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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교육지원청 소속으로 강원지역 모 여고생들에게 진로진학 프로그램을 강의하다가 개발한 놀이입니다.
아직 비전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전 형성에 도움이 되는 여러 활동 중에서 관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면 좋을 것 같아서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나를 가운데 그리고 나와 친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거죠.
A라는 사람을 표시했다면 내가 A에게 무엇을 했을 때 A가 좋아했고, 그 반대의 경우를 표시해줍니다. 예컨대 엄마는 나와 함께 놀아주니까 “놀아줌”아라고 쓰고, 나는 엄마에게 안마하기, 노래부르며 춤추기를 했을 때 엄마가 좋아하니까 그걸 표시하는 거죠. 이렇게 친구들을 내 중심으로 두르고, 서로 아는 친구끼리도 연결시키면 근사한 친구지도가 완성됩니다.

이 놀이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친구의 조건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심리가 반영되기에 아이의 신념이나 가치관, 감정상태 등을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동양 사람의 사고의 핵심이므로 한국의 가족에게도 편안함과 흥미를 주는 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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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전문가 양성 과정의 문학 파트 강사로 참여하며 강의한 자료입니다. 
몸짓을 이용해 책과 노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 팀을 정하는 방식을 참여자들에게 일임하는 놀이입니다. 의외로 팀 짜기 놀이에 참여자(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하더군요. 





▲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전 농구'입니다. 이 놀이를 한 팀도 있고 안 한 팀도 있어서 올립니다. 게임 방법은 잘 설명이 돼 있습니다.  





▲ 책 탁구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스포츠 게임처럼 승부를 겨루는 방법이 있고, 커플 탁구처럼 협력을 유도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경쟁, 여자 아이들은 협력을 테마로 하면 좋겠네요. 




▲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단순한 놀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가위바위보 동작에 주의하세요. 칼 날아올지도 모르니까요 ㅎ 






▲ 책모자로 몸을 움직이는 게 은근히 쉽지 않고, 아이들의 플레이를 보면 성격을 알 수 있어서 심리테스트 효과까지 줍니다. 탁구공 전달하기는 협력심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 역시 책을 펼쳐서 사람 수를 세는 단순한 놀이입니다. 단순한 놀이일수록 참여자의 흥미를 더 이끌어낸다는 진리를 어린이들에게 직접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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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만에 탄생한 새로운 놀이

어린이들은 순간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어른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과 함께 놀 땐 표정을 집중해서 바라봅니다. 놀이를 재밌어 하는지 아닌지 표정에 다 나와 있거든요.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전혀 새로운 놀이가 뿅 하고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혼나기 챔피언 선발대회'가 그랬어요.

"너희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선생님은 카드 한 벌을 꺼냈어요. 하트와 다이아몬드, 클로버와 스페이드. 
"그럼 우리는 카드놀이를 하게 되나요?"
베네딕트가 큰 소리로 물었어요. 
카드 각각에는 조커가 표시돼 있었어요. 앞면에는 여러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ㅡ <조커, 학교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일부


▲  어린이들을 자극하는 '조커 만들기'가 인상적인 <조커>를 읽으면서 순식간에 놀이를 만들었어요.
ⓒ 문학과지성사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문학과지성사)를 읽어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책에 소개된 조커를 읽을 때마다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며 공감하는 표정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가지고 싶은 조커가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관심 없는 눈으로 듣고 있던 아이들도 관심을 보이며 손을 들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학교에 가기 싫을 때 쓰는 조커" "지각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숙제한 것을 잃어 버렸을 때 쓰는 조커" "숙제하지 않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수업 내용이 듣고 싶지 않을 때 쓰고 싶은 조커" "수업 시간에 자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옆 친구 것을 베낄 때 쓰는 조커" "벌 받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특히 "벌 받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에서는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벌을 많이 받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엄청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어떤 친구는 목검으로 맞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즉석에서 놀이를 만들어서 놀았습니다. 이름하여 '혼나기 챔피언 선발대회'입니다.

야단 자랑하기 챔피언 대회

처음에는 야단 자랑하기 대회를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큰 사고와 큰 야단이 마치 훈장처럼 작용한다는 글을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남긴 적이 있었는데, 어린이들이 야단을 자랑하면서 진짜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현이가 먼저 일곱 개의 야단을 자랑했습니다.

