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사의 낭만적인 최후, <남방 우편기>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읽으면 지루할 법도 한데 <어린왕자>만큼 역시 비행사가 주인공으로 동증하는 생텍쥐페리의 소설들은 언제나 늘 새롭다.

그의 첫 장편인 <남방 우편기><야간 비행>은 스물여섯 살 때부터 우편비행 일에 종사하면서 유럽과 남미를 하늘로 오갔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비행이란 추락과 실종의 위험이 상존하던 때였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그런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경험을 소설 창작으로 융화시켰다.  폭풍우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항로를 이탈해버린 비행기, 지상과의 연락은 끊어지고 연료는 바닥나가고 오직 구름 사이로 스치는 불빛 한 점을 희망으로 기수를 돌린다. 그 불빛은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빛이다. 

생텍쥐페리의 실종은 그의 1931년 작 <남방 우편기>의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있다.  작가는 이미 자신이 곧 겪게 될 불의의 사고를 미리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생텍쥐페리는 소설 속 비행사의 죽음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의 동료여......  그러고보니 여기에 보물이 있었군. 자네가 그토록 찾아다니지 않았나?
이 모래언덕 위에서, 양팔을 십자 모양으로 벌리고 얼굴은 저 짙푸른 만을 향한 채 있는 자네, 그날 밤 자네는 어찌나 가볍던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자네는 얼마나 많은 밧줄을 풀어놓았던가. 벌써 공기처럼 가벼워진 베르니스. 자네는 오직 친구 하나만을 남겨 두었더군. 거미줄 한 가닥이 겨우 그대를 붙잡고 있으니 말일세......
 그날 밤 자네는 훨씬 더 가벼웠지. 갑자기 현기증이 났을 거야. 그 때 자네 머리 위로 별에서 보물이 반짝였겠지. 
아주짧게. 아주 덧없이 !
 내 우정의 거미줄이 자네를 가까스로 붙들고 있었지만 불충한 목동인 나는 아마도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네.     (생 텍쥐페리, [남방 우편기] pp 275)  

 

<남방 우편기>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자크 베르니스는 비행기로 우편물을 운송하는 비행 조종사다. 그는 주느비에브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느비에브는 사랑하는 남자를 혼자 두고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크 베르니스는 지상을 떠나 하늘 위로 나는 순간동안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버린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려고 한다. 하늘 어딘가에 있을 주느비에브를 만나기 위해서 그는 위험천만한 비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위험한 비행은 불의의 사고로 이어졌으며 그는 외딴 사막에 불시착한 이후, 원주민에게 피살당한채 발견됨으로써 소설은 끝이 난다.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베르니스의 동료가 행방불명된 그의 주검을 발견하고 있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기억이 남는 엔딩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죽음의 결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소설의 결말을 꼽고 싶다.  주인공의 비행기 사고가 '낭만적'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색한 감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최후를 묘사하는 수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결말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죽음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베르니스는 사막 위에서 싸늘하게 주검이 된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에도 밤하늘의 별빛은 반짝거리고 있다.   죽은 베르니스의 머리가 향하고 있는 저 하늘 위에 떠있는 별에는 분명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을 것이다.  베르니스는 그녀가 살고 있는 천국의 별로 떠났던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남방 우편기>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 언뜻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 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다.    <남방 우편기> 속 베르니스를 둘러싼 밤이라는 배경 역시 그렇다.  베르니스는 밤하늘의 별빛 삼아 사랑하는 연인의 부재가 만들어낸 고독을 달래보려고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도 짧고 한순간이다.   새벽이 되면 별빛이 사라지게 되듯이.    자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적 운명을 지니고 있다.

'저녁'이라는 공간 때문에 화자인 '나' 와 별과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관계가 정다운 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든 다른 존재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명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김광섭의 시는 미술 작품으로 변용된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화폭 속에는 수많은 점들이 박혀 있다. 김광섭의 시 내용을 비추어보면 그림을 가득 차고 있는 점들은 밤하늘 위에 수놓은 별들이다. 저기 저 수많은 점들로 이루어진 밤하늘의 수천개 별들의 무리 사이에 시 속 화자인 '나' 와 소설 속 자크 베르니스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사랑한다는 것은 ‘길들이는 것’ 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은 서로가 서로를 ‘쳐다 봄’으로써 소중한 사랑으로 맺어지게 된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은 무수히 많은 것들이지만 참으로 소중한 사랑으로 길들여지는 존재는 그 중에서도 오직 ‘별 하나’ 뿐이다.

하루에 한 번쯤이라도 서재 블로그에 글을 남기거나 이웃분의 서재에 방문하는, 이 사소한 행위도 어떻게 보면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 얼굴도 모르는 분들끼리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서 댓글이나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인연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관계이다.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어떻게 하다보면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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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9-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낭만적인 소설, 페이퍼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댓글 주고 받는 이 관계들. 참 소중하다고요. 꼭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요. 그런데 <야간비행>은 어땠어요? cyrus님.

cyrus 2011-09-26 12:46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쓰다보니 잘못 적었네요. 비행사의 죽음이 나오는 이야기가
<남방 우편기>라는 소설이고요.. <야간비행>은 제목 그래도 야간비행을
담당하는 조종사들의 고달픈 삶을 그린 내용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멜로적 요소가 있는 <남방 우편기>를 인상깊게 읽어서그런지 <야간비행>은
다시 읽어도 마음에 크게 와닿지가 않았어요. ^^:;

잘잘라 2011-09-2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아느은~~~
이 소절만 자꾸 부르게 되요^^

우편비행을 하며 그에 관한 소설을 쓰고, 비행 중에 실종된 작가 생텍쥐베리와
알래스카에 살며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다가 곰의 습격으로 사망한 작가 호시노 미치오, 두 사람의 마지막이 안타깝고도 아름답게 펼쳐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지, 어떻기를 바라는지.. 생각하게되네요.

cyrus 2011-09-26 12:52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시 구절에서 따온 가요도 있더군요. ^^

저는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천상병 시인의 시 구절처럼
살아온 세상이 아름답다고 적을 수 있는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
 

 

 

* 관련 강의 제목:  한국정부론 2주차 강의 (2011.9.19)   

  관련 내용 동영상: 지식채널e [180도의 진실]

                           5.18 민중항쟁 동영상 (5.18 기념재단 www.518.org/

  

    

  뒤집어 볼 수 있는 그림  

  

     

주세페 아르침볼도 <요리> 1570년 

 

식탁 위에 은쟁반에 담은 통구이 요리가 차려져 있다. 이제 곧 시식을 하기 위해서 쟁반 뚜껑을 열어놓는다.  새끼 양과 닭을 통째로 구웠다.  제목의 의미 그대로 보게 된다면 그림을 보는 관찰자는 '요리' 를 상징하는 기름기가 배어날 정도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통구이 음식을 묘사한 단순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통구이 음식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에는 분명 '사람' 도 그려져 있다. 단, 쟁반 뚜껑을 열려고 하는 두 손만 보이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180도 완전히 뒤집은 상태에서 보자.     

