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과 남자에 관하여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서양 편)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지음, 마도경 옮김 / 사일런스북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11일이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면도를 안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원래 이틀에 한 번씩은 면도한다. 면도하지 않으면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난다. 내 피부가 하얘서 수염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자주 면도를 한다. 어제 친한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녀석도 거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녀석도 면도를 안 하고 있다면서 셀카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줬다. 이 친구는 나보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지 구레나룻도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체격이 크다. 이대로 수염이 쭉쭉 자란다면 두 달 뒤에 그는 임꺽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면도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질문이다. 면도가 과연 역사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남성의 외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염과 그것을 제거하는 면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수염과 면도를 다시 보게 된다.

 

저자는 수염 기르는 행위와 면도를 단순히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얼굴은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의 조건 또는 남성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읽을 수 있는 지표. 수염과 면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수염 기르는 행위를 개인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입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수염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론 지도자의 권위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면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엄청 오래됐다. 면도를 시작한 최초의 인류는 고대 수메르와 이집트의 남성들이다. 고대인들이 면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신분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왕족과 귀족은 수염을 길렀으며 성직자들은 면도했다. 왕족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면, 성직자는 신성한 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불손한 수염과 털을 말끔히 제거했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인 파라오(Pharaoh)는 유일하게 턱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귀족은 함부로 턱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이집트 여왕도 수염이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비에서 파라오가 된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가짜 턱수염을 달았다. 이렇듯 수염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인식은 수염의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첫 번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수염 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인식도 변한다. 고대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도 수염의 상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그러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등장하면서 수염에 대한 고대 남성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알렉산드로스는 면도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도 면도하게 되고,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영토에 사는 남성들도 수염을 밀었다. 그 후 400년 동안 면도는 남성 얼굴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다 흉상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의 외모는 수염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청년의 말끔한 얼굴이다. 과거에 수염이 있는 남성이 존경을 받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시대에 이르면서 면도한 남성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턱수염을 선호하는 시대가 찾아오긴 했으나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유행을 따르지 않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남성 철학자들은 턱수염이야말로 남성성과 남성미를 드러내는 진정한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들도 수염을 옹호한다. 고대 및 중세의 종교인들은 왕족만 수염을 기를 수 있었던 과거를 소환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가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남성적인 권위를 높이기 위해 수염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턱수염이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聖畫)가 유행한다. 종교인들이 턱수염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예수의 권위는 한층 더 높아지고,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의 지배력은 강화된다.

 

유럽 남자들이 다시 수염을 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이후다. 저자는 턱수염이 퇴조하는 시기가 계몽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여전히 수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염과 권위적인 남성성을 동일하게 생각했다. 특히 황제의 얼굴이 어떻게 생기느냐에 따라서 남성들의 수염 스타일은 달라졌다.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éon)17세기 이후 유럽에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군주다(그의 큰아버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유럽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고 싶었던지 항상 수염이 없는 얼굴을 유지했다). 프랑스 남성들은 루이 나폴레옹처럼 턱수염을 길렀다. 턱수염이 남성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면도한 남성이 멋진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대중은 깔끔하게 면도한 남자를 선호하게 되고, 수염은 예술가 또는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된다.

 

수염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정 투쟁의 역사에 더 가깝다. ‘투쟁의 역사로 본다면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과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서로서로 비방하면서 공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염의 역사를 인정 투쟁의 역사로 보면 서로 다른 두 세력의 관계 양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을 제압하기보다는 그들의 남성성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은 수염과 남성성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의 입장과 비교하게 되고, 수염의 중요성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 두 세력은 서로서로 남성성을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수염과 면도를 둘러싼 오랜 인정 투쟁의 역사는 남성성의 정의와 남성 얼굴의 스타일이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Trivia

 

 

*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약간의 인간미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의 화가는 그리스도에게 중간 길이의 평범한 턱수염을 부여하여 이 작업을 용케 해낸 셈이다. (115)

 

약간의 인간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써야 한다.

 

 

* 히틀러의 절친한 여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훗날 한 장의 종이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름이 우호적 관계로 함께 묶여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돌발사태였다라고 고백했다. (342)

 

히틀러(Hitler)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남자.

 

 

* 닐 암스트롱과 부즈 올드린은 짧게 깎은 머리로 달에 도착했으나 [생략] (356)

 

버즈 올드린(Buzz Aldrin)으로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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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3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재미있겠는데요.. ㅎㅎ

cyrus 2020-03-04 14:50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심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3-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대가 변하면서 무엇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요즘 코로나19도 우리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지요.

cyrus 2020-03-04 14:52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사람들은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을 것입니다. ^^;;

2020-03-05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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