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할머니 댁에서 농촌 활동하기
매주 일요일 하루 일과는 딱 정해져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하루종일 집에 있기, 친구랑 술 먹기 그리고 아버지 따라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이면 쉬지도 못하고 거의 할머니 댁을 방문하신다. 그 이유는 할머니 홀로 하시는 농삿일을 도우기 위해서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은 경북 김천이다. 내가 사는 대구와는 거리상으로는 별로 멀지는 않지만 편히 쉬어야할 주말에 농삿일하러 가야하니 그야말로 고역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가용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신다. 요즘 기름값도 비싸지만 고속버스 왕래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어머니가 우리 집안의 경제권을 주도하고 있으시다보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일요일에 할머니 댁을 가게 되면 눈치를 봐야 한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라 사실 농삿일을 굳이 아버지 혼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 밑에 삼촌이 4명이 있는데 삼촌들과 함께 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삼촌들이 각각 따로 지방에 살고 계신데다 각자 주말에도 일할 정도로 바빠서 결국 아버지 혼자 도맡아하신다. 정말 간혹 삼촌들이 도와주러 오신다지만 아버지 혼자 농삿일을 맡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들로서 좀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 주 일요일에는 막내 삼촌 가족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막내 삼촌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서 덕분에 아버지는 교통비 때문에 어머니 눈치를 안 봐도 되었다.
나는 일요일에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이상 아버지 따라 함께 동행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노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철없는 젋은이다. 실제로 아버지 따라 농삿일 하기 싫어서 거짓말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
이번 주 일요일에는 땅콩을 캐기 위해서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땅콩줄기를 다 뽑아내어 뿌리에 있는 땅콩 열매들을 떼어내는데 허리가 안 좋으신 연세 많은 할머니 혼자 하시기에는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막내 삼촌이 괭이로 땅을 파내어 땅콩줄기를 뽑고 나와 할머니는 땅콩 열매를 때어 자루에 담는 일을 하였다.
다행히도 오늘 날씨는 무덥기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불 정도로 날씨가 선선하였다. 그리고 날씨가 흐려서 따가운 땡볕을 피할 수 있었다.
Scene #2 야산에서 열매 채집하기
땅콩밭에 있는 모든 땅콩을 수확하는데만 네 명이 매달려 하는데만 4시간 걸렸다. 오전에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늦게 시작했으면 해 떨어질 때 마칠뻔했다.
이제 땅콩 수확을 다 끝내서 좀 쉴 수 있겠나 싶었는데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야산에 가서 열매를 따러 가게 되었다. 이번 주 일요일은 그야말로 흙냄새, 풀냄새 고루 다 맡아보는 하루였다. 그래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라 군말 없이 아버지 따라 다녔다. 사실 할머니 댁에 혼자 있어봤자 딱히 할 게 없으니까... 할머니 댁에 사촌 동생들이 있는데 오히려 농삿일보다 애들이랑 상대하는게 더 피곤할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 야산 가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평소에 몸에 좋은 약초나 열매에 워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부모님 따라 야산을 돌아다니면서 그 분들이 캐오는 약초, 열매들을 많이 보곤 하였다. 부모님은 항상 열매나 약초를 캐오면 제일 먼저 술로 담근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건강에 좋다는 열매로 담근 약주(藥酒)가 많다.
그 중에서 부모님이 야산에 갈 때 제일 많이 따오는 것이 오미자다. 어렸을 때 오미자열매를 처음 보는 순간, 앵두 열매인줄 알았다. 한 번 보면 눈에 익을 정도로 강렬한 붉은색을 띄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오미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총 5가지의 맛이 난다고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정말로 다섯 가지 맛이 나는지 궁금해서 열매를 직접 씹어 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그냥 꾹 참았다. ^^;;
정말 저 불그스름한 열매를 보라. 씹어먹으면 달콤한 앵두 열매 맛이 날 거 같지 않은가.
오미자를 차로 달여 마셔본 적이 있는데 오미자차를 좋아한다. 오미자차가 혈압을 낮추게 하고 면역력을 높아주는 효능이 있어서 건강에 좋은 음료라서 그런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차맛치고는 맛이 오묘하다. 마셔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오미자차 한 모금 입에 대보면 신맛이 강하면서도 약간 쓴맛과 단맛이 난다.
그 다음에 많이 따오는 것이 으름 열매다.