 

   

 

그림을 뒤집어 보라고 해서 설마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얼굴을 뒤집어서 본다거나 아예 모니터 기기를 통째로 뒤집어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혹시 그런 분들이 있을까봐 위의 그림을 180도로 뒤집어봤다.    

  

 

  

 

그림을 뒤집는 순간, 통구이 요리는 한순간에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사람 얼굴이 등장한다.  새끼 양 통구이는 사람의 이미와 귀가 되었고 닭 통구이는 눈과 코가 되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 벌어진 입도 볼 수 있다.   통구이를 담은 은쟁반은 어느새 그로테스크 인간의 머리에 씌어진 모자가 되었다.    그림 속에는 통구이 요리뿐만 아니라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그로테스크 모습의 사람 역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보는 시선의 틀을 깬 뒤집어 볼 수 있는 그림 자체가 신기하고 놀랍지만, 그림의 형식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그림이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는 점이다.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림을 제작한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화가로 활동할 때 동시대 화가로는 미켈란젤로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 화가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나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지역을 기반으로 활약하였으나 아르침볼도는 밀라노에서 화공으로 활동하다가 1562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으로 활동의 무대를 옮겨 그 곳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르침볼도 <베르툼누스의 모습을 한 루돌프 2세>  1590년 

   
  베르툼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들판과 정원의 신이다. 아르침볼도는 국가의 최고 경영자인 황제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통치자를 식물을 자라나게 한 위대한 신으로 효과적으로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궁정화가라면 자신에게 막대한 재정적 지원과 예술적 후원을 해주는 왕과 그의 일가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당시 모든 궁정화가들은 군주를 신이나 영웅, 초인, 성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아르침볼도는 그런 관례를 버리고 황제를 식물의 조합체로 표현했다. 

당시 왕들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루돌프 2세(1552~1616)가 왕좌에 오르게 되면서부터 아르침볼도의 재능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국왕은 불경스럽다고 화가를 꾸짖기는커녕 그가 그린 각종 사물의 조합으로 표현한 자신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그림들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동물과 식물을 아울러 사람의 머리를 형용한 괴기한 그림을 제작한 아르침볼도의 예술적 재능은
저속한 취미를 가진 화가라 하여 오랫동안 무시되었으나 초현실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재평가되었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물 혹은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이 꼭 한 가지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시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 만물의 외양과 내면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400여 년의 아르침볼도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휴가' , 5.18 광주민중항쟁

 

사진출처: 5.18 기념재단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대통령 시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면서 군부의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유신독재체제에 이은 신군부 세력의 탄압정치는 국민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전국적으로 산발적인 학생 시위가 이어졌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시민 집회가 대규모로 진행된 이후, 신군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5월 17일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계엄군을 주둔시켰다.  

5월 18일 광주 전남대학 학생들이 등교가 저지되자 계엄령과 휴교령 해제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은 공수특전단과 탱크 등을 동원하여 잔인하게 진압하였다.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계엄군의 폭행 

(사진출처: 5.18 기념재단)

  

5월 20일 계엄군에 의해 모든 시외 전화가 두절되어 광주는 고립되었고, 계엄군은 시민에게 발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언론들은 광주 항쟁을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왜곡, 보도되기에 이른다.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명의 시위 학생들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을 시작하였다.

5월 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고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렸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은 끝났지만 1995년에 당시 신군부세력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어 그동안 정권과 언론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이 규명되기 시작했다.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정권의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될 수 있었다.   

 

 

 두 개의 동영상 감상에 대한 단상  

이번 주 월요일에 있었던 '한국정부론' 수업 시간에 지식채널e의 '180도의 진실' 과 5.18 광주민중항쟁 관련 동영상을 동시에 보게 되었다.   동영상을 보고 난 뒤에 교수님은 각자 학생들에게 동영상 수업과 관련된 소감을 물어봤다. 

학생들의 소감은 대체로 천편일률적이었다. '180도의 진실' 동영상을 보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거나 '5.18 민중항쟁' 동영상을 통해서 광주에서 일어난 신군부의 잔인한 행위뿐만 아니라 민주화로 발전할 수 있는 역사적인 날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등으로 짤막하게 소감을 남겼을 뿐이다.    

내용이 서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 가지 동영상을 통해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은 의도가 있었을텐데 학생들은 한 가지 동영상에 대한 소감만 언급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단, 강의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교수님의 본래 의도에 어긋날 수도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시민군에게 가하는 신군부의 무자비한 폭력 영상을 보면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한 신군부 정권이 나쁘다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물론 수많은 시민을 잔인하게 폭력과 살인을 행사한 신군부의 반인륜적인 진압은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현상을 다른 시선을 바라보게 되면 시민과 학생들에게 무기를 내민 집안에 참여한 군인들 역시 민중항쟁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신군부에 희생된 피해자라고 생각된다.  

내가 본 5.18 민중항쟁 동영상의 말미에는 민중항쟁 참여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는 시민이 등장하였다.   그만큼 인정사정 없이 곤봉을 휘두르고 군화로 짓밟는 폭력이 만들어낸 공포와 혼란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폭력이 낳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군인들 역시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5.18 관련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게 된 것인데 당시 항쟁 진압에 참여했던 군인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진압 가해자 입장인 군인은 그저 죄 없는 시민에게 무자비하게 가한 폭력 행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라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면성' 은 조세희의 <난쏘공>에 수록된 '뫼비우스의 띠' 에 볼 수 있다. 

생활이 어려운 앉은뱅이와 꼽추는 아파트 재개발로 살고 있는 집을 헐값에 빼앗기게 되자 복수를 결심하고 준비한다.  결국 부동산업자를 묶고 돈을 빼앗은 그들은 부동산업자를 차에 태워 불을 질러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막상 부동산업자를 살해하고 난 뒤에 두 사람의 태도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 시작한다.   앉은뱅이는 부동산업자에게 훔친 돈으로 강냉이 기계를 사서 재기의 인생을 펼쳐보려는 희망의 꿈에 부풀게 되지만 반면에 꼽추는 앉은뱅이와는 다르게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고 후회하게 됨으로써 앉은뱅이의 계획에 동행하지 않게 된다. 

결국 부조리한 세상사에 엮여져 있는 인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묘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고정관념으로 보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다.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앞면과 뒷면을 구별할 수 없는, 발생원인과 결과를 놓고 시비를 가릴 수 없게 돌아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 처럼 복잡한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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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진짜 시루스님이 사진이랑 그림 보여줄 때 너무 좋아요.^______________^

cyrus 2011-09-25 19:59   좋아요 0 | URL
이거 매주 수업시간에 강의 내용 요약, 느낀점 써서 교수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종의 과제물이랍니다. 과제물로 제출하기 전에
서재 블로그에 페이퍼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제출할 때 불필요한 내용들은
빼야겠지만요.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
 

    

 

 

 

 

 

 

 

   

 

  * 관련 강의 제목 및 내용 : 관료제론 2주차 강의 (2011.9.14)

  

 

  관료제의 어원  

관료제(官僚制, bureaucracy)는 '천으로 덮인 책상과 사무실' 을 뜻하는 bureau와 '통치' 를 뜻하는 cracy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에 따라 관료제는 사무실 안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관리들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베버의 관료제 모형  

 

 

막스 베버 (1864~1920) 

 

관료제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행정 업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현대 국가에서 관리의 특정 직위에 따른 권한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권한이 인물이 아니라 직위 자체에 부여된다. 행정이 비인격적으로 집행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매우 합리적인 조직 형태로 봤다. 관료제는 현대적 합리성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합리적이고 작업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형태로서 관료제에 대한 이념형을 설정하였다.  (이념형이란 복잡한 사회 현상의 특징이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 개념적으로 설정된 통일 모형을 의미한다) 

베버의 관료제이론은 지배유형에 따라 관료제의 형태를 분류하고 있으며 이념형의 입장에서 권위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지배유형을 나누고 있다.   

