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호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3
정문규 지음 / 서문당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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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편>은 나온 지 오래 되어도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리즈다. 서문당 출판사는 1968년 12월에 설립되었다. 서문당보다 2년 먼저 나온 출판사가 ‘문예출판사’다. 그만큼 서문당도 역사가 깊다.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편>은 1989년에 ‘피카소 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6권의 책을 펴냈다. 최근에 나온 시리즈가 2010년에 나온 ‘반 고흐’ 2편이다. 47번째 책이 나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서양의 미술 편> 시리즈는 화보집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사진으로 찍은 그림이지만, 강렬한 붓 터치와 묵직한 마티에르(matiere, 질감)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얇고, 책에 실린 작품 수가 많지 않다. 글자 크기가 작다. 글자를 포기하고 그림만 봐야 한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이라서 현재 외래어 표기법과 차이가 있는 단어가 많다. 재판이 발행되었지만, 옛날 외래어 표기는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심지어 초판이 1989년 4월에 나왔는데도 ‘있읍니다’로 쓰고 있었다. 1989년 3월 1일에 현행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전면 시행되었다. 2003년에 발간된 8판에서도 ‘있읍니다’를 ‘있습니다’로 고치지 않았다. ‘반 고흐’ 1편을 보려면 ‘고호’로 검색해야 한다. 지금도 책 제목이 ‘반 고호’로 나온다. ‘고호’를 ‘고흐’로 바꾸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렘브란트나 하르스에 이어 네덜란드 지방의 고전을 바탕으로 강렬한 빛을 갈망한 고호에게 찬란한 색채의 길을 열게 해준다. (7쪽)

 

 

 

이 책의 또 다른 단점은 역자의 불친절한 그림 설명이다. ‘하르스’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1?~1666)를 가리킨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렘브란트와 함께 동시대를 풍미했던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이다. 할스를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반 고흐는 렘브란트, 할스 등 자신이 좋아했던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모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로트렉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 여인은 템버린 가게의 여인인지 직업 모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바로 우리나라의 장고 모양으로 된 의자와 탁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16쪽)

 

문장이 어색하다. 그리고 이 초상화 속 여인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Agostina Segatori)다. 그녀는 카페 겸 선술집 르 탕부랭(le Tambourin)를 운영했고, 한때 고흐와 사귀던 연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카페에 반 고흐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해줬다. 모델 뒤에 그려진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취향을 알 수 있다. 반 고흐는 당시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음주와 흡연을 화폭에 담아 자유로운 영혼과 당찬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이곳에서 두번째의 실의를 맛보았다. 그의 조카 케이에게 실연을 당하고... (36쪽)

 

그의 또 하나의 조카였던, 화가인 모브(Mauve)는 그를 친절히 대해 주었고, 유익한 충고를 해주었다. (37쪽)

 

※ '그'는 반 고흐를 가리킴.

 

 

책 뒤편에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 세계’라는 글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에 오류가 있다. 반 고흐가 짝사랑했던 케이를 ‘조카’라고 썼다. 케이는 반 고흐 외삼촌의 딸이다. 그녀는 고흐의 사촌이다. 그리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 모브(Mauve, 안톤 모베)를 처음에 ‘조카’라고 했다가 그 다음 장에는 ‘종형(사촌 형)’으로 썼다. 안톤 모베는 반 고흐의 사촌 형이다. 반 고흐는 헤이그에서 사촌 안톤 모베에게 그림을 배우며 유화에 입문했다.

 

내가 읽은 책은 2003년에 나온 8판이다. 지금 판매되는 책에 오류와 외래어 표기법이 고쳐졌는지 모르겠다. 착한 가격에 혹해서 이 책을 고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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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21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한 차이고 거의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혜자스럽다˝는 말은 사실 ˝아니, 이 양과 질에 이 가격을?˝ 보다는 ˝아니, 이 가격에 이 양과 질을?˝에 가깝잖아요? 다른 도시락과 비슷한 가격에 양질이 작살이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 책은 정확하게 혜자스럽지는 않네요.
역시 좀 더 비싸게 주더라도 양질에 만족할만한 화집이 낫겠어요.

cyrus 2016-09-21 18:57   좋아요 0 | URL
syo님 말씀을 듣고 보니 표현을 고쳐야겠어요. ‘착한 가격’으로요.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

yureka01 2016-09-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다 보면 국어 맞춤법은 참 고치기가 어렵더군요. 그 출판사 아무래도 편집자가 비정규직 알바생인가 봅니다.

