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에세이 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 실천)와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를 동시에 읽었다. 두 권의 책에 수록된 에세이 몇 편이 있는데, 그중 한 편이 『Good Bad Book』이다. 이틀 전에 『Good Bad Book』이 어떤 내용인지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 [품절]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 2003)
* 조지 오웰, 하윤숙 옮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 실천, 2003)
오늘도 내가 『Good Bad Book』을 언급한 이유는 《코끼리를 쏘다》에 발견된 오역(원문에 있는 문장이 빠져 있다)과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에 설명이 미흡한 역주가 있던데 일단 이것부터 먼저 언급하겠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237쪽에 볼테르(Voltaire)의 시 『오를레앙의 성처녀(La Pucelle d’Orléans)』에 관한 역주가 있다. 역주에 볼테르의 작품이 ‘1899년’에 발표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1694년에 태어나 1778년에 세상을 떠난 볼테르가 1899년에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한 세기가 지난 뒤에서야 발표되었을까?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프랑스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의 별명이다. 당연히 볼테르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잔 다르크의 삶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고, 볼테르는 이 시를 1730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한동안 잊힌 작품은 영국의 작가인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William Henry Ireland, 1775~1835)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고,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1899년이다.
*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알마, 2014)
* 주명철 《계몽과 쾌락》(소나무, 2014)
볼테르의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시’라고 말하기 민망한 ‘포르노그래피’다. 제목만 보면 볼테르가 프랑스의 영웅을 찬양하는 시를 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볼테르가 잔 다르크를 음란한 여성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를레앙의 성처녀』는 외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금서로 취급받았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는 독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면서 널리 읽히게 되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18세기 프랑스의 독서 문화와 금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분석한 《책과 혁명》(알마)을 쓴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은 1769년부터 1789년까지 불법 유통된 720종의 금서가 적힌 목록을 조사했는데, 그 목록에 『오를레앙의 성처녀』가 포함되어 있었다. 단턴은 『오를레앙의 성처녀』와 같은 특정 인물을 비방하기 위해 만든 포르노그래피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한 부싯돌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포르노그래피 형태로 만들어진 책들 대부분은 군주와 기득권층을 풍자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정부는 이 포르노그래피 유통을 막기 위해 금서를 지정했다. 그러나 금서는 발 빠르게 유통되었고, 이로 인해 금서를 접한 대중들의 마음에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단턴은 음란물로 규정된 프랑스의 금서들이 군주와 귀족 중심의 구체제(ancien régime)에 어떻게 균열을 냈는지 《책과 혁명》에서 설명하고 있다.
자, 다시 역주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래서 정리하자면, 『오를레앙의 성처녀』를 '1899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대충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역주에 ‘볼테르가 1730년에 쓴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이제 《코끼리를 쏘다》에 발견된 오역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 두 개는 《코끼리를 쏘다》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에서 발췌한 『Good Bad Book』 번역문이다.
* 원문
A cut above most of these was Barry Pain. Some of Pain’s humorous writings are, I suppose, still in print, but to anyone who comes across it I recommend what must now be a very rare book — The octave of Claudius, a brilliant exercise in the macabre. Somewhat later in time there was Peter Blundell, who wrote in the W. W. Jacobs vein about Far Eastern seaport towns, and who seems to be rather unaccountably forgotten, in spite of having been praised in print by H. G. Wells.
* 좋으면서 나쁜 책, 《코끼리를 쏘다》, 118쪽, 박경서 옮김.
이들보다 더 우수한 작가로서 베리 페인(Barry Pain)도 있다. 그의 유머스러운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출판되고 있지만, 그의 책을 접하는 사람에게 오늘날 구하기가 힘든 작품인 『클로디어스의 8일(The octave of Claudius)』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후의 작가로는 극동지방의 항구도시에 대한 이야기로 출판 당시 웰스(H. G. Wells)의 찬사를 받았지만 이상하게 요즈음은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피터 블룬델(Peter Blundell)이 있다.
* 좋은 대중소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316쪽, 하윤숙 옮김.
이보다 상급에 속하는 작가로는 베리 페인(Barry Pain)이 있는데, 그의 작품 중에는 여전히 판매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혹시 읽을 사람이 있다면 지금은 필시 구하기 힘들 『클라우디우스의 8일(The octave of Claudius)』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섬뜩한 분위기를 띤 탁월한 작품이다. 다음 시기로 내려오면 피터 블런델(Peter Blundell)이 있다. 그는 극동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W. W. 제이콥(W. W. Jacobs) 같은 성향의 작품을 썼는데 H. G. 웰스가 지면상에서 높은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힌 것 같다.
박경서 씨의 번역문에는 원문에 있는 문장(필자가 밑줄 친 문장) 두 개가 빠져 있다. 박경서 씨는 조지 오웰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고, 오웰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인데 원문을 누락한 번역을 했다는 점이 아쉽다. W. W. 제이콥은 ‘제이콥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영국의 작가다. 그의 대표작은 『원숭이 손』으로, 역대 최고의 공포 단편 소설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추천받는 작품이다. 필자는 3년 전에 W. W. 제이콥스를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내가 쓴 졸문을 참고하길 바란다.[주]
* 원문
Enough talent to set up dozens of ordinary writers has been poured into Wyndham Lewis’s so-called novels, such as Tarr or Snooty baronet. Yet it would be a very heavy labour to read one of these books right through.
* 좋으면서 나쁜 책, 《코끼리를 쏘다》, 121쪽, 박경서 옮김.
『타르 혹은 속물의 귀족(Tarr or Snooty baronet)』과 같은 윈담 루이스(Wyndham Lewis)의 소설을 보면 수십 명의 평범한 작가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재능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란 무척 어렵다.
* 좋은 대중소설,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320쪽, 하윤숙 옮김.
윈덤 루이스가 쓴 『타르』나 『오만한 준남작(Snooty baronet)』에는 평범한 작가 12명을 탄생시킬 만한 재능이 들어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은 매우 힘든 중노동이다.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 1882~1957)는 영국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1918년에 발표된 장편소설 『타르(Tarr)』다. 『오만한 준남작(속물의 귀족, Snooty Baronet)』은 1932년에 나온 소설이다. 그러므로 『오만한 준남작』은 『타르』와 별개의 작품이다.
[주]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원숭이 손>] (2016년 5월 17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8499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