 

  (1) 전통적 지배   

  

중세 봉건제도의 구조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가 과거로부터 존속되어 하나의 전통이나 신념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지배 유형이다.   전통적 지배를 가산적 관료제라고도 한다.  국가가 군주의 사적인 세습재산으로 취급되는 가산국가의 관료제를 말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관료제나 중세 시대의 봉건제에서 그 전형적 예를 찾아볼 수 있다. 

  

  (2) 카리스마적 지배   

 

히틀러와 무솔리니

  

'카리스마'(charisma)는 본래 크리스트교적 용어로 '은혜', '무상의 선물' 이라는 뜻이다.  즉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뜻한다.  베버는 이 말의 원뜻을 확대하여 관료제 지배형태 개념으로 확립시켰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개인의 초인적 힘이나 자질에 의해 정당화되는 권위를 말한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장기적으로 계속하여 존재하게 되면 전통적 권위, 즉 전통적 지배(관료제)로 발전된다. 

  

  3) 합법적 지배  

합법적 지배는 제정된 법 질서가 가지는 합법성에 지배, 복종의 근거를 두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법의 지배를 의미한다. 이 경우 법질서는 인간의 주체적인 정치적 활동에 의하여 창조되고 변경될 수 있다는 신념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베버 관료제 모형의 한계  

베버는 합리성을 토대로 관료제 조직의 능률과 객관성, 안정성 등 순기능만 강조했을뿐 관료제의 비공식적, 비합리적인 요소 등의 역기능적 측면을 도외시했다.   

193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베버의 관료제 모형이 본질적으로 19세기 말 프러시아 왕조 시대의 정부조직과 군대조직을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시대 변화에 따른 관료제에 대한 수정론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조직의 비합리성, 수동적 인간관, 병리적 측면, 폐쇄적인 환경 등 역기능적 내용을 근거로 들어 관료제에도 한계가 있음을 평가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관료제 모형에 대해서 전면적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지휘, 감독 체제의 계층제를 지나치게 중시하며 전문적 관료들의 무능함 등을 비판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후기관료제(탈 관료제) 모형이 제시되었는데 정태적인 관료제의 변동 대응능력을 탈피한 동태적인 관료제 모형이 대두되었다.   새로운 관료제 모형은 조직에 처한 상황에 다라 조직 내부 구성 변동 능력이 탄력적으로 운용되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양날의 검과 같은 관료제 

관료제는 조직의 목표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률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소에는 관료제 특유의 표준화된 규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는 활동은 공식적 임무로서 규정에 따라 배당된다.  동시에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명령권 역시 명확하게 할당되어진다.   

하지만 법과 규칙에 의해 엄격하게 표준화된 권위 및 조직 체제의 병리적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올해 초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응한 일본 정부 관료들의 안일한 태도에서 관료제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원전을 운용하고 있는 도쿄전력은 원자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바닷물 주입 결정을 미루다가 초기의 수습 시기를 놓쳐 버렸다. 정부 관료 조직들의 사고 대응과 관련된 움직임도 늦었다.  총리는 원전 폭발이 발생한 지 1시간이 지나도록 보고를 받지 못했고, 자위대는 원자로 4곳이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냉각 작업에 즉각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일본 특유 의사결정 방식인 품의제에서 비롯되었다.

품의제란 정부 혹은 기업 관료제의 말단에서 기안된 결재서류가 밑에서부터 계통적 조직 구조를 따라서 순차적으로 상급자에게 회람돼 최종 결재권자에게 도달되는 일본식 의사결정 방식이다.  품의제는 조직 전체 구성원이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으로는 위기 상황이 닥치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최고 의사결정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 일본 관료들은 ‘아주 열심히 책상 앞에서 문서를 기안하고 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과도하게 매뉴얼화된 관료제가 대형 사고에 대한 늑장 대응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매뉴얼에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의 관료제는 상황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관료제의 폐해와 행정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풍자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개그 코너 '비상대책위원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와 관련한 전력거래소와 지식경제부의 허술한 대응책은 그동안 실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관료제의 역기능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적인 사고였다.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오전 시간대에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절전 안내방송이나 정전 예고 조처는 없었다.  전력거래소 규정에는 여유분의 전력이 백만 킬로와트 이하로 떨어질 때 정전 조치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백49만 킬로와트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단전에 들어갔으며 이에 대해 전력거래소는 상황이 급박해 사전 대처 차원에서 정전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매뉴얼에도 없는 급박한 상황에 따른 대응책이였지만 과잉대응에 대한 지식경제부 보고는 늦었다.  

일본이 두 번이나 핵폭탄을 맞은 채 패전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급성정한 것도 관료들의 역할이 컸던 게 사실이다. 최악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일본이 지진과 원전 안전신화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매뉴얼에 따라 사회 시스템을 적절히 관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번 사태를 통해 매뉴얼에만 의존하는 관료주의의 폐해가 어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체험했다. 관료주의 병폐 극복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적 현실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최악의 정전 사태의 위기대응에서 드러난 총제적 부실에 대해서 정부, 지식경제부, 관련 전력회사들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단순히 '네가 ~식으로 했으니 네가 제일 잘못했다' 식으로 개인의 역량을 이유로 들어 책임을 추궁하는 것보다는 본질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야기시킨 조직 운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무 한 그루만 보는게 아니라 각각의 나무들로 구성된 숲도 봐야하듯이 조직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에만 보는 것보다는 그런 구성원들을 움직이게끔 하고 있는 조직 형태의 문제점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정전사태를 통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능률적인 전력 관리에도 힘써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관료제도의 역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 관련자료  

[일본 관료병] 양기웅, 문화일보 칼럼, 2011년 3월 25일  

 

* 사진출처 

http://cafe.naver.com/pape7001.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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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1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09-2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악!! 저 오늘부터 행정학 공부해요, 시루스님. 좀 싫어하는 과목인데(양에 질리고 학자이름에 질리고 이론에 질리고) 시루스님 생각하면서 해볼까 해요. 진짜 싫은데 좋은 척 하고 있는 거예요.ㅎㅎㅎ

관료제론,이라니. 흐흐흐흐흑.

cyrus 2011-09-21 16:21   좋아요 0 | URL
저 지금 공강이라 이웃분들 서재 방문하고 있었는데 ㅋㅋㅋㅋ
하필 오늘 저녁에 관료제론 수업이 있어요.. 내용이 관료제론이다보니,,
수업이 좀 지루하긴 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2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료제 배울 때 '과두제의 철칙'이나 '엘리트 이론'도 배우나요?

cyrus 2011-09-23 19:13   좋아요 0 | URL
'엘리트 이론' 은 아직 안 배웠고요,, 이틀전 관료제론 수업 때
잠깐 과두제의 철칙은 언급되었어요. 이번 주까지는 관료제에 대한
기초적인 부분을 프린터로 공부하는 중이라서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교재 내용 수업에 들어가게 되요.

