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수집은 현재진행형이다. 책 수집을 중단하게 만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책 모으는 버릇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집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태까지 사놓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에 눈길이 간다.

    

 

 

 

 

 

 

 

 

 

 

 

 

 

 

 

* [절판] 반 고흐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절판] 마그리트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달리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온종일 글자로 채워진 책을 보면 지루하다. 그럴 땐 도판이 많은 책을 읽는다. 특히 명작 400시리즈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보는 도판집이다. 이 시리즈는 유명 예술가가 그린 작품 400선을 어떠한 한 줄의 설명 없이 도판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 책에 아예 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문, 예술가 연보, 색인은 있다. ‘명작 400시리즈로 나온 모든 책의 서문을 쓴 사람은 호주의 미술비평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 국내에 출간된 명작 400선 시리즈는 총 다섯 권이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마티스(Henri Matisse), 마그리트(René Magritte), 달리(Salvador Dali), 피카소(Pablo Picasso).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반 고흐, 마그리트, 달리. 나머지 두 권을 구매하면 시리즈 전체를 소장하게 되는데, 책 한 권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현재 달리를 제외한 나머지 네 권은 품절 또는 절판 상태다. 이 책들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샵이나 알라딘 오프라인 서점에 나올 확률은 낮다. 그러나 정가의 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므로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 없다. 품절 또는 절판된 책들이 판매자 중고 샵에 등록되어 있지만, 중고가 금액이 책의 정가보다 높다.

 

반 고흐와 달리는 국적, 성장 과정, 활동 시기가 완전히 다른 예술가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흐를 평가하면 광기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달리도 생전에 눈에 띄는 기이한 행동과 발언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달리의 특이한 행동은 병적인 증세라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하는 과장된 퍼포먼스(performance)에 가깝다. 반 고흐와 달리의 공통점은 광기가 아니다. 이 두 사람의 진짜 공통점은 농민 화가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농민 화가의 정체는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cois Millet). 그는 농촌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농민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이른다. 반 고흐는 밀레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밀레의 작품 몇 점을 모사했을 정도로 밀레를 존경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에서 밀레를 젊은 화가들의 아버지라고 언급했다(18854).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한 밀레의 그림은 너무나도 유명한 밀레의 대표작 만종이다.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 것일까.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서 평범한 미학의 매력을 발견한다. 밀레는 농촌에 생활하면서 농민들에게서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도시에 볼 수 없는 생명력을 발견한다. 도시인들은 농민의 삶을 그저 평범한 일로 치부한다. 당연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농촌 생활에 대해 잘 모르거나 낯설어한다. 그들은 밀레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불평등 문제에 관심 없거나 혁명을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밀레가 정치적인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 가난한 농민들을 그린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밀레는 자신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농민의 모습을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밀레는 농민들의 엄숙한 모습에 매료되었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재현했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은 종교화 같은 느낌이 든다. 반 고흐는 밀레처럼 평범한 농민을 소재로 삼아 종교화 같은 숭고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밀레와 반 고흐의 관계는 그림으로 이어진 스승과 제자에 가깝다.

 

 

 

 

 

 

    

 

달리는 고흐 못지않게 밀레의 그림에 상당히 애착을 느낀 예술가이지만, 그는 밀레의 그림에 과도한 상상을 덧붙여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만종을 자세히 들여다본 달리는 감자를 담은 바구니가 있는 자리에 원래 농민 부부의 죽은 아기를 안치한 관이 그려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언은 만종의 무서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만든 원인이 된다. 실제로 만종에 자외선을 투사하여 분석해 본 결과, 그림 속 바구니의 위치에 작은 관과 비슷한 형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형체가 정말로 죽은 아기의 관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만종에 대한 달리의 해석을 믿는 호사가들(항간에 떠도는 무서운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는 블로거들도 포함된다)은 처음에 밀레가 죽은 아기의 관이 그려진 만종을 그렸다가 친구의 충고(‘그림이 너무 무섭다’)를 듣고 난 후 바구니로 고쳤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밀레의 친구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가 쓴 밀레 전기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달리는 만종을 보면서 불길한 기운을 느꼈고, 만종에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그림들을 그렸다. 달리는 만종에 나오는 인물들과 대상(괭이, 바구니, 외바퀴 수레)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렸.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만종의 저녁놀 풍경은 달리의 그림에서는 황량한 사막이 된다. 달리는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환상적인 풍경을 표현하여 초자연적인 숭고함을 전달하려고 했다. 거대한 사막으로 표현된 상상의 공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간의 이성은 나약하고 초라하다. 만종을 패러디한 달리의 그림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가 그린 풍경화의 초현실주의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 박서보 엮음 밀레(재원, 2003)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 2005)

