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강의 제목:  한국정부론 2주차 강의 (2011.9.19)   

  관련 내용 동영상: 지식채널e [180도의 진실]

                           5.18 민중항쟁 동영상 (5.18 기념재단 www.518.org/

  

    

  뒤집어 볼 수 있는 그림  

  

     

주세페 아르침볼도 <요리> 1570년 

 

식탁 위에 은쟁반에 담은 통구이 요리가 차려져 있다. 이제 곧 시식을 하기 위해서 쟁반 뚜껑을 열어놓는다.  새끼 양과 닭을 통째로 구웠다.  제목의 의미 그대로 보게 된다면 그림을 보는 관찰자는 '요리' 를 상징하는 기름기가 배어날 정도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통구이 음식을 묘사한 단순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통구이 음식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에는 분명 '사람' 도 그려져 있다. 단, 쟁반 뚜껑을 열려고 하는 두 손만 보이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180도 완전히 뒤집은 상태에서 보자.     

 

   

 

그림을 뒤집어 보라고 해서 설마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얼굴을 뒤집어서 본다거나 아예 모니터 기기를 통째로 뒤집어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혹시 그런 분들이 있을까봐 위의 그림을 180도로 뒤집어봤다.    

  

 

  

 

그림을 뒤집는 순간, 통구이 요리는 한순간에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사람 얼굴이 등장한다.  새끼 양 통구이는 사람의 이미와 귀가 되었고 닭 통구이는 눈과 코가 되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 벌어진 입도 볼 수 있다.   통구이를 담은 은쟁반은 어느새 그로테스크 인간의 머리에 씌어진 모자가 되었다.    그림 속에는 통구이 요리뿐만 아니라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그로테스크 모습의 사람 역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보는 시선의 틀을 깬 뒤집어 볼 수 있는 그림 자체가 신기하고 놀랍지만, 그림의 형식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그림이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에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는 점이다.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림을 제작한 주세페 아르침볼도(1527?~1593)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화가로 활동할 때 동시대 화가로는 미켈란젤로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 화가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나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지역을 기반으로 활약하였으나 아르침볼도는 밀라노에서 화공으로 활동하다가 1562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으로 활동의 무대를 옮겨 그 곳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르침볼도 <베르툼누스의 모습을 한 루돌프 2세>  1590년 

   
  베르툼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들판과 정원의 신이다. 아르침볼도는 국가의 최고 경영자인 황제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통치자를 식물을 자라나게 한 위대한 신으로 효과적으로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궁정화가라면 자신에게 막대한 재정적 지원과 예술적 후원을 해주는 왕과 그의 일가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당시 모든 궁정화가들은 군주를 신이나 영웅, 초인, 성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아르침볼도는 그런 관례를 버리고 황제를 식물의 조합체로 표현했다. 

당시 왕들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아르침볼도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루돌프 2세(1552~1616)가 왕좌에 오르게 되면서부터 아르침볼도의 재능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국왕은 불경스럽다고 화가를 꾸짖기는커녕 그가 그린 각종 사물의 조합으로 표현한 자신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그림들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동물과 식물을 아울러 사람의 머리를 형용한 괴기한 그림을 제작한 아르침볼도의 예술적 재능은
저속한 취미를 가진 화가라 하여 오랫동안 무시되었으나 초현실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재평가되었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물 혹은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이 꼭 한 가지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시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 만물의 외양과 내면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400여 년의 아르침볼도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휴가' , 5.18 광주민중항쟁

 

사진출처: 5.18 기념재단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대통령 시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면서 군부의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유신독재체제에 이은 신군부 세력의 탄압정치는 국민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전국적으로 산발적인 학생 시위가 이어졌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시민 집회가 대규모로 진행된 이후, 신군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5월 17일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계엄군을 주둔시켰다.  

