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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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학당에 모여든 이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 

 


그림에 담긴 목록 - 라파엘로 <아테네의 학당>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학당에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 그림에는 학당의 문 정중앙에 서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다가는 글이 삼천포로 빠질 우려가 있으니 간략하게 이름만 소개하자면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기하학의 창시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재미있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알기 전에는 이 그림 속에 학당에 모여든 학자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였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학당에 모여든 것일까? 어떤 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열심피 학문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추상적인 철학 문제 때문인지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림 속 수많은 인물들이 최근에 와서야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한 학자들이라는 것을 밝혀졌지만, 모든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인물들은 이름 없는 학자 또는 학자의 강의를 듣으려는 학생들인 것이다.  

이 그림 한 폭이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불리어지는 이상, 그림을 보는 감상자들은 라파엘이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들을 그린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화폭에 담겨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서 감상자는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일뿐, 그림 속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나처럼 그림 속 학자들 하나하나 확인하며 알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감상자들이 그림의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안다고 해도, 나머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나머지 학자들은 감상자의 시선 밖에 있게 된다.   

그러면, 라파엘로는 20명 정도의 학자와 학생들만 그려 넣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보다 더 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렸을까?  아무리 이렇게 한 사람씩 세세하게 노가닥으로 그린다고 해도 감상자들은 그림 속 인물 전부 알려고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아예, 이 그림 제목을 <아테네의 학당>이 아닌,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수학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 , , 와 그 밖의 나머지 학생들>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감상자들은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로는 그런 긴 제목을 붙이기보다는(진짜로 그림에 긴 제목을 붙였다면 감상자 입장에서는 그림 볼 맛이 떨어질 것이다) 스스로 수고를 하면서 화폭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 넣는 쪽으로 택했다.

  

    

  예술가들의 무한성 극복하기   

 


무한성 극복하기 - M.C. 에셔 <천사와 악마>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이번 신작인 <궁극의 리스트>에서 고대애서 현재까지의 문학과 예술 속에서 등장하는 목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에코는 대부분 문학가와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목록을 삽입한다고 말한다.  문학가는 소설이나 시에서 수많은 사물이나 인물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언어적 목록,  화가는 붓으로 캔버스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넣는 시각적 목록을 취한다는 것이다.  작가나 화가들은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작품에 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한성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와 같은 '현실, 그 이상을 뛰어넘는' 속성이었다. 그래서 무한성이라는 속성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무한성의 존재들을 목록화하여 열거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엄청나게 크거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것에 마주하게 된 호메로스는 

하나의 표본, 예, 또는 지시로서 목록을 제시하면서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버린다.  

- <궁극의 리스트> p 49 -

 
   

라파엘로가 <아테네의 학당>에서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린 이유도 에코의 주장을 비추어 보면 그의 본의를 짐작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성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장소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함축하여 말하고자 하였으며, 비록 이름 없는 학자와 학생들일지라도 라파엘로는 학당 내부에는 많은 인물이 가득히 있다는 점과 저 수많은 인물들 틈에서도 학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학자와 학생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결국, 감상자들은 이 그림 하나로 아네테 학당 속 인물들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그 이상의 존재들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목록(List)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수집물 그리고 호기심의 창고 - 프란스 프랑켄 2세 <예술과 호기심의 컬렉션>
 

시대가 변화갈수록, 목록의 용도도 변화하였다. 15~16세기 신항로 개척 시대가 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지리와 자연에 대한 학문으로 쏠리게 되었다.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서 신대륙의 문물들이 서양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학자들과 상류층 귀족들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수집한 희귀한 자연물과 고고학적 유물들을 목록화시키게 된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박물관, 동물원 등이 만들어졌으며 스웨덴의 린네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을 확립하여 분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다양한 학자들이 이 모여 여러 학문을 집대성하기 위해서 <백과전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런 학문적 결과물이 있기에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여 나열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이런 목록화의 습성은 현대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목록과 같은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난해한 작품으로 정통이 나있다. 이들은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떠나서 단지 수많은 개념들을 분류, 나열할 수 있는 목록에 대한 과잉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실용적 목록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


실용적인 목록 - 대형마트 할인용품 광고 전단지
 

하지만, 역사 속에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들에게만 목록에 향한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목록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스스로 목록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목록들을 즐기고 있다.  

에코는 목록에도 중요한 차이의 구분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실용적인 목록과 시적 목록으로 나누고 있다. 실용적인 목록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식당 메뉴표, 국어사전, 전화번호부, 그리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할인품목 광고 전단지 등이다. 반대로 시적 목록은 앞에서 언급한 라파엘로나 라블레, 조이스처럼 예술 형태를 통해서 탄생된 목록을 말한다.   

마르크스<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엄청난 상품들의 축적으로 그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실용적인 목록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있는 근대에서는 백화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이 자본주의가 만든 실용적 목록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목적과 취향에 따라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려는 소비 의사가 반영된 자신만의 실용적 목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에서 볼 수 있는 장바구니 기능이다.  소비자가 구입하기를 원하는 상품들을 자신의 장바구니 기능에 입력함으로써 자신만의 목록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장바구니 목록에서도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심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물건을 바로 살 수는 없지만, 그 물건을 찜하여 장바구니 목록에 입력하게 되면서 소비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고 싶은 상품만 있으면 무조건 장바구니 목록에 담으려는 특성이 있는 인터넷 쇼핑 중독자의 모습은 실용적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집착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을 조금이나가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실용적 목록에 향한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등장은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욕망을 더욱 더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통해서 앱스토어에서 관심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자신만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목록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러가지 신의 이름들이 나열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부터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을 저장할 수 있는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인류는 공통적으로 '목록 만들기'를 추구하였고 List-holic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목록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역사의 발전, 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있기까지에는 어쩌면 목록이라는 특수적 용도의 기록물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상은 목록화되고 있다. 그 목록화의 발전에 의해서 생긴 사회적, 문화적 산물들이 또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목록화되고 있는 세상의 중심에는 우리 인간이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List-holic이면서도 Cataloger(목록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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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로도 유명한데,그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기호학자라는 프로필이 왜 필요한가 갸우뚱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님의 리뷰랑 페이퍼를 읽으니,이 책 꼭 읽어주고 싶어요~^^

cyrus 2010-10-27 00:01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책입니다. 사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기호학적 지식의 어려움에 좌절한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다양한 그림들과
문학 작품 텍스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 글에 사용한 그림 중에서 프랑켄 2세의 그림만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 속 내용과
관련된 그림들을 골랐고요.

saint236 2010-10-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바로 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에코는 정말...걸물인것 같아요.

cyrus 2010-10-27 12: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aint236님^^

가격은 좀 착하지 않은게 흠이지만,,,
이전에 출간된 <미의 역사><추의 역사>의 가격과 비교하면
조금 착해진 편입니다. 그리고 구입하고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내용이 참으로 흥미롭고
책 속에 수록된 그림들도 볼만하고요.

반딧불이 2010-10-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블레나 조이스의 목록이 대체 어떤 리스트인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인간이 모두 리스트홀릭이라면 저도 이참에 실용적인 리스트든 시적 리스트든 하나 만들어야할까봐요.

cyrus 2010-10-27 12: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있는 마이리스트가 실용적인 리스트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실용적
도움이 되는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라블레와 조이스의 텍스트를 읽어보시면..
감당하지 못할겁니다. 비록 2페이지 정도 소개하고 있지만
정독하기가 부담스러울겁니다. 참고로 텍스트 출처는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조이스는 <율리시스>
<피네건의 경야>입니다. 특히 조이스는 난해한 문학성으로
유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