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김덕신 선생님...
이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나서 큰 학교에 지레 겁먹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 내겐 있었지요.
그때 처음 만난 선생님이 '김덕신 선생님'이었습니다. 죄 많은 제자라 찾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재적 인간은 굳건한 신경을 갖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나약한 신경을 지니고 있다. 전자에게는 이성의 중요성이 막대하지만, 후자에게는 감수성이 거의 심신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러나 천재성 또한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감수성이 심신의 전부를 차지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합니다.
선생님은 매를 들었지만 저는 매를 맞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습니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습니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의 악몽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은 집으로 보내는 생활기록부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승주나무는 수업시간에 딴 짓하고 장난을 잘 치는데, 자기 혼자 그러면 괜찮을 텐데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주니까 각별히 지도를 하시거나 아니면 전학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제가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된 지는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마음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준다는 대목이 특히 슬펐습니다. 나랑 같이 장난치며 사이좋게 놀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추억은 선생님의 생활기록부에 적혀진 글귀의 그림자로 인해서 약간 어두운 색깔이 되었습니다.


▲ 초등학교 입학식 전경(사진 : 오마이뉴스)


쓰레기통에 책을 버린 선생님

우리 어린이들의 학교 생활이 어떤지 아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와는 달라져 있겠지요. 좋은 선생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과의 만남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그렇지 않든 초등학교 1학년때의 추억은 지금도 강렬히 남아 있ㅅ브니다.

이것은 제가 아는 분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으로 맞는 학급회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질문도 싫어하고 소란스러운 것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이 많은 여선생님이셨어요.

"머리가 똑똑한 아이는 설명이 끝난 다음에 바로 질문하지 않는다"고도 하고 "질문 많은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원천봉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충격적인 일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 책을 나눠줬는데, 선생님이 일일이 나눠주지 않고 교실 뒤에 있으니까 한 권씩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지 책 챙기는 걸 잊고 방과후 교실에 갔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교실로 갔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셨다네요. 그래서 교과서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정말 기가 막혀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너무 심하게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혹 아이가 선생님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면 어쩌나 걱정 하면서 물었더니 다행히 선생님이 좀 이상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합니다. 이제 아이와 선생님은 만난 지 1달이 되었고, 남은 시간은 버거울 정도로 깁니다. 
  
이 글을 읽은 다른 어머니는 선생님의 결벽증도 문제라고 하네요. 선생님이 워낙 깔끔하고 꼼꼼해서 그 집 딸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준비물을 챙기는 날에는 온가족이 거의 비상사태라고 합니다.

학교란 거대한 권력의 성이고, 선생님들은 권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교단은 높고 선생님의 매는 무섭고 학생과 학부모는 너무 약해 보입니다. 학교가 학원보다 인기를 잃고 교권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결국 학교란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장소'라는 원초적인 사실로 돌아온다면 이 만남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가슴아픈 사연을 들으니 갑자기 저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억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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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9-04-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생각인데 초등학교 일학년때 선생님이가장중요하다,,
저도 일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로써 많이 동감이 가요
류 담임선생님도 좀 엄하신 분인데,,,,걱정이 조금되기는하는데요, 아이는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요,,

승주나무 2009-04-09 21:19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엄하신 것도 좋지만 사려가 깊으신 분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려가 얕으면서도 엄하기만 한 선생님은 질색...

연두부 2009-04-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딸아이 하나인데...올해 초등학교입학했어요...이래저래 아이도 우리부부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하고 있는데..너무 공감가는 글이에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 딸을 가진 부모님은 특히 무서울 것 같아요. 공감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무스탕 2009-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저도 초등학교(저희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죠 ^^) 1학년 담임선생님이 생각나네요.눈치없이 들러붙는 저를 딸래미라며 귀여워 해주셨었는데.. (선생님이 아들만 둘이셨어요)
찾아뵙지는 못해도 몇년전까진 풍월에 선생님 소식 들었는데 요즘은 들리는 소식이 없는걸보니 정년퇴직하셨나봐요.
오랜만에 저도 첫 선생님 생각도 하고 좋았습니다 ^_^

