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판계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은 8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여권 운동그룹에서 내놓는 부정기간행물에서 이를 다루는 정도에 그쳤으나 90년대 들어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서에서부터 국내외의 여성현실을 다룬 보고서, 페미니즘 문학서 등으로 다양했다. 접근방식에 따라 여성문제에 대한 개념과 범주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여성해방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지금까지 여성운동이나 정책은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나 여성이 역사로 진입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역사는 여성을 오랫동안 타자로 규정되었다. 페미니스트이자 역사학자인 거다 러너(Gerda Lerner, 1920~2013)는 여성의 역사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도에 의해 여성의 역사가 은폐, 무시됐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성사 분야에서 선도적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유대인 출신인 러너는 40대의 나이로 역사학에 뛰어든다.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은 그녀를 공부하게 만든 동력이다.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사 분야 박사학위과정이 개설된다.

 

러너는 남성들의 ‘선택적 기억’의 희생자였던 여성들에게 역사학의 초점을 맞춘다. 그녀가 생각하는 역사란 “앞선 세대의 경험과 생각을 모아 놓은 기록보존소이자 우리의 집단 기억”이다. 과연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여성 위인은 얼마나 포함돼 있을까. 여성사 연구는 외국에서 9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국내의 경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사에 주목했다. 그러나 기록이나 사진, 유물, 작품 등 여성사연구에 필수적인 1차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은 연구를 더디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여성들의 활발한 활동이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의 역사가 사소하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현행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 여성의 역사를 따로 서술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 사회 전면에 등장한 여성의 ‘역사적 의미’가 남성 중심사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 속에서 이옥수 여사(1931년 출생)[주1]는 역사에서 소외돼 온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이끌어 내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이옥수 여사의 《한국근세여성사화》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시각으로 근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사화(史話)를 정리한 책이다. 이 여사는 거다 러너처럼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가 36세의 나이에 대구일보 수습기자가 되었다. 이 해에 그녀가 키우는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기자 생활 중에 《한국근세여성사화》 집필을 위한 자료 수집을 준비했다. 그녀는 ‘누구나 쉽게 읽는 여성사’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근세여성사화》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어떻게 사셨는지 대부분 여성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야기책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여성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주2]

 

 

이 여사가 《한국근세여성사화》를 쓰기까지 모아둔 원고지의 양이 3,000장 넘는다고 한다. 그녀가 많이 참고한 자료는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글이다.

 

 

 

 

 

상권은 392쪽, 하권은 459쪽이다. 두 권의 책을 펼치면 흑백사진이 나온다. 상권은 개화기 전후에 살았던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고, 하권은 전국여성단체협의회(한국여성단체협의회로 명칭이 변경됨)가 주최한 전국여성대회(1975년 제13회, 1976년 제14회)와 제7차 아시아지역 국제여성대회가 진행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제7차 아시아지역 국제여성대회는 1976년에 우리나라가 주관하여 진행되었고 12개국 여성단체 회원들이 참가했다.

 

상권은 한국 여성과 관련된 풍습, 사건, 활동 등 흥미진진한 사화들로 채워져 있다. 가부장제의 폐단에 억압받고, 불이익을 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들은 과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음을 말해 준다. 개화기 이전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집을 가야했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았다. 아무리 나무랄 데 없는 규수라도 시집가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끝이었다. 무자(無子)를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넣어 내쫓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시집간 여자의 가장 큰 꿈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는 일로 귀착됐다. 남편은 아들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한 나머지 우스꽝스러운 풍습을 따르기도 했다.

 

 

 

 

청천강 이북의 서북지방에 아들을 낳게 하는 특이한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은 길마를 자기 등에 얹고 지붕 위에 올라간다. 산모가 진통을 겪으면서 태아를 출산하고 있을 때 지붕에 올라간 남편은 소 울음소리를 낸다. 이렇게 하면 산모가 딸이 아닌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남편이 지붕에 떨어져 다치고, 딸을 낳으면 아내는 시어머니의 원망을 견디면서 살아야 한다. 갓 태어난 딸은 이름을 가지지 못한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가 섭섭하다고 해서 손녀 이름을 ‘서운이’, ‘섭섭이’로 대충 짓는다.

 

 

 

 

 

 

 

 

 

상권이 하권보다 재미있다. 상권은 논개, 신사임당, 허난설헌, 윤심덕, 나혜석 등 역사의 한페이지에 장식한 여성들의 생애 및 관련 일화들을 소개했다. 최근 김별아 작가의 소설 덕분에 주목받고 있는 최초의 여성 근대 작가 탄실 김명순 이야기도 있다. 하권은 광복 이후의 여성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대 여성 국회의원 명단과 여성의 직업 실태 등을 조사한 기록들이 정리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화 소개에 중점을 맞추다 보니 고증 오류가 몇 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시기가 친일파 문제가 지금처럼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김활란(최초 이화여대 총장), 박경원(비행사)의 친일 행적에 대한 언급이 적다. 심지어 이 여사는 김활란의 친일 행위가 일제의 압력으로 존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지키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평가한 대목은 문제가 있다. 이 여사는 1971년에 공화당 경북지구부녀부장을 역임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하권에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시기별로 서술했다. 책의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이다. 책의 분량을 일부러 늘리기 위해서 쓴 것일까, 아니면 경북 출신의 이 여사가 박 대통령 시대를 그리워한 것일까? 

 

 

 

 

[주1]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이옥수 여사 관련 정보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 여사와 《한국근세여성사화》에 대한 언급이 있는 자료가 1985년에 나온 동아일보와 매일경제 기사뿐이다. 그녀가 지금도 살아있는지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다.

 

[주2] 동아일보. 1985년 4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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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현재도 명예살인이라는게 자행되는 걸 뉴스로 접하곤 합니다. 여자로 태어나는 거 자체가 이미 죄가 되는 사회였으니까요..리뷰 잘 읽었어요....

cyrus 2016-09-21 15:33   좋아요 0 | URL
제주도에 중국인이 일으킨 살인사건, 단순히 보면 여혐 살인사건 같아요.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syo 2016-09-2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를 볼때마다 cyrus님의 저력에 감탄합니다....

cyrus 2016-09-21 15:34   좋아요 0 | URL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