* [절판] 박홍규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 2005)

 

 

 

 

반 고흐와 달리의 생애와 예술을 소개한 책들은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밀레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적다. 게다가 그 책들 대부분은 절판되었다. 창해 ABC’ 시리즈로 나온 밀레백과사전 형식으로 편집된 문고본이다. 재원 출판사의 밀레는 도판집이다. 아무래도 도판집의 특성상 작품에 대한 해설이 많지 않다. 미술사학자 노성두 외에 여러 명의 필자가 참여한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은 밀레와 그의 절친한 동료 화가들이 속한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에 관한 책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박홍규 교수의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는 밀레와 반 고흐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밀레의 그림이 반 고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참고하면 된다. 앞서 언급한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가난한 무명 화가 밀레를 일약 스타 화가로 올려놓게 한 책이다. 그러나 상시에는 밀레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림이 잘 팔리려면 고객에게 화가와 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결국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밀레의 그림을 상품으로 알리려고 만들어진 전기로 위장한 광고인 셈이다. 따라서 후대의 연구자들은 상시에를 밀레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은인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레의 그림을 팔기 위해 화가의 독창성을 막은 상업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도 상시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상시에는 밀레의 작품을 팔기 위해 밀레 신화를 꾸며 낸 장본인이다. 상시에는 밀레를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인물로 묘사했는데 실제 밀레의 성격은 전기에서 묘사된 모습과 다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100% 신뢰하면서 읽지 않는 것이 좋다.

 

 

 

 

 

Trivia

      

* 달리 명작 400134쪽에 황혼의 자폐증이라는 제목의 그림 도판이 있다. 밀레의 만종을 패러디한 그림인데, 황혼의 자폐증은 오역이다. 원제는 ‘Atavism at Twilight’이다. ‘Atavism’격세유전을 뜻하는 단어다. 따라서 올바른 작품명은 황혼의 격세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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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0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게 다 절판됐구나. 다시 나오지도 않네.ㅠ
대단하고 부럽다.

cyrus 2020-03-04 22:57   좋아요 0 | URL
세 권 모두 알라딘 서점,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매했어요. ^^

2020-03-04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4 23:01   좋아요 0 | URL
‘해설 없는 그림 감상’에 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줘요. 하지만 해설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거예요.

저도 신경숙의 소설을 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 소설 표지에 있는 그림이 달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어요. ^^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서양 편)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지음, 마도경 옮김 / 사일런스북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11일이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면도를 안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원래 이틀에 한 번씩은 면도한다. 면도하지 않으면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난다. 내 피부가 하얘서 수염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자주 면도를 한다. 어제 친한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녀석도 거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녀석도 면도를 안 하고 있다면서 셀카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줬다. 이 친구는 나보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지 구레나룻도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체격이 크다. 이대로 수염이 쭉쭉 자란다면 두 달 뒤에 그는 임꺽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면도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질문이다. 면도가 과연 역사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남성의 외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염과 그것을 제거하는 면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수염과 면도를 다시 보게 된다.

 

저자는 수염 기르는 행위와 면도를 단순히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얼굴은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의 조건 또는 남성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읽을 수 있는 지표. 수염과 면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수염 기르는 행위를 개인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입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수염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론 지도자의 권위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면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엄청 오래됐다. 면도를 시작한 최초의 인류는 고대 수메르와 이집트의 남성들이다. 고대인들이 면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신분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왕족과 귀족은 수염을 길렀으며 성직자들은 면도했다. 왕족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면, 성직자는 신성한 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불손한 수염과 털을 말끔히 제거했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인 파라오(Pharaoh)는 유일하게 턱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귀족은 함부로 턱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이집트 여왕도 수염이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비에서 파라오가 된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가짜 턱수염을 달았다. 이렇듯 수염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인식은 수염의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첫 번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수염 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인식도 변한다. 고대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도 수염의 상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그러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등장하면서 수염에 대한 고대 남성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알렉산드로스는 면도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도 면도하게 되고,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영토에 사는 남성들도 수염을 밀었다. 그 후 400년 동안 면도는 남성 얼굴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다 흉상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의 외모는 수염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청년의 말끔한 얼굴이다. 과거에 수염이 있는 남성이 존경을 받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시대에 이르면서 면도한 남성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턱수염을 선호하는 시대가 찾아오긴 했으나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유행을 따르지 않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남성 철학자들은 턱수염이야말로 남성성과 남성미를 드러내는 진정한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들도 수염을 옹호한다. 고대 및 중세의 종교인들은 왕족만 수염을 기를 수 있었던 과거를 소환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가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남성적인 권위를 높이기 위해 수염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턱수염이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聖畫)가 유행한다. 종교인들이 턱수염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예수의 권위는 한층 더 높아지고,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의 지배력은 강화된다.