아이들을 귀찮아 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은요.
엄마들끼리하는 말중에 '저 선생님은 1학년용이 아니야. 1학년용이야' 라고 농담식으로 하는데 엄마들은 분명히 알아요. 다만 내 아이에게 피해가 올까봐 쉬쉬하며 말을 아끼는거지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저도 국민학교 출신이에요. 너무 오래 돼서 모를 까봐 그냥 초등학교라고 했죠~~
저도 어떤 엄마분이 초등학생 아이의 선생님 이야기를 하자 이 생각이 미쳤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인데 저도 그 분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일전만 되면 긴장하는 '부부'

와이프의 언니, 처형은 일본인과 결혼해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처형과 결혼한 일본인은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항렬로 위이기 때문에
손윗동서가 되고 항상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들을 낳아 잘 살고 있는데,
금슬이 좋던 부부 간에도 "한일전"의 묘한 긴장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한일전만 열리면 무척 예민해집니다.
사실 저는 한일전보다 한일전에 대처하는 일본인 형님네 가족이 더 재밌습니다.

한국이 일본에게 콜드게임으로 지던 3월 7일 가족은 모처럼 외식을 했습니다.
일본도 한국 못지 않게 한일전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서 그 식당에는 대형 TV에 모니터를 설치해
야구를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그 식당은 형님네 가족과 안면이 있어서 친했는데
그때만 해도 2:2로 동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수차가 벌어지면서 한국팀이 민망해지기 시작하자
처형은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분노게이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급기야 "우리 집에서 밥 먹자. 무슨 외식이냐"며 그냥 집으로 가 버리는 겁니다.
그 날 형님네 가족은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오늘도 한일전이 열렸습니다.
형님네 가족은 또 '그날'처럼 될까봐
오늘은 아예 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그쪽의 분위기가 무척 궁금해서 어떠냐고 자꾸 물어봤었죠.
1점 차이 짠물투구로 회가 이어지자 서로 말을 아끼더니
급기야 우리쪽에 승기가 점쳐지는 순간 문자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두부김치를 먹으면서 즐기고 있다는 말에 'ㅎ'자가 더 붙었습니다.
ㅎ자는 1:0으로 승리하고 있기 때문에 붙은 표시겠죠.



▲ 한일전 승리가 점점 우리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 처형으로부터 재밌는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한중일 네티즌들, 함께 경기 보면서 갈등을 식힐 수 있다면


한중일은 정서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급한 것도 비슷하고 사고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일전, 한중전, 중일전에 한중일 세 나라 사람들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한중일이 비슷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 세 나라의 경기가 끝나면
그 나라의 게시판은 난리가 납니다.
플레이를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악플이 달리고,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악플이나 조롱하는 댓글이 달립니다.

블로그에서는 좀처럼 상대 국가의 승리와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중일 세 친구가 한 곳에서 경기를 지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함께 얼굴을 마주보고 경기를 보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일본인 형님네 부부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번 콜드게임에서 한국이 대패했을 때 일본인 형님은 표정관리하느라 몹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처형의 마음을 생각해서입니다.
물론 부부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부부가 아니라 함께 밥도 먹고 얼굴도 마주보는 친구라면
경기에서 크게 패해서 기분이 상한 친구를 위해서 최소한 자극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블로거뉴스를 통해서 경기 후의 일본 네티즌과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지만
한일전이 끝날 때마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의 사이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스포츠'를 떠나서 어떤 특이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고, 그것은 '국가'라는 묘한 상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어를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데,
일본에 여행갈 일이 있다면 일본에서 사귄 친구와 함께 한일전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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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0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야구 재밌었어요 그쵸? ㅎㅎ
전 8회쯤 되니까 이렇게 즐거운 경기를 봤으니 뭐 져도 상관없겠다 싶던데요. ^^
한중일 세나라 모두 그저 즐겁게 즐기는걸 너무 못하는거 아닐까요?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면 승패를 떠나 박수를 쳐줄수 있을텐데 말이죠.