cyrus 2016-09-22 15:26   좋아요 1 | URL
지금보다 열악한 80년대 출판 작업 환경을 생각하면, 그때 나온 책들은 편집 오류가 많아요. 그런데 이걸 고치지 않고 지금까지 버젓이 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내 출판계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은 8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여권 운동그룹에서 내놓는 부정기간행물에서 이를 다루는 정도에 그쳤으나 90년대 들어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서에서부터 국내외의 여성현실을 다룬 보고서, 페미니즘 문학서 등으로 다양했다. 접근방식에 따라 여성문제에 대한 개념과 범주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여성해방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이나 정책은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나 여성이 역사로 진입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역사는 여성을 오랫동안 타자로 규정되었다. 페미니스트이자 역사학자인 거다 러너(Gerda Lerner, 1920~2013)는 여성의 역사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에 의해 여성의 역사가 은폐, 무시됐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성사 분야에서 선도적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유대인 출신인 러너는 40대의 나이로 역사학에 뛰어든다.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은 그녀를 공부하게 만든 동력이다.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사 분야 박사학위과정이 개설된다.

 

러너는 남성들의 ‘선택적 기억’의 희생자였던 여성들에게 역사학의 초점을 맞춘다. 그녀가 생각하는 역사란 “앞선 세대의 경험과 생각을 모아 놓은 기록보존소이자 우리의 집단 기억”이다. 과연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여성 위인은 얼마나 포함돼 있을까. 여성사 연구는 외국에서 9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국내의 경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사에 주목했다. 그러나 기록이나 사진, 유물, 작품 등 여성사연구에 필수적인 1차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은 연구를 더디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여성들의 활발한 활동이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의 역사가 사소하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현행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 여성의 역사를 따로 서술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 사회 전면에 등장한 여성의 ‘역사적 의미’가 남성 중심사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 속에서 이옥수 여사(1931년 출생)[주1]는 역사에서 소외돼 온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이끌어 내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이옥수 여사의 《한국근세여성사화》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시각으로 근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사화(史話)를 정리한 책이다. 이 여사는 거다 러너처럼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가 36세의 나이에 대구일보 수습기자가 되었다. 이 해에 그녀가 키우는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기자 생활 중에 《한국근세여성사화》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을 준비했다. 그녀는 ‘누구나 쉽게 읽는 여성사’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근세여성사화》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어떻게 사셨는지 대부분 여성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야기책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여성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주2]

 

 

이 여사가 《한국근세여성사화》를 쓰기까지 모아둔 원고지의 양이 3,000장 넘는다고 한다. 그녀가 많이 참고한 자료는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글이다.

 

 

 

 

 

상권은 392쪽, 하권은 459쪽이다. 두 권의 책을 펼치면 흑백사진이 나온다. 상권은 개화기 전후에 살았던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고, 하권은 전국여성단체협의회(한국여성단체협의회로 명칭이 변경됨)가 주최한 전국여성대회(1975년 제13회, 1976년 제14회)와 제7차 아시아지역 국제여성대회가 진행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제7차 아시아지역 국제여성대회는 1976년에 우리나라가 주관하여 진행되었고 12개국 여성단체 회원들이 참가했다.

 

상권은 한국 여성과 관련된 풍습, 사건, 활동 등 흥미진진한 사화들로 채워져 있다. 가부장제의 폐단에 억압받고, 불이익을 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은 과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음을 말해 준다. 개화기 이전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집을 가야했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았다. 아무리 나무랄 데 없는 규수라도 시집가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끝이었다. 무자(無子)를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넣어 내쫓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시집간 여자의 가장 큰 꿈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는 일로 귀착됐다. 남편은 아들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한 나머지 우스꽝스러운 풍습을 따르기도 했다.

 

 

 

 

청천강 이북의 서북지방에 아들을 낳게 하는 특이한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은 길마를 자기 등에 얹고 지붕 위에 올라간다. 산모가 진통을 겪으면서 태아를 출산하고 있을 때 지붕에 올라간 남편은 소 울음소리를 낸다. 이렇게 하면 산모가 딸이 아닌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남편이 지붕에 떨어져 다치고, 딸을 낳으면 아내는 시어머니의 원망을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 갓 태어난 딸은 이름을 가지지 못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가 섭섭하다고 해서 손녀 이름을 ‘서운이’, ‘섭섭이’로 대충 짓는다.

 

 

 

 

 

 

 

 

 

상권이 하권보다 재미있다. 상권은 논개, 신사임당, 허난설헌, 윤심덕, 나혜석 등 역사의 한페이지에 장식한 여성들의 생애 및 관련 일화들을 소개했다. 최근 김별아 작가의 소설 덕분에 주목받고 있는 최초의 여성 근대 작가 탄실 김명순 이야기도 있다. 하권은 광복 이후의 여성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대 여성 국회의원 명단과 여성의 직업 실태 등을 조사한 기록들이 정리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화 소개에 중점을 맞추다 보니 고증 오류가 몇 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시기가 친일파 문제가 지금처럼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김활란(최초 이화여대 총장), 박경원(비행사)의 친일 행적에 대한 언급이 적다. 심지어 이 여사는 김활란의 친일 행위가 일제의 압력으로 존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지키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평가한 대목은 문제가 있다. 이 여사는 1971년에 공화당 경북지구부녀부장을 역임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하권에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시기별로 서술했다. 책의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이다. 책의 분량을 일부러 늘리기 위해서 쓴 것일까, 아니면 경북 출신의 이 여사가 박 대통령 시대를 그리워한 것일까? 

