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테 자매(Brontë sisters)는 소설가로 잘 알려졌지만, 세 사람 모두 시를 썼다. 세 자매는 자신들이 쓴 시 61편을 모아 1846년에 시집을 가명으로 출판한다. 하지만 세 자매는 시집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자비로 출판한다. 이때 그녀들이 사용한 가명은 커러 벨(Currer Bell=샬럿), 엘리스 벨(Ellis Bell=에밀리), 액튼 벨(Acton Bell=앤)이다. 그녀들의 시가 당시 독자들이 선호하는 문학 유행과 맞지 않은 탓인지 시집은 두세 권만 팔렸다고 한다.
* 에밀리 브론테 《상상력에게》 (민음사, 2020)
* 박영희 엮음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찬란한 숲을 그대와》 (봄날에, 2019)
세 자매 중 가장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였다. 최근에 신간으로 그녀의 시 선집이 나왔다. 제목은 《상상력에게》(민음사)이다. 이 시 선집에는 표제가 된 『상상력에게』를 포함한 총 5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작년에 개정판으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찬란한 숲을 그대와》(봄날에)가 출간되었는데, 19세기와 20세기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시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판된 상태였다. 이 시집에 샬럿의 시 5편, 에밀리의 시 8편, 앤의 시 4편이 실려 있다.
* 앤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 (현대문화센터, 2007)
앤 브론테(Anne Brontë)는 생전에 두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 1847)와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The Tenant of Wildfell Hall, 1848)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앤의 소설은 《아그네스 그레이》(현대문화센터)가 유일하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앤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 [DVD]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 앤 브론테 원작 BBC TV시리즈 마스터피스 컬렉션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은 이 소설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아그네스 그레이》만큼이나 국외 영문학 연구자들이 주목한 소설이며 영국 BBC에서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두 차례(1968년, 1996년)방영되었다.
* 피터 박스올 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마로니에북스, 2017)
100명의 국제적인 필자 집단이 선정한 책들을 소개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마로니에북스)에 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아그네스 그레이》가 아닌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이 포함되어 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다룬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아메리칸 리뷰』의 표현을 빌리면 이 작품은 “벌거벗은 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였으며, 영원히 영어로 활자화되기를 원하지 않은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어쨌든 이 소설은 매우 잘 팔렸으며, 재판의 서문에 앤 브론테는(액튼 벨이라는 남성 필명을 사용해서) 이러한 비판에 대한 변론을 실었다. 즉 “악과 악인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쓰여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방탕한 남자와 결혼한 젊은 여인이 그를 개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은 아버지의 타락에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내용으로, 서간과 일기를 통해 대부분 여주인공 헬렌 헌팅던의 시점에서 기혼 여성이 법적 권리를 거의 가질 수 없었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메이 싱클레어(1862~1946, 영국의 작가)는 1913년에 이렇게 말했다. “남편의 면전에서 헬렌이 침실 문을 쾅 닫은 소리는 빅토리아 영국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도 현대의 독자들에게 울려 퍼지고 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대담한 주제와 묘사는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도 지적할 정도로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샬럿은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주제는 앤의 본성에서 벗어난 소름 끼치는 것’이라고 평했다.
* 찰스 킹슬리 《물의 아이들》 (시공주니어, 2006)
그러나 《물의 아이들》의 작가이자 목사인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는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호평했으며 오히려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꼬집었다. 그는 추악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의 모습, 즉 이런 끔찍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 소설이 많지 않았다면서 영국 사회는 앤을 비웃으면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앤이 ‘악과 악인을 표현하는 작가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본인이 굳게 믿어온 작가의 의무를 《아그네스 그레이》에서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여성 가정교사의 척박한 삶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박대하는 상류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앤은 아그네스라는 화자의 입을 통해서 부유한 고용인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여성 가정교사의 상황을 전달한다. 그래서 《아그네스 그레이》를 읽으면 마치 고용인과 그 가족들을 관찰하는 여성 가정교사가 기록한 보고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앤의 글쓰기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아그네스 그레이》를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앤이 글을 쓰면서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의무’를 알지 못해서 나오는 부당한 평가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나온 19세기 영국 사회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순수한 본성을 지닌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있었다. 아그네스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고용인 자녀들의 못된 행동들을 상세히 언급한다. 실제로 앤은 가정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아그네스 그레이》는 작가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가정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고용인 자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아그네스 그레이》는 ‘악을 표현하는 작가의 의무’를 그대로 보여준 소설이다. 앤은 이 소설을 통해 동화에 나올 법한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을 믿는 기성 사회의 인식이 허상임을 보여준다. 또 자녀들이 무조건 착하다고 믿는 고용인 부모의 어설픈 교육관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아그네스 그레이》와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계급, 교육, 여성 차별 등에 대한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 이런 두 편의 소설을 ‘재미없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면서 무시하고 외면한 사람들은 앤 브론테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소설을 출간할 생각을 하지 않는 국내 출판업계는 반성해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만 펴낼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