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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
J. M. 버거 지음, 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2024년 9월
평점 :
평점
4점 ★★★★ A-
이상 한파가 일주일째 불고 있다. 칼바람을 아직 꺼내지 못한 동장군은 당황스럽다. 전국을 덮친 이상 한파는 용산에서 시작되었다. 용산에 독재자가 살고 있다. 독재자는 온종일 권력에 취해 있다. 자야 할 시간에 숙취가 덜 풀린 독재자는 잔뜩 화가 나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 생각에 구역질한다. 계속되는 구토가 짜증이 난 독재자는 급기야 스스로 독불장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적 같은 녀석들, 이번 기회에 다 싹 잡아들여야겠어.”
밤중에 그는 썩은 권력 찌꺼기를 토하면서 국민에게 호소한다. 국민에게 전하는 글이 적힌 종이 위에 독재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오물이 떨어진다. 더러워진 글은 비상계엄 선포문으로 변한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8분. 용산의 독재자는 자신과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들에게 선전포고했다. 독불장군이 일으킨 이상 한파는 헌법과 국회, 민주주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일상을 얼어붙게 했다.
광장에 모여서 독재자의 한파에 맞서는 시민들이 있는 반면에 이상 한파가 뜨거워서 좋다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있다. 그들은 용산의 독재자를 지지한다. 그리고 독재자가 호명한 적들과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다. 자신들이야말로 애국심이 가득한 보수주의자요,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독재자의 계엄령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계엄령은 독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독재자를 비판하는 국민은 ‘처단’해야 할 적대 세력이 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만나는 순간, 오염된 단어가 된다.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엉뚱하게도 좌파와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우파의 아군이 된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어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극단주의(extremism)’다.
올해 9월에 출간된 《극단주의: 카르타고 파괴에서 백인 우월주의까지 극단주의의 본질을 파헤친 간결한 입문서》는 극단주의가 만든 계엄령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극단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종종 오해하는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대부분 사람은 상식에 벗어날 정도로 한 가지 생각으로 치우친 성향을 극단주의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극단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면 오용될 수 있다. 자기 생각과 정체성과 완전히 다른 타인 및 사회 집단을 극단주의로 규정하면 차별을 조장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단절된다. 타인을 극단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극단주의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상 최초의 극단주의자는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정치가 카토(Marcus Porcius Cato)다. 당시 로마는 카르타고와 세 번이나 혈전을 치른 끝에 승리했다. 기고만장한 원로원 의원 카토는 자신의 연설을 마치면 “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한다(Carthago delenda est)”라고 말했다. 결국 로마는 무장 해제한 카르타고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내집단’으로 인식한다.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집단은 ‘외집단’이다. 내집단과 외집단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집단이 외집단을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극단주의가 생긴다. 극단주의에 물든 내집단은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결속력이 낮아진 외집단을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을 수 없다. 소수의 구성원은 내집단에 소속되면서도 내집단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다. 극단주의 내집단 안에서 외집단으로 분류되는 구성원은 ‘부적격 내집단’이 된다. 극단주의를 거부하는 부적격 내집단은 내집단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고, 내집단의 결속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잠재적인 적’이 된다.
용산의 독재자는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국회의 업무에 제동을 걸고, 국가 예산을 삭감하는 데 앞장선 야당(더불어민주당)을 종북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의료정책에 반대하여 파업에 참여한 의료인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48시간 안에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고 명시했다. 용산의 독재자와 그를 지지하는 여당(국민의 힘)은 극단주의 내집단이다. 독재자가 계엄군을 동원해서 처벌하려는 반국가 세력, 즉 야당은 외집단이다. 여당은 독재자가 탄핵당하는 상황을 막으려고 한다. 여당은 국민을 위한 보수주의 정당이 아니다. 독재자 한 사람을 지키려는 극단주의 내집단이다. ‘국민의 힘’이 아니라 ‘극단의 힘’이다. 독재자 탄핵을 찬성하는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부적격 내집단’이다. 극단주의자들은 내집단의 결속력이 무너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단주의 내집단은 외집단과의 타협을 거부한다. 극단주의 내집단이 외집단을 적대 세력으로 바라보는 근거는 주관적이다. 그들이 접하는 외집단에 관한 정보의 출처는 정확하지 않으며 대개 부정적인 편견이 섞여 있다.
여당이 극단주의 내집단이라 해서, 야당을 극단주의 내집단에 의해 고통받는 외집단으로 바라본다면, 극단주의의 본질이 흐려진다. 극단주의를 단순한 기준을 선호하는 이분법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극단주의는 특정 정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12월 7일, 여당 의원들의 집단 투표 거부로 인해 독재자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었다. 당시 투표가 진행되고 있을 때 여당 의원들은 의원 총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야당 의원들은 갑자기 열린 여당의 의원 총회를 지적하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여당 의원들이 감금되었다고 주장했다.[주] 근거가 불충분한 견해와 가짜 정보로 외집단(여당)을 비난하는 행위는 외집단을 적대하는 극단주의 내집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단주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알고 있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 낯선 것,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주변에 있는 극단주의자를 비판하기 전에 나도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에 나온 기사들을 살펴보면 ‘여당 의원 감금설’을 발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이름이 여러 명으로 나온다. 내가 확인한 이름은 박찬대 원내대표, 한준호 최고위원, 황운하 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