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리어(Linda Lear)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은 완성도 높은 책이다. 리어는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카슨의 삶에 그녀에게 영향을 준 주변 인물과의 관계, 카슨이 마주한 과학계의 유리 천장(glass ceiling)과 차별 등을 엮어 입체적으로 서술했다.

    

 

 

 

 

 

 

 

 

 

 

 

 

 

 

* [품절]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샨티, 2004)

 

    

 

리어는 카슨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녀는 카슨이 가장 좋아했던 친구이자 연인인 도로시 프리먼(Dorothy Freeman)에게 보낸 편지까지도 가지고 있다. 카슨은 독신으로 살았지만, 이미 결혼한 도로시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카슨은 도로시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흰 히아신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녀를 향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히아신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 히아킨토스(Hyakintos)에서 유래된 꽃 이름이다. 히아킨토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n)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외모가 아름다운 소년이다. 아폴론은 히아킨토스를 사랑했다.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미클라이(Amyclae, 스파르타로부터 남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에 사는 히아킨토스를 만나기 위해 스파르타에 자주 갔다. 두 사람은 함께 사냥개를 데리고 산속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는 원반던지기 시합을 한다. 불행하게도 아폴론이 먼저 던진 원반은 땅에서 튕겨 올라 히아킨토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얼굴에 치명상을 입은 히아킨토스는 아폴론의 품속에 숨을 거둔다. 히아킨토스의 상처에 흘러나온 피에서 꽃이 피었고, 그 꽃이 바로 히아신스다.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책과 함께, 2016)

 

    

 

예로부터 예술가들은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에로틱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두 사람의 모습(아폴론이 죽어가는 히아킨토스를 안은 모습)을 묘사했다. 히아킨토스를 사랑해서 본인이 직접 그에게 다가간 아폴론처럼 카슨은 도로시에게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카슨은 도로시가 사는 지역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두 사람이 묵을 호텔 방을 예약했다. 하지만  가지 정황만 가지고 카슨과 도로시를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것은 과대 해석이다. 여성의 우정을 동성애로 치부하는 해석은 관계 속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지적 열정을 가린다[주]. 두 사람 모두 숲과 바다를 좋아했고, 함께 생물을 관찰했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친밀한 관계 형성과 깊이 있는 소통을 지향한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유럽 중산 계급 여성들 사이에 성애와 무관한 로맨틱한 우정’이 유행한 시기가 있었. 특히 독신 여성은 한 발 더 앞서 나가 결혼의 대안으로 여성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로 비추어 볼 때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는 로맨틱한 우정에 가깝다. 카슨은 도로시와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별장을 마련했고, 도로시와 함께 별장 근처에 있는 숲과 바다를 산책했다. 비록 도로시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카슨을 만나러 다니는 이중생활을 했지만(남편은 도로시가 카슨을 자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남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별장, 숲과 바다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두 사람만의 아늑한 장소였다.

 

카슨의 적극적인 구애는 외로움을 달래보려는 노처녀 인기 작가의 몸부림으로 봐서는 안 된다. 도로시를 향한 애정 표현으로 가득한 카슨의 편지를 보고난 다음에 침묵의 봄》의 논리 정연한 문체를 보면 묘한 괴리감이 생긴다. 하지만 도로시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들떴을 그녀의 모습은 과학자이자 작가로서의 평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친구 같은 어머니 마리아 카슨(Maria Carson)이 세상을 떠난 후 카슨과 도로시가 함께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암 투병에 지친 카슨에게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를 찾는 일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도로시 프리먼은 카슨의 글을 좋아한 열혈 팬이 아닌 카슨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연인,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 독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문장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있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주석을 달았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라고 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성적 취향의 변태를 떠올린다.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를 연인 관계, 동성애로 보는 관점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카슨 평전을 쓴 린다 리어도 그렇고, 지금까지 카슨 평전을 쓴 몇몇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랑인지 우정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로 중립적으로 바라볼 뿐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진술하지 않았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여성의 우정을 동성애로 본다면 그녀들의 깊이 있는 정신적 교류보다 육체적 관계에 더 주목한다따라서 필자는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는 견해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내 견해가 동성애적 관계는 여성의 우정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로 읽혀질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므로 주석을 통해 동성애자의 열등함을 전제 하에 여성의 우정을 강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식인이나 예술가로 활동한 동성애자들이 있었다. 필자가 이 사실을 본 글에 언급하지 않았다. 내 실수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한 성소수자 독자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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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3 22:19   좋아요 2 | URL
syo님, 어서 오시고요. 글만 안 썼을 뿐이지 책을 꾸준히 읽었어요.. ㅎㅎㅎㅎ

