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채널에 하는 <차트를 달리는 남자>를 보게 됐다. 내가 본 방영분은 54회 ‘미확인 생물체’ 편이다. 방송 중간 부분부터 봤는데 두 MC가 미확인 비행물체 ‘로드(Rod)’를 소개하고 있었다. 로드가 7위로 소개됐고, 6위는 반인반수 ‘박쥐 인간’과 ‘악어 인간’이었다. 방송은 박쥐 인간과 악어 인간 미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들의 출처는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였다.
‘위클리 월드 뉴스’는 가짜 뉴스를 진지하게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미국의 신문이다. 1979년에 창간된 주간지였으나 2007년에 폐간되었고 현재는 인터넷 신문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신문을 인용한 기사가 있으면 믿고 거르면 된다. 그리고 위클리 월드 뉴스에서 나온 사진은 조작된 것이다. 작년에 위클리 월드 뉴스를 짧게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 [인간의 변신] 2016년 10월 22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851097
이 신문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위클리 월드 뉴스의 엉터리 기사를 진짜라고 믿는다. 국내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8, 90년대 해외 사정을 잘 몰랐던 국내 언론들은 이상하고 재미있는 해외 토픽을 전달하기 위해 위클리 월드 뉴스를 자주 인용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수준 미달의 기사가 나오고 있다.
* [박쥐소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재포획’] (코리아헤럴드, 2015년 11월 24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44&aid=0000164138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박쥐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웃긴 건 탈출한 박쥐 인간이 다시 포획된 해가 1997년이다. 코리아헤럴드 소속 기자는 십 년이나 지난 ‘가짜’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뻔뻔하게 기사를 썼다.
* [오바마-레이건, ‘큰바위 얼굴’ 조각상 합류 각축전?] (연합뉴스, 2013년 1월 24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057815
연합뉴스가 인용한 위클리 월드 뉴스 기사 내용이 황당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모어산에 자신의 얼굴 조각을 새기는 작업을 착수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네티즌 한 명이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연합뉴스 소속 기자의 글에 비판 댓글을 달았으나 기자는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
* [23세 유명 여가수, 5세 연하 男 아이 임신설] (문화일보, 2012년 12월 18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138027
2012년에 위클리 월드 뉴스는 두 번이나 최악의 기사를 퍼뜨렸다. 하나는 2012년 ‘구탄 행성’ 지구 종말설, 또 하나는 미국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임신설이다.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버젓이 인용한 국내 기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 [러 푸틴, “내가 오바마 조종할 것”] (매일경제, 2012년 3월 1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659317
위클리 월드 뉴스는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오바마를 위해 1억 달러의 대선 자금을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 [신출귀몰 칠면조에 동네 ‘발칵’…12명이나] (매일경제, 2012년 3월 10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659020
칠면조를 무시무시한 괴물로 둔갑한 위클리 월드 뉴스 클라스‥….
* [독일 정부, ‘UFO·외계생명체’ 극비 문서 공개할까] (서울신문, 2011년 12월 30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2246947
서울신문 기사에 히틀러와 외계인과 만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설마 이 사진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있으려나?
* [코카콜라 맛의 비밀이 ‘인간의 침’이라고?] (한겨레, 2011년 1월 2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078322
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이젠 펩시만 마셔야겠군.” 이래서 ‘가짜 뉴스’는 위험하다.
위클리 월드 뉴스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설립된 특이한 언론사이다. 위클리 월드 뉴스 창간한 제네로소 포프(Generoso Pope Jr.)는 타블로이드 가십 매체인 <내셔널 인콰이어러(The National Enquirer)> 소속 언론인이었다. (악이 악을 낳는다?) 위클리 월드 뉴스 편집장을 맡은 에디 클론츠(Eddie Clontz)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기사를 전달하는 것이 위클리 월드 뉴스의 일차적 목표라고 밝혔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로 시작된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는 위클리 월드 뉴스에 보도된 내용들을 소개한 책이다. 요지경 박물관 1편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 ‘악어 인간 미라’에 관한 내용이 있다. 어렸을 때 그 책을 보면서 정말로 악어 인간이 있는 줄 알았다. 이 책이 잘 팔렸는지 출판사는 제목을 은근슬쩍 바꿔 가면서 후속 작을 냈다.
요지경 박물관 1부 :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2부 :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3부 :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요지경 박물관 4부 : 아니, 세상에 또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5부 :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6부 :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7부 : 아니, 세상에 정말로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8부, 9부 :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출판사가 새로운 제목을 정하는 것이 귀찮았는지 8부와 9부 제목은 1부 제목과 똑같다.
* 《요지경 신문》 (하나로, 1997년)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를 만든 출판사는 신문지 형태로 편집한 《요지경 신문》을 펴내기도 했다.
* 노아 스트리커 《새》 (니케북스, 2017년)
노아 스트리커의 《새》에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내용이 나온다.
2012년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는 자신들만의 이론을 발표했다. “적대적인 흰올빼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미국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외계 군단과 손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흰올빼미들은 2011년 11월에 지구에 착륙하여, 페루 돌고래의 떼죽음을 일으키기도 한 구탄 행성인들과 내통하고 있었다. (146~147쪽)
2012년 지구 종말설이 슬슬 유행하기 시작할 때 위클리 월드 뉴스도 대중을 속일 수 있는 '떡밥'을 던졌다. 이 언론사는 ‘구탄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2012년에 지구를 침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흰올빼미들이 미국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구탄 행성 외계인들과 손을 잡았다는 황당한 소설도 썼다. 《새》의 저자는 위클리 월드 뉴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황당한 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 진중권 《아이콘》 (씨네21북스, 2011년)
* 진중권 《이미지 인문학 1》 (천년의상상, 2014년)
‘가짜’만 전달하는 위클리 월드 뉴스가 못마땅해도 그들의 뚝심 있는 행보에 긍정성을 읽어낼 수 있다. 가짜를 양산해 내는 위클리 월드 뉴스 소속 기자들은 ‘파타피직스(Pataphysics)’의 유희를 즐긴다.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Metaphysics)를 패러디한 것으로, 진짜와 가짜가 섞인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지향한다. 파타피직스는 인간을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로 돋보여주는 이성에 반발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가짜에 익숙해지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파타피직스 세계에 있는 자는 상상력을 하나의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난다.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는 전복적 상상력은 예술 창작의 힘이 된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 ‘가짜’를 악용하는 자들은 현실을 왜곡하여 사회 불안을 조장한다. 우리가 사는 파타피직스 세계에 악마가 있다. 그 악마란 바로 우리를 속이고 위협하는 ‘가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