 

 

 

 

[주1]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옥수 여사 관련 정보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 여사와 《한국근세여성사화》에 대한 언급이 있는 자료가 1985년에 나온 동아일보와 매일경제 기사뿐이다. 그녀가 지금도 살아있는지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다.

 

[주2] 동아일보. 1985년 4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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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현재도 명예살인이라는게 자행되는 걸 뉴스로 접하곤 합니다. 여자로 태어나는 거 자체가 이미 죄가 되는 사회였으니까요..리뷰 잘 읽었어요....

cyrus 2016-09-21 15:33   좋아요 0 | URL
제주도에 중국인이 일으킨 살인사건, 단순히 보면 여혐 살인사건 같아요.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syo 2016-09-2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를 볼때마다 cyrus님의 저력에 감탄합니다....

cyrus 2016-09-21 15:34   좋아요 0 | URL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요. ^^;;
 
옛날 책도 가끔은 쓸모가 있지 - 옛 사람들이 알려주는 인생의 기술
엘리자베스 아치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스윙밴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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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 사이에서 가면올빼미로 알려진 여자 예언가들이 젊음을 되찾기 위해 아기들 피를 뽑았다고 하는, 흔하게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가 있다. 이 여자들은 마치 거머리처럼 왼쪽 팔의 정맥을 살짝 절개해 1~2온스의 피를 뽑은 다음 곧바로 같은 양의 설탕과 와인을 첨가했다고 한다. 이것을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그리고 달이 차오를 때 마셨다.

 

(‘젊음을 유지하는 법중에서, 55)

    

 

마치 지어낸 이야기 같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실용 지식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을 유지하는 법은 신비주의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1489년에 쓴 <인생의 책 3부작>에 있는 내용이다. 불로초를 찾아 장생불사의 꿈을 이루려 했던 중국 진시황이 기원전 3세기 사람이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비법을 찾아다닌 인류 역사는 꽤 연원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각종 황당무계한 장수법이 판을 쳤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회춘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아기의 피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등의 혐오스러운 비법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피치노는 여자 예언가들이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의 피를 뽑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 역시 피에서 젊음이 나온다고 믿었던가 보다. 실제로 젊은 남자의 피를 수혈하는 장수비법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교황 이노센트 8세는 어린 소년 3명에게서 피를 받았지만, 며칠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수혈해서는 안 될 혈액형의 피를 받았던 탓으로 보인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처녀나 아이들과 동침하거나 그들의 피를 마시면 회춘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왔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국가 원수나 재벌이 자신의 혈액을 젊은 사람의 피로 바꿔 회춘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전문가들은 젊은 피 수혈이 회춘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수혈된 피는 곧 자기 피로 정착되기 때문에 젊은 피라는 의미가 없다. 더욱이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피를 교체하면 회춘은커녕 오히려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 미국 유명 대학교 소속 과학자들이 젊은 피가 청춘을 되돌릴 수 있다는 중세의 속설을 확인시켜줬다. 연구팀은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 다시 주입했더니 뇌와 근육이 젊어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성급한 결론이라고 반박한다. 쥐 실험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참고 1]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치볼드는 옛날 책들에 기록된 실용 지식에 흥미를 느껴 수집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도서관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있는 고서들을 들춰보면서 잊혀진 실용 지식을 발굴했다. 그다음에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공유하려고 블로그까지 만들었다. 블로그에 공개한 자료들을 정리한 책이 바로 옛날 책은 가끔 쓸모가 있지. 누군가가 이론적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고 실천이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치볼드의 책을 보게 되면 그 격언의 의미를 재고해 봐야 한다. 책에 나오는 옛날 실용 지식 대부분은 쓸모없다. 책 제목처럼 가끔쓸모가 있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충고가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나둘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허탈해하는 탈모 인들은 탈모를 치료할 방법이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양파를 갈아 문지르면 대머리 치료에 좋다고 한다. 양파. 먹지 말고 머리 피부에 양보하세요. 방송인 홍석천 씨는 방송에서 한참 탈모로 고민할 때 양파즙을 머리에 바른 적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양파즙을 머리에 바르는 민간요법은 전혀 근거가 없으니 금물이다. 오히려 양파의 황화합물이 두피를 자극하여 염분을 유발할 수 있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일 뿐 따라 하지 말자.

