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10~20대는 핼러윈(Halloween)을 생각할 것이고 중년층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켈트인(Celts)의 축제에서 유래한 핼러윈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핼러윈이 111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에 하는 축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성절은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만성절을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크리스마스(Christmas)가 무슨 날인지 잘 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라고 한다. ‘Halloween’은 성인(聖人)을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Hallow’와 전야(前夜)를 뜻하는 ‘Eve’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그래서 만성절을 ‘All Hallows’ Day’ 또는 ‘Hallowmas’라고도 한다. 만성절의 원래 날짜는 513일이었다. 8세기에 활동한 그레고리우스 3(Gregorius )교황이 만성절의 날짜를 111일로 변경했다.

 

고대의 핼러윈은 농민들의 축제였다. 농업과 목축업을 하던 켈트인은 1031일을 한 해의 마지막 날로 봤고, 그날에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켈트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불청객인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불을 피웠다. 교회는 켈트인의 토속신앙과 축제를 이교의 풍속으로 규정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만성절을 지정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112일을 만령절(All Souls’ Day)로 지정했다. 이날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거행한다.

    

 

 

 

 

 

 

 

 

 

 

 

 

 

 

 

* [e-Book] 이디스 네스빗 등신대의 대리석상(올푸리, 2019)

* [e-Book] 이디스 네스빗 살아있는 조각상(이북코리아, 2017)

    

 

 

영국의 작가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단편소설 등신대의 대리석상(Man-Size in Marble, 1893)은 만성절에 일어난 기이하고도 무서운 현상을 경험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와 그의 부인의 보금자리가 있는 한적한 마을에 무서운 소문이 떠돈다. 그 소문에 따르면 만성절 전날이면 교회에 있는 대리석상이 움직인다. 살아있는 대리석상을 마주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리석상은 과거 마을에 살았던 악한들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리석상에 악마나 다름없는 그들의 영혼이 들어있고, 핼러윈에 그들은 깨어나 자신들이 살던 집으로 간다. 하필 재수 없게도 악한들이 살았던 집은 남자와 부인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대리석상은 핼러윈이 아닌 만성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인에 대항하는 악마답게 대리석상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악행을 저지른다.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10)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08)

* [절판] 해럴드 블룸 엮음 겨울 사자(생각의나무, 2007)

 

    

 

등신대의 대리석상이 만성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을 묘사한 이야기라면, 미국의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단편소설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 1937)만령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 워튼의 공포소설 여덟 편을 선별한 거울(생각의나무)에 포함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만령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만령제는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직접 선별하면서 엮은 시와 단편 모음집 중 하나인 겨울 사자(생각의나무)에 수록되어 있다.

 

모든 영혼의 날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새러 클레이번화이트게이트라는 저택에 거주하는 귀부인이다. 만령절에 새러는 산책하다가 낯선 여인을 만난다. 새러는 처음 보는 그 여인에게 화이트게이트에 가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면서 말을 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그렇다라고 짧게 대답하면서 지나간다. 그 여인을 만난 지 몇 분 후에 새러는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삔다. 이로 인해 새러는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여러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살고 있어서 새러는 큰 불편함 없이 지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한 화이트게이트는 조용한 공포의 무대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모든 하인과 하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집에 있는 난방장치와 전기제품의 작동이 멈춘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한 저택이 된 화이트게이트. 새러는 그곳에 고립되고 만다. 어둠과 침묵에 지배당한 저택 안에 홀로 남은 새러는 공포를 느낀다. 그 사건을 겪은 지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러는 미지의 여인의 정체가 만령절에 깨어난 마녀이며 그녀를 만난 뒤에 화이트게이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 아서 코난 도일 J. 하버쿡 젭슨의 진술(북스피어, 2014)

 

    

 

모든 영혼의 날은 안락한 집이 한순간에 공포의 장소로 변해버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 현상에 압도당해 두려워하는 인간의 감정까지 잘 묘사한 이디스 워튼의 수작이다. 모든 영혼의 날배니싱(Vanishing)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배니싱이란 특정 인물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가장 유명한 배니싱은 19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메리 셀러스트 호(Mary Celeste) 사건이다.

 

187211월에 화물선 메리 셀러스트는 알코올 원액을 싣고 미국 뉴욕에서 출항하여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한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화물선이 폭풍을 만나 침몰했거나 해적을 만나 나포되었을 거로 추측했다. 메리 셀러스트 호가 출항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 영국 상선은 북대서양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는 배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그 배가 메리 셀러스트 호였다. 그런데 배에 탔던 선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선원들은 실종되었다.  

 

호사가들은 메리 셀러스트 호에 탑승한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들을 내놓았다. 1884년에 어느 익명의 작가가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은 J. 허버쿡 젭슨의 진술(J. Habakuk Jephson’s Statement)이다. 이 소설은 진술서 형식으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을 정도였다. 이 소설을 쓴 익명의 작가는 명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를 만들어 낸 추리 작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다.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은 배니싱을 소재로 한 공포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하나의 공통점은 현대 독자들이 비판할 수 있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배니싱을 일으킨 존재는 외국인또는 흑인과 혼혈인의 모습이다. 모든 영혼의 날에서 새러는 낯선 여인이 외국인 같은 이상한 억양을 한다고 증언한다. J. 허버쿡 젭슨의 진술에는 흑인과 혼혈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백인의 인종주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작품 속에 언급되는 가상의 진술서에 따르면 백인에게 오랫동안 학대받은 혼혈인이 사라진 배에 탑승한 백인들을 살해했으며 그 배에 탔던 흑인 선원은 공범이다. 당시 독자들이 소설에 나오는 허구적인 내용을 진짜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영국 백인들은 흑인’, ‘백인이 아닌 이방인을 배척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인들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소설에서 악마 또는 괴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의 한계는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 공포소설뿐만 아니라 인종주의가 더욱 심했던 20세기 초중반에 나온 공포소설(가장 대표적인 문제의 작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그의 소설에는 인종차별적인 문장이 종종 나온다)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부정적인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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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3-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로윈을 전에는 만성절전야라고도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만성절보다 할로윈이 더 유명해진듯 합니다. 만령절은 생소했는데 설명을 읽으니 매년 돌아오는 11월 첫 주 미사가 생각났어요.
cyrus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20-03-03 12:30   좋아요 1 | URL
안부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저는 지금 외출을 하지 못할 뿐 잘 살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카스피 2020-03-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성절과 만녕절이라 cyrus님 덕분에 새로운것을 일게되었네요😙

cyrus 2020-03-04 14:57   좋아요 0 | URL
가끔 서양 문학 고전을 읽다가 기독교와 관련된 용어를 보게 돼요. 저는 무교라서 기독교 관련 용어의 의미를 몰라요. 그래서 용어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