어머니는 건강에 좋은 야산 열매가 있으면 항상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권한다. 어렸을 때 처음 으름 열매를 봤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먹어 봐라, 이게 산에 나는 바나나란다. "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속살이 하얀 이 요상한 열매를 먹어보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말씀한 것과 달리 맛이 내가 알고 있던 달달한 바나나 맛이 아니라서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입 안에 하얀 으름 열매의 속살을 넣은 순간 입 안에 굴러다니는 씨앗이 있어서 먹기가 불편하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입 안에 있는 걸 도로 뱉을 수도 없고...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든(?) 지금은 으름 열매가 보이면 당장 따서 먹는다. 맛은 이상해도 몸에 좋다면 뭐든 먹을 수 있다. 햐안 속살 안에는 수많은 씨앗이 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쓴맛이 난다. 씨앗만 따로 분리해서 부드러운 햐얀 속살만 먹으면 정말 바나나 같은 달달한 맛이 난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씨앗을 입 안에 분리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씨앗까지도 씹어 먹는다.
으름 열매도 우리 집에서는 술로 담가 먹는데 방금 으름 열매에 대한 정보를 찾는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은 열매에 비타민 C가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에는 비타민 C가 오렌지, 사과와 같은 평소에 먹을 수 있는 과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야산에서 자라는 열매에도 비타민 C가 있다는 사실에 으름 열매를 자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으름 열매를 섭취하는 관련 정보를 더 첨가한다면 열매 속살을 갈아 우유와 같이 마신다면 우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철분의 흡수를 도와준단다. 속살 안에 파묻힌 씨앗만 어떻게 분리하면 쉽게 먹고 좋을텐데...
이번에 산에서 채집한 열매 중에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게 다래 열매이다.
이름은 들어봤는데 직접 눈으로 본게 처음이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어렸을 때 산에 어딜 가면 나무에 열린 다래 열매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찾아보기가 드물 정도란다. 그리고 소화가 안 될 때 열매를 먹으면 좋다고 하셨다.
이제 막 열매를 땄을 때에는 딱딱하였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열매가 익어 물렁물렁해지는데 먹으면 키위 맛이 난다. 열매를 따면서 물렁물렁한 걸 골라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나 다래에 대해서 정보를 찾아봤는데 키위가 다래의 한 종류라고 한다. 그리고 소화불량일 경우에 먹어도 좋고 그 밖에도 열을 내리고 이뇨 작용도 한다.
Sence #3 시골 어린이와 도시 어린이
이 날 동행한 막내 삼촌 슬하에는 각각 중학교 2학년, 초등학생 6학년인 남자, 여자 아이가 있다. 이 두 아이가 우리 집안 중에서 제일 막내 사촌 동생들이다.
오늘 오전에 땅콩밭에 가면서 장난으로 "땅콩 캐러 가자" 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었는가보다. 가기 싫다면서 손에는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항했다.
어차피 밭에 가도 이 어린 녀석들을 시킬 생각도 없었다. 농담의 의도 뒤에는 도시에서만 자란 이 사촌 동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그 '경험' 이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이다.
요즘 자라나는 도시 어린이들을 보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다보니 농촌이나 야산과 같은 곳에서의 체험을 많이 하지 못하는 거 같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 속에 살아가는 곤충이나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밭이나 산과 같은 곳이다.
약초와 열매를 채집하고 난 뒤에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을 지나가던 중, 남매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복장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골길에는 비록 먹을게 많은 슈퍼마켓도 없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이 없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은 나무와 밭이 있는 시골길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뛰놀고 있었다. '자연' 을 벗삼아 마음껏 뛰노는 시골 아이들의 웃음기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내 사촌 동생들이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부족하게 된다. 결국에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하룻동안 시골 어린이와 도시 어린이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가 떠올렸다.
시골의 쥐가 도시의 쥐를 초대하였는데, 도시쥐가 자신이 사는 곳에는 맛있는 음식이 산처럼 많다고 자랑하였다. 시골쥐가 도시에 가보았더니 치즈, 과일, 벌꿀 등 먹을 것은 많았지만, 사람들과 고양이가 돌아다녀서 매우 위험하였다. 시골쥐는 먹을 때마다 위험의 부담을 안고 살아야한하는 생활보다는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골로 되돌아왔다. 위험 속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보다, 검소하지만 마음놓고 살 수 있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정년퇴임을 하신다면 남은 여생을 농촌에서 사신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고나면 아버지 따라 남은 여생을 농촌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데 일단은 농삿일과 좀 친해져야 하는데... 신체적으로는 힘들지만 학교에서 하는 '농촌 활동' 을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농삿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P.S> 오늘 땅콩밭에서 일한 수당(?)으로 할머니에게 2만원 받았다. 덕분에 꽁돈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