지금은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이 과거보다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동성애라고 하면 사람들은 성적인 관계를 떠올립니다. 동성애자를 변태 취급하는 거죠. 그래서 성소수자 운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이 동성애 차별을 비판할 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동성애자가 많아지면 HIV/AIDS가 퍼지면서 나라가 망한다고 말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여권신장론자들이 등장할 때 사람들은 그녀들을 동성애자라고 조롱했어요. 이제는 흔한 단어인 ‘퀴어’가 과거에는 원래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였듯이 동성애자라는 명칭 역시 그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던 거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우정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여권 신장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우정과 연대가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카슨과 도로시의 우정이 ‘에로틱한 동성애 관계’로 비춰지면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지 “동성애자는 지적으로 떨어진다”는 전제로 우정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적으로 뛰어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동성애 커플이 있었어요.

syo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동성애 관계 속에서도 지적 열정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잘못 읽혀질 수 있겠어요. 오랜만에 정말 좋은 의견을 받았어요. syo님의 의견을 수렴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고마워요. ^^

이하라 2020-12-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제가 못보고서 딴소리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한동안 리뷰를 못뵌 것 같아서 안부인사 드립니다..

cyrus 2020-12-03 22:2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이 못 본 게 아니에요. 5개월 동안 제가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지 않았어요. 무언가에 미친 듯이 하다가 갑자기 하는 걸 멈추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
 

 

 

다른 독자들은 안경환 교수의 , 셰익스피어를 입다에 높은 평점을 줬다. 그 독자들은 안 교수의 책에 만족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별점 네 개, 다섯 개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예전에 안 교수가 쓴 책을 보면서 느꼈지만, 안 교수의 책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한결같다. 사실에 맞지 않는 사소한 오류, 오자,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의 생각들. 지금부터 언급할 인용문 역시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

    

 

 

    

 

 

 

 

 

 

 

 

 

 

 

 

 

*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6월 도서] 안경환 , 셰익스피어를 입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미인은 얻기 힘들다. 갖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줄 몸은 다 하나뿐, 지극히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서양격언도 있다. 일단 얻는다고 해도 지키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뭇사람의 시샘과 견제를 각오해야만 한다. 조그마한 틈새만 있으면 누군가가 파고든다. 미인은 속성상 현처가 되기 쉽지 않다. 항상 자신의 미모를 의식하고 살기에 큰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시쳇말로 미인과 별장은 웬만한 사람이 갖는 것이 아니다. 유지하기에 일반 관리비가 너무 비싸다. 그저 범인(凡人)은 먼발치에서 바라다보고 입맛이나 다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248~249, 필자가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밑줄을 표시했음)

 

 

미인은 현처가 되기 어렵다는 안 교수의 개인적인 생각과 미인과의 교제를 별장으로 비유한 말에 동의하는 독자가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밑줄을 표시한 문장에 드러난 안 교수의 여성관이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독자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 독자는 어떤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땐 그 문장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현처가 되지 못한 미인을 만났거나 미인을 아내로 둔 남자들의 증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사례만 가지고 미인은 현처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저자는 미인을 항상 자신의 미모를 의식하며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존재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은 부정적인 면모를 지닌 미인은 현처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가부장인 남편은 아내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이 남편을 순종하는 아내, 즉 현처가 되려면 미모를 의식해선 안 되며 권력과 재물의 유혹을 피해야 한다. 결혼 제도와 가부장제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삶과 욕망을 제거하고, 가부장제에 편입된 그녀에게 아내’, ‘엄마’, ‘며느리역할을 부여한다. 따라서 현처가 되지 못하는 미인이 있다고 보는 안 교수의 생각은 가부장제 문화에 익숙한 남성의 구시대적인 여성관과 유사하다.

