열을 탐구했다.

 

→ 두더지가 아니라 ‘고슴도치(hedgeho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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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8 17:46   좋아요 0 | URL
네, 간혹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형태의 생물들이 발견되곤 하죠... ^^;;

AgalmA 2019-07-07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커크 월리스 존슨 『깃털 도둑』을 읽으며 극락조 생태에 대해 좀 찾아보니 1년이 거의 짝짓기 준비더군요ㅎㄷㄷ 공작의 화려함만큼이나 극락조도 성 선택 이론의 표본 아닌가 싶습니다.
미의 추구를 인간의 예술적 감각으로 생각하는 인본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모든 존재가 미적 욕구로 가득한 성적 주체라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의 진화』사놓고 아직 안 읽고 있었는데 곧 읽어봐야겠어요^^


cyrus 2019-07-08 17:48   좋아요 1 | URL
<아름다움의 진화>에도 극락조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수컷 극락조가 구애하는 모습을 찍은 컬러 사진도 있는데, 스마일 표시가 있는 커다란 깃털을 펼친 모습이에요. <깃털 도둑>이라는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

AgalmA 2019-07-12 15:42   좋아요 0 | URL
극락조 중 그 새 사진 신기하다고 인커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보여요ㅎ 정말 신기하죠. 우리 인간이 유사를 보려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 극락조 구애 무늬가 웃는 모습이라니ㅎㅎ!

테레사 2020-08-1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죠? 저도 참 재밌고 즐겁게 읽었어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에세이 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 실천)《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를 동시에 읽었다. 두 권의 책에 수록된 에세이 몇 편이 있는데, 그중 한 편이 『Good Bad Book』이다. 이틀 전에 『Good Bad Book』이 어떤 내용인지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 [품절]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 2003)

* 조지 오웰, 하윤숙 옮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 실천, 2003)

 

 

 

 

오늘도 내가 『Good Bad Book』을 언급한 이유는 《코끼리를 쏘다》에 발견된 오역(원문에 있는 문장이 빠져 있다)과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에 설명이 미흡한 역주가 있던데 일단 이것부터 먼저 언급하겠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237쪽에 볼테르(Voltaire)의 시 『오를레앙의 성처녀(La Pucelle d’Orléans)에 관한 역주가 있다. 역주에 볼테르의 작품이 ‘1899년’에 발표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1694년에 태어나 1778년에 세상을 떠난 볼테르가 1899년에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한 세기가 지난 뒤에서야 발표되었을까?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프랑스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의 별명이다. 당연히 볼테르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잔 다르크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고, 볼테르는 이 시를 1730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한동안 잊힌 작품은 영국의 작가인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William Henry Ireland, 1775~1835)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고,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1899년이다.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알마, 2014)

* 주명철 《계몽과 쾌락》(소나무, 2014)

 

 

 

볼테르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시’라고 말하기 민망한 ‘포르노그래피’. 제목만 보면 볼테르가 프랑스의 영웅을 찬양하는 시를 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볼테르가 잔 다르크를 음란한 여성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외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금서로 취급받았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는 독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면서 널리 읽히게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18세기 프랑스의 독서 문화와 금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분석한 《책과 혁명》(알마)을 쓴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은 1769년부터 1789년까지 불법 유통된 720종의 금서가 적힌 목록을 조사했는데, 그 목록에 『오를레앙의 성처녀』가 포함되어 있었다. 단턴은 『오를레앙의 성처녀』와 같은 특정 인물을 비방하기 위해 만든 포르노그래피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한 부싯돌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포르노그래피 형태로 만들어진 책들 대부분은 군주와 기득권층을 풍자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정부는 이 포르노그래피 유통을 막기 위해 금서를 지정했다. 그러나 금서는 발 빠르게 유통되었고, 이로 인해 금서를 접한 대중들의 마음에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단턴은 음란물로 규정된 프랑스의 금서들이 군주와 귀족 중심의 구체제(ancien régime)에 어떻게 균열을 냈는지 《책과 혁명》에서 설명하고 있다.