승주나무 2009-03-10 18:15   좋아요 0 | URL
저도 후반부만 봤는데 재밌더라구요..
4:0으로 이겼으면 재미 없었을 텐데.. 일본선수들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을 보니까 더 재밌는거 있죠.. 저 나쁘죠^^

무스탕 2009-03-1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본에게 지던날 다음 경기는 1-0으로 이길거야! 그래야해!
그래야 약이 박박 오르지. 1점만 내면 비기고 2점만 내면 이기는 경기인데 그 1점을 내지 못해서 지고 나면 얼마나 약오르고 허탈하겠어..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제 소원을 들어주느라 정말 1-0으로 이기더라구요.
으하하하~~~ 얼마나 재미있었는지요. ㅎㅎ

승주나무 2009-03-11 00:4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백배공감~
 

무심코 서재에 들어왔는데,

캡쳐가 기가 막히다.



 옛날에는 캡쳐 하기 이벤트를 많이 했는데..

서재지기의 방문자수가 0000이 될 때까지 9999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댓글을 다는 짜릿함~~

그런 이벤트 이제는 잘 안 하나 보다^^

6만힛 된 기념으로 올려본다..
즐찾수 자랑하는 건 아니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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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3-0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대단하네염
6만 힛 추카추카 ^*^

stella.K 2009-03-0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해 봐.

마늘빵 2009-03-0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만 힛 축하해요. :)
 



이웃에게 복숭아를 갖다준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습니다.


지난 여름 폭발 직전의 상황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

지난 해 여름 저는 이웃집과의 갈등으로 이사와 법적 소송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2층의 아저씨와 주차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저는 3층 여성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2층의 아저씨가 차를 댈 곳을 지정하며 우리에게 그곳에 주차할 것을 '명령'하는 듯 했기 때문에 아내는 주차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층의 여성은 밤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통에 제가 몇 번 내려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사이가 안 좋아졌습니다.
더군다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저희 차에 해코지를 하는 바람에 갈등을 더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이 일이 2층의 아저씨이거나 3층의 여성일 거라고 단정지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3층 여성에게 소송을 걸기 위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저녁 7~8시 이후에 소음을 일으키는 것은 '안면방해죄'에 해당하는데, 증거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지를 적고 전문가에게 소음 측정 의뢰를 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이와 같은 사정을 블로그에 올렸고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실비단안개'라는 네티즌 님의 따뜻한 댓글 하나가 빙하처럼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두 가구의 주인을 만나면 먼저 웃어 드리세요 -^^"

그제서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제목처럼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비워놓지 않은 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마음대로 주차하고 싶고 저녁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이웃들도 충분히 그런 것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정을 좀 들어보자 하는 마음에 시장에서 5,000원에 복숭아 10개를 사서 이웃들에게 다가갔습니다. 2층 아저씨는 이웃들 중 가장 오랫동안 여기서 살았고 건물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건물에만 9집이 살고 있었고 주차공간은 6개밖에 없기 때문에 아저씨로서는 차의 사용 빈도를 검토해서 위치를 지정해준 것이었습니다. 3층의 여성분은 직장인이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악기는 자꾸 다루지 않으면 멀어지기 때문에 야근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복숭아를 들고 먼저 찾아가 사과를 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충분히 좋은 이웃이었는데 잘못했으면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우리 건물에서는 지난 해에만 두 집이 주차 문제로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누군가가 저희 차 열쇠구멍에 강력본드를 붙여놔서 차 문을 망가뜨려 버렸습니다. 이를 수리하는 데만 9만원이 들어갔지만, 그보다 더 걱정스러웠던 것은 해코지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방송사에서 오마이뉴스 '잉걸기사'까지 서캐훑이한다는 한승호 CP의 주장 사실로 밝혀져