 

안 교수는 미인과의 교제를 별장 관리하는 일로 비유한 시쳇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언급한다. 미인을 만나고 사귀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 비용이 마치 별장 관리비와 같다는 것이다. 이 시쳇말에는 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시쳇말을 의심 없이 믿는 사람(특히 여성을 고깝게 보는 남성)은 미인을 경제권이 있는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볼 것이고, 또 재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미인은 돈을 헤프게 쓴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도 미녀는 돈 많은 남자를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그런 여성을 만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생긴다. 개인적인 불만이 점점 쌓일수록 여성을 냉소적으로 보게 되는데, 모든 여성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불만은 여성을 교제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혐오한다.

    

 

 

 

 

 

 

 

 

 

 

 

 

 

 

 

* [절판] 안경환 남자란 무엇인가(홍익출판사, 2016)

    

 

 

여성에 대한 안 교수의 편견은 한때 논란이 되었던 남자란 무엇인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문장은 남자의 독점욕이라는 소제목이 붙여진 글에 있다.

 

 

 남자는 물건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여자에게도 소중한 물건이 있지만, 몇 가지에 한정된다. 보석류, 명품 가방, 옷과 구두 등등 대체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물건들이다.

 

(28, 단행본의 쪽수가 아닌 밀리의 서재에 등록된 전자책의 쪽수이다. 문제가 많은 책이 밀리의 서재에 있다는 게 놀랍다)

 

 

안 교수가 생각하는 남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 남성 독자가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는 건 자유다. 하지만 편견이 반영된 저자의 글에 동의하는 남성 독자들이 없길 바란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 교수의 생각과 그의 글 쓰는 방식을 잘근잘근 씹기 위해서 이 글을 썼지만, 사실 이 글을 쓴 중요한 목적은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나도 안 교수처럼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면서 살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편견을 글이나 말로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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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4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7-08 16:09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실수하거나 착각해서 잘못 언급한 내용이 있으면 몰래 수정해서 지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내가 글 쓰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개하는 일종의 반성문(?)을 써요. 내가 잘못한 점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면 이런 부끄러운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게 돼요. 반성문을 쓰면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성찰은 오래 기억에 남아요.

테레사 2020-07-0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편견은 참 고질병인가 싶네요..자기 멋에 도취된 ...엘리트의 글쓰기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cyrus 2020-07-08 16: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독서모임 참석자분들도 그렇게 느꼈어요. ^^

transient-guest 2020-08-17 0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종종 그렇게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자강 2020-08-1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고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 제목인 남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보단 이것 저것 잡다한 내용들이 모여있어서 저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지경이더군요.
 

 

 

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은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여성을 그린 이야기다. 톨스토이(Tolstoy)는 이 소설을 극찬했고, 작품이 너무 좋아서 네 번이나 계속 읽었다고 한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작가와비평, 2020)

* [품절]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시공사, 2013)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올렌카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비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없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야외극장 지배인을 동정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극장 지배인의 일을 거드는 올렌카는 자연스럽게 남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비판하는 남편의 생각에 공감했고, 배우들의 공연 연습을 지켜보는 감독 역할까지 하게 된다. 올렌카를 좋아하는 배우들은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올렌카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 죽으면서 그녀는 혼자가 되고, 그 후로 집에서 울기만 하면서 지낸다. 석 달이 지난 후에 올렌카는 이웃에 사는 목재상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지만 불행하게도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는 또다시 실의에 빠지지만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적이 있는 수의사를 만나면서 잠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의사가 다른 지역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올렌카는 외로운 생활을 한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올렌카는 귀여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간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수의사는 자신의 전처와 외아들까지 대동하여 올렌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서 기쁜 올렌카는 수의사와 전처와 외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산다. 올렌카는 수의사의 외아들을 친자식처럼 대한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빛과 마음은 온통 그 사람에게 향한다. 그녀가 귀여운 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할 힘과 삶의 방식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불행은 어떤 일에도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그저 따라 하는 올렌카는 자의식이 부재한 인물이다. 소설 초반부에 올렌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녀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한다. 올렌카는 어린 시절부터 가부장이 된 남성에 의존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종속적인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요모타 이누히코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

 

 

 