 

유럽 남자들이 다시 수염을 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이후다. 저자는 턱수염이 퇴조하는 시기가 계몽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여전히 수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염과 권위적인 남성성을 동일하게 생각했다. 특히 황제의 얼굴이 어떻게 생기느냐에 따라서 남성들의 수염 스타일은 달라졌다.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éon)17세기 이후 유럽에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군주다(그의 큰아버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유럽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고 싶었던지 항상 수염이 없는 얼굴을 유지했다). 프랑스 남성들은 루이 나폴레옹처럼 턱수염을 길렀다. 턱수염이 남성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면도한 남성이 멋진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대중은 깔끔하게 면도한 남자를 선호하게 되고, 수염은 예술가 또는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된다.

 

수염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정 투쟁의 역사에 더 가깝다. ‘투쟁의 역사로 본다면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과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서로서로 비방하면서 공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염의 역사를 인정 투쟁의 역사로 보면 서로 다른 두 세력의 관계 양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을 제압하기보다는 그들의 남성성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은 수염과 남성성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의 입장과 비교하게 되고, 수염의 중요성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 두 세력은 서로서로 남성성을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수염과 면도를 둘러싼 오랜 인정 투쟁의 역사는 남성성의 정의와 남성 얼굴의 스타일이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Trivia

 

 

*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약간의 인간미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의 화가는 그리스도에게 중간 길이의 평범한 턱수염을 부여하여 이 작업을 용케 해낸 셈이다. (115)

 

약간의 인간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써야 한다.

 

 

* 히틀러의 절친한 여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훗날 한 장의 종이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름이 우호적 관계로 함께 묶여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돌발사태였다라고 고백했다. (342)

 

히틀러(Hitler)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남자.

 

 

* 닐 암스트롱과 부즈 올드린은 짧게 깎은 머리로 달에 도착했으나 [생략] (356)

 

버즈 올드린(Buzz Aldrin)으로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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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3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재미있겠는데요.. ㅎㅎ

cyrus 2020-03-04 14:50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심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3-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대가 변하면서 무엇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요즘 코로나19도 우리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지요.

cyrus 2020-03-04 14:52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사람들은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을 것입니다. ^^;;

2020-03-05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론테 자매(Brontë sisters)는 소설가로 잘 알려졌지만, 세 사람 모두 시를 썼다. 세 자매는 자신들이 쓴 시 61편을 모아 1846년에 시집을 가명으로 출판한다. 하지만 세 자매는 시집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자비로 출판한다. 이때 그녀들이 사용한 가명은 커러 벨(Currer Bell=샬럿), 엘리스 벨(Ellis Bell=에밀리), 액튼 벨(Acton Bell=)이다. 그녀들의 시가 당시 독자들이 선호하는 문학 유행과 맞지 않은 탓인지 시집은 두세 권만 팔렸다고 한다.

    

 

 

 

 

 

 

 

 

 

 

 

 

 

 

 

* 에밀리 브론테 상상력에게(민음사, 2020)

* 박영희 엮음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찬란한 숲을 그대와(봄날에, 2019)

    

 

 

세 자매 중 가장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였다. 최근에 신간으로 그녀의 시 선집이 나왔다. 제목은 상상력에게(민음사)이다. 이 시 선집에는 표제가 된 상상력에게를 포함한 총 5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작년에 개정판으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찬란한 숲을 그대와(봄날에)가 출간되었는데, 19세기와 20세기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시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판된 상태였다. 이 시집에 샬럿의 시 5, 에밀리의 시 8, 앤의 시 4편이 실려 있다.