 

 

 

 

 

 

 

 

시비 거는 사람을 혼내주기 위한 호신술이 있다. 먼저 왼손으로 시비 거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가랑이 사이의... 그러니까 거 있잖소? 남자의 급소! 옛날 남자들도 급소가 최대 약점이라는 걸 알았는지 급소를 보호하는 샅 주머니(Codpiece, 코드피스)를 입고 다녔다. 샅 주머니 부위를 꽉 잡고, 번쩍 들어 올려 넘어뜨린다. 이 호신술이 민망하다면, 냅다 발로 차면 된다. 특히 여자에게 집적대면서 시비 거는 남자들은 영 좋지 않은 곳이 불능 되도 싸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의 욕망과 관심사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급변할수록 과거에 알던 지식은 순식간에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황당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혁신적인 지식의 절반은 10년마다 쓸모없어진다. [참고 2] 부끄럽게도 우린 언제가 무용지물이 될 지식이 고정불변한 진실로 믿고 있다. 가끔이지만, 옛날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언제 필요할지 알 수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우신 예찬을 쓴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방귀 뀔 때도 인문주의적 정신을 발휘했다. 방귀를 예의 있게 배출하는 에라스무스에게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사내아이에게 복부의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면 엉덩이를 꽉 조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예의바르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건 좋지만 이렇게까지 괴로워야 한다면 품위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자리를 벗어나도 좋다면 혼자 살짝 나갔다 오게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옛 속담을 따르도록 하자. 기침으로 방귀를 감출 것.

 

(‘방귀 뀌는 법’, 33)

 

     

 

 

[참고 1] <회춘의 열쇠, "젊은 피에서 찾았다"... 실험쥐 통해 기억력 젊어지는 방법은>

(한국경제 201455)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5&aid=0000094923

 

<생쥐를 너무 믿지 마세요> (강석기의 과학카페 176, 동아사이언스 201456)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4402

 

[참고 2] 지식의 반감기(새뮤얼 아브스만 저, 책읽는수요일,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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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19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남동녀 삼천명을 석선(돌배)에 태워 불로초를 구하러 보냈다는 전설은 진시황이니 가능했을 법도 하네요.왕으로 영원히 산다라면 존재 자체가 지옥같다면 이 건뭐 지루해도 죽지 못하는....인간이 유한해서 가치는 의미가 영원한 것 보다는 많을텐데 말이죠..지구도 수명이 있는데 어느 별의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다하더라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참 모를 일입니다. 허무 맹랑한 속설이 참 많기도 하죠.^^. 어떻게 연휴..좋은 시간 되신건지요...

cyrus 2016-09-20 17:05   좋아요 0 | URL
연휴 마지막 이틀은 집에서 보내니까 연휴가 끝나도 아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9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긴 말도 안 되는 속설이 옛날에는 진짜인 줄 알았죠.
옛날에는 조개는 새가 죽으면 환생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정약전의 현산어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cyrus 2016-09-20 17:06   좋아요 0 | URL
말도 안 되는 속설이나 풍습을 정리한 책을 보면 재미있긴 해요. 지금 우리들은 아주 오랜 옛날의 속설을 신기하게 생각하잖아요.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부관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각종 주사를 찾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 중 기억에 남는 게 아기주사랑 연어주사가 있어요. 연어주사는 연어의 정소에서 뭔가를(?) 빼서 피부를 좋게한다고 하고요, 아기 주사는 갓 태어난 아이 중에 포경 수술하는 아이의 살갖에서 피부에 좋은 성분을 추출한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아기 피부가 좋다해도 글치..ㅠㅠ 남들한테 잘 보이려고 피부관리하는 주제에 사람들한테 정이 똑딱 떨어졌었다는....
아기 피 수혈로 젊음을 되찾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ㅎㅎ

cyrus 2016-09-23 18:07   좋아요 0 | URL
연어 주사와 아기 주사는 처음 들어봅니다. 연어 주사가 많이 사용된다면 연어의 개체 수가 줄어들겠어요. 아기 주사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갓 태어난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fledgling 2016-09-23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읽으면서 두 번 웃고 갑니다. ㅎㅎ 혈액이야기도 참 흥미롭네요.

cyrus 2016-09-24 11:07   좋아요 0 | URL
책에 황당하고 웃긴 내용이 많습니다. ^^
 
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3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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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앙심이 두터웠던 다윈의 아내 에마는 남편의 진화론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윈은 딸까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신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진화란 인간이나 신의 의지가 아닌 냉엄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진행된다는 확신이 갈수록 강해진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은 개체적 특성이 세대를 통해 어떻게 전달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멘델과 드 브리스에 이르러서야 유전자와 돌연변이의 개념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진화의 원인이 설명된다.

