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에밀리오 살가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1001-212] 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산도칸과의 첫 만남

산도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피터 박스홀 외, 마로니에북스)이라는 책이었다. 100명의 외국의 문학가, 교수, 언론인들이 죽기 전까지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북 버킷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북 버킷 스트’이지 1001권이 모두 문학 작품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에서부터 문학의 변방인 제3세계와 북유럽, 동양 문학 작품들 까지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 작가의 작품 비율이 80 대 20이다. (또 동양 작가의 작품에서 한중일로 따지고 들어가면 일본 작품들이 조금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버킷 리스트에 있는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故 박경리의『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뿐이다) 사람들에게 세계의 모든 문학 작품들을 알린다는 취지는 좋으나 잠잘 때 베게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두께에 비하면(900페이지 넘는다) 내용과 구성 면은 그리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소설, 희곡, 수필까지 장르를 아울러 작품들을 소개하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유독 ‘시’는 딱 한 편이 있다. 로트레아몽의『말도로르의 노래』가 유일하다. 보들레르와 롱펠로, 프로스트와 같은 유명 시인들의 작품은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노벨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T.S. 엘리엇조차도 버킷 스트 명단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 덕분에 세계 문학이라는 넓은 대륙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된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번역되어가는 작품들이 출간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에밀리오 살가리의『산도칸』이다. 3년 전에『1001권』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 때는『산도칸』이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듬해에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 무시무시한 해적 . . . 맞아 . . . ? 

 

그런데 『산도칸』을 읽면서, ‘정말 잔인하고 냉철한 해적이 맞냐?’ 하는 의문이 느꼈다. 작품 속 동명이름의 주인공은 말레이시아에서 맹위를 떨치는 해적으로 등장하는데 별명이 몸프라쳄의 호랑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깐 몸프라쳄의 호랑이가 아니라 그냥 '종이'호랑이 같다.

짝사랑을 하지만 원수 국가인 영국의 여인 마리안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참 가관이다. 만약에 자신의 연인이 되어준다면 왕국은 물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년 내내 빛나는 황금과 보석으로 샤워시켜주겠다는 등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큰소리를 친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들 중에서 읽기 민망하게 느껴졌던 문장이었다. 필자도 남자이지만 사랑에 빠져 눈에 콩깍씌면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지 모르겠다.  

 

산도칸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서 앞으로 전개될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러브 스토는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과연 도칸이 그 때의 약속을 마리안나에게 지켜줄지 궁금하기만 하다. 황금과 보석을 그녀에게는 바치는 것은 산도칸에세는 식은 먹는 일이겠지만, 그의 절친이자 동료인 야네스와 헤어지지 않는 한 말레이시아를 지키기 위한 해적 활동은 포기 못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시리즈에는 산도칸은 또 한번 자신의 본분과 마리안나를 사이에 두고 고민할 것이다. 혹은 몸프라쳄의 호랑이 시절의 향수 때문에 산도칸과 마리안나가 부부싸움을 하는 상황도 상상할 수가 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의 줄거리를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탈리아의 쥘 베른  


산도칸 시리즈의 첫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잔인한 해적과 자신이 싫어하는 원수 국가에서 태어난 여자의 불꽃같은 사랑을 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국가 간의 대립을 뛰어넘어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대체로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줄거리이다. 그래서 산도칸 시리즈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에 충분한 줄거리 위주의 내용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후대의 문학가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는 것과 동시에 찬사를 보낸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평가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인 에밀리오 살가리는 산도칸 시리즈의 배경인 말레이시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말레이시아 관련 자료들을 통해서 최대한 야생의 나라를 표현한 것이었다. 사족 하나 달자면 살가리는 ‘이탈리아의 쥘 베른’ 이라는 별명을 가지있다. 많은 독자들이 알다시피 쥘 베른도 대중적인 모험소설을 남긴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 배경은 19세기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세계 일주, 해저 밑, 지구 속 심지어 우주까지 배경이 참으로 폭넓다. 그런데 놀랍게도 쥘 베른은 우주나 지구 속, 바다 밑에 가본 적도 없으며 그 역시 영국 밖으로 나가서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과학, 지리학에 관한 식견, 탐험가들에게 얻은 생생하고 풍부한 자료들, 그리고 자기만의 특유의 상상력으로 100여 편의 모험소설들을 써왔던 것이다. 

  

 

  

 

  체 게바라가 산도칸을 읽은 이유

 

