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

 

EP. 13

 

2021519일 석가탄신일

굿브랜딩북스, 담담책방



글은 다음 날에 썼고, 묵혀 두고 있다가 이제야 올린다.





5월의 절반이 지난 지금까지 7시에 퇴근한 날은 한 번도 없다. 야근 잔업을 해서 일찍 마친 시간이 밤 9시다. 가장 늦게 마친 시간은 밤 1030분이다. 어제가 공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출근했다. 하루 쉬게 되면 주문 물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출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어제 출근해야 하는 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추석을 제외한 석가탄신일이 올해 마지막 평일 공휴일이다. 슬프게도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성탄절 모두 주말이다.


어제 오전에 굿브랜딩북스라는 서점을 방문했다작은 규모의 서점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여타 서점과는 다른 굿브랜딩북스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다. 서점 안에 있는 책들은 브랜딩’, ‘디자인’, ‘영감의 도서’, ‘일과 삶의 균형등 총 여섯 가지 주제로 이루어진 책장에 진열되어 있다


굿브랜딩북스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있다. 지금 하는 공장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책과 관련된 일, 즉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대구에 있는 모든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기 위한 곳이 아니다. 내 꿈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는 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하는 배움의 장소다.


오후에는 담담책방에 갔다. 공휴일이라서 책방에 사모님도 계셨다. 담담에 매일 오는 손님이 있다. 하루의 절반을 담담에서 보냈던 무직 시절에 그 손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분은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인지 가끔 빵을 사 들고 와서 나와 책방지기에게 나눠 주곤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생겼다정말 오랜만에 책방지기, 책방 단골손님,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여성 손님 두 분이 담담에 왔다손님 중 한 분은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레타책방의 책방지기였다. ‘그레타책방은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그림책뿐만 아니라 그림책 작가 겸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외국 그림책도 판매되고 있다. ‘그레타책방역시 방문하고 싶은 책방 중 한 곳이었는데 마침 책방지기가 어제 담담에 직접 방문했다.


내가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으면 그레타책방의 책방지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갈 생각은 접어두고, 다른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은 척하면서 두 책방지기(담담, 그레타책방)의 대화를 엿들었다. 두 분의 대화를 엿듣다가 순간 영감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일 때문에 활자 위주의 책을 완독하지 못할뿐더러 독서 후에 늘 하던 일인 발췌 및 편집 작업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장 일이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아니면 그만둘 때까지) 그림책 위주로 독서를 하면서 서평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자 위주의 책을 읽는 헤비 리더(heavy reader)’에서 시집이나 그림책을 주로 읽는 라이트 리더(light reader)’로 전향하면 예전처럼 읽고 쓰는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책과 어린이 책에 친해질 수 있도록 나름 공부를 해야겠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냥 놀러 간다는 마음으로 담담에 갔는데, 여기서도 내 꿈을 위한 영감을 얻다니. 어제는 정말 특별한 하루였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1-05-23 18: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걸 확인하고 오셨네요. 잘 됐네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서점 운영의 꿈을 가질 법한 것 같아요. 책 정리도 재미있고
관심 가는 책을 들춰 볼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얘기를 나눌 수도 있고 이쯤되면 일석사조, 가 되려나요.

저도 사고 싶은 책이 없어도 서점 구경만으로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외출했다가 서점이 눈에 띄면 꼭 들러 보게 되더라고요.

cyrus 2021-05-26 22:02   좋아요 1 | URL
서점을 운영하면 재미있는 일들을 할 수 있긴 한데, 이 재미있는 일을 하면 책을 많이 팔아야 합니다... ^^;;

조그만 메모수첩 2021-05-23 1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점 개업하시면 제가 단골 되겠습니다. 이렇게 책 잘 읽으시는 분이 지기인 서점은 얼마나 멋질까요.

cyrus 2021-05-26 22:04   좋아요 2 | URL
메모수첩님은 대구에 살고 계시죠? 서점을 열면 알라디너를 위한 혜택을 마련해야겠어요. ^^

미미 2021-05-23 18: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독서에 대한 감성과 끈을 놓치지 않는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저도 한번씩 쉬어가는 기분으로 어린이 동화도 읽고 시집도 보려구요. 우리 화이팅해요!*^^*

cyrus 2021-05-26 22:09   좋아요 1 | URL
1년을 쉰다는 생각으로.. ㅎㅎㅎ 독서와 글쓰기를 쉬엄쉬엄 해야겠어요.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을 살리기가 쉽지 않아요.

새파랑 2021-05-23 18: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좋아하는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신거 같아 많이 안타깝네요 ㅜㅜ 그래도 영감을 얻으셔서 다행입니다. 항상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서점 운영 하시면 꼭 가보고 싶네요^^

cyrus 2021-05-26 22:13   좋아요 2 | URL
영감을 얻었으면 실행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고 있어요. ^^;;

독서괭 2021-05-23 2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김소영 선생님의 어린이책 읽는 법 추천합니다! 앞으로 쓰실 그림책, 어린이책 서평이 기대됩니다^^

cyrus 2021-05-26 22:15   좋아요 1 | URL
제가 자주 가는 동네 책방에 <어린이책 읽는 법>을 주문했어요. ^^

페넬로페 2021-05-23 21: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일 야근을 하셔서 힘드시겠어요~~
정말 올해는 공휴일이 주말과 많이 겹치는 것 같아 많이 서글퍼지네요 ㅠㅠ
cyrus님께서
만약 대구에서 책방을 하신다면
꼭 찾아갈께요^^
내일도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하루가 되면 좋겠어요**

cyrus 2021-05-26 22:16   좋아요 2 | URL
야근 없이 7시에 마치는 평일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예전에 일했을 땐 6시, 6시 30분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좋았어요. ^^

붕붕툐툐 2021-05-24 00: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꿈을 꾸고 계셨군요! 멋지십니다~ 분명 좋은 서점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아이디어 너무 좋아요! 저도 요즘 책읽기 슬럼프인 듯한데, 그림책 몇 권 봤더니 좋더라구요!ㅎㅎ앞으로 사이러스님 글을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될 거 같아 저도 기대가 됩니다!

cyrus 2021-05-26 22:24   좋아요 2 | URL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드니까 제일 먼저 생각이 난 게 서점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다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이 무려 세 명이라서 갑자기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mini74 2021-05-24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서점 이름이 전망 좋은 (책) 방?

cyrus 2021-05-26 22:30   좋아요 2 | URL
아직 서점 이름을 정하지 않았지만, ‘전망 좋은 (책)방’을 책방 이름 1순위로 하겠습니다. ^^

Angela 2021-05-26 0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쁜 와중에도 독서와 글 쓰기 대단하십니다!

cyrus 2021-05-26 22:32   좋아요 2 | URL
책을 읽고 있긴 한데, 예전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에요. 글 한 편 쓰는 것도 힘들고요. 예전과 다른 일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군요. ^^;;

transient-guest 2021-05-26 0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순례가 그리워지는 글입니다. 예방접종을 모두 마쳤으니 6월 초에는 항체가 생긴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마스크 없이는 다니지 못하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글을 쓰는 환경은 집과 사무실을 제외하곤 없습니다. 벌써 2021년도 반절에 접어드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이네요.

cyrus 2021-05-27 07:26   좋아요 2 | URL
제가 사는 곳인 대구에 다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해서 이번 달 말까지 카페, PC방 영업시간이 단축되었어요. 너무 속상합니다.

blanca 2021-08-02 17: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cyrus님의 꿈을 꼭 이루시기를...그림책 서평도 기대됩니다.

cyrus 2021-08-02 17:44   좋아요 2 | URL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