    

 

 

 

 

 

 

 

 

 

 

 

 

 

 

 

* 앤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현대문화센터, 2007)

    

 

 

앤 브론테(Anne Brontë)는 생전에 두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 1847)와일드펠 홀의 소작인(The Tenant of Wildfell Hall, 1848)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앤의 소설은 아그네스 그레이(현대문화센터)가 유일하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앤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 [DVD]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 앤 브론테 원작 BBC TV시리즈 마스터피스 컬렉션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은 이 소설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아그네스 그레이만큼이나 국외 영문학 연구자들이 주목한 소설이며 영국 BBC에서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두 차례(1968, 1996)방영되었다.

    

 

 

 

 

 

 

 

 

 

 

 

 

 

 

* 피터 박스올 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마로니에북스, 2017)

 

 

100명의 국제적인 필자 집단이 선정한 책들을 소개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마로니에북스)에 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아그네스 그레이가 아닌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이 포함되어 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다룬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아메리칸 리뷰의 표현을 빌리면 이 작품은 벌거벗은 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였으며, 영원히 영어로 활자화되기를 원하지 않은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어쨌든 이 소설은 매우 잘 팔렸으며, 재판의 서문에 앤 브론테는(액튼 벨이라는 남성 필명을 사용해서) 이러한 비판에 대한 변론을 실었다. 악과 악인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쓰여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방탕한 남자와 결혼한 젊은 여인이 그를 개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은 아버지의 타락에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내용으로, 서간과 일기를 통해 대부분 여주인공 헬렌 헌팅던의 시점에서 기혼 여성이 법적 권리를 거의 가질 수 없었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메이 싱클레어(1862~1946, 영국의 작가)1913년에 이렇게 말했다. 남편의 면전에서 헬렌이 침실 문을 쾅 닫은 소리는 빅토리아 영국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도 현대의 독자들에게 울려 퍼지고 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대담한 주제와 묘사는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도 지적할 정도로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샬럿은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주제는 앤의 본성에서 벗어난 소름 끼치는 것이라고 평했다.

 

 

 

 

 

 

 

 

 

 

 

 

 

 

 

 

 

 

* 찰스 킹슬리 물의 아이들(시공주니어, 2006)

 

 

 

 

그러나 물의 아이들의 작가이자 목사인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호평했으며 오히려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꼬집었다. 그는 추악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의 모습, 즉 이런 끔찍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 소설이 많지 않았다면서 영국 사회는 앤을 비웃으면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앤이 악과 악인을 표현하는 작가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본인이 굳게 믿어온 작가의 의무를 아그네스 그레이에서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여성 가정교사의 척박한 삶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박대하는 상류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앤은 아그네스라는 화자의 입을 통해서 부유한 고용인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여성 가정교사의 상황을 전달한다. 그래서 아그네스 그레이를 읽으면 마치 고용인과 그 가족들을 관찰하는 여성 가정교사가 기록한 보고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앤의 글쓰기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아그네스 그레이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앤이 글을 쓰면서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의무를 알지 못해서 나오는 부당한 평가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나온 19세기 영국 사회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순수한 본성을 지닌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있었다. 아그네스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고용인 자녀들의 못된 행동들을 상세히 언급한다. 실제로 앤은 가정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아그네스 그레이는 작가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가정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고용인 자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아그네스 그레이악을 표현하는 작가의 의무를 그대로 보여준 소설이다. 앤은 이 소설을 통해 동화에 나올 법한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을 믿는 기성 사회의 인식이 허상임을 보여준다. 또 자녀들이 무조건 착하다고 믿는 고용인 부모의 어설픈 교육관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아그네스 그레이와일드펠 홀의 소작인계급, 교육, 여성 차별 등에 대한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 이런 두 편의 소설을 재미없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면서 무시하고 외면한 사람들은 앤 브론테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소설을 출간할 생각을 하지 않는 국내 출판업계는 반성해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만 펴낼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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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3-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저는 무식하게도 에밀리와 샬럿 브론테만 알고 있었어요~~
브론테자매에 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항상 독서의 지평을 넓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지식을 입력시켜주시는
cyrus 님께 감사드려요^^

cyrus 2020-03-03 19:08   좋아요 1 | URL
저도 한때 무식했어요. 샬럿과 에밀리가 너무 유명해서 앤의 존재를 잊어버렸거든요. <아그네스 그레이>를 몇 년 전에 사놓고 안 읽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 쉬게 되면서 읽었습니다...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0-03-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자매가 다 글을 잘 쓰다니, 역시 유전자의 힘은 세군요.