 

자, 다시 역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래서 정리하자면, 『오를레앙의 성처녀』를 '189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대충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역주에 ‘볼테르가 1730년에 쓴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이제 《코끼리를 쏘다》에 발견된 오역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 두 개는 《코끼리를 쏘다》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에서 발췌한 『Good Bad Book』 번역문이다.

 

 

 

* 원문

A cut above most of these was Barry Pain. Some of Pain’s humorous writings are, I suppose, still in print, but to anyone who comes across it I recommend what must now be a very rare book — The octave of Claudius, a brilliant exercise in the macabre. Somewhat later in time there was Peter Blundell, who wrote in the W. W. Jacobs vein about Far Eastern seaport towns, and who seems to be rather unaccountably forgotten, in spite of having been praised in print by H. G. Wells.

 

 

* 좋으면서 나쁜 책, 《코끼리를 쏘다》, 118쪽, 박경서 옮김.

 

 이들보다 더 우수한 작가로서 베리 페인(Barry Pain)도 있다. 그의 유머스러운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출판되고 있지만, 그의 책을 접하는 사람에게 오늘날 구하기가 힘든 작품인 『클로디어스의 8일(The octave of Claudius)』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후의 작가로는 극동지방의 항구도시에 대한 이야기로 출판 당시 웰스(H. G. Wells)의 찬사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요즈음은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피터 블룬델(Peter Blundell)이 있다.

 

* 좋은 대중소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316쪽, 하윤숙 옮김.

 

 이보다 상급에 속하는 작가로는 베리 페인(Barry Pain)이 있는데, 그의 작품 중에는 여전히 판매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혹시 읽을 사람이 있다면 지금은 필시 구하기 힘들 『클라우디우스의 8일(The octave of Claudius)』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섬뜩한 분위기를 띤 탁월한 작품이다. 다음 시기로 내려오면 피터 블런델(Peter Blundell)이 있다. 그는 극동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W. W. 제이콥(W. W. Jacobs) 같은 성향의 작품을 썼는데 H. G. 웰스가 지면상에서 높은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힌 것 같다.

 

 

 

박경서 씨의 번역문에는 원문에 있는 문장(필자가 밑줄 친 문장) 두 개가 빠져 있다. 박경서 씨는 조지 오웰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고, 오웰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인데 원문을 누락한 번역을 했다는 점이 아쉽다. W. W. 제이콥은 ‘제이콥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영국의 작가다. 그의 대표작은 『원숭이 손』으로, 역대 최고의 공포 단편 소설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추천받는 작품이다. 필자는 3년 전에 W. W. 제이콥스를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내가 쓴 졸문을 참고하길 바란다.[주]

 

 

 

* 원문

 

Enough talent to set up dozens of ordinary writers has been poured into Wyndham Lewis’s so-called novels, such as Tarr or Snooty baronet. Yet it would be a very heavy labour to read one of these books right through.

 

 

* 좋으면서 나쁜 책, 《코끼리를 쏘다》, 121쪽, 박경서 옮김.

 

타르 혹은 속물의 귀족(Tarr or Snooty baronet)과 같은 윈담 루이스(Wyndham Lewis)의 소설을 보면 수십 명의 평범한 작가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재능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무척 어렵다.

 

* 좋은 대중소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320쪽, 하윤숙 옮김.

 

 윈덤 루이스가 쓴 『타르』나 『오만한 준남작(Snooty baronet)에는 평범한 작가 12명을 탄생시킬 만한 재능이 들어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은 매우 힘든 중노동이다.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 1882~1957)는 영국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1918년에 발표된 장편소설 『타르(Tarr)다. 『오만한 준남작(속물의 귀족, Snooty Baronet)』은 1932년에 나온 소설이다. 그러므로 『오만한 준남작』은 『타르』와 별개의 작품이다.

 

 

 

 

[주]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원숭이 손>] (2016년 5월 17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849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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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 감춰진 얼굴
마이클 쉘던 지음 / 성훈출판사 / 1992년 12월
평점 :
품절


 

 

 

“저기, 이 책이 서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대출이 가능한가요?”