귀엽다는 일반적으로 예쁘거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대상(동물, 인형 등)에 호감을 나타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말에 타인을 차별하는 위험성이 있다. 일본의 문화비평가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 犬彦)가와이이 제국 일본이라는 책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가 돼버린 가와이이(かわいい, 귀엽다)의 밑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가와이이는 일본의 미의식을 함축하는 단어다. 요모타 이누히코는 가와이이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이 단어가 보호받기 쉬운 순진한 존재의 미성숙한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긍정하기 위해서 쓰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성숙의 미학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일본의 가와이이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요모타 이누히코 이전에 가와이이의 위험성을 경계한 사람이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 千鶴子).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가와이이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증오를 드러낸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용해온 교태라고 지적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귀엽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라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있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 사회 특성상 노인들은 자식과 손주의 보살핌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귀여운 할아버지,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고 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에 휘둘리는 현실이 사회적 차별을 받기 쉬운 여성/노인을 남성/젊은이에게 보호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귀엽지 않은 여자라고 부르며 귀여운 할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체호프의 소설과 가와이이 제국 일본우리가 무심결에 쓰는 귀여운이라는 표현이 한 사람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 자체마저 축소하는 위험한 단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만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불안해진다. 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체호프의 소설에 나오는 저 귀여운 여인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 귀여운 여인만 있는 게 아니다. 연상의 여성에게 사랑받기 쉬운 귀여운 남자의 매력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Trivia

    

 

 

 

 

2006년에 나온 가와이이 제국 일본(원제: かわいい)의 원서 앞표지는 어떤 그림도 없는 단색 디자인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본 표지에는 원서에도 없는 분홍색 전범기가 그려져 있다. 꼭 이렇게 그러야만 했을까? 정신 나간 디자인을 생각 없이 결정한 출판사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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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5-05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 나도 읽어볼래!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 인생은 괴로운 거야, 파편 지옥이랄까. 귀여운 건 잠깐씩만. 귀여운 거 좋아하지만 성인을 유아로 만드니까 온전한 삶이라고는 볼 수 없을듯.

cyrus 2020-05-05 19: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귀엽다’가 상대방을 칭찬하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누님이 말씀한 것처럼 상대방, 특히 여성을 유아로 취급해버리는 한계가 있어요.
 

 

 

신천지의 자만 들으면 이젠 신물이 나다 못해 환멸을 느낀다. 그 문제의 종교(사실 종교라고 부를 수 없는 사이비 단체이다) 때문에 신천지의 또 다른 의미들이 무색해졌다. ‘신천지라고 하면 새로운 세상이라든가 1921년과 1964년에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잡지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당분간 신천지는 금기어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절판] 박상준 엮음 토탈 호러 1(서울창작, 1993)

 

 

 

신천지의 악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외국 단편소설이 있다. 소설 제목이 대구를 초토화한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 소설은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그 문제 단체와 바이러스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소설의 원제는 ‘Student Body’. ‘Student Body’는 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 전체 수를 뜻하는 단어다. 이 소설을 번역한 역자는 지금도 꾸준히 외국 장르문학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는 박상준 씨다. 아마도 박상준 씨도 제목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할지 한참 고민했을 것이다.

 

소설을 쓴 작가는 미국에 태어난 F. L. 월리스(Floyd Lee Wallace). 1950~60년대에 단편소설을 주로 썼으며 ‘Student Body’는 월리스가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953년에 발표되었다. 월리스는 국내에 유명하지 않은 작가이지만, 그가 쓴 신천지의 악몽은 다시 번역되었으면 하는 단편소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이제는 절판되어 희귀 도서가 된 공포 단편소설 선집인 토탈 호러1에 수록되어 있다.

     