민음사의 상상력에게, 가 탐나는군요.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cyrus 2020-03-04 14:54   좋아요 1 | URL
브론테 자매의 능력에는 문학에 대한 관심과 글을 쓰려는 노력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
 
아그네스 그레이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2
앤 브론테 지음, 문희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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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많이 언급되는 제인 에어(Jane Eyre)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여러 번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을 만큼 유명하다. 고아 소녀의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을 그린 제인 에어와 황량한 들판 위에 자리 잡은 외딴 저택을 무대로 한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인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문학과 독서를 좋아하는 소녀들은 이 두 편의 소설을 쓴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를 흠모하기도 했다.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1847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샬럿과 브론테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한다. 여기서 대부분 사람이 의외로 잘 잊어버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매로 알려진 브론테 자매는 세 명이다. 세 자매 중 막내인 앤 브론테(Anne Bronte)1847년에 두 언니와 함께 가명으로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를 발표한다. 그러나 앤 브론테가 쓴 이 소설 제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은 어린 독자를 위한 축약판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국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소설이다. 반면 막내가 쓴 소설의 번역본은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책, 이 한 권이 전부다. 두 언니의 국제적 · 국내 위상과 오십 종이 넘는 국내 번역본 수를 비교하면 막내의 소설은 초라하게 보인다. 누군가는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두 언니의 대표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나는 세 자매의 소설이 모두 선정된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올해는 앤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녀가 두 언니의 명성의 반 정도 있었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아그네스 그레이번역본이 나왔을 것이다. 앤은 117일에 태어났는데 그녀의 탄생일에 맞추어 아그네스 그레이새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올해 안으로 아그네스 그레이새 번역본이 나올지, 아니면 앤의 또 다른 작품(그녀가 죽기 전에 쓴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이 소설도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명작이다)이 번역되어 나오는지 내가 두고 본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나는 이 소설이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포함할 자격이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로 아그네스 그레이쉽게 읽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 아그네스 그레이는 가정교사(governess). 앤 은 이 소설에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서 가장 흔한 직업 중 하나로 알려진 가정교사의 생활상과 사회적 지위를 아주 정직하게 보여준다. 제인 에어에도 가정교사가 활동하는 제인 에어의 모습이 나오는데, 앤의 정직한 글쓰기는 제인 에어와 비교하면 평범하면서도 심심하다. 제인 에어는 독자를 흡입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반면에 아그네스 그레이는 독자를 흥분하게 만들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앤은 두 언니와 비교하면 소설의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필력이 조금 모자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아그네스 그레이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작용한다. 아그네스 그레이에서는 주인공을 둘러싼 시시콜콜한 사건들이 언급되지 않아서 독자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앤은 가정교사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정교사의 삶과 애환을 최대한 정제해서 표현한다. 그래서 아그네스 그레이를 읽는 독자는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그네스 그레이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줄거리가 단순해서 평범하다는 이유만으로 아그네스 그레이가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소설에 동물권(animal rights)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그네스가 가르치는 톰 블룸필드(Tom Bloomfield)는 부유한 집안에 자란 아이지만, 성질이 고약하며 아그네스를 무례하게 대한다. 그는 정원에서 사냥한 새를 아주 잔인하게 죽인다. 아그네스는 동물을 괴롭히면서 죽이는 톰의 버릇이 잘못된 행동임을 알리기 위해 새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톰의 어머니와 그의 삼촌은 오히려 아이의 행동을 옹호한다. 톰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면서 아들을 꾸짖는 아그네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자 아그네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We have no right to torment them for our amusement)라고 응수한다. 그녀가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은 아그네스 그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를 결혼에 성공하는 가정교사의 사랑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 된다. 너무 일관된 평가는 아그네스 그레이의 또 다른 진가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그네스 그레이제인 에어폭풍의 언덕처럼 페미니즘 비평으로 독해할 수 있는(혹은 자주 독해해야 하는) 소설이다. 그러므로 아그네스 그레이는 독자, 특히 페미니스트가 반드시 알아야 할 소설이다. 인간에게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 아그네스의 대사는 인간 중심의 페미니즘을 넘어 동물권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의제와 맞닿아 있다. 아그네스는 가정교사로 고용되기 위해서 만든 자신의 광고에 휴가를 보장하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당시 영국의 가정교사는 중류 계층과 상류 계층 여성이 선호하는 인기 직업이었지만, 현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불안정한 직업이기도 했다. 가정교사는 고용인이 사는 집에 지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고용인의 집안 분위기마다 다른데, 종종 소설에 나오는 톰의 어머니처럼 고용인은 가정교사를 하대할 뿐만 아니라 여성 가정교사의 지도력을 의심한다. 그렇다 보니 가정부와 유모, 하녀가 여성 가정교사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여성 가정교사가 고용인에게 자신의 휴가를 보장해주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대담한 일이다. 아그네스가 ()의 위치에 있는 고용인들에게 공개한 계약 조건은 여성 근로자 및 노동자의 유급 휴가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 지금까지 일독할만한 고전으로 알려져야 할 아그네스 그레이의 매력을 모조리 알려 줬다. 책을 좋아하는 동지들이여, 그래도 이 소설을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그네스 그레이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로서 언니들의 유명세에 오랫동안 가려진 앤 브론테의 위상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진다. 형만 한 아우는 없다라고 해서 언니만 한 여동생은 없다라는 말도 성립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브론테 자매를 보라, 언니만 한 여동생이 있다.