 

“음‥… 이 책이 나온 지 꽤 오래됐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올해 들어 도서관에서 절판된 책을 빌리는 일이 많아졌다. 현재 내 방은 포화 상태라서 더 이상 책을 헌책방에나 온라인 중고서점에 주문해서 들여놓을 수 없다. 출간 연도가 오래된 책, 즉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에 나온 책들은 주로 도서관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서고에 보관된 책을 빌려서 읽는 것은 내 돈 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지난달에는 도서관 서고에 있는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을 읽었다. 이 책은 1992년에 나왔다. 서고에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서 그런지 정말 책 상태가 좋지 못했다. 책 가운데 쪽 제본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책 상단에 새까만 먼지가 쌓여 있었고, 얼룩진 형태의 곰팡이 떼가 남아 있었다. 서고에 있는 그 책을 가져온 사서는 휴지로 먼지를 닦았다. 사서는 이 책을 간절히 원한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휴지로 책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는 사서를 보고 나니 민망해서 괜히 사서에게 말을 걸었다. 마지못해 미소를 지으면서 사서에게 ‘제가 (먼지를) 닦을게요’라고 말했다. 아, 정말 이런 난감한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웬만하면 서고에 보관된 책을 안 빌리려고 했는데…‥ 당분간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서고에 있는 책을 빌릴 때 뻔뻔해져야만 할 것이다.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에 적힌 저자 소개에 따르면, 저자 마이클 셀던(Michael Sheldon)은 영문과 교수이다. 그가 쓴 저서 중에 <약속의 친구들: 시릴 코놀리와 지평선의 세계>라는 책이 있다. 시릴 코놀리(Cyril Connolly: 1903~1974)는 영국의 작가 겸 비평가인데, 오웰과 같은 학교(세인트 시프리언즈 예비학교와 이튼스쿨)에 다닌 친구이다. 그래서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에 학창 시절 오웰이 어떤 성격인지 확인해 주는 코놀리의 증언이 나온다.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은 주석 목록과 역자 후기까지 포함해서 605쪽으로 이루어져 있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 중에서 제법 분량이 많은 편이고, 그 당시 물가를 생각한다면 책값이 비싼 편이다. 책의 정가는 9,000원이다.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은 절판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웰에 관한 사소한 일면을 알 수 있는 훌륭한 평전이다. 생전에 오웰은 자신에 관한 전기가 나오는 것을 반대했고, 단호한 입장을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는 본인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그는 자서전을 쓰지 않았다. 완전한 형태의 자서전이라고 보기 어려우나 1947년에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글[주]을 쓴 적이 있다. 저자는 오웰을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한마디로 모순투성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으나 사회주의자들의 문제점과 약점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말년에 소설을 쓸 계획이 있으면서도 자신은 소설가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웰은 엄격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 분위기가 끔찍했다고 회상했지만, 오웰의 동창생들은 그가 학교생활을 잘하는 평범한 아이로 기억했다. 오웰의 삶을 ‘모순투성이’라고 평한 저자의 말이 그다지 놀랍지 않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세상에 모순투성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은 굳이 알 필요 없는, 오웰에 관한 ‘TMI(Too Much Information)’로 가득하다. 책의 분량을 두껍게 만든 과도한 정보의 양은 독서를 지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만, 이 정보들을 얻기 위해 오웰과 관련된 생존 인물들을 직접 찾아 만나고 다닌 저자의 노력을 생각하면 대충 읽을 수 없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TMI’는 오웰의 모순적인 면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일명 ‘오웰 리스트(Orwell’s list)에 관한 내용이다.

 

