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는 동양철학 33] 아이를 혼내는 동양의 지혜
불가피하게 아이를 혼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부모님들이 무너집니다. 무턱대고 혼을 내거나, 아니면 벌벌 떱니다. 혼을 낸다는 것은 마음을 뒤집어엎는 일입니다. 국가로 따지면 정변이나 전쟁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는 노자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노자 <도덕경>에는 전쟁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비장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무릇 군대를 좋아함은 상서롭지 못하여 조물주는 이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도를 모시고 사는 자는 그러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군자가 머물 적에는 왼쪽을 귀히 여기고 군대를 부릴 적에는 오른쪽을 귀히 여긴다. 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연장이어서 군자가 다룰 물건이 아니다... 이기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건만 이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것이리라, 무릇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자는 천하에 뜻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길한 일에는 왼편을 숭상하고 흉한 일에는 오른편을 숭상하니 이런 까닭으로 부장은 왼쪽이 자리하고 상장은 오른쪽에 자리하거니와 이는 전쟁을 상례(喪禮)로 삼는 것을 말함이다. 사람 죽인 것이 많으면 슬피 울어 애도하거니와 전쟁에 이겼다 하더라도 상례로 삼아야 한다.
- 노자, <도덕경>, 31장
조정에서는 우승상이 좌승상의 상급자가 되고, 전쟁터에서는 좌장군이 우장군의 상급자가 되는 까닭은 임금이 ‘삶’의 위치에 있느냐, ‘죽음’의 위치에 있느냐 차이입니다. 즉, 평상시에 임금은 남쪽을 향해 앉아 있기 때문에[남면(南面)] 우승상이 임금의 오른쪽이 되고, 전쟁시에 임금은 북쪽을 향해 앉아 있기 때문에[북면(北面)] 좌장군이 임금의 오른쪽이 됩니다. 위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쟁에 임하는 자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동양의 사령관 중에서 가장 부끄러운 자는 적의 목을 많이 벤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졸장부 중에서 졸장부 취급을 받습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통일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백기 장군은 목을 벤 장졸만 100만명이 넘고, 절대 라이벌인 조나라 병사 45만명을 일거에 생매장할 정도로 전과를 올렸지만 왕에게 자결 명령을 받을 때는 조나라 병사 죽인 일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사기열전 ‘백기왕전열전’) 벌을 주는 것에 관한 조금 더 직접적인 구절에서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강하게 드러납니다.
맹손씨가 양부에게 형법을 총괄하게 하였다. 양부가 증자에게 형법을 관장하는 방법을 물었다. 증자가 말했다.
“위에서 도(道)를 잃어 민심이 흩어진 지 오래다. 범죄의 정상을 알더라도 불쌍히 여기고 기뻐하지 말라!”
<논어>, ‘자장19’
전쟁이든 형벌이든 채찍을 손에 들 때 공통적으로 지키는 것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시험을 잘 치는 아이가 꼭 지혜롭지 않고, 시험을 못 치는 아이가 지혜롭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벌을 받는 사람 역시 잘못한 경우보다 불가피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된 상황을 서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마음 안에는 일을 이렇게 만드는 데 원인을 제공한 지도자와 어른들의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미안함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 맹자의 ‘망민(罔民)’입니다. 망민이란 백성을 그물질한다는 뜻입니다.
맹자가 왕에게 말했다.
