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리어(Linda Lear)가 쓴 레이첼 카슨 평전은 완성도 높은 책이다. 리어는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카슨의 삶에 그녀에게 영향을 준 주변 인물과의 관계, 카슨이 마주한 과학계의 유리 천장(glass ceiling)과 차별 등을 엮어 입체적으로 서술했다.

    

 

 

 

 

 

 

 

 

 

 

 

 

 

 

* [품절]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샨티, 2004)

 

    

 

리어는 카슨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녀는 카슨이 가장 좋아했던 친구이자 연인인 도로시 프리먼(Dorothy Freeman)에게 보낸 편지까지도 가지고 있다. 카슨은 독신으로 살았지만, 이미 결혼한 도로시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카슨은 도로시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흰 히아신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녀를 향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히아신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 히아킨토스(Hyakintos)에서 유래된 꽃 이름이다. 히아킨토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n)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외모가 아름다운 소년이다. 아폴론은 히아킨토스를 사랑했다.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미클라이(Amyclae, 스파르타로부터 남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에 사는 히아킨토스를 만나기 위해 스파르타에 자주 갔다. 두 사람은 함께 사냥개를 데리고 산속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는 원반던지기 시합을 한다. 불행하게도 아폴론이 먼저 던진 원반은 땅에서 튕겨 올라 히아킨토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얼굴에 치명상을 입은 히아킨토스는 아폴론의 품속에 숨을 거둔다. 히아킨토스의 상처에 흘러나온 피에서 꽃이 피었고, 그 꽃이 바로 히아신스다.

    

 

 

 

 

 

 

 

 

 

 

 

 

 

 

 

* 메릴린 옐롬, 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책과 함께, 2016)

 

    

 

예로부터 예술가들은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에로틱한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두 사람의 모습(아폴론이 죽어가는 히아킨토스를 안은 모습)을 묘사했다. 히아킨토스를 사랑해서 본인이 직접 그에게 다가간 아폴론처럼 카슨은 도로시에게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카슨은 도로시가 사는 지역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두 사람이 묵을 호텔 방을 예약했다. 하지만  가지 정황만 가지고 카슨과 도로시를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것은 과대 해석이다. 여성의 우정을 동성애로 치부하는 해석은 관계 속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지적 열정을 가린다[주]. 두 사람 모두 숲과 바다를 좋아했고, 함께 생물을 관찰했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친밀한 관계 형성과 깊이 있는 소통을 지향한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유럽 중산 계급 여성들 사이에 성애와 무관한 로맨틱한 우정’이 유행한 시기가 있었. 특히 독신 여성은 한 발 더 앞서 나가 결혼의 대안으로 여성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로 비추어 볼 때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는 로맨틱한 우정에 가깝다. 카슨은 도로시와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별장을 마련했고, 도로시와 함께 별장 근처에 있는 숲과 바다를 산책했다. 비록 도로시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카슨을 만나러 다니는 이중생활을 했지만(남편은 도로시가 카슨을 자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남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별장, 숲과 바다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두 사람만의 아늑한 장소였다.

 

카슨의 적극적인 구애는 외로움을 달래보려는 노처녀 인기 작가의 몸부림으로 봐서는 안 된다. 도로시를 향한 애정 표현으로 가득한 카슨의 편지를 보고난 다음에 침묵의 봄》의 논리 정연한 문체를 보면 묘한 괴리감이 생긴다. 하지만 도로시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들떴을 그녀의 모습은 과학자이자 작가로서의 평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친구 같은 어머니 마리아 카슨(Maria Carson)이 세상을 떠난 후 카슨과 도로시가 함께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암 투병에 지친 카슨에게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를 찾는 일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도로시 프리먼은 카슨의 글을 좋아한 열혈 팬이 아닌 카슨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연인,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 독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문장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있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주석을 달았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라고 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성적 취향의 변태를 떠올린다.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를 연인 관계, 동성애로 보는 관점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카슨 평전을 쓴 린다 리어도 그렇고, 지금까지 카슨 평전을 쓴 몇몇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랑인지 우정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로 중립적으로 바라볼 뿐 동성애에 초점을 맞춰 진술하지 않았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여성의 우정을 동성애로 본다면 그녀들의 깊이 있는 정신적 교류보다 육체적 관계에 더 주목한다따라서 필자는 카슨과 도로시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는 견해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내 견해가 동성애적 관계는 여성의 우정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로 읽혀질 수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므로 주석을 통해 동성애자의 열등함을 전제 하에 여성의 우정을 강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식인이나 예술가로 활동한 동성애자들이 있었다. 필자가 이 사실을 본 글에 언급하지 않았다. 내 실수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한 성소수자 독자가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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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3 22:19   좋아요 2 | URL
syo님, 어서 오시고요. 글만 안 썼을 뿐이지 책을 꾸준히 읽었어요.. ㅎㅎㅎㅎ

지금은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이 과거보다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동성애라고 하면 사람들은 성적인 관계를 떠올립니다. 동성애자를 변태 취급하는 거죠. 그래서 성소수자 운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이 동성애 차별을 비판할 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동성애자가 많아지면 HIV/AIDS가 퍼지면서 나라가 망한다고 말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여권신장론자들이 등장할 때 사람들은 그녀들을 동성애자라고 조롱했어요. 이제는 흔한 단어인 ‘퀴어’가 과거에는 원래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였듯이 동성애자라는 명칭 역시 그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던 거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우정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여권 신장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의 우정과 연대가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카슨과 도로시의 우정이 ‘에로틱한 동성애 관계’로 비춰지면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지 “동성애자는 지적으로 떨어진다”는 전제로 우정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적으로 뛰어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동성애 커플이 있었어요.

syo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동성애 관계 속에서도 지적 열정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잘못 읽혀질 수 있겠어요. 오랜만에 정말 좋은 의견을 받았어요. syo님의 의견을 수렴해서 수정하겠습니다. 고마워요. ^^

이하라 2020-12-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제가 못보고서 딴소리하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한동안 리뷰를 못뵌 것 같아서 안부인사 드립니다..

cyrus 2020-12-03 22:2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이 못 본 게 아니에요. 5개월 동안 제가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지 않았어요. 무언가에 미친 듯이 하다가 갑자기 하는 걸 멈추는 사람이 있잖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