2003년에 처음으로 전 세계에 공개된 ‘오웰 리스트’는 오웰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작성한 것이다. ‘오웰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오웰이 지하에 활동하는 공산주의자와 그들을 동조하는 자로 의심되는 38명의 지식인 이름을 명단으로 기록하여 영국 정보기관에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다.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에서도 오웰이 자신의 공책에 ‘비밀 공산주의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그러나 셀던은 오웰이 공책에 적힌 명단을 정보기관에 전달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앞서 언급했듯이 정보기관에 전달된 오웰 리스트는 2003년에 발견되었다. 그런데 오웰은 어째서 ‘변절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을 했던 것일까. 마이클 셀던에 따르면 오웰은 스탈린 정권을 변호하는 공산주의자들을 경계했고, 영국에 있는 친 스탈린파들이 정정당당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솔직하게 밝히기를 기대했다. 오웰은 좌파 세력의 결집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명단을 작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명단을 작성했다는 이유만 가지고 그를 ‘좌파를 배신한 자’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오웰은 공산주의자들의 공개적인 활동을 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웰이 명단을 정보기관에 전달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행동은 영국 사회를 위협하는 세력을 알리기 위한 ‘밀고’가 아니다. 명단에 적힌 공산주의자들은 친 스탈린 파라서 소련에 맞서는 선전에 동원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즉 오웰은 정보기관에게 ‘대(對) 소련 선전’을 위해 이런 공산주의자들을 기용하지 말라고 알려줬다.

 

오웰은 친 스탈린 파의 공산주의자들을 비난했지만, 무턱대고 ‘친 스탈린파’라고 몰아세우면서 공격하지는 않았다. 일단 그는 상대방이 친 스탈린 파인지 아닌지 의심했다. 그는 칼럼에서 공산주의자라고 해서 그들을 향해 성급하게 친 스탈린파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오웰의 글을 읽으면서 ‘오웰은 이런 사람이었구나’라고 쉽게 단정한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이나 오웰의 삶을 단편적으로 설명한 작품 해설만 읽고서는 ‘오웰의 진짜 얼굴’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과거 유럽에서는 문장의 필체만 가지고 문장을 쓴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유사과학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특정 글쓴이의 글 백 편 전부 다 읽는다고 해도 글쓴이의 전체적인 면모를 알 수 없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특정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므로 과거 글쓴이의 모습과 현재 글쓴이 모습은 동일 인물이 아니다. 오웰을 제대로 알려면 그의 사소한 치부까지 보여주는 확실한 전기나 평전을 읽어야 한다. 비록 새롭게 알려진 최신 정보는 없지만, 《조지 오웰, 감춰진 얼굴》은 오웰에 관한 한, 아주 사소한 정보들이 채워져 있는 평전이다.

 

 

 

[주] 글의 제목은 ‘Such, Such Were the Joys’다.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제목은 ‘정말, 정말 좋았지’)와 《코끼리를 쏘다》(반니, 제목은 ‘너무나 즐겁던 시절’)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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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04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싸이러스 브로, 오웰 전문가로 명명합니다.

cyrus 2019-07-05 11:06   좋아요 0 | URL
아직 안 읽은 오웰의 소설이 있어서 전문가 수준에 이르려면 한참 멀었어요. ^^;;

stella.K 2019-07-0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책이 절판되고 다시 복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의외다. 내가 알기로 오웰에 관한 책은 거의 다 번역된 줄로 알고 있는데.
이걸 다시 복간하지 않다니 우리나라 출판사들 넘 게으른 거 아니니?
평전은 시시콜콜할 필요가 있지. 위인전기가 아니잖아.

cyrus 2019-07-05 11:09   좋아요 0 | URL
오웰이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지만, 오웰 평전은 오웰의 작품보다 대중성이 부족해요. 오웰이 쓴 작품 중에 가장 많이 번역된 게 <동물농장>과 <1984>입니다. 이 두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오웰의 다른 작품과 에세이 선집, 그리고 평전 등이 상대적으로 덜 읽히는 것 같아요. ^^;;

서니데이 2019-07-04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태가 좋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사진으로는 그래도 괜찮아보여요.
저희집에도 90년대 책이 있어요. 그 책의 가격도 궁금해지네요.
가격을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길게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요즘 대구는 많이 덥지요.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cyrus 2019-07-05 11:13   좋아요 1 | URL
책을 직접 보셔야 해요.. ㅎㅎㅎ 책 상단에 곰팡이가 있어요. 그거 찍은 사진을 올리려고 했는데, 곰팡이가 찍힌 사진에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을까 봐 안 올렸어요. 정가는 9000원입니다. 90년대의 9000원은 지금의 9000원과 다르죠. ^^;;