1. 동생한테 화풀이하다가 엄마한테 혼났어요
2. 오빠한테 까불다가 혼났어요
3. 엄마 휴대폰하다가 혼났어요
4. 엄마한테 허락 안 받고 컴퓨터 하다가 혼났어요
5. 학교에서 친구 막 때려서 혼났어요
6. 꾀병 부려서 혼났어요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오빠 기현이가 금방 10개를 채웁니다.

1. 엄마 아빠한테 까불다가 혼났어요
2. 동생들 때려서 혼났어요
3. 어떤 친구 하나 잘못했다가 단체로 혼났어요
4. 게임하고 있는데 엄마가 끄라 했는데 짜증냈다고 혼났어요
5. 동생 물에 빠뜨렸다고 혼났어요
6. 동생 수첩 찢다가 혼났고 혼났어요
7. 돼지저금통에서 돈 훔치다가 혼났어요
8. 학교에서 컴퓨터 시간도 아니데 컴퓨터실 갔다가 혼났고요
9. 학교에서 준비물 안 가져와 혼났고
10. 친구들이랑 싸우다가 혼났어요


기현이를 '야단 자랑하기 챔피언'으로 뽑으려는 순간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현철이가 혼난 이야기를 줄줄 외는데 순식간에 11개를 채웠습니다.

1. 형아들이랑 강원도 놀러갔는데 PC방 갔다가 혼났고요. 
2. 친구들이랑 놀다가 싸워서 혼났어요
3. 축구하다가 친구 머리 맞춰서 혼났고요 
4. 숙제 안 해왔다고 혼났어요
5. 친구들이랑 같이 놀다가 친구들끼리 싸워서 저까지 혼났고요
6. 어떤 사람이 김태양과 어떤 아이가 싸우다가 좀 물어봤다고 혼났고요. 끼어들었다며
7. 엄마한테 까불다가 혼났고요
8. 화장실에서 제기 차다 혼났고요
9. 친구들한테 짜증 내서 혼났고요
10. 엄마 허락 없이 친구 집에서 놀았다가 혼났어요
11. 아빠 엄마 싸우는데 끼어들었다고 혼났어요


새로운 챔피언이 등극했습니다. 제주도 친구가 강원도까지 가서 PC방을 이용하다가 혼난 게 재밌었습니다.

혼나기 챔피언 선발대회

이번에는 어린이들이 '대박 야단'이라고 부른 '혼나기 챔피언 선발대회'를 했습니다. 어링이들이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해서 자기가 혼난 일을 한껏 미화해서 자랑하는 놀이입니다. 이번에도 혼나기 대장 정현이가 맨 먼저 나섰습니다.

"동생 어린이집 이름이 '제주 엔젤 어린이집'인데 '사랑의 담배 어린이집'이라고 놀리다가 엄마가 엎드려 뻗쳐 해서 목검으로 때렸어요."

정현이의 야단 무용담은 2표를 받았습니다. 한때 챔피언(?)인 기현이가 질새라 일어서서 발표했습니다.

"우리 반에서 제일 키 작은 애가요. 왜 앞에 섰냐고 하니까 짜증나서요 소중한 곳에 니킥(무릎으로 치기) 날렸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소중한 곳'이라고 하니까 귀여웠습니다. 니킥 날리는 장면이 떠오르는지 여자 아이들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기현이 무용담은 5표를 받았습니다. 뒤의 몇 명의 어린이들이 무용담을 자랑했는데, 어린이들이 '심심해요' '싱거워요'라고 항의하는 통에 표결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름 재밌으니까 소개만 합니다.

"영어 학원 안 가서 친구 집 놀러갔다가 엄마한테 들켜서 파리채로 맞았어요. 거꾸로 맞았대요."
"다섯 시간 동안 숙제를 하는데 독서록을 다섯 줄 밖에 못 해가지고요. 그래서 엄마한테 몽둥이로요 종아리 열 대 맞았어요."
"작은 아빠한테 "야"라고 하다가 엄마한테 야구방망이로 혼났어요."

혼나기 챔피언은 홍걸이의 무용담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번 들어볼까요?

"제가 엄마 방에 몰래 들어가 오천원을 훔쳤는데, 엄마가 오천원 없어진 걸 알고 만원 벌금을 매기고 오십 대 때렸어요. 만원도 내고 오십 대도 맞고. 용돈으로 만 원 깠어요. 용돈이 만원 밖에 없었는데 만원 다 빼앗겼어요."