노이에자이트 2011-09-23 23:51   좋아요 0 | URL
이 분야는 정치학 사회학 행정학이 함께 다루는 것 같아요.

cyrus 2011-09-24 20:27   좋아요 0 | URL
지금 제가 다니고 학교 행정학과에 신설된 과목 중에는
정치학과 경영학 영역의 비중이 크답니다.
제가 이번 학기 때 듣는 과목이 정치학이 있고요,,
그리고 경영학과 조금 관련이 있는게 인사행정학입니다.
정치학의 영역이랑 가까운 과목이 정책학이고요..
심지어 행정철학이라는 과목도 있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9-24 22:34   좋아요 0 | URL
철학 앞에 다른 분과학문을 붙여놓은 게 많죠.경영철학 역사철학 사회철학 정치철학 과학철학 비교철학 등등...그러고 보니 사회학도 그러네요.경제사회학 역사사회학 체육사회학 법사회학 등 등...

행정학은 응용학문적 성격이 강하니까 법학 정치학 사회학 경영학 재정학의 여러 분야를 많이 도입한 것 같습니다.

cyrus 2011-09-24 22: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응용학문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행정학이 지금까지도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학문적 주체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하네요.

행정학의 발달 기원으로 따져본다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행정학을 법학에서 분리된 것으로 많이 보고 있답니다.
행정학이라는 학문을 처음으로 독립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에요. 그가 행정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법학 교수였고요.

제가 배우고 있는 수강과목 중에는 행정통제와 개혁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밀의 공리주의,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설이 잠깐이마나 언급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제가 배우고 있는 내용이 진정 행정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호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양한 학문의 내용들을 겸해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은거 같습니다. 행정학을 통해서 정치학,
경영학, 법학, 사회학의 주요 내용들도 같이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행정학이라고 하면 공무원을 되기 위한 암기식 과목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그 점에서 좀 아쉽기도 합니다. ^^:;
 

 

 

 Scene #1 할머니 댁에서 농촌 활동하기  

매주 일요일 하루 일과는 딱 정해져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하루종일 집에 있기, 친구랑 술 먹기 그리고 아버지 따라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이면 쉬지도 못하고 거의 할머니 댁을 방문하신다.   그 이유는 할머니 홀로 하시는 농삿일을 도우기 위해서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은 경북 김천이다.  내가 사는 대구와는 거리상으로는 별로 멀지는 않지만 편히 쉬어야할 주말에 농삿일하러 가야하니 그야말로 고역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가용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신다.   요즘 기름값도 비싸지만 고속버스 왕래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어머니가 우리 집안의 경제권을 주도하고 있으시다보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일요일에 할머니 댁을 가게 되면 눈치를 봐야 한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라 사실 농삿일을 굳이 아버지 혼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 밑에 삼촌이 4명이 있는데 삼촌들과 함께 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삼촌들이 각각 따로 지방에 살고 계신데다 각자 주말에도 일할 정도로 바빠서 결국 아버지 혼자 도맡아하신다.   정말 간혹 삼촌들이 도와주러 오신다지만 아버지 혼자 농삿일을 맡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들로서 좀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 주 일요일에는 막내 삼촌 가족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막내 삼촌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서 덕분에 아버지는 교통비 때문에 어머니 눈치를 안 봐도 되었다. 

나는 일요일에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이상 아버지 따라 함께 동행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노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철없는 젋은이다.   실제로 아버지 따라 농삿일 하기 싫어서 거짓말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  

이번 주 일요일에는 땅콩을 캐기 위해서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땅콩줄기를 다 뽑아내어 뿌리에 있는 땅콩 열매들을 떼어내는데 허리가 안 좋으신 연세 많은 할머니 혼자 하시기에는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막내 삼촌이 괭이로 땅을 파내어 땅콩줄기를 뽑고 나와 할머니는 땅콩 열매를 때어 자루에 담는 일을 하였다.  

다행히도 오늘 날씨는 무덥기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불 정도로 날씨가 선선하였다.  그리고 날씨가 흐려서 따가운 땡볕을 피할 수 있었다.  

 

 

 Scene #2  야산에서 열매 채집하기  

땅콩밭에 있는 모든 땅콩을 수확하는데만 네 명이 매달려 하는데만 4시간 걸렸다.  오전에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늦게 시작했으면 해 떨어질 때 마칠뻔했다.  

이제 땅콩 수확을 다 끝내서 좀 쉴 수 있겠나 싶었는데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야산에 가서 열매를 따러 가게 되었다.  이번 주 일요일은 그야말로 흙냄새, 풀냄새 고루 다 맡아보는 하루였다.     그래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라 군말 없이 아버지 따라 다녔다.  사실 할머니 댁에 혼자 있어봤자 딱히 할 게 없으니까...  할머니 댁에 사촌 동생들이 있는데 오히려 농삿일보다 애들이랑 상대하는게 더 피곤할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 야산 가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평소에 몸에 좋은 약초나 열매에 워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부모님 따라 야산을 돌아다니면서 그 분들이 캐오는 약초, 열매들을 많이 보곤 하였다.     부모님은 항상 열매나 약초를 캐오면 제일 먼저 술로 담근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건강에 좋다는 열매로 담근 약주(藥酒)가 많다.  

 

 

 

그 중에서 부모님이 야산에 갈 때 제일 많이 따오는 것이 오미자다.   어렸을 때 오미자열매를 처음 보는 순간, 앵두 열매인줄 알았다.   한 번 보면 눈에 익을 정도로 강렬한 붉은색을 띄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오미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총 5가지의 맛이 난다고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정말로 다섯 가지 맛이 나는지 궁금해서 열매를 직접 씹어 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그냥 꾹 참았다.  ^^;;       

정말 저 불그스름한 열매를 보라.  씹어먹으면 달콤한 앵두 열매 맛이 날 거 같지 않은가.      

오미자를 차로 달여 마셔본 적이 있는데 오미자차를 좋아한다.  오미자차가 혈압을 낮추게 하고 면역력을 높아주는 효능이 있어서 건강에 좋은 음료라서 그런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차맛치고는 맛이 오묘하다.     마셔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오미자차 한 모금 입에 대보면 신맛이 강하면서도 약간 쓴맛과 단맛이 난다.   

 

 

 

 

그 다음에 많이 따오는 것이 으름 열매다.    

어머니는 건강에 좋은 야산 열매가 있으면 항상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권한다.  어렸을 때 처음 으름 열매를 봤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먹어 봐라,  이게 산에 나는 바나나란다. "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속살이 하얀 이 요상한 열매를 먹어보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말씀한 것과 달리 맛이 내가 알고 있던 달달한 바나나 맛이 아니라서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입 안에 하얀 으름 열매의 속살을 넣은 순간 입 안에 굴러다니는 씨앗이 있어서 먹기가 불편하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입 안에 있는 걸 도로 뱉을 수도 없고...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든(?) 지금은 으름 열매가 보이면 당장 따서 먹는다.   맛은 이상해도 몸에 좋다면 뭐든 먹을 수 있다.     햐안 속살 안에는 수많은 씨앗이 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쓴맛이 난다.   씨앗만 따로 분리해서 부드러운 햐얀 속살만 먹으면 정말 바나나 같은 달달한 맛이 난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씨앗을 입 안에 분리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씨앗까지도 씹어 먹는다.   

