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환경이냐, 인간이냐 

   
 

" 지금 여러분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무언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모든 게 환경에 달려 있고 환경이 인간을 해칠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우연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    

 -  [무도회가 끝난 뒤]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187 -  

 
   

 

톨스토이가 쓴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단편소설에서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대화부터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다. 

17쪽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소설 속 인물인 이반 바실리예비치로 투영하여 환경이 무조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환경결정론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이 논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반은 자신의 인생은 절대로 환경에 지배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경결정론을 부인하게 된 계기를 그린 이반의 경험담이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인데 실제로 톨스토이의 형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단 하루 만에 썼다고 한다. 역시 러시아의 대문호답다.  

  

 

  대령의 두 얼굴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반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이 시작된다. 젊음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대학생의 이반은 상류층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여자 바렌카 B를 만나게 된다. 이반은 그 여자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곳에서 여자와 같이 무도회에 참석한 그녀의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바렌카 B의 아버지는 전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대령이었다.  이반은 첫만남에서부터 두 부녀의 자상한 마음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반은 우연히 목격한 장면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도망가는 타타르 인(톨스토이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해서 러시아 변방에 살고 있는 부족들 간의 전쟁이 잦았는데, 그 부족들 중에는 터키계 민족인 타타르 인들도 있었다) 사나이를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는 병사들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 병사들 사이에는 전날 밤, 무도회장에서 호감을 가졌던 바렌카 B의 아버지인 대령도 있었다. 그리고 대령 역시 그 타타르 인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이었다. 대령의 폭력은 병사들보다 심했다. 자신의 부하인 병사들에게 새 곤봉을 가져오라고 시키면서 풀리지 않은 분을 폭력으로 해소하고 있었고, 심지어 타타르 인을 세게 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 없는 병사 한 명에게도 손찌검을 가하였다.   

대령의 잔혹한 면을 보게 된 이반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군 입대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바렌카 B에 대한 애정도 식어져갔다. 자신은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된 이유는 단지, 세상의 우연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이반 바실리예비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이 다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환경결정론을 부정하기에는 이반의 인식 과정은 잘못 되었으며 이치에 맞지 않다.  

그 당시로서는 이반은 이제 막 세상을 알려고하는 대학생이었다.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기에는 그는 세상이 일부분만을 봤을 뿐이다.  그는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우물 벽을 보고 세상은 어두컴컴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무엇보다도 이반에게 제일 심각한 것은 중년이 되어도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왜 대령 같은 인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그 해답을 알아내지 못한 채 결론은 자신은 세상에서 쓸모 없는 '잉여인간'이라고 단정짓고 만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포기하기에는 성격이 너무 나약하기만 했다.  아니,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에는 자신 스스로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해보려는 일말의 적극성이 보이지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대령의 잔인한 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처사이다.

 

  

  당신이 어리석다오, 이반 바실리예비치 씨

이반이 생각하고 있는 '잉여인간' 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연성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라는 것인가?  작품의 결말에 보면 이반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이반의 생각을 반박하고 있다.  

   
 

 " 하지만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반 바실리예비치) 같은 사람이 아무 쓸모가 없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는 건가요? " 

- [무도회가 끝난 뒤] p 202 -

 
   

그러나 이반은 반박자의 말이 어리석다면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대화를 얼버무리고 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이반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말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가 보다.  

이 세상에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처럼 세상 앞에서 그리 쉽게 어리석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시끄러운 속세에 아직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이상,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행한 일이 옳은건지, 나쁜건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분별하는 능력 뒤에는 인간을 지배하는 환경의 영향을 외면할 수 도 없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이 나쁘고 부당한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선을 긋는다. 그것은 악한 환경에 물들이게 되면 자신의 본성도 악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말이 잘못된 사실이라는 것을 이반이 알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잉여인간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그는 세상의 이면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리기 위해서 세상의 우연성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상이 단순히 우연적으로 돌아가고, 인간이 이반처럼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바보' 잉여인간이었다면 이 지구에는 악한 사람들만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P.S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는 동명 단편소설 이외에도 또 다른 단편소설인 [벌목][폴리쿠시카][위조 쿠폰]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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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나 스탕달보단 톨스토이가 나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요즘 기준으로 좀 더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근데 환경일까요,인간일까요?

cyrus 2010-10-29 14:01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기는 하지만,
인간들도 스스로 환경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 , 봅니다.
어쨌든, 작품 속 대령처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격이 바뀔줄 아는 사람처럼요.
(제가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번 글은 좀 내용이 부실하구요-_-)

maribell 2011-03-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이러스님이네요~ 말테의 수기를 구매할지 고민하더 보게 됨~ ^^;

cyrus 2011-03-21 08: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리벨님. 반가워요. 잘 지내고 계신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