어린이들은 "이거는 싱거운데 재밌어요"라며 홍걸이의 무용담을 만장일치로 인정했습니다. 

▲ 혼나는 주제의 책 중에서 단연 고전은 구스노키 사게노리의 <혼나지 않게 해주세요>(베틀북)이죠!




엄마에게 혼난 일 모음

어린이들이 혼난 일 가운데는 엄마와 관련된 일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어린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본내는 사람이 엄마니까요. 그 중에서 뜨끔하고 왠지 어린이들에게 미안한 대목을 골라 봤습니다.  

"제가 숙제를 하고 있는데 두 시간 동안 몇 개 했어요. 그런데 숙제 중에서 하기 싫은 게 있어서 책을 좀 읽었거든요. 엄마가 벌컥 들어오면서 책이 있어서 더러워졌으니까 하면서 화 내 가지고 벽에서 까치발 서서 벌 받았어요." 

어린이에게 이유를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우리 동생이랑 놀고 있는데요. 동생이 갑자기 머리끄댕이 잡아가지고. 동생이요.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해가지고 동생 배 한 번 팍 찼는데 동생이 울어가지고 같이 혼났어요. 야구 방망이로 동생은 조금 맞고 저는 많이 맞았어요."

제가 안타까워서 "동생은 왜 조금 혼내고 나는 많이 혼내냐고 엄마에게 말해봤어요?"라고 묻자 어린이는 "아니요. 엄마가 엄청 무서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혼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그림책이 생각났습니다. 야단을 밥 먹듯 맞는 어린이 주인공은 항상 야단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무조건 혼이 나는 바람에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려 벌립니다. 억울한 어린이가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 엄마와 토론을 해서 야단을 피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제가 억울하잖아요. 엄마한테 토론해 가지고 진짜 내가 한 게 아닌데 내가 했다 그러면. 나는 그냥 한 번 말했는데 엄마는 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면 먼저 시작한 사람한테 엄마가 한 번 말하고 그걸 해결해요."

어린이들의 말을 들어 보고 제가 아이디어를 말했습니다.  

"엄마 화는 최소 하루 지나면 거의 다 풀려요. 여러분 억울한 마음은 엄마가 화가 날 때 얘기해야겠어요, 안 해야겠어요?"

그랬더니 어린이들이 "화 풀렸을 때 하면 더 혼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 어린이가 무척 난감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엄마는 제가 혼날 때 자꾸 질문을 해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해요. 대답을 안 하면 더 혼나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엄마 맘에 드는 답을 하고 넘어가라고 안일하게 답했더니 "그렇게 답하면 더 혼나요. '떠들지 않는 거라고 했는데 왜 떠들었어'라고 혼내요"라고 되묻습니다. 

저는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이 땅의 부모님들, 아이들이 피하고 싶은 질문을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요. 야단을 칠 때나 책을 읽을 때는 어린이가 듣고 싶은 질문이나 대답하기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 질문법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혼나기 챔피언' 놀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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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세계에는 어른이, 비언어의 세계에는 어린이가 산다

 

주말 나른한 오후. 아빠는 소파에 드러 누워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봅니다. 옆에서 아이는 책을 봅니다. 누워서 봤다가 앉아서 봤다가 아빠와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가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산만한 모습이 신경 쓰입니다.

 

“OO야, 책은 바른 자세로 읽어야지!”

 

아빠가 기어코 한마디 합니다. 아이는 아빠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까요? 부모님들과 함께 특강을 해보면 “아이가 도무지 말을 안 들어요.”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말투는 잘 따라합니다. “잘 한다. 잘 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조롱의 뉘앙스를 정확히 복제해서 사용합니다. 어른은 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고 어린이는 비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의 커뮤니케이션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차분히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되돌려보면서 아이가 언제 언어를 사용하는지 본다면 비언어의 존재감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는 태어나서 아무런 말을 못하고 100일 즈음 되면 옹알이를 합니다. 옹알이는 언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돌이 지나고 한참 있어야 엄마 아빠 같은 기본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고, 또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야 ‘문장’이라는 걸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비언어의 생태계에서 언어라는 생물이 태어나는 것처럼 언어와 비언어는 차원이 다른 소통 방식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언어에 대한 의존도가 무척 큽니다.