 

 

 

 

Trivia

 

 

  부인은 아들의 정직함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터라 톰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릴 터였다. (43)

 

철썩같이는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철석같이라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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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0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있는 <아그네스 그레이>도 2007년판이예요. 이것만 있나봐요.

cyrus 2020-03-03 12:29   좋아요 0 | URL
네, 안젤라님 가지고 있는 책이 제가 읽은 것과 같은 거예요. ^^;;
 

 

 

 

이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10~20대는 핼러윈(Halloween)을 생각할 것이고 중년층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켈트인(Celts)의 축제에서 유래한 핼러윈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핼러윈이 111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에 하는 축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성절은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만성절을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크리스마스(Christmas)가 무슨 날인지 잘 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라고 한다. ‘Halloween’은 성인(聖人)을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Hallow’와 전야(前夜)를 뜻하는 ‘Eve’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그래서 만성절을 ‘All Hallows’ Day’ 또는 ‘Hallowmas’라고도 한다. 만성절의 원래 날짜는 513일이었다. 8세기에 활동한 그레고리우스 3(Gregorius )교황이 만성절의 날짜를 111일로 변경했다.

 

고대의 핼러윈은 농민들의 축제였다. 농업과 목축업을 하던 켈트인은 1031일을 한 해의 마지막 날로 봤고, 그날에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켈트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불청객인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불을 피웠다. 교회는 켈트인의 토속신앙과 축제를 이교의 풍속으로 규정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만성절을 지정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112일을 만령절(All Souls’ Day)로 지정했다. 이날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거행한다.

    

 

 

 

 

 

 

 

 

 

 

 

 

 

 

 

* [e-Book] 이디스 네스빗 등신대의 대리석상(올푸리, 2019)

* [e-Book] 이디스 네스빗 살아있는 조각상(이북코리아, 2017)

    

 

 

영국의 작가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단편소설 등신대의 대리석상(Man-Size in Marble, 1893)은 만성절에 일어난 기이하고도 무서운 현상을 경험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와 그의 부인의 보금자리가 있는 한적한 마을에 무서운 소문이 떠돈다. 그 소문에 따르면 만성절 전날이면 교회에 있는 대리석상이 움직인다. 살아있는 대리석상을 마주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리석상은 과거 마을에 살았던 악한들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리석상에 악마나 다름없는 그들의 영혼이 들어있고, 핼러윈에 그들은 깨어나 자신들이 살던 집으로 간다. 하필 재수 없게도 악한들이 살았던 집은 남자와 부인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대리석상은 핼러윈이 아닌 만성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인에 대항하는 악마답게 대리석상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악행을 저지른다.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10)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08)

* [절판] 해럴드 블룸 엮음 겨울 사자(생각의나무, 2007)

 

    

 

등신대의 대리석상이 만성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을 묘사한 이야기라면, 미국의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단편소설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 1937)만령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 워튼의 공포소설 여덟 편을 선별한 거울(생각의나무)에 포함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만령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만령제는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직접 선별하면서 엮은 시와 단편 모음집 중 하나인 겨울 사자(생각의나무)에 수록되어 있다.

