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은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여성을 그린 이야기다. 톨스토이(Tolstoy)는 이 소설을 극찬했고, 작품이 너무 좋아서 네 번이나 계속 읽었다고 한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작가와비평, 2020)

* [품절]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시공사, 2013)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올렌카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비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없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야외극장 지배인을 동정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극장 지배인의 일을 거드는 올렌카는 자연스럽게 남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비판하는 남편의 생각에 공감했고, 배우들의 공연 연습을 지켜보는 감독 역할까지 하게 된다. 올렌카를 좋아하는 배우들은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올렌카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 죽으면서 그녀는 혼자가 되고, 그 후로 집에서 울기만 하면서 지낸다. 석 달이 지난 후에 올렌카는 이웃에 사는 목재상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지만 불행하게도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는 또다시 실의에 빠지지만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적이 있는 수의사를 만나면서 잠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의사가 다른 지역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올렌카는 외로운 생활을 한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올렌카는 귀여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간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수의사는 자신의 전처와 외아들까지 대동하여 올렌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서 기쁜 올렌카는 수의사와 전처와 외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산다. 올렌카는 수의사의 외아들을 친자식처럼 대한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빛과 마음은 온통 그 사람에게 향한다. 그녀가 귀여운 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할 힘과 삶의 방식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불행은 어떤 일에도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그저 따라 하는 올렌카는 자의식이 부재한 인물이다. 소설 초반부에 올렌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녀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한다. 올렌카는 어린 시절부터 가부장이 된 남성에 의존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종속적인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요모타 이누히코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

 

 

 

귀엽다는 일반적으로 예쁘거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대상(동물, 인형 등)에 호감을 나타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말에 타인을 차별하는 위험성이 있다. 일본의 문화비평가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 犬彦)가와이이 제국 일본이라는 책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가 돼버린 가와이이(かわいい, 귀엽다)의 밑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가와이이는 일본의 미의식을 함축하는 단어다. 요모타 이누히코는 가와이이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이 단어가 보호받기 쉬운 순진한 존재의 미성숙한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긍정하기 위해서 쓰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성숙의 미학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일본의 가와이이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요모타 이누히코 이전에 가와이이의 위험성을 경계한 사람이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 千鶴子).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가와이이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증오를 드러낸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용해온 교태라고 지적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귀엽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라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있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 사회 특성상 노인들은 자식과 손주의 보살핌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귀여운 할아버지,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고 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에 휘둘리는 현실이 사회적 차별을 받기 쉬운 여성/노인을 남성/젊은이에게 보호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귀엽지 않은 여자라고 부르며 귀여운 할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체호프의 소설과 가와이이 제국 일본우리가 무심결에 쓰는 귀여운이라는 표현이 한 사람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 자체마저 축소하는 위험한 단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만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불안해진다. 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체호프의 소설에 나오는 저 귀여운 여인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 귀여운 여인만 있는 게 아니다. 연상의 여성에게 사랑받기 쉬운 귀여운 남자의 매력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Trivia

    

 

 

 

 

2006년에 나온 가와이이 제국 일본(원제: かわいい)의 원서 앞표지는 어떤 그림도 없는 단색 디자인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본 표지에는 원서에도 없는 분홍색 전범기가 그려져 있다. 꼭 이렇게 그러야만 했을까? 정신 나간 디자인을 생각 없이 결정한 출판사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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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5-05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 나도 읽어볼래!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 인생은 괴로운 거야, 파편 지옥이랄까. 귀여운 건 잠깐씩만. 귀여운 거 좋아하지만 성인을 유아로 만드니까 온전한 삶이라고는 볼 수 없을듯.

cyrus 2020-05-05 19: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귀엽다’가 상대방을 칭찬하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누님이 말씀한 것처럼 상대방, 특히 여성을 유아로 취급해버리는 한계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