소설 제목에 있는 신천지는 지구의 환경과 거의 흡사한 미지의 행성을 뜻한다. 소설에 나오는 지구인들은 우주를 개척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가 살기에 가장 알맞은 행성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이주한다. 이주민들은 이 행성에 글레이드(Glade: 숲속의 빈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주민들이 탄 우주선의 총 지휘자인 해프너(Hafner) 부장은 글레이드를 제2의 지구, 즉 신천지로 만들려고 한다. 이주민들의 신천지 개척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쥐와 닮은 생명체가 우주선에 몰래 들어와 이주민들이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곡식을 먹어 치운다. 우주선에 거주하는 생물학자 다노 마린(Dano Marin)은 못 먹는 게 없는 생명체를 관찰하여 그것에게 식충이(omnivore)라는 이름을 붙인다. 처음에 로봇 고양이를 우주선에 들여놔 우주선에 들어온 식충이를 퇴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전보다 몸집이 더 커진 쥐가 나타나 로봇 고양이를 파괴한다. 이주민들은 한 단계 진화한 식충이들을 절멸하기 위해 사냥을 잘하는 테리어를 데려오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충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화하여 호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마린은 식충이의 정체가 옴니멀(omnimal: 전능수)이며 그 어떤 생명체보다 외부 조건에 적응하면서 빠르게 진화한다고 확신한다. 옴니멀은 무한을 뜻하는 ‘omn’과 동물을 뜻하는 ‘animal’을 합친 단어다. 옴니멀은 생존을 위해 계속 먹기만 하면서 진화하는 생명체. 해프너 부장은 무슨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옴니멀을 완전히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마린은 절대로 그들을 멸종시킬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옴니멀이 계속 진화할수록 그들의 생존력까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해프너와 마린은 또다시 진화한 옴니멀을 목격하는데, 두 사람이 옴니멀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 동물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옷이라는 것에 대해 학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지 벌거벗은 채였다. 마찬가지로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놈은 나무에서 흰색의 커다란 꽃을 꺾더니 평화의 상징으로 조용히 내밀었다.

  “어른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부도 그럴지 궁금하군요. 저 몸속에는 뭐가 있을까요?”

  “나는 그의 머리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하다네.”

  해프너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받았다.

  그놈은 인간을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토탈 호러 1》 『신천지의 악몽, 305)

 

 

신천지의 악몽외계의 공포를 주제로 한 SF 소설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는 결말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해준다. 외계에 인간과 흡사한 생명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지구의 단독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개발과 생존을 위한 탐욕을 멈출 줄 모르는 인류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우리를 위협하는 공포의 존재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 공포의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부르는 우리 자신이다.

 

신천지의 악몽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한 옴니멀은 평화의 상징인 꽃을 내밀어보지만, 이 장면 하나만 가지고 행복한 미래의 결말을 상상할 수 없다. 해프너와 다린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여전히 옴니멀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옴니멀을 자신들의 상식에 벗어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또 자신들보다 더 뛰어난 수준을 가질 정도로 거듭 진화하는 옴니멀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옴니멀은 두려운 존재이며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해치워야 할 적이다. 따라서 지구에서 온 이주민과 글레이드의 토착민인 옴니멀 간의 살육전을 예고하는 슬픈 결말을 생각할 수 있다. 생존을 둘러싼 이주민과 토착민의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는 신천지에서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 맬서스 인구론(동서문화사, 2016)

* 맬서스 인구론(동서문화사, 2011)

 

 

 

신천지의 악몽은 단순히 공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 아니다.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다윈(Darwin)의 진화론과 맬서스(Malthus)의 인구론이 적절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윈은 젊은 시절에 맬서스의 저서 인구론을 읽었다. 그는 맬서스의 주장에 매료되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구의 과잉 증가가 빈곤과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맬서스의 주장에 영감을 받은 다윈은 모든 종()은 제한된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늘 배가 고픈 옴니멀은 이주민들의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진화한다.

 

맬서스가 말한 인구론의 밑바탕에는 생존 투쟁에 밀린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생학을 탄생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됐다. 유럽에서 시작된 우생학은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우생학 관련 정책을 세계 최초로 합법화한 국가는 미국이다. 우생학 정책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는 사회에서 태어난 월리스가 우생학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내려고 신천지의 악몽을 쓴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천지는 진화론을 극단적으로 변형시킨 우생학이 지배한 암울한 세상, 즉 디스토피아(dystopia)에 가깝다. 그래서 소설의 열린 결말은 한층 암울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 데이비드 스토브 다윈의 동화(영림카디널, 2008)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든 종이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는 다윈의 생각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들이 보기에 다윈은 인간을 그저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로 취급한다. 그래서 맬서스와 다윈의 생각이 반영된 신천지의 악몽을 보게 되면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부제를 정할 수 있다면, 나는 다윈의 잔혹 동화로 짓고 싶다. 호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스토브(David Stove)가 쓴 다윈의 동화는 자연의 모든 이치를 설명할 수 있는 진리가 되려고 하는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한 책이다. 저자는 반 계몽주의자인 맬서스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다윈의 진화론이 계몽주의자들의 지적 무기가 된 사실을 꼬집으면서, ‘적자생존을 지나치게 강조한 진화론자들이 우생학을 만든 역사까지 지적한다. 저자가 종의 기원을 불태워야 할 책이라면서 다윈을 과격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그는 창조론자가 아니다. 그는 진화론이 자기중심적인 오만한 도그마(dogma)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품절] 마크 리들리 HOW TO READ 다윈(웅진지식하우스, 2007)