지난달에 대구에도 제법 비가 많이 내렸는데, 어느새 원래 뜨거운 대구가 되었네요. 서니데이님도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yo 2019-07-0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책이군요. 저도 저 도서관에서 90년댄지 80년댄지 나온 두 권짜리 마르크스 평전을 서고에서 꺼내달라고 신청했었는데, 제 신청 덕분에 상권이 서고에서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했다는.....

cyrus 2019-07-05 11:18   좋아요 0 | URL
네, 간혹 그런 일이 일어나요. 이러면 정말 맥이 빠져요. 도서관 서고에 있는 오래된 책을 폐기처분을 하려고(아니면 헌책방에 팔려고) 그러는 건지 트럭에 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거 보면서 책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저기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책이 있을 건데 말이죠. 외국의 어느 도서관은 서고에 있는 책을 처리하려고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주거나 중고도서 장터를 운영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도서관은 그런 행사가 없어서 아쉬워요. ^^;;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올 줄이야‥…. 놀라운 일인데.”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 출간된 것을 확인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이 세상에 나올 만한 책이 아니다. 세상을 초월한 ‘괴작(怪作)’이다.

 

 

 

 

 

 

 

 

 

 

 

 

 

 

 

 

 

 

 

* 막스 에른스트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이모션북스, 2019)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2012)

 

 

 

이 괴이한 작품을 만든 사람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 독일의 화가이다. 초현실주의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초현실주의 선언’으로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 브르통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에 단단히 감화를 받은 상태였다. 그는 이성과 윤리를 초월하는 완전한 자유를 선언했다. 브르통이 일상의 상식 세계에 매몰돼가는 인간의 정신을 해방하고 꿈과 무의식이 엮어내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제공하려 했다면, 에른스트는 그런 세계를 구체화하는 방식을 마련했다. 에른스트는 사물 위에 종이를 대고 문지르는 프로타주(frottage)를 처음으로 고안했으며 콜라주(collage)도 그가 주로 사용한 기법이다. 콜라주는 ‘풀로 붙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기성품을 캔버스에 붙여 화면을 구성하는 기법을 말한다. 콜라주를 처음 선보인 화가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가 많이 거론되지만,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적 콜라주’를 확립한 화가는 에른스트다.

 

 

 

 

 

 

 

 

 

 

 

 

 

 

 

 

 

 

 

* 요아힘 나겔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문화, 2008)

* 피오나 브래들리 《초현실주의》 (열화당, 2003)

* 매슈 게일 《다다와 초현실주의》 (한길아트, 2001)

 

 

 

에른스트가 초현실주의적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1929년에 발표된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다. 브르통은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을 위한 서문을 직접 썼다. 제목이 범상치 않다. 제목을 줄여서 ‘백두녀(百頭女)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어 원제는 ‘La femme 100 têtes’이다. 이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프랑스에서 100은 ‘cent’라고 한다. ‘La femme cent têtes’를 발음하면 ‘famme sans tête’라는 문장의 발음이 들릴 수 있는데, 이 문장의 뜻은 ‘머리가 없는 여인’이다. 그래서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머리 없는 여자’라는 제2의 제목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이 책은 ‘콜라주 소설’이다. 콜라주를 이용해서 만든 소설이라 볼 수 있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알쏭달쏭한 도판과 암호 같은 문장 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책 속에 있는 도판과 문장 몇 개를 공개할 텐데, 내가 앞서 책을 소개할 때 언급한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 어떤가?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총 147개의 도판과 그 도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 같은(사실은 도판과 전혀 관련이 없다) 간단한 문장 한 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소설’로 분류되지만,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소설의 일반적인 서사 전개 방식은 찾아볼 수 없다. 에른스트는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도판과 문장 들을 나열했을 뿐이다. 독자는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도판과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도판과 문장의 의미를 찾는 일에 애쓰면 정신은 경직된다. 이런 독서는 에른스트가 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우리는 ‘이 세상 소설’을 읽는 일에 익숙하다. ‘이 세상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어지는 기승전결의 이야기 흐름을 담고 있다. 우리는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결론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상 소설’이 아닌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기감을 드러낸다. 독자는 뚜렷한 서사 전개가 없는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난감해하고, 도판과 문장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낀다. 책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어떤 독자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긴장을 견뎌내지 못해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독자의 반응은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적 콜라주가 일으킨 효과이고, 이게 바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는 것.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적 콜라주는 일상의 이미지를 한곳에 모아 뒤섞은 다음, 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익숙한 의미를 해체한다.

