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레카(yureka01)님 블로그에 공개된 반성문을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어제 박진성 시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소식이 포털사이트 뉴스 메인에 많이 노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어제 기사를 못 봤거나 유레카님이 반성문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사건의 진실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년에 성폭력 혐의를 받은 박 시인은 1년 간 법정 분쟁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박 시인의 무혐의 처분 소식을 전달한 뉴스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취재 대상에 대한 관심을 접고, 또 다른 먹잇감을 노리는 언론인들, 또 후속 기사를 내지 않는 언론인들. 그들의 잘못이 크지만, ‘약자(弱者)’를 ‘악자(惡者)’라고 판단하여 돌을 던져 놓고도 관심을 잊은 익명의 군중도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박 시인에게 돌을 던졌던 익명의 군중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유레카님의 반성문을 읽으면서 사실 검증을 하지 않은 다수 여론에 편승하여 돌을 던진 제 행동이 부끄러웠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입니다. 이렇다 보니 올바르지 못한 편견은 쉽게 공개되고 삭제(혹은 비공개)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전시됩니다. 또 커뮤니티 안에 형성된 다수 여론에 크게 휩쓸리기 쉽습니다. 다수 여론 분위기에 익숙하게 되면, 개인은 다수 여론에 적합한 기준에 따라 특정 인물을 평가하게 됩니다. 다수 여론이 커뮤니티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지만,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위험 신호를 감지한 사람은 소신 있게 다수 여론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비판할 용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우면 끝내 침묵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관심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져도 새로운 관심거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기존의 것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또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자신이 상대방에게 했던 언행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가 저지른 잘못은 잊힙니다. ‘지저분한 잘못’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씻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잘못으로 인해 (간접적/직접적) 피해를 본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고통의 시간 속에 지내야 합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남몰래 잘못을 숨기는 일은 비겁한 짓입니다. 따라서 저도 유레카님처럼 반성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을 공개한 게시물이나 댓글은 웬만하면 삭제하지 않습니다. 알라딘이 망하거나 제 서재 블로그가 완전히 폐쇄되지 않는다면 이 반성문을 끝까지 보관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