 

 

 

 

 

 

생물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다. 고등동물일수록 자식 사랑은 본능적이다. 고상하게 삶의 의미를 논하고 이 본능을 마다한 동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미 멸종했다. 진화론은 오늘날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진화의 정점이라 여기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진화론에 파생된 오해를 믿고 있다. 진화론은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권력욕과 폭력은 강자의 권리로 포장됐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패배자들의 약한 소리로 전락했다. 우파는 진화론을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해석했고, 인간의 불평등을 합리화했다.

 

진화는 더욱 완전한 존재를 향한 발전 과정이 아니다. 꼭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동물과 식물은 진화라는 거대한 지구의 게임에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최선의 적응전략을 갖춘 개체만이 진화 게임에 살아남는다. 반면에 운 없는 개체도 나온다. 진화 게임의 극명한 결과를 보여주는 생물이 바로 고래와 스텔라바다소다.

 

바다에 사는 포유동물 고래는 생물 계통상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전자 분석상 하마에 가깝다. 고래의 조상은 몸길이가 3m가 채 되지 않는 곰만 한 육식동물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육상동물과 달리 두 눈의 간격이 좁고 주둥이가 길며 발달한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이와 함께 네 다리를 가졌으며 우제류의 특징적인 발목뼈 구조를 보여줬다. 그런 동물이 바다에 적응하더니 최대 150t이나 되는 초대형 고래로 진화했다. 고래가 코끼리보다 훨씬 큰 크기로 진화하게 된 이유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치가 큰 개체는 적의 눈에 띄기 쉽다. 특히 인간의 눈에 띄면 씨가 마른다. 다 자란 놈의 몸무게가 10t이나 됐던 스텔라바다소는 한때 북태평양 전역에서 살았지만, 인류의 눈에 띈 지 단 27년만인 1768년에 종의 수명을 다했다. 움직임이 느리고 순해 선원과 상인의 손쉬운 식량감이었다. 스텔라바다소는 현존하는 듀공, 매너티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세 동물은 바다소목에 속한다. 듀공과 매너티도 최근 그 수가 격감하여 멸종위기에 있다.

 

 

 

 

 

번식은 동물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섹스가 불가피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동물에게 섹스란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이며 성가신 일이다. 게다가 수명을 단축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중노동이다. 똘똘한 자식을 만들어줄 섹시한 파트너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도 벌여야 한다. 수컷은 자신이 진화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페니스를 과시한다. 그런데 진화를 위해서 페니스를 퇴화하는 종이 있다. 페니스가 없는 종은 번식에 불리하다. 하지만 닭과 타조 등을 제외한 조류는 하늘에 오래 날기 위해서 페니스를 포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류는 작은 파충류로 진화의 여정을 시작하여, 깃털을 발달시키고, 서서히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 과정에 뼈가 있는 꼬리와 이빨이 사라졌다. 꼬리가 있던 자리에 가벼운 꼬리 깃털이, 이빨 대신에 튼튼한 부리가 생겼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털이 없고, 눈은 좁쌀만 하다. 앞니만 톡 튀어나온 게 못생겨도 이렇게 못생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형태 또한 삶의 환경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작은 눈은 평생 땅속에서 살기 때문에 빛만 감지하면 되므로 큰 눈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입 주변에 있는 수염이 눈 역할을 대신해 사물을 감지한다. 또한 털이 없는 이유는 땅속은 기온이 일정하므로 털의 역할이 없어져서 저절로 퇴화했다.

 

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숙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진화는 있을지언정, 실패 없는 진보는 없다.’는 것.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인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인류의 진보를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일 진화론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적용해보자. 수많은 종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들이 탄생해왔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거나 혹은 아예 멸종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멸종한 생물들을 진화에 실패한존재로 규정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인류의 생태적인 성공이 수많은 시련과 난관을 거쳐 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시도라는 긴 대열에서 유래했다. 스텔라바다소의 사례에 볼 수 있듯이 진화가 오로지 진보와 발전이 아닌 퇴행도 함을 잘 보여준다. 진화는 크고 작은 시련의 연속이다. 살아남은 생명은 또 하나의 가능성에 매달리면서 마침내 새로 진화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장대한 시련의 연속 속에서 종은 살아남기 위하여 나무로, 물로, 하늘로,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 도전과 실패의 과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화 게임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진화 게임은 완벽한 진보의 혜택을 누린 승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화의 의미는 막다른 환경의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있다. 이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변화 앞에 미약하고 무력한 존재다. 이제 우리는 다른 차원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진화의 세계를 혹독하게 경험했던 털 없는 원숭이는 자연을 점점 더 큰 재앙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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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9-1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진화에 관심이 많아요. 별로 아는게 없어서 항상 새로운데 cyrus님 페이퍼 읽으니 역시나 많은 걸 배우게 되네요^^