으름 열매도 우리 집에서는 술로 담가 먹는데 방금 으름 열매에 대한 정보를 찾는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은 열매에 비타민 C가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에는 비타민 C가 오렌지, 사과와 같은 평소에 먹을 수 있는 과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야산에서 자라는 열매에도 비타민 C가 있다는 사실에 으름 열매를 자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으름 열매를 섭취하는 관련 정보를 더 첨가한다면 열매 속살을 갈아 우유와 같이 마신다면 우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철분의 흡수를 도와준단다.    속살 안에 파묻힌 씨앗만 어떻게 분리하면 쉽게 먹고 좋을텐데...   

  

 

 

 

 

이번에 산에서 채집한 열매 중에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게 다래 열매이다.    

이름은 들어봤는데 직접 눈으로 본게 처음이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어렸을 때 산에 어딜 가면 나무에 열린 다래 열매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찾아보기가 드물 정도란다.  그리고 소화가 안 될 때 열매를 먹으면 좋다고 하셨다.  

이제 막 열매를 땄을 때에는 딱딱하였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열매가 익어 물렁물렁해지는데 먹으면 키위 맛이 난다.     열매를 따면서 물렁물렁한 걸 골라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나 다래에 대해서 정보를 찾아봤는데 키위가 다래의 한 종류라고 한다.   그리고 소화불량일 경우에 먹어도 좋고 그 밖에도 열을 내리고 이뇨 작용도 한다.   

 

 

  Sence #3  시골 어린이와 도시 어린이   

이 날 동행한 막내 삼촌 슬하에는 각각 중학교 2학년, 초등학생 6학년인 남자, 여자 아이가 있다.     이 두 아이가 우리 집안 중에서  제일 막내 사촌 동생들이다.   

오늘 오전에 땅콩밭에 가면서 장난으로 "땅콩 캐러 가자" 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었는가보다.    가기 싫다면서 손에는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항했다.   

어차피 밭에 가도 이 어린 녀석들을 시킬 생각도 없었다.   농담의 의도 뒤에는 도시에서만 자란 이 사촌 동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그 '경험' 이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이다.   

요즘 자라나는 도시 어린이들을 보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다보니 농촌이나 야산과 같은 곳에서의 체험을 많이 하지 못하는 거 같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 속에 살아가는 곤충이나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밭이나 산과 같은 곳이다.       

약초와 열매를 채집하고 난 뒤에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을 지나가던 중, 남매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복장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골길에는 비록 먹을게 많은 슈퍼마켓도 없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이 없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은 나무와 밭이 있는 시골길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뛰놀고 있었다.   '자연' 을 벗삼아 마음껏 뛰노는 시골 아이들의 웃음기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내 사촌 동생들이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부족하게 된다.    결국에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하룻동안 시골 어린이와 도시 어린이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가 떠올렸다.   

시골의 쥐가 도시의 쥐를 초대하였는데, 도시쥐가 자신이 사는 곳에는 맛있는 음식이 산처럼 많다고 자랑하였다. 시골쥐가 도시에 가보았더니 치즈, 과일, 벌꿀 등 먹을 것은 많았지만, 사람들과 고양이가 돌아다녀서 매우 위험하였다.  시골쥐는 먹을 때마다 위험의 부담을 안고 살아야한하는 생활보다는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골로 되돌아왔다.  위험 속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보다, 검소하지만 마음놓고 살 수 있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정년퇴임을 하신다면 남은 여생을 농촌에서 사신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고나면 아버지 따라 남은 여생을 농촌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데 일단은 농삿일과 좀 친해져야 하는데...     신체적으로는 힘들지만 학교에서 하는 '농촌 활동' 을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농삿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P.S>  오늘 땅콩밭에서 일한 수당(?)으로 할머니에게 2만원 받았다.  덕분에 꽁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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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1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큰 대학생 손주가 주말을 반납하고 밭일을 도우니
연세 드신 할머니께서 얼마나 이쁘셨을까요...^^
또 함께 다니시는 아버님은 말은 안하셨지만 장성한 아들과 어머니 일을 도우러 가시니
여러모로 뿌듯하셨을거예요. 수고하셨어요~멋져요.

cyrus 2011-09-19 14:03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아들로써 해야되는 일인데요. 조금이라도 효자 노릇 해야겠어요 ^^;;

yamoo 2011-09-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럽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시루스님은 참 부러운 삶을 살고 계시는 군요!

cyrus 2011-09-19 14:0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아직은 제 심장 속에는 도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답니다. ^^;;
시골에 가면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아서 불편했어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9-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일찍 자는 거예요? 으름은 글을 읽고나서도 어떤 맛인지 궁금해요. 어쩌면 먹어봤을지도 모르고, 이미 아는 맛일 수도 있는데, 전혀 감이 안잡혀요.

잘자요~ 피곤한 시루스님.

cyrus 2011-09-19 14:06   좋아요 0 | URL
어제는 좀 일찍 잤어요. 밤 1시에요 ^^;;
으름이란게.. 맛의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해요. 확실한건 바나나 씹는 것처럼
부드럽고 단맛이 덜한 편이에요.

쉽싸리 2011-09-1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천도 외곽은 산이 깊죠. 그래도 야생오미자,으름은 흔치 않은데요. 저도 주말에 오미자따러갔었는데 거기는 벌써 다 따갔더라구요. 몇송이는 따서 오면서 먹었어요. 한 번먹어 보세요. 그 맛이정말 오묘합니다. 주로 효소로 담궈서 먹죠. 술도 담고요. 그런 술은 약술이라 너무 많이 안좋다고 합니다. 한잔정도씩 장복해야 좋데요.

cyrus 2011-09-19 14:08   좋아요 0 | URL
제가 간 곳은 사람 발길이 드문 산이에요. 그래도 가끔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먼저 열매나 산 속 깊이 자라는 버섯을 따가곤 해요.

blanca 2011-09-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천, 제 친구 시댁이 있는 곳이라 기억이 나네요. 주말에 아버지 농사일 도우러 가시는 모습. 시루스님이 대견하기도 하고(죄송해요^^;;) 부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아이들 상대 ㅋㅋㅋ 제 남동생이 제 딸 이틀 연속 놀아주고는 누워서 애 둘 키우는 사람 정말 대단하다고 그러고 도망가더라고요 ㅋㅋ 할머니와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루스님이 부러워요.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잘 못해드린 게 두고두고 자꾸 곱씹게 되고 한이 되는 저로서는...

cyrus 2011-09-19 14:10   좋아요 0 | URL
나이 차이가 많은 편이라 아이들 상대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정말로
어른과 아이가 생각하는게 달랐어요. 그래서 상대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

감은빛 2011-09-19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할머니댁에 농활을 다녀오셨군요! 멋져요!
으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어떤 맛일지 궁금해요.

