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누구도 논박하지 못한것은 1921년 11월 워싱턴 해군회담 당시에 영국 정부가 미국 납세자들에게 45억 달러를 빚졌고 프랑스는 미국에 35억 달러, 이탈리아는 18억 달러를 빚졌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국제수지 역시 심하게 악화되고 있었고, 따라서 일본은 제이피모건의 지원을 간절히 바랐다. 동시에 1,000만 명의 소련 시민이 미국의 기근 구제로 연명하고 있었다. 다른 어떤 강국도 그렇게세계적으로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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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1월 종전 3기념일, 소수의 지도자들이 미국이 전례없이 엄격하게 정한 국제 질서를 수용하고자 워싱턴디시에서 처음으로 보였다. 위싱턴 해군회담에서 국력은 전함을 기준으로 측정되었고, 트로츠키가기조롱하듯 내뱉은 말에 따르면 ‘배급식량‘처럼 분배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의 모호함도 국제연맹 규약의 당혹스러움도 없어야 했다. 전략지정학적 힘, 즉 해군력의 분배는 10:10:6:3:3의 비율로 결정되었다. 상위는 영국과 미국이 차지했다. 두나라는 도처의 공해에 해군을 주둔시킨 진정한 세계 강국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일본은 한 대양에만, 즉 태평양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해양 강국으로 세 번째 위치를 얻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대서양 연안과 지중해에 국한된 강국으로 전락했다. 이 다섯을 제외하면 어떤 나라도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과 러시아는 회의 참여국으로 고려되지도 않았다. 전략적인 군사력이 오늘날의 핵무기보다 더 엄격하게 억제되는, 모든것을 포괄하는 국제 질서, 바로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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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폭력성은 세상을 바꾸는힘이 되었다. 1918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은 유라시아의 옛 제제국과 합스부르크제국, 오스만제국을 박살냈다. 중국은 내전으로 격동에 휩싸였다. 1920년대 초, 동유럽과 중동의 지도는 바뀌었다. 그러나 이렇게 확연한 변화는, 극적이고 또 논쟁의 여지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지지만 더 깊은 다른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완벽한 의미를 획득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새로운 질서가 출현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질서는, 신생국들의 다툼과 민족주의적 시위를 뒤로하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러시아, 미국 같은 강대국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조짐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1919년의 평화협정은 유럽사에서 중세 말부터 시작된 주권국의 자결권 논리를 강화하는 것 같았다.
19세기에는 이 논리에 따라 발칸반도에서 새로운 국민국가들이 건설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이 통일되었다. 그 논리는 오스만제국과 러시아제국, 합스부르크제국의 해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권국가가 늘어났지만 내실은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모든 유럽 국가는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가장 강력했던 국가도, 승전국도 마찬가지였다.
1919년 프랑스 공화국은 베르사유의 태양왕 궁전에서 독일을 무찌르고 거둔 승리를 축하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세계적 강국으로서의 힘을 잃었다는 사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19세기에 세워진 작은 국민국가들에는 한층 더 깊은 상처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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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판단과 견해를 형성할 능력을 유지하려면 스스로 읽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읽는가, 잘 읽는가 못 읽는가. 그리고 무엇을읽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지만, 왜 읽는가하는 문제는 개인의 관심사에 달린 것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사실 사회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이다. 책을 더 잘 읽음으로써, 또는 더 깊이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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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무한히 널려 있다. 그런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운이 좋다면 선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며 남의 도움 없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나 친구, 또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속에 있는 타자성(他者性)을 일깨워 준다. 상상에 의한 허구의 문학인 순문학himaginative hiterature은 타자성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고독을 경감시켜 준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나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조언은 아무런 조언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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