“일정한 생업이[항산(恒産)] 없어도 떳떳한 마음[항심(恒心)]을 가지는 자는 오직 선비뿐입니다. 백성은 일정한 생업 없이 떳떳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만일 떳덧한 마음이 없으면 거리낌이 없게 되고 사치한 것을 일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죄를 얻게 된 백성을 쫓아 형벌을 가하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이니, 어찌 어진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 1-7
죄의 목록을 정해놓으면 사람들은 목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죄의 목록을 정한 취지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아이를 혼낸다는 것은 부모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고, 스스로에게 채찍을 드는 것입니다. 부모가 혼을 낼 때는 아이가 명백한 잘못을 하거나, 선을 넘었거나 하는 상황입니다. 대개 사전에 어떤 경우 혼이 난다는 것이 합의가 된 경우도 많습니다. 이 원칙에 의거해서 혼을 낼 때 부모님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은 ‘감정’입니다. 혼을 낼 때는 이성만 작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양의 사고방식은 혼을 낼 때일수록 감정을 함께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감정을 작동시키라는 것은 감정적으로 형벌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거나 정벌을 당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서로 칼을 겨누는 적군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혼내기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전락합니다. 이것이 바로 동양이 혼을 내는 지혜입니다. 혼을 낼 때는 감정이 뒤엎어지면서 행동과 말, 논리 하나하나가 엄중히 새겨집니다. 이 엄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혼내며, 엄중함에 압도되기 때문에 감히 혼내지 못합니다. 혼낼 줄 아는 부모님은 어렸을 적에 제대로 혼나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렸을 적에 제대로 혼이 난 적이 없기 때문에 혼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크게 혼났다고 해서 제대로 혼나는 것이 아니라, 혼이 날 때 마음속에 부당하다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지 않도록 정확하게 혼이 나는 것이 제대로 혼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실제 생활에서 아이를 어떻게 혼내는지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혼을 낼 때는 이유가 보편타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에 일관성이 없거나 논리적 결함이 있거나 혼내는 사람의 자격 시비가 걸린다면 영(令)이 서질 않습니다. 형 민준이는 동생 민서보다 두 살이 많기 때문에 민준이가 민서를 때리거나 밀치고 민서가 우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민준이가 민서를 때리고 민서가 울었다고 해서 혼내거나 지적하지는 않습니다. 부모인 내가 명백히 알고 있고, 민준이의 행동에 변명의 여지가 없을 때 혼을 냅니다.
민준이와 민서에게 똑같이 감자칩을 주었습니다. 감자칩을 좋아하는 민준이는 얼른 봉지를 비우고 민서의 봉지에서 감자 두 조각을 빼앗았습니다. 힘이 센 것을 이용해서 동생의 것을 빼앗는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따끔하게 지적하고 민서에게 돌려주라고 말했습니다. 민준이는 기분이 나빴는지 감자 두 개를 던져 버렸습니다. 명백한 이유로 혼이 날 때 불평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것 역시 혼을 내는 사유가 됩니다. 나는 엄하게 민준이를 꾸짖었습니다. 민준이는 서럽게 웁니다. 민준이에게 아빠는 밖에 나가겠다고 말하고는 현관 문을 열고 밖에 나가서 2~3분 정도 있다가 다시 들어갔습니다. 민준이는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 듯합니다. 감자칩을 좋아하는 민준이가 동생 것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동생에게 부탁을 해서 충분히 얻어낼 수 있었지만 힘으로 빼앗은 것은 누가 뭐래도 교육을 잘못 시킨 부모에게 있기 때문에 혼이 난 아이에게 부모는 마음의 빚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준이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아빠한테 혼나서 많이 속상하냐고 물었더니 민준이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민준이에게 혼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민준이는 내가 왜 나갔는지 궁금했는지 물어봅니다. 나는 “처음에는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갔지만, 밖에서 생각해 보니 혼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혼을 내는 가장 커다란 원칙은 가급적 혼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불가피하게 혼을 내야 한다면, 혼내고 난 이후에 반드시 두 팔로 안아주고 혼내서 미안하다는 말을 붙입니다. 민준이를 크게 혼낸 날 몇 분 뒤에 민준이가 “아빠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빠가 혼냈는데도 사랑해?”라고 물어봤더니 그래도 사랑한다고 합니다. 민준이가 아빠를 사랑하는 이유가 더 의미심장합니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민준이는 감자칩 남은 세 개 중에서 두 개를 꺼내서 민서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한 개면 충분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민준이가 감자칩 한 개를 민서에게 주자 민서가 고맙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감정이 한바탕 파도를 넘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혼을 내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아이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혼을 내지 않는다는 게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모라면 최소한 혼을 내는 목표를 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혼을 내는 이유는 나중에 혼을 낼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철이 들면서 점점 혼날 일이 없어졌듯이 시간이 흘러가면 혼을 낼 일이 거의 없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혼을 내는 사람의 마음과 혼이 나는 사람의 마음을 함께 헤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은 혼난 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아이들은 이유보다는 혼난 경험 자체, 또는 감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부모의 메시지가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혼나서 다친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민준이에게 혼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민준이는 그제서야 빼앗은 감자를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아이를 혼내고 난 후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부모가 아이를 혼내는 이유는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혼 낸 일 자체만 아이의 뇌리에 남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