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사의 낭만적인 최후, <남방 우편기>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읽으면 지루할 법도 한데 <어린왕자>만큼 역시 비행사가 주인공으로 동증하는 생텍쥐페리의 소설들은 언제나 늘 새롭다.

그의 첫 장편인 <남방 우편기><야간 비행>은 스물여섯 살 때부터 우편비행 일에 종사하면서 유럽과 남미를 하늘로 오갔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비행이란 추락과 실종의 위험이 상존하던 때였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그런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경험을 소설 창작으로 융화시켰다.  폭풍우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항로를 이탈해버린 비행기, 지상과의 연락은 끊어지고 연료는 바닥나가고 오직 구름 사이로 스치는 불빛 한 점을 희망으로 기수를 돌린다. 그 불빛은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빛이다. 

생텍쥐페리의 실종은 그의 1931년 작 <남방 우편기>의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있다.  작가는 이미 자신이 곧 겪게 될 불의의 사고를 미리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생텍쥐페리는 소설 속 비행사의 죽음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의 동료여......  그러고보니 여기에 보물이 있었군. 자네가 그토록 찾아다니지 않았나?
이 모래언덕 위에서, 양팔을 십자 모양으로 벌리고 얼굴은 저 짙푸른 만을 향한 채 있는 자네, 그날 밤 자네는 어찌나 가볍던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자네는 얼마나 많은 밧줄을 풀어놓았던가. 벌써 공기처럼 가벼워진 베르니스. 자네는 오직 친구 하나만을 남겨 두었더군. 거미줄 한 가닥이 겨우 그대를 붙잡고 있으니 말일세......
 그날 밤 자네는 훨씬 더 가벼웠지. 갑자기 현기증이 났을 거야. 그 때 자네 머리 위로 별에서 보물이 반짝였겠지. 
아주짧게. 아주 덧없이 !
 내 우정의 거미줄이 자네를 가까스로 붙들고 있었지만 불충한 목동인 나는 아마도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네.     (생 텍쥐페리, [남방 우편기] pp 275)  

 

<남방 우편기>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주인공인 자크 베르니스는 비행기로 우편물을 운송하는 비행 조종사다. 그는 주느비에브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느비에브는 사랑하는 남자를 혼자 두고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크 베르니스는 지상을 떠나 하늘 위로 나는 순간동안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어버린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려고 한다. 하늘 어딘가에 있을 주느비에브를 만나기 위해서 그는 위험천만한 비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결국, 그의 위험한 비행은 불의의 사고로 이어졌으며 그는 외딴 사막에 불시착한 이후, 원주민에게 피살당한채 발견됨으로써 소설은 끝이 난다.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베르니스의 동료가 행방불명된 그의 주검을 발견하고 있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기억이 남는 엔딩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죽음의 결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소설의 결말을 꼽고 싶다.  주인공의 비행기 사고가 '낭만적'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색한 감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최후를 묘사하는 수많은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결말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죽음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베르니스는 사막 위에서 싸늘하게 주검이 된 것이 아니다.  그의 죽음에도 밤하늘의 별빛은 반짝거리고 있다.   죽은 베르니스의 머리가 향하고 있는 저 하늘 위에 떠있는 별에는 분명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을 것이다.  베르니스는 그녀가 살고 있는 천국의 별로 떠났던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남방 우편기>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 언뜻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 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다.    <남방 우편기> 속 베르니스를 둘러싼 밤이라는 배경 역시 그렇다.  베르니스는 밤하늘의 별빛 삼아 사랑하는 연인의 부재가 만들어낸 고독을 달래보려고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도 짧고 한순간이다.   새벽이 되면 별빛이 사라지게 되듯이.    자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적 운명을 지니고 있다.

'저녁'이라는 공간 때문에 화자인 '나' 와 별과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관계가 정다운 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든 다른 존재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명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김광섭의 시는 미술 작품으로 변용된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화폭 속에는 수많은 점들이 박혀 있다. 김광섭의 시 내용을 비추어보면 그림을 가득 차고 있는 점들은 밤하늘 위에 수놓은 별들이다. 저기 저 수많은 점들로 이루어진 밤하늘의 수천개 별들의 무리 사이에 시 속 화자인 '나' 와 소설 속 자크 베르니스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사랑한다는 것은 ‘길들이는 것’ 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은 서로가 서로를 ‘쳐다 봄’으로써 소중한 사랑으로 맺어지게 된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은 무수히 많은 것들이지만 참으로 소중한 사랑으로 길들여지는 존재는 그 중에서도 오직 ‘별 하나’ 뿐이다.

하루에 한 번쯤이라도 서재 블로그에 글을 남기거나 이웃분의 서재에 방문하는, 이 사소한 행위도 어떻게 보면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도 서로 얼굴도 모르는 분들끼리 온라인 공간에서 만나서 댓글이나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인연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관계이다.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어떻게 하다보면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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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9-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낭만적인 소설, 페이퍼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댓글 주고 받는 이 관계들. 참 소중하다고요. 꼭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요. 그런데 <야간비행>은 어땠어요? cyrus님.

cyrus 2011-09-26 12:46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쓰다보니 잘못 적었네요. 비행사의 죽음이 나오는 이야기가
<남방 우편기>라는 소설이고요.. <야간비행>은 제목 그래도 야간비행을
담당하는 조종사들의 고달픈 삶을 그린 내용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멜로적 요소가 있는 <남방 우편기>를 인상깊게 읽어서그런지 <야간비행>은
다시 읽어도 마음에 크게 와닿지가 않았어요. ^^:;

잘잘라 2011-09-2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아느은~~~
이 소절만 자꾸 부르게 되요^^

우편비행을 하며 그에 관한 소설을 쓰고, 비행 중에 실종된 작가 생텍쥐베리와
알래스카에 살며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다가 곰의 습격으로 사망한 작가 호시노 미치오, 두 사람의 마지막이 안타깝고도 아름답게 펼쳐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지, 어떻기를 바라는지.. 생각하게되네요.

cyrus 2011-09-26 12:52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시 구절에서 따온 가요도 있더군요. ^^

저는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천상병 시인의 시 구절처럼
살아온 세상이 아름답다고 적을 수 있는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