cyrus 2016-09-18 18:39   좋아요 0 | URL
MID 출판사에서 나온 <멸종>과 <짝짓기>를 같이 읽으시면 진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016-09-1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18 18:5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로 설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문장을 다시 보니까 표현이 어색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페니스가 없는 종은 번식에 불리하다.`로 고쳤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초현실주의 회화의 의미를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생뚱맞음이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오브제들을 모아놓고 수수께끼의 이름이 붙인 그림은 관람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런 생뚱맞은초현실주의 미술을 구축한 화가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데 키리코가 초현실주의 집단과 교류하면서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 시기는 고작 4년에 불과하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데 키리코는 형이상학적 회화로 명명된 그림들을 제작했다. 1920년부터 데 키리코는 돌연 고전주의 화풍을 시도했다.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는 초현실주의 집단은 과거에 회귀한 데 키리코의 작업을 비난했고, 그를 집단에 제명하기에 이른다.

 

 

 

 

 

 

 

 

 

 

 

 

 

 

 

브르통은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사실주의를 조야한 자기도취라고 비판했다. [참고 1] 데 키리코는 라파엘로, 루벤스 등의 과거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사실주의를 환기했고, 이를 형이상학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려고 했다. 그의 후반기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회화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고, 데 키리코의 대표작으로 많이 소개되는 작품이 거리의 신비와 우울이다. 이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데 키리코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게 하여버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광장에 노랗게 번지는 오후의 색깔이 몹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고대의 성벽이 서 있는 골목길은 햇볕을 받아 환하게 밝고, 오른쪽 반을 차지한 성벽은 완전히 칠흑처럼 컴컴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광장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상반신 그림자가 마치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는 소녀를 관찰하듯이 골목길에 삐져나와 있다. 굴렁쇠 소녀는 그림자를 향해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온다. 보이지 않는 광장도 보이는 골목길도 적막하기만 하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밀라노 등을 여행하면서 지중해의 햇살이 고대유적과 광장에 가로질러 들어오는 풍경에 매료되었다. 형이상학적 회화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은 첫 번째 현현(顯現, epiphany)이다. 이때부터 데 키리코는 광장을 소재로 형이상학적 그림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묘사한 광장은 황량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짙게 감돈다.

 

 

 

 

사랑의 노래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아폴로 석조 두상과 수술용 장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녹색 공이 놓여 있다. 이 오브제들이 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제목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잔뜩 생긴다. 딱 거기까지만. 우린 절대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해답을 찾게 되면 이 그림 본연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진다.

 

 

 

 

데 키리코는 처음에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ocklin)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뵈클린 역시 음습한 분위기, 초자연적인 세계의 기이한 경험을 표현했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그림 속에 텅 빈 광장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듯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관람자에게 꼿꼿하게 서 있는 자신의 뒷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데 키리코의 수수께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없다. 여기서는 광장의 유령이라고 표현하겠다) 광장의 유령은 뵈클린의 그림에 등장한 인물과 닮았다.

 

 

 

 