* 찰스 다윈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9)

 

 

 

다린은 옴니멀이 글레이드뿐만 아니라 지구와 여러 행성에도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그만큼 옴니멀은 외부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하고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를 형질 분기(divergence of character)라고 한다. 다윈은 변이가 큰 종일수록 다양한 장소에 적응하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종으로 번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형질 분기는 한 종에 다양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늘어나면서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다윈이 제시한 개념이다. 형질 분기에 대한 설명은 종의 기원4(제목은 자연 선택’)에 나온다.

 

HOW TO READ 다윈은 형질 분기를 형질의 분산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그 단어의 출처가 잘못되었다. 31쪽에 나오는데, 출처는 종의 기원, 생존 경쟁이라고 되어 있다. 생존 경쟁3장 제목이다. 1859년에 나온 종의 기원초판을 번역한 책(장대익 번역, 최재천 감수)에서는 생존 투쟁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역자로 참여한 장대익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히 검토하면서 번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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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5-04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신천지 사태와 총선 후에 벌어
지는 일련의 작태들을 보면서 어제
부터 다시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500년 전부터 정치와 종교에 스며든
독단과 광기를 신랄하게 비난했던 르네
상스 인문학자들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슬프네요.

cyrus 2020-05-04 23:46   좋아요 1 | URL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포교 활동을 슬슬 시작할걸요. 그리고 ‘대구=신천지’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이 꽤 오래 갈 거예요. 저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일어나게 될 대구 사람들에 대한 타 지역들 사람의 반응이 두려워요.
 

 

 

마스크를 온종일 착용하면 두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끈으로 인해 귀가 아프고, 안경에 김이 껴 앞을 보기가 어렵다. 하루 절반을 밀집 공간에 있어야 해서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렇다고 계속 마스크를 쓰는 건 아니다. 귀가 아프거나 숨쉬기가 불편하면 마스크를 잠시 벗을 때가 있다. 처음에 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 모든 사람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도 전염이 된다.

 

나는 마스크 착용이 전염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무증상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증상 없는 사람의 전염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무증상 감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온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생활이 답답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작가와비평, 2020)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2)

* [품절] 안톤 체호프 안톤 체홉의 우수(이소북, 2004)

    

 

 

 

 

 

 

 

 

 

 

 

 

 

 

 

 

 

 

* [품절]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일송북, 2008)

* [e-Book]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일송북, 2015)

 

 

    

 

내가 이런 생각을 언제부터 했냐면 코로나19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올해 1월이었다. 그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우주지감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1월의 도서는 체호프 단편선이었다. 이상하게도 1월 독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음 달부터 시작해서 두 달 연속으로 독서 모임이 연기될 줄은 꿈에 몰랐다. 지금 대구의 상황을 봐서는 이번 달도 독서 모임 진행이 어려워 보인다.

 

민음사 판 체호프 단편선티푸스(typhus)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페스트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확인해보니 티푸스를 수록한 체호프 단편선집은 총 네 권이다. 현재 민음사 판과 최근에 나온 체호프 단편선집(작가와비평)을 제외한 나머지 두 권은 절판되었다.

 

지금 독자들은 페스트를 열독하는 중이다. 그 사람들은 페스트가 전염병 앞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잘 묘사했다고 말한다. 나는 페스트와 체호프(Chekhov)티푸스를 비교하면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어느 것인지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런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나는 페스트를 읽기 전에 티푸스를 읽었고, 이 체호프의 소설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적인 전염병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티푸스의 줄거리는 평범하다. 티푸스에 걸린 장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아픈 몸을 이끌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장교는 침대에 눕자마자 의식을 잃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장교는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장교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장교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누이동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망 원인은 장교로부터 감염된 티푸스였다. 장교가 눈 뜨기 삼일 전에 누이동생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소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리는 장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심장이 고통으로 찌그러지는 듯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창틀에 이마를 기댔다.