시골아이와 도시아이 많이 다르겠죠?
사실 우리 아이들만봐도 집주변에서 흙을 밟을일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이란 것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살고 있어요.
나중에 자라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회색 콘크리트 숲에 갇혀 지낸 기억만 떠올릴까봐 걱정되네요.

cyrus 2011-09-19 14:12   좋아요 0 | URL
맛있다라고 보장은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건 먹으면 건강에 좋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골의 모습도 점점 사라지고
아이들도 많은 학업 때문에 자연에서의 체험할 기회 역시 많이 없을거 같아요.

stella.K 2011-09-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용돈이 2만원! 좋겠다!
뭐할건지 궁금한데...?ㅋㅋ
요즘 농업도 옛날 같지 않아서 돈 잘 번대더라.
물론 기후가 걱정이긴 하지만,
홍수 때 우리가 tv에서 보는 건 극단적으로 안 좋은 예만 보여줘서 그런 거고,
잘 사는 사람은 아주 잘 산대.
그 대신 뭐든 공짜는 없다고 고되긴 하다던데...

으름 들어보긴 했는데 저렇게 생겼군.
못 생긴 생선 주둥이 같아.ㅋ
맛 없다니 나도 그닥 기대는 안 되는데?ㅎㅎ


cyrus 2011-09-19 14:14   좋아요 0 | URL
지금 2만원 가지고 뭐할까 고민중이에요. 돈만 조금 있다면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에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이 돈 가지고
술값으로 하기에는 너무 아깝고요 ^^;;

누님!! 맛은 없어도 건강에는 정말 좋은 약이에요. ^^

stella.K 2011-09-20 13:15   좋아요 0 | URL
ㅎㅎ 서울에 살면 내돈 보태서 대작 한 번 하면 좋을텐데 말야.
말마따나 알라딘 중고서점도 가고. 아깝다. 그지?ㅋㅋ

잘잘라 2011-09-1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뭐랄까요, cyrus님다운 글이기도 하고 어떤 면은 좀 생소한 느낌도 나고 그래요. 특히 여기요, 「.. 실제로 아버지 따라 농삿일 하기 싫어서 거짓말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 ㅋㅋㅋ 거짓말은 안할 것 같은 cyrus님이었는데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신게 생소하구요,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라,라고 하신게 cyrus님 다워요. '열심히 한다'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편이다'라고 하셔서 한참 웃었네요. ㅎㅎ

cyrus 2011-09-19 14:16   좋아요 0 | URL
저도 살다보면 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거짓말을 한답니다. ^^;;

마녀고양이 2011-09-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락, 시루스님,,,, 부비부비 (이거 총각에게 이래도 되는건지?)

페이퍼 너무 이뻐요, 정말 따스하구요,
휑한 제 맘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예요. 농담 아니구 당장 에세이집에 실어도 되겠어요.
참........ 좋다, 저 열매들과 땅콩 따기라니. 예전에 친정 아버지께서 밭에서
땅콩을 캐내어 즉석해서 불에 구워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어요.

cyrus 2011-09-19 20:53   좋아요 0 | URL
페이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좀 재미나게 썼어야했는데... 앞으로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일기형식으로 쓰려고해요 ^^

순오기 2011-09-2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이런 총각이 어디 또 있겠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책만 읽는 줄 알았더니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는 국보총각이군요!^^
할머니랑 아버지께서 참 든든하고 대견하다 생각하시겠어요.
나는 중학교 2학년까지 촌에서 살았지만, 오미자나 다래, 으름열매도 본 적 없어요. 충청도 산골에는 왜 그런 열매가 없었을까요.ㅜㅜ

cyrus 2011-09-20 16:1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사람 발길이 드문 야산 깊숙한 곳에 자라다보니 못 보실 수 있을거
같아요. 제가 본 열매들은 기후와 지역에 따라 자라는 곳이 다를 수도 있고요. ^^
 

 

  

  때아닌 삼재(三災) 논쟁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올해 삼수에 도전하는 녀석이 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삼수생에게 시험 합격을 위한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 작은 동네 호프집에서 친구 여러 명과 모임을 갖게 되었다.    

술과 안주를 벗삼아 즐거운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에 삼수생 친구가 갑자기 '삼재'(三災) 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작년부터 삼재라서 과연 올해 수능시험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든다고 하였다.   작년에는 홀로 독서실을 다니면서 EBS 문제집을 열심히 풀면서까지 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성적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수생 친구는 작년 수능시험의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난 원인이 다 삼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하는 일마다 꼬인다거나 좋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하였다.   예전부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증세가 더욱 심각해지셨고 올해 모의고사 성적들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등 삼수생으로서의 말 못한 고통을 토로하였다.    

그러자 한 친구가 삼재는 1년을 주기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삼수생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작년의 기억은 잊어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꼭 짚고 넘어가야하는 성격의 나는 이를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위로를 그 친구에게 삼재는 1년 주기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삼재는 3년 주기라고 하였다.  사실 나 역시 용띠 삼재이기 때문에 삼재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9년때부터 올해까지 삼재가 끼어있기 때문에 삼재를 3년 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술기운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임의 대화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들은 삼재의 주기가 몇 년인지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몇 몇 친구는 자꾸 1년 주기라고 우겼고 나와 삼수생 친구는 3년 주기라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 지갑 안에 있는 삼재를 예방하는 작은 부적까지 내밀면서까지 '삼재 논쟁'(?)은 약 20분 정도 이어졌다.  

결국 술기운으로 인한 시간을 낭비하는 논쟁답게 마무리는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결국 논쟁의 결말은 삼재는 완전히 믿을게 못된다는 속설에 불과하다는 공통의 의견으로 싱겁게 마무리지었다.

 

 

  나에게 삼재란..? 

집에 돌와오면서 포털 사이트에 '삼재' 를 검색해봤다.   생각해보니 '삼재' 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삼재의 뜻을 알고나니 술자리에 했던 삼재 논쟁은 무의미한 허무한 대화였음을 알게 되었다.     

삼재의 '삼'(三)은 3'년 주기' 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종류를 뜻하는 것이었다.   유명 포털사이트 백과사전에 의하면 삼재의 정확한 의미는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삼재는 1년 주기도, 3년 주기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소개하고 있는 삼재의 의미가 내가 알고 있던 '삼재' 의 의미와 다르면서도 복잡하였다.   그리고 삼재의 재앙에도 각기 다른 종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종류를 보면 ① 도병재():연장이나 무기로 입는 재난, ② 역려재():전염병에 걸리는 재난, ③ 기근재():굶주리는 재난이 있다. 또 대삼재()라 하여 ① 불의 재난(), ② 바람의 재난(), ③ 물의 재난()을 말하기도 한다. 9년 주기로 들어온 이 삼재는 3년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 첫해가 들삼재, 둘째 해가 묵삼재(또는 눌삼재), 셋째 해가 날삼재가 되어 그 재난의 정도가 점점 희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첫번째 해인 들삼재를 매우 겁내고 조심하는 풍습이 있다.