책은 언어로 이루어진 매체이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과 책을 향유하는 과정은 결코 언어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감정이입을 하거나 두뇌 자극을 받는 일련의 작용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책놀이책>은 책에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족과 가족이 감정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오랫동안 고민하며 썼습니다. 당연히 아이들과 만나는 책놀이 프로그램이나 부모님 특강 역시 ‘비언어’ 부분을 강조합니다.

 

한라도서관 책놀이 프로그램에서도 비언어 소통 방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처음으로 쓴 것은 원기옥 퍼포먼스입니다.

 

“책요정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서니까 가슴이 쿵쾅쿵쾅하고 너무 떨리니까 여러분이 손을 들고 힘을 모아주세요. 마음속으로 떨지 마라 떨지 마라 하고 빌어 주세요.”

 

처음에는 지루해하던 아이들도 손을 번쩍 들고 원기옥 퍼포먼스를 만들어 보니 무척 흥미로워했습니다. 소원을 하나씩 생각하고 한 차례 원기옥을 더 만든 다음에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몇 명의 어린이에게 물어보고 나서 두 번째 비언어 소통을 시도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지금부터 옆의 친구들과 사랑의 포옹과 악수를 하겠습니다. 어린이들 모두 양쪽 벽으로 서주세요.“

 

책요정 선생님이 먼저 한 바퀴 돌아가며 아이들을 끌어 안았습니다. 선생님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은 아이들은 순간 당황해 하면서도 재밌어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징그럽다는 투로 피해가기도 했지만 서로 안아주니 기분은 좋은 것 같았습니다. 한 장난꾸러기로부터 ‘변태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별명을 얻는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비언어 소통을 한다고 해서 억지로 하게 하면 안 됩니다. 남자 어린이와 여자 어린이는 서로 포옹하는 데 대해서 거부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친구들은 악수만 해도 돼요. 악수도 하기 싫으면 손가락으로 악수해요.”라고 한정을 해주면 원활하게 비언어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인간 행동 전문가 앨런 피즈와 바바라 피즈의 30년 연구를 집대성한 몸짓 언어 바이블 <당신은 이미 읽혔다>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방어를 깨드리려면 자세를 무너뜨리라고 충고합니다. 일어서는 동작, 손을 드는 동작, 악수하는 동작, 포옹하는 동작 등을 통해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리고 교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책으로 하는 비언어 소통 방법을 총집합한 책놀이 운동회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 양손을 들고 에너지를 모으는 원기옥 퍼포먼스는 아이들의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므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선보인 책놀이 운동회

 

첫 시간에 예고한 대로 두 번째 시간(8월 6일)에는 책놀이 운동회를 했습니다. 책놀이 운동회는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주로 몸을 많이 쓰는 놀이입니다. 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풍부하게 가지려면 ‘읽는 대상’이라는 한정된 시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책을 만나는 과정을 보면 책이 단순히 읽을 거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의 다섯 살 아이 민준이의 경우 돌이 되기 전에 책은 ‘먹을 것’이었습니다. 책을 빨아먹고 씹어먹는 통에 모서리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돌이 되니 책은 ‘네모난 장난감’으로 변신했습니다. 집어 던지기도 하고 자꾸 만지작거리기도 합니다. 그때까지도 민준이는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두 살 정도 되었을 때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엄마 아빠 무릎에 앉아서 책을 쳐다봤습니다. 마침내 ‘읽을 대상’이 된 것이죠. 책놀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들 책을 읽을 줄 알지만 책놀이 운동회를 하면서 책과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놀이 목록에 포함된 것들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집안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곳은 아이들이 집안일로 놀이를 만들어서 즐깁니다. 놀이 안에 책이 들어가 있으면 책에 대한 친근함이 느껴지고 거부감이 사라집니다.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회성을 익힙니다. 대표선수를 정하는 과정에서, 플레이 중에서 선수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응원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지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한 연예인이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 생활을 소개하던 중 무척 인상적인 사례를 전해 주었습니다. 아이를 미국 유치원에 보냈는데,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열흘 내내 ‘개집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연예인은 화가 나서 유치원에 가보니 정말 아이들이 나무와 망치를 들고 툭탁툭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빠는 원장실로 찾아가서 항의를 했더니 유치원에서 명답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목공 놀이를 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격과 판단력 등 다양한 능력을 체크합니다. 이 분석 자료를 토대로 아이들에 대한 교육 방식이 정해집니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내보낼 수 있으니 아이를 유치원에서 뺄 건지는 부모님이 결정해 주세요.”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화를 내거나 다투는 일도 있었고 상대편의 플레이를 할 때 방해하거나 놀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 감점을 주고 감점 이유를 말하면 아이들은 룰을 배울 수 있습니다. 머리의 집중력도 중요하지만 몸의 집중력도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이들에게는 몸의 집중력을 키워주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책놀이 운동회를 했더니 특히 남자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습니다. 앞으로 책놀이와 책의 내용을 연결해서 프로그램을 더 연구하면 남자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멀고 가까운 거리의 책 안에 동전을 던져 집어넣는 '동전농구'를 할 때 아이들이 가장 강한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책 놀이를 직접 만들어 봤어요.