내용은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산도칸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말레이시아의 보호를 위해 해적으로 활동하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역시 산도칸 시리즈의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반 제국주의적인 관점서 읽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와 싸우는 자신을 제국주의 유럽 열강과 싸우는 무모하면서도 혈기왕성한 청년 산도칸에 투영함으로써 한평생동안 쿠바의 혁명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산도칸 시리즈가 유행했던 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자극하는 모험소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동방의 취미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오리엔탈리즘 문화도 한몫 했다. 19세기 말 유럽의 오리엔탈리즘 문화는 미술 분야에서 먼저 두드러진 발전을 했다. 화가들은 이국적인 동양의 여인과 장식품들을 화폭에 담아내어 동양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화가들도 역시 동방에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여행가들에게 들은 동방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상상력만 있으면 대중들을 사로잡는 오리엔탈리즘 그림을 완성해냈다. 에밀리오 살가리도 당시 유럽 전역을 떠돌고 있는 문화의 유행에 심취했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작가의 죽음에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살가리는 일본 사무라이식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대중들의 취향을 그는 제대로 포착하여 자신의 작품 구상에 잘 반영하였다.『산도칸』이 시작하는 페이지에도 보게 되면 산도칸이 이끄는 몸프라쳄 해적단의 본거지 내부가 묘사되어 있는데 문장은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영향을 받았을만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사방 벽은 두툼한 붉은 비단과 브로케이드(무늬가 있는 직물)로 덮여 있었는데, (중략) 그래도 아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자개로 상감 처리하고 은제 프리즈(띠 모양의 조각)로 장식한, 흑단으로 만든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 진짜 크리스털로 만든 술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방의 세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선반들은 지난날 선상 습격에서 약탈한 전리품들로 빽빽하였다.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들이 제각기 내용물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진주 목걸이, 금 목걸이, 귀고리, 반지, 로켓, 메달 등 신성한 성물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거기에다 귀중한 보석들 또한 빠지지 않았으니 진주,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등등 이 천장에 매달린 금박을 입힌 등불 아래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 에밀리오 살가리『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p 10~11

    

 

이국적인 고가(高價)의 장식품들에 대한 열거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무려 23줄이나 이루어져 있다. 첫 페이지부터 오리엔탈리즘적 문장의 도입은 이제 막 산도칸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을 읽는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20세기로 오게 되면서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은 동방 국가에까지 지배권을 확대시키려는 제국주의로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전에 꿔왔던 동방에 대한 동경을 문화재 약탈이라는 야욕으로 변질되었다. 지금의 유럽 국가들은 과거에 식민지에서 약탈했던 문화재들을 단지 전리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반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대국이라는 명함을 내세우면서 세계무대에서 떵떵거리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과거의 제국주의의 허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적의 총알이 언제 자신의 심장에 박힐지도 모를 위험한 전장 속에서 체 게바라가 유독 산도칸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죽었다 

  

산도칸과 마리안나는 몸프라쳄 해적단과 영국 군과의 치열한 전투 도중에 몰래 빠져나와 사랑의 도피(?)하는 장면으로 결말을 짓게 된다. 산도칸의 마지막 독백 중에서 ‘이제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죽었다’ 라는 말로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다. 결국 기나긴 고민 끝에 조국을 위한 해적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마리안나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선택하고 말았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분명히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다시 살아남아 해적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 현실에는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진짜로 사망하였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1786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무려 171년이 지난 1957년에 독립한다. 말레이시아대한 상세 역사를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을 한 산도칸과 같은 인물들이 치열한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을 찾기 위해서 싸웠던 시간은 100년을 훌쩍 넘게 되었다. 에밀리오 살가리마무리 지었 몸프라쳄 호랑이의 잠정적 사망선고가 결국은 오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 말레이시아에게는 백년 동안의 죽음은 그들에게는 가혹한 사망선고였던 것이다. 유럽의 독자들이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재회를 원했던 것과 재회를 통한 해피엔딩에 열광한 것이 어쩌면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당연하게 여겼던 제국주의자들의 염원과 열광이 아니었을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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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3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겹낫표까지 꼼꼼히 챙겨 주시는 리뷰.
그 책의 리스트에 시가 그렇게 없다니.. 좀 안타깝네요.

^^.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만 보실 것이 아니라 책 너머의 누군가에도 좀 열정적으로 시선을 돌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추워지는데.. ㅎ

2010-10-30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0-3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베고자기에 딱인 두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북 버킷 리스트'가 왕 부러운 걸요~^^

전 몇권이나 꼽을 수 있을까요?

cyrus 2010-11-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다기보다는(양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읽기에는 버거워요^^;;)
.. 훑어봤답니다. 정말 책베게하기에는 좋더라고요ㅎㅎ

나무꾼님 같은 경우에는 학생 시절부터 외국고전 작품들을 읽으셨을거 같은데요.
저는 열 손가락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꽤 읽으셨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 문학작품들을 안 읽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회생활 하면 언제
이런 작품들을 읽어보겠습니까? ^^;;

2010-11-0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02 12:59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건 나무꾼님 댓글에 답글로 설정해야했었는데,,
제가 실수로 안 하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비밀글 설정 해제할께요, 뭐 그닥 비밀스러운(?)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해서 비밀글로 설정했던거랍니다.

2010-11-05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05 19: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이트님. 다시 읽어보고 수정했습니다.
살가리가 산도칸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썼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국내에 번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에 산도칸이라는 시리즈가 생소하지만,
국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체 게바라 이외에도 움베르토 에코와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산도칸 시리즈를 즐겨 읽었다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1-0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에코의 소설에 언급되어서 유명해졌다고 하죠.작가들의 인생역정에 관심이 많은데 살가리는 그렇게 책이 인기가 있었는데도 가난 속에서 자살했다고 하니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cyrus 2010-11-06 16:14   좋아요 0 | URL
산도칸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에 대한 인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거기에다가 빚도 불어나고요. 그런 환경이 작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살가리처럼 유명 문학가나 예술가들 중에서는
생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실생활에서는 가난에
허덕이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6 17:20   좋아요 0 | URL
어쩐지 슬프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