▲ 지난 6월 말 오마이뉴스 스쿨에 PD수첩 황우석 보도로 대한민국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 한승호 CP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 오마이뉴스 잉걸기사까지 다 뒤지고 다닌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 당시 시민기자들은 반신반의하였지만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비워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마음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저도 이웃과의 오해 때문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만약 '온라인 이웃'(네티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이 일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는데 제 미천한 글솜씨 때문인지 메인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잉걸'로나마 겨우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내내 아쉬웠고 오마이뉴스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오마이뉴스 쪽지가 도착했는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니라 저의 '복숭아 사건' 기사를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방송을 통해 방영될 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출판되고 있습니다. 책의 인세는 불우이웃들에게 쓰여지므로 잉걸뉴스 하나로 저는 소정의 수입과 함께 '선행'도 하게 된 것이죠.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이런 마술 같은 일이 제게 벌어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난 6월 말 강원도 오마이뉴스 스쿨에서 강연자로 나왔던 (전) MBC PD수첩 "황우석 편"의 주인공 한승호 CP는 방송사에서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오마이뉴스 잉걸뉴스까지 서캐훑이한다고 말했는데 강연을 들은 시민기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잉걸기사는 MBC, KBS라는 한국의 양대 방송사에서 애타게 찾고 있는 아이템의 보고라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TV동화 행복한 세상> 작가로부터 쪽지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KBS에서 날아온 원작사용계약서를 보니 정말 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겠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오마이뉴스 기사의 대부분은 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는이야기' 섹션에는 글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숭아 사건'을 '사는이야기'에 쓴 이유는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시골 출신이라 이웃들과 나눠야 한다는 교육을 일상적으로 받아 왔는데,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각박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서글플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해 우리 건물에서 이사를 떠났던 사람들처럼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사소한 마음 씀씀이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법적 소송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는 굳이 소송으로 가지 않아도 될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변호사 수임이나 재판비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복숭아'로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절약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로 인해 이 일이 널리 알려지게 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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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9-03-0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승주나무님. 저번에 얘기하신 그 동화얘기군요. ^^
저도 시골출신이라 베풀고 나누는 문화에 익숙해요. 근데 서울사람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지방에서 사과며 포도즙, 과일등속을 부쳐 친구가 저더러 먹으라고 봉투에 넣어 가져다주면 서울 사람들은 그런것도 친구가 가져다주느냐고 물어요.
법이 만능은 아닌데 '법대로하자'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뜻하는 말이었던 어제와는 다르게 효율과 합리주의로 포장이 된 듯 싶어서 쓸쓸할 때가 많아요.

TV에는 언제나오나요? 아주 반가운 소식이에요. 축하드려요. ^^

ps. 인사가 많이 늦었죠? ^^

승주나무 2009-03-04 01:38   좋아요 0 | URL
알리샤 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술자리에서 인사했었죠.
제가 먼저 눈물을 머금고 퇴장했던 것이 내내 아쉬웠어요.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09-03-04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일이요.^^
승주나무님 축하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4 17:14   좋아요 0 | URL
혜경 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런 행운이 오게 될 줄이야.. 막판 반전 화끈하죠 ㅎ

무스탕 2009-03-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숭아 씨앗이 멋있는 나무로 자랐네요 ^^
축하합니다~~

승주나무 2009-03-04 17:16   좋아요 0 | URL
무스탕 님~ 표현력 쮝이는데요.. 복숭아 씨앗이 나무로 ^^

하늘바람 2009-03-04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셔요 정말 대단합니다.
모두 승주나무님의 덕같아요 저느 그떄 이사가시라고 했던것같아요.
역시 큰 그릇은 다릅니다

승주나무 2009-03-04 17:16   좋아요 0 | URL
네.. 그때 진지하게 이사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여러 네티즌 분들이 격려를 해주셔서 견딜 수 있었어요.
온라인 세상이 아니라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죠 ㅎㅎ

마노아 2009-03-0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승주나무님 서재에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끼고 돌아가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자본론 구절은 흠칫했는데, 그래도 이 글을 보니 다소 안심이 되네요. ^^

승주나무 2009-03-04 17:17   좋아요 0 | URL
자본론이요? ㅋㅋ
제가 북한처럼 화전양면전술을 구사하거든요...
따뜻한 부분도 많이 보여드릴게요^^

2009-03-04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3-04 17:35   좋아요 0 | URL
계약날짜로부터 3개월 이후에 제작된다고 하니까 두 달 하고 좀 더 남았어요..
원고료는 당연히 있죠.. 원고료가 아니라 저작권료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이것저것 감사합니다~~

감은빛 2009-03-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할 일이네요! 이웃과의 갈등이 생각보다 심각했네요.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셔서 이런 복이 생긴 것 같네요!