 

이번 책놀이 운동회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은 어린이들이 직접 책놀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몇 개의 책놀이를 소개하고 아이들에게 책놀이를 만들게 하였는데, 책놀이를 만들고 친구들의 인정을 받으면 보너스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경쟁의 요소를 가미했더니 아이들의 두뇌가 반짝거렸습니다.

 

첫 번째 놀이는 탁구공 오래 튀기기입니다. 대표선수 세 명을 정해서 오래 튀기기인데, 세 명이 먼저 떨어지는 팀이 패배합니다. 두 번째 게임은 책 탁구입니다. 청팀 다섯 명 백팀 다섯 명 벽을 만들고 3세트 동안 책으로 공을 튀겨서 상대편으로 넘기는 거에요. 한 세트에 10점씩 두 세트를 먼저 이기는 팀이 승리합니다.

 

세 번째 게임은 동전 농구입니다. 동전을 던지는 선을 정해 놓고, 선에서부터 먼 곳, 중간 곳, 가까운 곳에 책을 놓고 가장 먼 곳에는 150점, 중간 먼 곳은 100점, 가장 가까운 곳은 50점을 부여합니다. 양팀이 10개의 동전을 던져서 총점을 가장 많이 획득한 팀이 승리합니다.

 

승리한 팀은 50점을 획득하고, 패배한 팀은 25점을 획득하는데, 책놀이를 만든 팀은 30점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50점 뒤지고 있는 팀이 책놀이를 만들어서 승리를 하면 80점을 얻고 패배하면 25점에 머무르므로 대역전극이 가능합니다. 어린이들의 아이디어는 기발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합니다. 특히 ‘책으로 뿅망치 게임’이 재밌었어요.

 

“뿅망치 게임과 비슷한 건데요. 책으로 상대방 머리를 때려서 다섯 명이 나와서 세 명 이상 비명을 지르면 이기는 거에요. 책으로 사정 없이 때리는 게임.(이한결)”

 

완력이 좋은 남자 아이들은 하자고 막 우기고 여자 아이들은 거수를 거부함으로써 뿅망치 놀이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여자 아이들 자리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책 멀리 던지기 놀이도 재밌었지만 인정은 못 받았습니다. 근사한 놀이도 많았습니다.

 

“한 사람이 책 한 권씩 갖고 있다가 가위바위보 지면 책을 쌓아놓는 거에요. 책이 다 떨이지면 지는 거에요. 책을 계속 쌓아서 책이 없으면 지는 거에요.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은 책을 올려놓고 하는 거에요.”(문서현)

 

문서현 어린이의 설명에 문기현 어린이가 책으로 가위바위보 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문서현-윤기현 놀이’가 만들어졌습니다. 책을 펼쳐가지고 사람 수가 많이 나온 데가 이기는 놀이도 재미 있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고민준-김민재 놀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들이 책놀이를 직접 짜본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됩니다. 책놀이를 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동작들을 알 수 있고, 책의 특징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보강해서 조금 더 완성도 있는 놀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책놀이 각본대로 하는 것도 재밌지만, 직접 각본을 만들어서 배우 역할을 하면 두 배나 더 재미 있을 뿐만 아니라 주체성도 길러집니다. 이 때 지도 선생님은 아이들의 의견을 잘 듣고 요약을 해서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고 추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보조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탁구나 탁구공 튀기기 같은 운동 종목은 남자 아이들이 이겼고, 책으로 가위바위보는 여자 아이들이 이겼습니다. 이날 최종 스코어는 남자 아이들이 많은 백팀이 180점, 여자 아이들이 많은 청팀이 165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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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어린이를 위한 세 가지 무기

8월 1일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니는 30명의 어린이들과 역사적인 책놀이 첫 번째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들과 20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만난 일은 없어서 떨리고 무서웠습니다. 얼마 전 경북의 동성초등학교 어린이들과 2시간짜리 '책놀이 가족오락관'을 했을 때의 '카오스'(?)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번 프로그램은 도서관에서 주최하고 일주일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지역의 부모님들께 큰 관심을 받아서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아이들의 동기 부여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단단히 했습니다.