 

 

 

 

 

 

 

 

 

 

 

 

 

 

 

 

 

 

 

* [절판] 베르너 슈피스 《막스 에른스트》 (열화당, 1994)

 

 

 

 

에른스트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인물이 있는데,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기이한 존재이다. 이 존재의 이름은 ‘로프로프(Loplop)라고 하는데, 어떤 책은‘로플로프’ 또는 ‘롭롭’이라고 나온다. 로프로프는 인간과 새와 결합한 이형(異形)의 존재이다. 에른스트는 로프로프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로프로프는 ‘날개달린 남성’으로 묘사된다. 에른스트는 어린 시절 애지중지 키우던 새가 죽은 동시에 바로 누이동생의 탄생 소식을 듣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과 새를 구분하는 데 혼란을 겪었으며 그의 그림에 새와 ‘새 인간’ 로프로프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에른스트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와 함께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대표주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달리와 마그리트보다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에른스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중점적으로 설명한 책은 《막스 에른스트》 (열화당)이 유일하다. 이 책은 90년대에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도서관 창고에 가야 만날 수 있다.

 

 

 

 

 

 

 

 

 

 

 

 

 

 

 

 

 

 

* [절판] 페기 구겐하임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민음인, 2009)

* 앤톤 길 《페기 구겐하임》 (한길아트, 2008)

* 메리 V. 디어본 《페기 구겐하임》 (을유문화사, 2006)

 

 

 

에른스트의 삶 전반을 알아보려면 생전에 그가 만났던 여성들을 주목해야 한다. 에른스트는 네 번이나 결혼했다. 결혼 생활을 하는 중인데도 다른 여성을 만날 정도로 달리와 피카소 못지않게 여성 편력이 심하다. 그가 사귄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다. 그녀 역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예술가들(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 등)과 사귀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생을 산 인물이었다.

 

 

 

 

 

 

 

 

 

 

 

 

 

 

 

 

 

 

* 소피 들라생 《달라의 연인 갈라》 (마로니에북스, 2008)

* 도미니크 보나 《세 예술가의 연인: 엘뤼아르. 에른스트. 달리, 그리고 갈라》 (한길아트, 2000)

 

 

 

 

달리의 삶과 예술에서 지대한 영향을 준 갈라(Gala)도 에른스트와 사귄 적이 있다. 갈라는 달리를 만나기 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동참한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연인이었다. 그런데 엘뤼아르와 에른스트의 우정이 돈독해지자(두 사람의 우정을 동성애 관계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갈라도 에른스트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 레오노라 캐링턴 외 《내 플란넬 속옷》 (아작, 2017)

* [절판] 휘트니 채드윅 외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푸른숲, 1997)

 

 

 

 

페기는 에른스트의 세 번째 아내였고, 그 다음으로 에른스트의 아내가 된 여성이 화가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이다. 에른스트는 두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난 후에 자신보다 스물 살이나 적고, 초현실주의 운동에 합류한 화가인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을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녀는 화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단편소설 『내 플란넬 속옷』과 초현실주의적 소설인 『The Oval Lady』(1975) 등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에른스트는 파리를 떠나 망명하게 됐는데, 그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도운 사람이 캐링턴이다. 그러나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닌 ‘날개달린 조류 남자’ 에른스트는 캐링턴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불안 증세를 겪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캐링턴은 자신이 사랑했던 ‘새 인간’에 관한 글을 쓰면서 고독하게 지내다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푸른숲)에 에른스트와 캐링턴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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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4 18:14   좋아요 0 | URL
초현실주의자들은 성별 불문하고 성애에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관계가 복잡해요... ^^;;

2019-07-0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05 11:47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캐링턴이 작가라는 사실을 적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