망자의 섬중앙에 온통 암흑으로 드리워진 사이프러스 숲은 고요하고 아무런 형태가 없는 심연(深淵)을 형성하며 무한으로 향하는 미지의 세계, 즉 알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을 나타낸다. 검은 옷의 뱃사공이 노를 젓고, 하얀 옷을 입은 망자는 죽음이란 최후의 여행을 암시한다. 데 키리코는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도시의 거대한 탑으로 변용했다. 거대한 크기와 단순한 형태의 탑은 무한한 환상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1919년에 데 키리코는 로마 미술관에 전시된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고 두 번째 현현을 체험한다. 그는 형이상학적 회화에서 고전적 사실주의로 돌아선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집단은 데 키리코를 변절자로 몰아세워 비난했으나 그들은 처음부터 데 키리코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데 키리코가 한창 형이상학적 회화 작업에 열중했던 시기에 이미 고전주의적 소재(고대 유적, 조각상, 도리아식 열주)를 사용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 집단은 과거와의 단절을 추구했지만 데 키리코는 과거와의 연결을 시도하여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브르통은 데 키리코의 사소한 일탈을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했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의 그림도 봤을 것이다.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다. 마니에리스모는 고전주의 르네상스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건너가는 과도기에 형성된 미술양식을 가리킨다. 더러 매너리즘으로 쓰기도 한다.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마니에리스모는 고전주의의 단순한 조화를 해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변형한 것이다. [참고 2]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는 미완성 작품이지만, 마니에리스모 양식에서 볼 수 있는 불균형한 구도와 비현실적인 신체 왜곡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목이 긴 성모에 특이한 기둥이 그려져 있다. 그 기둥 아래에 성 히에로니무스로 추정되는 사제가 서 있다. 진중권은 이 오묘한 구도를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그림과 닮았다고 했다. 곰브리치는 정통적인 양식을 거부한 파르미자니노를 최초의 현대적인 미술가라고 평가했다. [참고 3]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데 키리코가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목이 긴 성모스가랴와 함께 있는 성모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다. 데 키리코가 피렌체를 여행하는 중에 우피치 미술관에 들렀을 것이다. 그는 파르미자니노의 특이한 신체 묘사, 배경에 배치한 고대 건물과 기둥을 인상 깊게 봤을 수도 있다. 데 키리코가 고전주의 회화에 탐닉했던 시기에 마니에리스모 양식과 유사한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집단은 합리적인 세계를 뒤집으려는 계획을 갖고 현실을 재창조하는 예술 행위를 추구했다. 초현실주의 집단 일원들과 교류했던 피카소는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데 키리코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화풍으로 현실을 재창조했다. 그는 보이는 것을 그리되,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데 키리코의 영향으로 달리,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자유로운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형상화해낼 수 있었다. 그가 달리와의 관계를 끊고(브르통은 달리가 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히틀러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 당연히 달리와 브르통은 예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갈라섰다), 자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마그리트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참고 4] 달리는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자신의 기억, ,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그렸고, 마그리트 역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환상의 세계를 중시했다. 데 키리코는 자신의 그림이 꿈과 무관하며 초현실주의를 의식하고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현실의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전주의로 관심을 돌렸다. 데 키리코는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것을 시도했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결합. 물과 기름 같은 서로 상반된 양식이 만나 색다른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도전이었고, 동료 화가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데 키리코가 죽을 때까지 형이상학적 그림을 그렸다면, 초현실주의 회화를 논할 때 달리, 마그리트보다 가장 먼저 언급되었을 것이다.

 

 

 

[참고 1] 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 2012) 65

 

[참고 2]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창비, 2016) 2장 매너리즘 편

 

[참고 3] 교수대 위의 까치(마로니에북스, 2009) 11장 목이 긴 성모 편

서양미술사(예경, 2013) 18장 미술의 위기 편

 

[참고 4]다시 구할 수 없는 미술책 시리즈’ (2012317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55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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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2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지금 지진이었죠?

cyrus 2016-09-12 20:40   좋아요 1 | URL
네. 하루에 진동을 두 번 느낀 건 처음입니다. 지진의 여파 때문인지 지금 카톡도 안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9-1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신비와 우울` 그림은 저도 근간 <경제와 미술을 지배하는~> 책 보고 첨 알았습니다. 제 느낌 소감도 매우 비슷합니다. ^^

cyrus 2016-09-12 20:56   좋아요 1 | URL
초현실주의 그림이 좋은 이유가 해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9-12 21:22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님도 괜찮으세요?
진도 5.0 이상은 정말 큰 지진인데, 그것도 내륙에서요...

cyrus 2016-09-12 21:28   좋아요 2 | URL
무사합니다. 또 여진이 일어날까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군요. ㅎㅎㅎ

yureka01 2016-09-12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지진의 파장이 사회를 초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린듯이 웅성거림과 두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아 떨림의 두려움이 그런가봐요....역대급이었다고 하네요...

cyrus 2016-09-13 08:46   좋아요 1 | URL
빌라에 살고 있어서 또 지진이 일어날까봐 두렵습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1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 잠시 서양사에 관심이 있어 한 일년쯤 수강했는데 키리코의 그림은 매너리즘으로 아주 잠깐 훑고가더라구요. 기묘한 느낌때문에 인상에 완전 남았는데! 스페인의 엘 그레코도 그렇고 매너리즘으로 약간 낮게 보는 게 좀 짜증났어요. 왜냐면 제 취향엔 이상하게 맞았거든요..ㅎㅎ
근데 전 초현실주의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인데 그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니 역시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재밌네요. 그게 제가 남의 서재를 염탐하는 이유기도 하구요^^

cyrus 2016-09-13 23:27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한 입장입니다. 저는 달리의 그림을 안 좋아해요. 난해해요. 달리의 그림이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달리가 프로이트 사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점을 지나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요. 사실 마그리트의 그림도 어려워요. ^^;;

낭만인생 2016-09-13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세계도 있군요. 처음 접하는 거라 낯설고 신기합니다. 뭔지 잘 이해도 되지 않구요... 저의 미술 실력이....

cyrus 2016-09-13 23:28   좋아요 1 | URL
그냥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꼭 알아야 할 내용도 아닌데요. ^^