우선 세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첫 번째로 한 생각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자."입니다.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척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는 사람, 말 걸어주는 사람, 친구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내가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아이들도 분명 친구처럼 나를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존중하자"입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을 하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커지고 책놀이 프로그램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강제하지 말고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반영해서 책놀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을 어린이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장기기억보다는 작업기억으로"입니다. 사실 아이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작업기억'이었습니다.

작업기억은 정보를 저장하는 뇌의 일부분으로 임시기억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낯가림을 시작하는 생후 7개월쯤부터 개발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어른에 비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어른의 배에 가까운 시냅스 연결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시냅스(synapse)란 두 신경 세포 사이나 신경 세포와 분비 세포, 근육 세포 사이에서 전기적 신경 충격을 전달하는 부위입니다. 두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아이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피드백을 주어야 합니다. 시냅스 연결이 활발하지 않은 저 같은 어른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저는 두 시간 동안 일어날 몇 개의 활동을 아주 헐겁게 정하고 아이들이 살을 채워가도록 했습니다.

 

 


어린이를 놀이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 기자회견 놀이를 통해 스타의 역할과 질문 하는 기자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 아이들을 서로 마음을 열고 발표력과 질문력을 기릅니다.

나에게 찾아온 어린이들은 대개 엄마가 도서관의 안내문을 보고 등록한 경우입니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책놀이에 오기 싫었는데 엄마가 오라고 해서 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주인공이고 어린이들이 조연인 채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 관건은 어떻게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 것인가입니다. 저는 2회차 공지를 어린이들에게 미리 했습니다.

"내일은 책놀이 운동회를 할 거에요!"

'운동회'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운동회를 할 거냐고 막 물어봤습니다. 저는 천천히 말하며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켰습니다. 몇 개의 놀이는 선생님이 만들었는데 여러분들이 만든 놀이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청팀과 백팀으로 두 팀을 나눠야 하는데 팀을 어떻게 나누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은 다음에 차근차근 말하라고 안내를 해주었더니 손을 번쩍 듭니다. 이렇게 해서 네 가지 주장이 나왔습니다.

조현철 : 저는 이렇게 딱 반 잘라서.
이한결 : 저는 여자 남자 나눠서 하면 좋겠습니다.
윤기현 : 대표를 정해서 팀을 뽑으면 좋겠습니다.
문서현 : 종이에 자기가 원하는 팀을 적어서 나누고 팀이 적으면 다시 정하면 돼요.


네 명의 후보를 앞으로 오게 한 다음에 자신이 주장하는 이유를 친구들에게 설명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깊이 고민하면서 차분히 단어를 고르며 친구들을 설득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제가 다 대견해 보였습니다.

이한결 : 저는 이한결입니다. 저는 여자 남자로 팀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여자 남자로 팀을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조현철 : 저는 조현철입니다. 저는 손으로 반띵해서 청군 백군 정하면 좋겠습니다. 쉽게 쉽게 해요.
윤기현 : 윤기현입니다. 저는 남자 여자 대표를 정해서 팀을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남자 여자가 잘 섞이면 좋기 때문입니다.
문서현 : 저는 문서현이라고 합니다. 저의 의견은 자신이 원하는 팀을 적어 투표를 하면 좋겠습니다.


한결이는 여섯 표를 받았고, 현철이는 세 표를 받았습니다. 기현이는 설명을 잘 했는지 무려 16표를 받았습니다. 서현이도 예상을 뒤엎고 15표를 받았습니다. 이 때 어린이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현철이가 자기 의견에 자기가 손을 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현철이는 절대 그런 적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관찰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던지 제가 다 긴장되었습니다. 저는 현철이와 서현이를 남겨 놓고 나머지 어린이들을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여러분! 두 친구가 들어갔고 두 친구가 남았죠. 이제 결선투표를 할 거에요. 한 번의 발언권을 더 줄 거에요. 친구들을 잘 설득해 봐요."