그 대책을 살펴보면 첫째가 매사를 조심하는 방법이요, 두 번째는 부적()이나 양법()을 행하여 예방하는 방법을 썼다.  

① 부적:삼재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출입문의 위쪽에 붙여 둔다. 부적은 머리가 셋, 발이 하나인 매()를 붉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인데 이때 물감은 한약재인 경면주사()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② 양법:삼재가 들 사람의 옷을 태워서 그 재를 삼거리에 묻거나 그해 첫번째 인일()이나 오일()에 세 그릇 밥과 3색 과일을 차리고 빈다. 또 종이로 만든 버선본을 대나무에 끼워 정월 대보름에 집의 용마루에 꽂고 동쪽을 향하여 일곱 번 절하고 축원한다.  

③ 나이와 삼재:사·유·축(··)생은 삼재가 해()년에 들어와 축()년에 나가고 신·자·진(··)생은 인()년에 들어와 진()년에 나가고 해·묘·미(··)생은 사()년에 들어와 미()년에 나가며 인·오·술(··)생은 신()년에 들어와서 술()년에 나간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사실...    백과사전 속 내용이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3번의 '나이와 삼재' 같은 경우에는 십이지신을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무척 헷갈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용띠 삼재다. 올해가 삼재 마지막 년이다.   나는 삼재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그냥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다른 편이다.   유독 나에게 삼재를 강조하셨기에 지금까지 내가 삼재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나에게 삼재가 끼어 있는 시기에는 절대로 집 밖으로 멀리 나가지 말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셨다.    어머니가 가끔씩 다니시던 절의 큰 스님 말씀으로는 삼재가 끼여 있는 시기에 내가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안 좋을 일이 생긴다나...     그리고 삼재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부적까지 구입하면서 지금 내 지갑 안에 모셔두고 있다.    

 

  

  삼재의 시기 때 있었던 일들  

 

 1) 2008년, 삼재 이전

그런데 2009년, 2010년 그리고 올해까지 삼재가 끼여있던 시기들을 회상해보면 그렇게 좋지 않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수생 친구처럼 갑자기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 일상이 꼬이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일들은 가장 재앙이 심하다는 들삼재가 있는 2009년이 아니라 삼재와 관련이 없는 2008년에 일어났다.  

일단 2008년, 나에게 가장 안 좋은 일은 바로....    군 복무이다.   이건 뭐,,, 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기억하기 싫은게 군인이 되어 훈련소로 향하는 것일게다. ^^;;   

그 다음으로 안 좋은 일이 그 해 이병이었을 때 유격훈련 행군 도중에 오른발에 골절상을 입었던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골절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인생에서 가장 큰 부상이었다.  군 생활 잘 하다가 한순간에 발을 다치게 되어 3개월동안 군 병원에서 생활을 했으며 그 곳에서 일병 계급을 달게 되었다.   

이제 막 자대 생활에 정착하려는 이등병에게 오랜 기간동안 군 병원 생활을 하게 되면 퇴원 이후에도 제대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다.  군인들에게 군 병원 생활은 마음껏 편하게 먹고 놀고 잘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그래서 편한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퇴원 이후 군 생활이 쉽지가 않다.    머릿속에는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배우기 시작한 병기본, 훈련 내용과 같은 군사적 지식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대신에 어여쁜 간호장교님의 얼굴만 남게 될 뿐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군 병원에서의 생활을 그저 침대에서 누워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배우고 있었던 병기본 공부는 물론이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자격증 공부도 틈틈이 하였다.  (내가 군 복무하고 있었던 당시 이등병들은 자대에서 자격증 공부는 아직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다. 부대 내무반 생활 환경마다 다르지만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상병 때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이 때만큼 독서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군 병원 안에는 환자 장병들을 위한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덕분에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때 한창 밖에서 베스트셀러라고 읽혀지던 책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 병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읽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님이 병원에 면회오시면서 사오신 책이 바로 <신> 1, 2권이었다.  (그 당시에는 1, 2권만 출간되었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편안히 읽기도 했었는데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같은 병실에 만난 다른 부대 장병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 병원에 복무 중인 친한 의무병까지 이 책을 읽고 싶을 정도로 나름 책이 인기가 있었다.   

 

 

 2) 2009년, 들삼재의 시작   

2009년, 삼재의 시작을 들삼재라고 하는데 재난의 정도가 가장 강한 해이기도 하다.   

사실 이 때가 일명 '군 생활이 꼬였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몇 개월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2009년 2월에 군 병원에서 퇴원하고 드디어 자대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이등병 생활의 반을 병원에서 보낸 일병에 대한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필 복귀하던 시기가 소속 소대가 다른 지방으로 파견 중이라서 나는 어느 소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전투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잉여 병력이었다.   

내가 자대에 배치되면서 주어진 주특기가 특성상 많이 뛰어야하고 걷어야하기 때문에 당시 중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들 그리고 소대 간부님들 사이에서 나의 향후 소속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갈 정도였다.    나는 꼭 에전 소대에 소속되고 싶다고 강력하게 의사를 피력하였으나 당시 부대 일정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한 2개월동안 본부 소대와 함께 지내면서 무소속 소대 일병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본부 소대 사람들이 성격이 착하고 입원 전에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서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발을 다치기 전과 군 병원 생활 이후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의 시선과 반응이 너무나도 달랐다.    

 한 때 '소대를 짊어나갈 수 있는 유망한 이등병' 에서 한 순간에 '아무짝도 쓸모 없는, 어중간한 일병' 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몇 선임병과 동기들은 내가 군 병원 생활을 은근히 시샘하였다.   이등병 주제에 상, 병장도 하지 못한 편한 생활 다 누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병원 생황을 어떻게 했는지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단순히 '병원 생활' 을 '놀고 먹고 자는 생활' 로만 알고 있었다.   

 

 

 

 

  

 

 

  

 

2009년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기억 남은 책이라면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었다.  처음으로 강상중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책을 읽었던 당시 그 어떤 소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잉여 전투병에게는 한국인도 아닌, 그리고 일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재일교포 2세의 입장이 가슴 속 깊이 와닿았다.    비록 정신적으로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그 때의 경험 그리고 강상중 교수의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로서의 고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3) 2009년, 시련의 군생활 속에 피운 긍정의 꽃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전 소대로 복귀하게 되었지만 상병 마크를 군복과 군모에 오버로크를 해도 여전히 '군 병원 생활' 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 역시 나의 이미지에 오버로크 되어 있었다.   말과 생각은 '후임병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선임병' 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소대 생활을 빠르게 적응하는게 쉽지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평소에 나를 좋게 봐주던 소대장님이 다른 부대로 전임하시게 됨으로써 군 생활은 그야말로 '꼬이게' 되었다.   새로 온 부임한 소대장님은 평소에 나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간부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은 나를 '소대 내에서 열등한 장병' 으로만 생각했다.   