승주나무 2009-03-04 17:35   좋아요 0 | URL
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뭐 이런 거지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3-0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승주나무 2009-03-04 18: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3-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은 호를 엔젤로 정하면 좋겠어요. 이퇴계나 이율곡처럼 훗날 오엔젤도 유명해질 겁니다.

승주나무 2009-03-04 21:40   좋아요 0 | URL
기왕이면 한자로 지어주세요. 안절(安絶)..뭐 이런 건 어떨까요..안절부절 ㅋ

2009-03-04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3-04 21:40   좋아요 0 | URL
네~ 역지사지가 이제야 제대로 먹혔네요. 언제 한 번 써보나 생각했었는데..
감사합니다.

순오기 2009-03-05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사람의 감성은 같은가봐요. 다들 복숭아 이야기 들으며 잘했다고 했는데, 방송에 책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동화를 만들어내는 건 마음의 여유인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순수청년 승주나무님!

승주나무 2009-03-05 13:38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께 순수청년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 째지는데요.. 오늘은 승주나무가 아니라 복숭아나무라고 닉넴을 바뀌볼까요^^

물만두 2009-03-0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승주나무 2009-03-05 13:39   좋아요 0 | URL
왕감사합니다. 물만두님께 댓글을 하나 얻은 날이네요^^

찌리릿 2009-03-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잘 됐군요. 사람 관계는 작은 것 하나에 웃고 울수 있네요.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막상 실천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복숭아를 사들고 말씀을 잘 나누셨네요. 이것도 용기인데, 정말 대단하세요. ^^ 행운이 앞으로도 쭈욱~~

승주나무 2009-03-05 13:39   좋아요 0 | URL
아니~ 알라딘의 찌리릿 님 아니십니까.
작은 용기인데 실천하기 참 어려운 용기입니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시간들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감사합니다.

Mephistopheles 2009-03-0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 타는 겁니까..^^ 승주나무님 뿐만 아니라 알라딘 페이퍼 곳곳 뒤져보면 정말 방송용으로 만들고 싶은 내용들이 많고도 많죠..^^ 승주나무님이 시작으로 저런 따뜻한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군요..^^

승주나무 2009-03-05 13:39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메피 성님도 알라딘의 미담꾼 아닙니까. 요즘처럼 삭막할 때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앨런 2009-03-0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승주나무 2009-03-05 13: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의 단면이 잔뜩 담긴 사례를 이야기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학교의 교수로 있었는데,
일부러 헤겔과 같은 강좌를 개설했다가 그야말로 처참하게 깨지고 대학교수를 그만두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는 시대가 만들어낸 염세다.
10여년 전 나를 철학으로 처음 인도해준 <철학이야기>의 윌 듀런트는 쇼펜하우어 탄생 이전의 절망적인 상황을 괴테의 입을 빌려서 말했다.

"모든 것이 좌절된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을 신께 감사한다."(괴테 말년)

쇼펜하우어는 살아생전에 성공을 누렸다.
윌 듀런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게걸스럽게' 자신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구하기 힘든 자료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구해서 밤새 관음증 환자처럼 즐겼다고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진단하며 "쇼펜하우어 증후군"이라고 단정지었다. 아예 이 제목의 진지한 글까지 쓴 적이 있다. (당신은 혹시 쇼펜하우어 증후군?)

2002년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나처럼 PC방에서 밤새 외신 기사를 서캐훑이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은 쇼펜하우어 증후군과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합병증이다.

어떤 글을 쓰고 댓글을 확인하는 것을 정도껏 하는 사람에게 이 병증을 꼭 들이댈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정도가 심하다. 글이 베스트에 올라 하루에 수만, 수십만 명이 올랐을 때 하루에 접속하는 횟수를 상상을 초월한다. 초연한 듯 보여도 속은 게걸스럽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심하다.

그런 나에게 참으로 감당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오마이뉴스 메인에도 올라가지 못한 글이 방송에 채택돼 방송과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 한편, 인터파크 희망의 인문학 인문분야 선정위원 섭외, 최근에는 기형도 관련 전화인터뷰 요청...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름 파워블로거로 공인되기라도 한 듯이 이런저런 시선을 끌고, 또 나도 시선을 끌기를 싫어하지 않는 중증환자의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그냥 이런 시선을 발사대로로 삼아 우주로 날아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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