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 강의 제목 및 내용 : 관료제론 2주차 강의 (2011.9.14)
관료제의 어원
관료제(官僚制, bureaucracy)는 '천으로 덮인 책상과 사무실' 을 뜻하는 bureau와 '통치' 를 뜻하는 cracy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에 따라 관료제는 사무실 안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관리들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베버의 관료제 모형
막스 베버 (1864~1920)
관료제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행정 업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현대 국가에서 관리의 특정 직위에 따른 권한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권한이 인물이 아니라 직위 자체에 부여된다. 행정이 비인격적으로 집행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매우 합리적인 조직 형태로 봤다. 관료제는 현대적 합리성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합리적이고 작업능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형태로서 관료제에 대한 이념형을 설정하였다. (이념형이란 복잡한 사회 현상의 특징이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 개념적으로 설정된 통일 모형을 의미한다)
베버의 관료제이론은 지배유형에 따라 관료제의 형태를 분류하고 있으며 이념형의 입장에서 권위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지배유형을 나누고 있다.
(1) 전통적 지배
중세 봉건제도의 구조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당성의 근거가 과거로부터 존속되어 하나의 전통이나 신념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지배 유형이다. 전통적 지배를 가산적 관료제라고도 한다. 국가가 군주의 사적인 세습재산으로 취급되는 가산국가의 관료제를 말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관료제나 중세 시대의 봉건제에서 그 전형적 예를 찾아볼 수 있다.
(2) 카리스마적 지배
히틀러와 무솔리니
'카리스마'(charisma)는 본래 크리스트교적 용어로 '은혜', '무상의 선물' 이라는 뜻이다. 즉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뜻한다. 베버는 이 말의 원뜻을 확대하여 관료제 지배형태 개념으로 확립시켰다. 카리스마적 지배는 개인의 초인적 힘이나 자질에 의해 정당화되는 권위를 말한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장기적으로 계속하여 존재하게 되면 전통적 권위, 즉 전통적 지배(관료제)로 발전된다.
3) 합법적 지배
합법적 지배는 제정된 법 질서가 가지는 합법성에 지배, 복종의 근거를 두는 것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법의 지배를 의미한다. 이 경우 법질서는 인간의 주체적인 정치적 활동에 의하여 창조되고 변경될 수 있다는 신념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베버 관료제 모형의 한계
베버는 합리성을 토대로 관료제 조직의 능률과 객관성, 안정성 등 순기능만 강조했을뿐 관료제의 비공식적, 비합리적인 요소 등의 역기능적 측면을 도외시했다.
193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베버의 관료제 모형이 본질적으로 19세기 말 프러시아 왕조 시대의 정부조직과 군대조직을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시대 변화에 따른 관료제에 대한 수정론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조직의 비합리성, 수동적 인간관, 병리적 측면, 폐쇄적인 환경 등 역기능적 내용을 근거로 들어 관료제에도 한계가 있음을 평가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관료제 모형에 대해서 전면적 비판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지휘, 감독 체제의 계층제를 지나치게 중시하며 전문적 관료들의 무능함 등을 비판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후기관료제(탈 관료제) 모형이 제시되었는데 정태적인 관료제의 변동 대응능력을 탈피한 동태적인 관료제 모형이 대두되었다. 새로운 관료제 모형은 조직에 처한 상황에 다라 조직 내부 구성 변동 능력이 탄력적으로 운용되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양날의 검과 같은 관료제
관료제는 조직의 목표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률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소에는 관료제 특유의 표준화된 규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는 활동은 공식적 임무로서 규정에 따라 배당된다. 동시에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명령권 역시 명확하게 할당되어진다.
하지만 법과 규칙에 의해 엄격하게 표준화된 권위 및 조직 체제의 병리적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올해 초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응한 일본 정부 관료들의 안일한 태도에서 관료제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원전을 운용하고 있는 도쿄전력은 원자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바닷물 주입 결정을 미루다가 초기의 수습 시기를 놓쳐 버렸다. 정부 관료 조직들의 사고 대응과 관련된 움직임도 늦었다. 총리는 원전 폭발이 발생한 지 1시간이 지나도록 보고를 받지 못했고, 자위대는 원자로 4곳이 손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냉각 작업에 즉각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일본 특유 의사결정 방식인 품의제에서 비롯되었다.
품의제란 정부 혹은 기업 관료제의 말단에서 기안된 결재서류가 밑에서부터 계통적 조직 구조를 따라서 순차적으로 상급자에게 회람돼 최종 결재권자에게 도달되는 일본식 의사결정 방식이다. 품의제는 조직 전체 구성원이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으로는 위기 상황이 닥치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최고 의사결정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 일본 관료들은 ‘아주 열심히 책상 앞에서 문서를 기안하고 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과도하게 매뉴얼화된 관료제가 대형 사고에 대한 늑장 대응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매뉴얼에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의 관료제는 상황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관료제의 폐해와 행정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풍자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개그 코너 '비상대책위원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와 관련한 전력거래소와 지식경제부의 허술한 대응책은 그동안 실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관료제의 역기능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적인 사고였다.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오전 시간대에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절전 안내방송이나 정전 예고 조처는 없었다. 전력거래소 규정에는 여유분의 전력이 백만 킬로와트 이하로 떨어질 때 정전 조치를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백49만 킬로와트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단전에 들어갔으며 이에 대해 전력거래소는 상황이 급박해 사전 대처 차원에서 정전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매뉴얼에도 없는 급박한 상황에 따른 대응책이였지만 과잉대응에 대한 지식경제부 보고는 늦었다.
일본이 두 번이나 핵폭탄을 맞은 채 패전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급성정한 것도 관료들의 역할이 컸던 게 사실이다. 최악의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일본이 지진과 원전 안전신화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매뉴얼에 따라 사회 시스템을 적절히 관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번 사태를 통해 매뉴얼에만 의존하는 관료주의의 폐해가 어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체험했다. 관료주의 병폐 극복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적 현실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최악의 정전 사태의 위기대응에서 드러난 총제적 부실에 대해서 정부, 지식경제부, 관련 전력회사들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단순히 '네가 ~식으로 했으니 네가 제일 잘못했다' 식으로 개인의 역량을 이유로 들어 책임을 추궁하는 것보다는 본질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야기시킨 조직 운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무 한 그루만 보는게 아니라 각각의 나무들로 구성된 숲도 봐야하듯이 조직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에만 보는 것보다는 그런 구성원들을 움직이게끔 하고 있는 조직 형태의 문제점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정전사태를 통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능률적인 전력 관리에도 힘써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관료제도의 역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 관련자료
[일본 관료병] 양기웅, 문화일보 칼럼, 2011년 3월 25일
* 사진출처
http://cafe.naver.com/pape7001.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