5월 18일 광주 전남대학 학생들이 등교가 저지되자 계엄령과 휴교령 해제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은 공수특전단과 탱크 등을 동원하여 잔인하게 진압하였다.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계엄군의 폭행 

(사진출처: 5.18 기념재단)

  

5월 20일 계엄군에 의해 모든 시외 전화가 두절되어 광주는 고립되었고, 계엄군은 시민에게 발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언론들은 광주 항쟁을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왜곡, 보도되기에 이른다.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명의 시위 학생들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을 시작하였다.

5월 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고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렸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 광주민중항쟁은 끝났지만 1995년에 당시 신군부세력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어 그동안 정권과 언론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이 규명되기 시작했다.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정권의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될 수 있었다.   

 

 

 두 개의 동영상 감상에 대한 단상  

이번 주 월요일에 있었던 '한국정부론' 수업 시간에 지식채널e의 '180도의 진실' 과 5.18 광주민중항쟁 관련 동영상을 동시에 보게 되었다.   동영상을 보고 난 뒤에 교수님은 각자 학생들에게 동영상 수업과 관련된 소감을 물어봤다. 

학생들의 소감은 대체로 천편일률적이었다. '180도의 진실' 동영상을 보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거나 '5.18 민중항쟁' 동영상을 통해서 광주에서 일어난 신군부의 잔인한 행위뿐만 아니라 민주화로 발전할 수 있는 역사적인 날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등으로 짤막하게 소감을 남겼을 뿐이다.    

내용이 서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 가지 동영상을 통해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은 의도가 있었을텐데 학생들은 한 가지 동영상에 대한 소감만 언급할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단, 강의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교수님의 본래 의도에 어긋날 수도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시민군에게 가하는 신군부의 무자비한 폭력 영상을 보면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한 신군부 정권이 나쁘다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물론 수많은 시민을 잔인하게 폭력과 살인을 행사한 신군부의 반인륜적인 진압은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현상을 다른 시선을 바라보게 되면 시민과 학생들에게 무기를 내민 집안에 참여한 군인들 역시 민중항쟁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신군부에 희생된 피해자라고 생각된다.  

내가 본 5.18 민중항쟁 동영상의 말미에는 민중항쟁 참여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는 시민이 등장하였다.   그만큼 인정사정 없이 곤봉을 휘두르고 군화로 짓밟는 폭력이 만들어낸 공포와 혼란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폭력이 낳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군인들 역시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5.18 관련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게 된 것인데 당시 항쟁 진압에 참여했던 군인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진압 가해자 입장인 군인은 그저 죄 없는 시민에게 무자비하게 가한 폭력 행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라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면성' 은 조세희의 <난쏘공>에 수록된 '뫼비우스의 띠' 에 볼 수 있다. 

생활이 어려운 앉은뱅이와 꼽추는 아파트 재개발로 살고 있는 집을 헐값에 빼앗기게 되자 복수를 결심하고 준비한다.  결국 부동산업자를 묶고 돈을 빼앗은 그들은 부동산업자를 차에 태워 불을 질러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막상 부동산업자를 살해하고 난 뒤에 두 사람의 태도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 시작한다.   앉은뱅이는 부동산업자에게 훔친 돈으로 강냉이 기계를 사서 재기의 인생을 펼쳐보려는 희망의 꿈에 부풀게 되지만 반면에 꼽추는 앉은뱅이와는 다르게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고 후회하게 됨으로써 앉은뱅이의 계획에 동행하지 않게 된다. 

결국 부조리한 세상사에 엮여져 있는 인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묘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고정관념으로 보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다.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앞면과 뒷면을 구별할 수 없는, 발생원인과 결과를 놓고 시비를 가릴 수 없게 돌아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 처럼 복잡한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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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2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진짜 시루스님이 사진이랑 그림 보여줄 때 너무 좋아요.^______________^

cyrus 2011-09-25 19:59   좋아요 0 | URL
이거 매주 수업시간에 강의 내용 요약, 느낀점 써서 교수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종의 과제물이랍니다. 과제물로 제출하기 전에
서재 블로그에 페이퍼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제출할 때 불필요한 내용들은
빼야겠지만요. 그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