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민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폐교가 국민방위군의 훈련소로 사용하게 되자 "전시 상황이니 군인 훈련이 더 먼저지, 어쩌겠습니까." 하고 급히 묵을 곳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의 번고롭고 고단한 피난생활이 보이는가 하면, 배고픈 훈련병이 엄마가 준 떡을 먹다가 군인에게 발각돼 엄마 보는 앞에서 개처럼 매맞고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만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남았다.
문학은 형상화의 예술이다. 작가가 주제넘게 상황을 설명하려 해서도 안 되고 오로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말하게 하는 것이라면, 홍지흔 작가의 두 만화 『건너온 사람들』과 『사이의 도시』는 작위적인 장면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만화를 통해서 한국전쟁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어쩌면 '너무 작은 이야기'라는 아쉬움이 느껴질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축한다는 것과 절제한다는 것은 감정을 지뢰처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담담한 문장과 컷들을 보면서 갑자기 감정이 터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편안한 장면도 긴장하면서 보게 되는 게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