한 번 찍힌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못하는게 군대의 현실이다.  결국 간부의 눈 밖에 난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해 8월, 나는 다른 부대로 파견으로 복무하게 되는 다른 소대로 강제적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부대의 파견 복무는 맞은 편 북한 부대와 대치할 수 있는 압록강 주변에 근무하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야간 근무 시 춥기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파견 근무 소대로 옮긴다는 사실에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은 내가 군 생활을 제대로 꼬인 대표적인 케이스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도 파견 근무 소대원들과 친분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완전 친하지도 않은 소대였다면 정말 군 생활이 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친숙한 소대였다고 하더라도 그 쪽 소대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하는 것이 내가 먼저 해야할 첫번째 일이었다.  그 곳에서도 안 좋은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소대 생활에 적극절으로 임하였고 무엇보다도 절대로 다른 소대로 강제적으로 옮겼다고해서 풀 죽은 모습을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최대한 웃으려고 하였고 훈련 때에는 최대한 뛸 수 있을만큼 뛰었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좋은 일들도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파견 근무에 임한 노고가 소대 간부님과 소대원들에게 인정되어 부대장 표창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군 생활 처음으로 포상 휴가라는 것을 받게 된 순간이었다.     좋은 일은 계속 찾아왔다.  부대에서 시행 중인 한자 자격증을 따게 되어 또 포상 휴가를 이어서 받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소대원들은 드디어 내 군생활에 '꽃이 피었다' 라고 할 정도로 나를 예전보다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4) 2010년 묵삼재, 알라딘과의 만남  

삼재의 두 번째 시기인 2010년에는 머리 아플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다.  오히려 2010년은 나에게 좋은 일이 많았다.  

그 해 5월에 전역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알라딘 서재 블로그를 하기 시작하였다.  군 입대 전에는 블로그에 관심이 없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갑자기 해보고 싶은 경험들 중에 하나가 바로 블로그 활동이었다.    사실 알라딘 블로그를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땡스투 적립금이었다.     군 입대 전에도 간간이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했었지만 땡스투 적립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남기면 적립금을 모을 수 있다는 제도 자체가 평소 책을 많이 구입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으로 획기적인(?) 제도였다.  (지금은 땡스투 적림금의 폐해를 알고 있지만.. ^^;;)       그래서 하게 된 것이 서재 블로그 활동이었다.  적립금을 모으되 리뷰나 페이퍼만큼은 정성껏 쓰려고 노력했다.   

역시 노력한만큼 그에 따른 좋은 결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비록 처음으로 7기 신청할 때는 탈락되었지만 운 좋게도 8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라딘이나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리뷰 이벤트에 참여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알라딘 덕분에 나의 독서를 위한 재정적(?) 지원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는 좋은 서재 이웃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서재 블로그에 처음으로 댓글을 다셨던 분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에 그 분이 아니었다면 서재 블로그는 무척 썰렁했었을 것이다.   그 분의 댓글 덕분에 나도 다른 이웃분들의 서재 블로그에 가게 되면 댓글을 남기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5) 올 해, 날삼재  

삼재의 마지막 시기인 날삼재는 재앙의 정도가 가장 희박하다.   아직 2011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재앙' 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겪지 않았다.  

올 해가 3년 만에 복학하게 되어서 성적장학금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비록 2등이지만 그동안의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동안 2009년부터 올해까지 쭉 삼재의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의 앨범에 꺼내보니 그저 불행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 때가 좋지 않을 일들이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인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몰래 독서모임으로 한 달에 두 번 서울을 왕래했던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나는 정말로 이번 삼재를 억세게 운 좋게 보낸 것이다.  이게 다 부적의 효험 탓인지 모르겠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 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 알렉산드르 뿌쉬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연 -

 

 

'긍정의 힘' 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참고 견딘다면 즐거운 날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경험마저도 언젠가는 미래, 곧 나에게 다가올게 될 긍정적인 현실의 '열매' 로 이루어지는 소중한 씨앗이 될 수 있다. 저 유명한 뿌쉬낀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P.S>

'삼재' 를 검색하게 되면서 우연히 '액년'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액년이란 '운수 사나운 해' 를 뜻하는데 속설상 보통 남자는 25, 42 , 61세, 여자는 19, 33, 37세를 액년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이런,,,   내년이면 나 25인데...   심지어 2012년은 전세계적으로 지구 종말의 해로 운운하고 있다.    

과연 내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심 걱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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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1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재라는 말을 어릴적 할머니께 들은적이 있어요. 솔직히 뜻은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요 ㅎㅎ 근데 주어지고 짜여진 운명같은 것보다는 엄마 몰래 서울 다니신 cyrus님의 모험이 인생을 만드는건 아닐까도 싶어요 ㅎㅎ

cyrus 2011-09-17 21:15   좋아요 0 | URL
최근에 어머니께 그런 말씀을 듣게되니 속으로 얼마나 찔리던지.. ^^;;
지금도 제가 서울에 돌아다니는걸 모르시거든요 ㅎㅎ

순오기 2011-09-17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삼재 공부를 하는 새벽이네요.^^
어머님이 들삼재 날삼재 얘기를 하셨지만 그땐 잘 모르고 지났고~ 지나서 생각하니 그랬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받아들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고 결론지었어요.^^

cyrus 2011-09-17 21: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중에 과거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최악의 경험이 아니었던거
같아요, 만약에 제가 삼재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을거에요. 제가 삼재라는 것을 작년에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

마녀고양이 2011-09-17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알라가 용띠예요, 안 그래도 시어머님이 말씀해주시던데,
코알라 올해 초반은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꽤 좋은 상태인지라..
그래도 천기란게 무서워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지요.

여하간 9년 주기의 세가지 액운이라는 해석을 첨으로 알았네요.
시루스님, 서재 활동 즐거우신가요? 다행이예요,,, 그래야 오래 같이하지요~ ^^

cyrus 2011-09-17 2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올해가 끝나려면 3개월 남았는데,, 너무 함부로
서재에 글로 남긴거 같아요 ㅎㅎ 괜찮..겠죠..? ^^;;

아마도 9월 말부터 되면 학업 때문에 바빠질거 같아요, 중간고사가
10월 중순에 있으니까요.

stella.K 2011-09-1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멀리가지 말랬다고 하지만 서울 정도쯤이야...?!
그것도 바다 건너 가는 정도가 되야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거 미신이라고 믿지 말라고는 말은 못하겠다만,
매사 조심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우리가 가저야할 삶의 자세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자의 액삼년을 다 지나왔는데 특별히 해당사항은 없었던 것 같아.
나쁘다면 작년, 올핸 것 같아.
몸이 안 좋아졌으니까.
하지만 이때 또 리모델링을 받고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더라.
더 나빠지기 전이니까. 신호를 보내는 거였더라구.ㅎ

그런데 시루스 이런 말하면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젊구나. 올해도, 내년도.ㅋ
또 모르지 내년에 더 좋은 일이 있을지.
바라는대로 된다잖아.^^


cyrus 2011-09-17 21:23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러다가 저 유학도 못갈까봐 걱정이에요. 뭐 지금 상황으로서는
유학 갈 형편은 안 되지만요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누님은 액년에 아무 탈이 없었다니 다행이네요.

내년이면 20대가 꺾이네요. 여기서 껶이다라는게 군대에서 특정 기반의 절반을 지났을 때 사용하는 단어에요, 정말로 젊었을 때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하던데 후회하지 않는 젊음의 시기를 보내고 싶네요 ^^;;


2011-09-2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