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의 조연들은 언젠가는 다뤄보고 싶은 주제다. 주인공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작가가 세심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남겨 놓은 조연들을 꽃피워볼까 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그 (보쒸에)에게 불운이 닥쳤다. 그의 쾌활성은 그러한 불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기와가 자주 떨어지는 지붕 밑에서 살아.” 그가 자주 하던 말이다. 그에게는 모든 사고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라, 별로 놀라는 일이 없는 그는, 불운을 잔잔하게 맞았고, 농담을 이해하는 사람처럼 운명의 짓궂은 장난에 미소를 보냈다. 그는 가난하였으되, 명랑함을 숨겨 둔 그의 안주머니는 결코 고갈되지 않았다. 마지막 한 푼은 신속히 고갈되었지만, 그의 웃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레 미제라블 3권(펭귄클래식코리아)
라주미힌(죄와 벌)에 이어서 보쒸에를 만나면서 나는 소설 속 위대한 조연들에 관심이 생겼다. 솔직히 보쒸에는 이름을 잊어버려서 한참을 찾았다. 메모를 해두지 않았다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보쒸에는 아베쎄(ABC)의 멤버로 좀처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베쎄는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단체로, 파리의 대학생 및 청년 노동자들의 모임이다. 카페 뮈쟁을 본부로 사용하고 있으며 프랑스어 Abaissé의 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한 아베쎄는 '낮은 자들' 혹은 '비천한 자들' 이라는 뜻이며'아베쎄의 친구들'은 비천한 이들의 친구로 레 미제라블이라는 제목과 통한다. 레 미제라블 역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한국 최초의 번안 제목은 <너 참 불쌍타>였다. 빅토르 위고는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인물과 공간에 애정을 두는 작가였기 때문에 알려질 수 있었다.
보쒸에는 외투처럼 불운을 입고 다닌다. 그에게 불운이 찾아오는 것은 운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불운이 그를 쾌활하고 독특한 캐릭터로 만든 것이다. 보쒸에가 가르쳐주는 것은 불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무리수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 불운의 공기는 네가 게을러서도 아니고 운이 나빠서도 아니고 미세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것에 불과하다. 미세먼지를 없애기 위해 공지청정기를 매일같이 돌리고 세스코 서비스를 풀옵션으로 받는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미세먼지'는 마셔야 할 수밖에 없다. '만들어진 불운'은 그야말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보다는 보쒸에처럼 반 정도는 자연스레 마실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보쒸에의 가르침에 숙명론적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운은 당연한 것이니 별소리 말고 고 달게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불운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어쨌든 전진한다. 순례자처럼. <사당동 더하기 25>에 나오는 순례자들처럼. 반대쪽으로 전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불운의 공장들을 격파하려는 보쒸에 같은 사람들이다. 보쒸에가 아베쎄 멤버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보쒸에는 불운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면 구조를 깨뜨리는 데 인생을 걸어서 불운이 세상 사람들에게 지옥처럼 펼쳐지지 않고 스캔들 또는 찻잔 속의 태풍처럼 적당한 생채기로 남아 있는 세상을 원했다. 우리에게 닥친 불운 중에서 자연스러운 불운과 만들어진 불운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은 보쒸에로부터 배웠다. 스물 다섯에 일찍 대머리가 되어 버린 보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