 

모든 영혼의 날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새러 클레이번화이트게이트라는 저택에 거주하는 귀부인이다. 만령절에 새러는 산책하다가 낯선 여인을 만난다. 새러는 처음 보는 그 여인에게 화이트게이트에 가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면서 말을 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그렇다라고 짧게 대답하면서 지나간다. 그 여인을 만난 지 몇 분 후에 새러는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삔다. 이로 인해 새러는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여러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살고 있어서 새러는 큰 불편함 없이 지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한 화이트게이트는 조용한 공포의 무대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모든 하인과 하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집에 있는 난방장치와 전기제품의 작동이 멈춘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한 저택이 된 화이트게이트. 새러는 그곳에 고립되고 만다. 어둠과 침묵에 지배당한 저택 안에 홀로 남은 새러는 공포를 느낀다. 그 사건을 겪은 지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러는 미지의 여인의 정체가 만령절에 깨어난 마녀이며 그녀를 만난 뒤에 화이트게이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 아서 코난 도일 J. 하버쿡 젭슨의 진술(북스피어, 2014)

 

    

 

모든 영혼의 날은 안락한 집이 한순간에 공포의 장소로 변해버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 현상에 압도당해 두려워하는 인간의 감정까지 잘 묘사한 이디스 워튼의 수작이다. 모든 영혼의 날배니싱(Vanishing)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배니싱이란 특정 인물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가장 유명한 배니싱은 19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메리 셀러스트 호(Mary Celeste) 사건이다.

 

187211월에 화물선 메리 셀러스트는 알코올 원액을 싣고 미국 뉴욕에서 출항하여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한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화물선이 폭풍을 만나 침몰했거나 해적을 만나 나포되었을 거로 추측했다. 메리 셀러스트 호가 출항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 영국 상선은 북대서양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는 배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그 배가 메리 셀러스트 호였다. 그런데 배에 탔던 선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선원들은 실종되었다.  

 

호사가들은 메리 셀러스트 호에 탑승한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들을 내놓았다. 1884년에 어느 익명의 작가가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은 J. 허버쿡 젭슨의 진술(J. Habakuk Jephson’s Statement)이다. 이 소설은 진술서 형식으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을 정도였다. 이 소설을 쓴 익명의 작가는 명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를 만들어 낸 추리 작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다.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은 배니싱을 소재로 한 공포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하나의 공통점은 현대 독자들이 비판할 수 있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배니싱을 일으킨 존재는 외국인또는 흑인과 혼혈인의 모습이다. 모든 영혼의 날에서 새러는 낯선 여인이 외국인 같은 이상한 억양을 한다고 증언한다. J. 허버쿡 젭슨의 진술에는 흑인과 혼혈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백인의 인종주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작품 속에 언급되는 가상의 진술서에 따르면 백인에게 오랫동안 학대받은 혼혈인이 사라진 배에 탑승한 백인들을 살해했으며 그 배에 탔던 흑인 선원은 공범이다. 당시 독자들이 소설에 나오는 허구적인 내용을 진짜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영국 백인들은 흑인’, ‘백인이 아닌 이방인을 배척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인들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소설에서 악마 또는 괴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의 한계는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 공포소설뿐만 아니라 인종주의가 더욱 심했던 20세기 초중반에 나온 공포소설(가장 대표적인 문제의 작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그의 소설에는 인종차별적인 문장이 종종 나온다)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부정적인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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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3-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로윈을 전에는 만성절전야라고도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만성절보다 할로윈이 더 유명해진듯 합니다. 만령절은 생소했는데 설명을 읽으니 매년 돌아오는 11월 첫 주 미사가 생각났어요.
cyrus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20-03-03 12:30   좋아요 1 | URL
안부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저는 지금 외출을 하지 못할 뿐 잘 살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카스피 2020-03-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성절과 만녕절이라 cyrus님 덕분에 새로운것을 일게되었네요😙

cyrus 2020-03-04 14:57   좋아요 0 | URL
가끔 서양 문학 고전을 읽다가 기독교와 관련된 용어를 보게 돼요. 저는 무교라서 기독교 관련 용어의 의미를 몰라요. 그래서 용어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