  “난 왜 이리 불행한가!”

  그는 중얼거렸다.

  “하느님, 나는 왜 이리도 불행합니까?”

  그리하여 그의 기쁨은 일상의 권태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체호프 단편선158)

 

 

장교는 자신이 걸린 병 때문에 누이동생이 죽은 사실을 알면서도 살아났다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숙모에게 음식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일주일 후에 그는 상실감에 빠진다. 체호프는 전염병으로 인해 두 사람의 운명이 한순간에 엇갈리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결말에 보여준다.

    

 

 

 

 

 

 

 

 

 

 

 

 

 

 

     

* 전승규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반니, 2019)

 

 

 

 

 

 

 

 

 

 

 

 

 

 

 

 

 

 

* [절판]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프로네시스, 2007)

* [e-Book] 최석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프로네시스, 2012)

 

 

 

 

 

 

 

 

 

 

 

 

 

 

 

 

 

 

 

* [품절]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가람기획, 2004)

* [e-Book] 마이클 비디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 질병의 역사(가람기획, 2010)

 

 

 

 

 

 

 

 

 

 

 

 

 

 

 

 

 

 

* 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사이언스북스, 2001)

 

    

 

 

코로나19와 흑사병이 가장 위험한 전염병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티푸스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인류의 역사를 몇 차례 바꿨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전염병이다. 고대 그리스가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티푸스 때문이었다. 티푸스가 없었더라면 나폴레옹(Napoléon)은 세계를 정복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의 사전에 티푸스라는 단어가 없었다. 전략가 나폴레옹은 전염병이 전세를 뒤집는 복병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812년 러시아 정벌에 나섰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것은 동장군과 티푸스였다. 천하의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티푸스의 위력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전염병을 소개한 책에 무조건 나오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지금도 자신이 건강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손을 잘 씻고 다닌다면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그들의 자만심이 하늘을 찌를까 봐 걱정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와 접촉하여 병에 걸릴 수 있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실은 자만심은 하늘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몸을 찌른다. 티푸스에 나오는 남매의 비극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나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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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4-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쓰기는 쓰는데 안 쓰는 이들도 꽤 많더라구. 외국인들 중에 마스크 안 쓰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거 봤는데 좀 무서워서 얼른 피하게 되더라. 날이 이렇게 좋은데 다들 밖으로 나가고싶어서 난리인듯. 잠깐씩 흔들리는 때가 있긴 있는데 마스크 없이 봄 거리를 걷는 게 그렇게나 큰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네. 그래도 얼른 끝나면 좋겠다. 조심해.

cyrus 2020-05-04 07:39   좋아요 0 | URL
내일 모레부터 생활형 거리두기를 시작하면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확 늘어나겠는데요. 몇 몇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게 돼요. ^^;;

stella.K 2020-04-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니도 옛날 노인인데 어렸을 때 홍역 같은 돌림병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더군.
1월이라. 난 그때만 해도 자만했지.
마스크 하고 다니는 사람들 뭘 그렇게까지 하나
메르스나 신종플루 때만 할 텐데 했거든.
이렇게 전 세계를 초토화시킬 거라곤...ㅠ
라떼는 전쟁을 겪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놀라운 세상을 겪고 있는 요즘이다.ㅠ

cyrus 2020-05-04 07:44   좋아요 0 | URL
올해야말로 앞날을 예상하기 힘든 해인 것 같아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

레삭매냐 2020-04-0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스크 쓰고 벗다가 그놈의 안경
을 세 번이나 해먹었네요...

아 숨쉬기도 불편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죽갔네요 정말.

마스크 쓰기 너무 힘드네요.

cyrus 2020-05-04 07:46   좋아요 0 | URL
대구는 벌써 초여름 날씨 모드라서 낮에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면 답답해요... 여름에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20-04-1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로 처음 마스크를 쓸 땐 내가 감염될까 봐 마스크를 쓰는 쪽이었는데,
요즘은 혹시 내가 증세 없는 보균자일 수가 있어서 남을 위해 마스크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cyrus 2020-05-04 07: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불편하더라도 나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마스크 착용은 필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