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을 잔뜩 몰고 온 방물장수 여자에게 방 하나를 통 크게 내주고 푸념하는 아내에게 아버지가 사회주의자, 혁명 운운하는 모습이 작가가 보기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그게 통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사상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극우 반공주의가 오랫 동안 주류였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자의 '사회' 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조차도 빨갱이 바라보듯 했했기에 이명박 정부가 되어서야 사회적 협동조합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사회주의 실천과 책 한 권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에 대해서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고정관념과 사회주의 알레르기를 씻어내는 시간이면서 사회주의에 대해서, 나아가 '사상'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념과 사상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경험했고, 연좌제가 엄존했던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사상'은 마치 고어(古語) 또는 사어(死語) 같은 취급을 당해 왔다. 하지만 사상 없는 사람은 없으며, 사상 없이는 행동이 나올 수 없다. 누구 것을 베끼든 영향을 받든 행동은 사상을 근거로 한다.
내가 볼 때 사상은 '좋은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생존하는 것과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좋은 삶에 대한 욕구는 생존에 대한 욕구를 이길 수가 없다. 전략차가 너무나 압도적이다. 생존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좋은 삶에 대한 욕구는 박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아버지는 좋은 삶을 사수하기 위해서 생존의 압박을 힘겹게 이겨냈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삶 실천 과정에서 아버지의 온기를 받았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장례식'이라는 장치다. 장례는 가족이 주최하는 행사다. 가족 전통에서 필수적인 체계이지만 '사회주의자의 장례식'은 가족 제도와 장례 제도, 온갖 전통적인 관계의 모순이 폭발하는 뇌관처럼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