초딩 2016-09-1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iOS10 업데이트하고 난 후부터 북플에 긴글이 마지막에 ... 으로 나오는 것 같네요 ㅜㅜ
문자 길이에 따라 영역계산하는 것을 예전 함수를 써서 그런것 같아요.
최신 함수를 써야하는데...
10이전까지는 그럭저럭 동작했는데, 10 이후부터는 옛날꺼는 문장 영역 계산에 오차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cyrus 님께서 신문고를 울려주세요~~~
ㅎㅎ 초딩하는 일이 이런 앱 만드는 일이라 조금 압니다 ㅎㅎ

cyrus 2016-09-18 16:29   좋아요 0 | URL
어떡하죠. 저는 갤럭시 안드로이드 폰을 쓰고 있어서 애플 iOS 시스템은 잘 모릅니다. ^^;;

사소한 문제도 서재지기 게시판에 글 남기시면 됩니다. 아니면 초딩님 서재에 이 문제에 관한 글은 전체 공개로 작성해서 공론화해도 좋습니다. 일단 초딩님의 댓글만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비종 2016-09-18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화가들의 작품을 좀 더 찾아보았어요. cyrus님 덕분에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게 되었구요, 미술에 대한 상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마음에 드네요. 기발한 발상과 색채의 톤이 밝고 건전해보이는 그림이 많더군요. 허연 머리에 피 나는 그림은 맘에 안들지만^^;
달리의 그림은 뾰족한 뼈다귀들이 잔뜩 나오고 왠지 피 질질 흘러내릴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라 별로입니다. 형이상학적 세계라 해서 그렇게까지 날카로울 필요가 있을까 싶구요. 부드러운 무의식도 분명 있을 텐데...
데 키리코는 처음 들어본 화가였어요.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그림을 통해 본 대체적인 성향은요, 소개해주신 7점의 작품에는 <사랑의 노래>를 제외하고 모두 2명의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이예요. 근육질이든 이쑤시개처럼 표현이 되었든 항상 두 사람이더군요. 그림자가 많이 나타나고, <거리~>와 <떠나야~>에 등장하는 콘테이너는 집과 같은 의미였을까 생각도 했어요. 바나나를 좋아했나봐요. <몽파르~>에 널려있는 무더기가 뭔가 신경이 쓰였는데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니 바나나였라구요. 지중해의 햇살을 좋아해서였는지 노란색을 많이 썼고, 빨강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랑의~>에 등장하는 고무장갑도 빨강이고 그외 중요 포인트에도 빨강을 쓴 것 같거든요. 빨강/노랑/초록/파랑을 주로 쓴 사람이네요. <검투사>를 한참 바라보았어요. 등장하는 2명의 피부톤이 반반씩 교차되어있는 것 같아서요. 뒷모습을 보이는 근육질 남자의 하체톤이 마주 바라보는 허연 남자와 비슷합니다.ㅋ
이 포스트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15년부터 1919년까지 4년간 초현실주의 집단과 교류하면서 그린 그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더라구요. 소개해주신 그림 중 5점은 1910년부터 1914년까지의 그림이고(물론, <떠나야~>는 1914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2점은 1920년 이후의 그림이니, 고전주의 화풍이 가미된 작품과의 차이점은 어느 정도 느낌으로 오는데요, 가운데 도막이 빠져 before에서 after로 넘어가는 과정이 생략된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개뿔도 모르면서 감히 이런 멘트를~^^; ;==33)

cyrus 2016-09-18 16:29   좋아요 0 | URL

제가 항상 그림 이미지를 위키아트에서 가져 옵니다. 위키아트로 검색하면 웹사이트가 나와요. 거기에 화가 영어 이름으로 검색하면 전부는 아니지만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유명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까지 나옵니다. 여기에 데 키리코의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허연 머리에 피 나는 그림이 뭔지 알겠습니다. 데 키리코의 그림에 등장한 바나나는 ‘야생’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해석한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데 키리코의 그림 이미지를 고르느라 나름 고민했습니다. 그림 이미지를 많이 소개하고 싶은데, 이미지를 많이 올리면 글의 길이가 길어져요. 초현실주의 회화에 관한 글이 생소한데다가 분량까지 많게 느껴지면 정독하기가 힘들죠. 제 글을 정독하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제 글을 보는 분들을 위해서 길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데 키리코 후반기 그림 이미지를 넣지 못했어요. 제 글의 부족한 점을 아주 잘 짚어주셨습니다. ^^

나비종 2016-09-18 20:26   좋아요 0 | URL
위키아트. 저도 나중에 검색해봐야겠습니다.^^
아. .바나나의 의미가 그런 것이었군요.
^^;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cyrus님의 글은 공들여서 쓴 한 편의 논문같아서요. 여러 번 곱씹어서 읽게 됩니다. 댓글도 리뷰처럼 쓰게 되구요.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읽으면 뭔가 정갈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게 제게는 묘하게 위안이 된다는^^;

cyrus 2016-09-20 17:07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정독하면 안 됩니다. 시력 나빠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