어린이들은 최대득표제도에 익숙하지만 저는 프랑스식 결선 투표제를 소개했습니다. 최종 득표수에서는 기현이가 앞섰지만 2위를 득표한 서현이에게 부당할 수 있고, 책놀이에 참여한 모든 어린이의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선투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을 아이들에게 다 할 필요는 없지만 '결선투표'라는 방식이 어린이들에게 흥미로운 자극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남은 결선투표의 후보들이 자신의 주장을 조리 있게 설명했습니다.

윤기현 : 저는 주장을 정해서 팀을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팀원을 뽑을 수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못 뽑으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주장이 뽑으면 그 사람이 좋아서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문서현 : 저는 투표를 해서 자기 팀을 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친구라도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선투표답게 어린이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갖췄습니다. 어린이들은 '중복 투표'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리가 있었습니다. 많은 후보들이 나왔을 때는 중복 투표를 하면서 좋은 주장을 고를 수 있었지만, 최종 후보가 정해진 상황에서 중복 투표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현이의 주장이 마음에 드는 아이들은 오른쪽 벽에, 서현이의 주장이 맘에 드는 아이들은 왼쪽 벽에 서도록 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문서현 14명, 윤기현 11명(5명은 결석)으로 문서현 어린이의 주장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서현이의 의견대로 투표지를 만들고 이름과 팀 이름을 쓰도록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백팀을, 여자 아이들은 청팀을 많이 써서 결과적으로 남자팀 여자팀이 되었지만 어린이들이 주장하고 동의하고 결정하는 팀 정하기는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서현이는 "왠지 과학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각 팀의 대장을 가위바위보로 뽑고 대장 인사를 시켰습니다.

청팀 대장 인사 : 저는 남광초등학교 3학년 문서현이라고 합니다. 청팀을 어떻게 이끌고 싶냐면,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고 서로 믿으며 이기고 싶습니다. 박수!!!
백팀 대장 인사 : 저는 이한결입니다. 저는 백팀을 어떻게 이끌 거냐면 저도 승복하고 즐겁게 게임을 하도록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과 책놀이를 하기 전에 머리말("1년을 기다린 어린들과의 책놀이, 궁금해요?")에서도 어린이들은 민주주의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제 확인을 해봤더니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팀을 뽑는 방식, 팀장을 정하는 방식, 주장하고 투표하는 방식 등 민주주의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놀이로 구성했더니 무척 친숙하게 따라왔습니다. 말 그대로 민주주주의 놀이는 어린이들에게 딱 맞는 놀이였습니다.

 

 

 

▲ 기자회견이 거듭될수록 질문의 질이 좋아졌고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다경이는 기자회견문을 미리 정리해 와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회견 놀이

오늘 처음으로 진행한 책놀이는 '기자 회견 놀이'입니다. 기자 회견 놀이는 인터뷰 놀이를 응용한 방식입니다. 자기 소개와 가족 소개, 책 읽기 습관이나 고민 등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둘러볼 수 있고, 궁금한 질문을 하면서 서로 친해질 수 있습니다. 책놀이의 첫걸음은 '마음 열기'입니다. 마음을 열어야 책을 제대로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인데, 김연아나 류현진 같은 스타들 기자회견 하는 거 봤어요?"
"가끔 가다 한번씩 봤어요."
"여러분 기자 알아요?"
"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지만 TV도 많이 보고 미디어에 노출되었으니 기자회견 놀이는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있을 때는 스타가 되는 거고, 거기 있을 때는 기자가 되는 거에요. 나는 몇 학년이고 어떤 책 좋아하고, 부모님이나 가족 중에서 소개할 사람 소개하고 좋은 점, 자기 자랑, 책 관련된 고민 얘기하면 돼요. 처음에는 내 소개, 내 소개할 때 뭐뭐 들어가요. 이름, 자기 초등학교, 학년, 자랑, 그 다음에 가족도 들억가겠죠. 가족 얘기하면서 가족이랑 친한지 싸움 잘 하는지 칭찬 많이하는지 '우리 엄마는 칭찬 많이해요.' '꾸중 많이 해요.' '잘 놀아줘요' '아빠랑 식물원도 갔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처음에는 무대에 가서 자기 소개하는 것을 어색해 했지만 질문을 자주 주고 받으면서 친숙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윤기현입니다.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부설초등학교에 다니고 3학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만화책이고 싫어하는 책은 교과서입니다. 저는 독서록 쓰는 게 귀찮습니다. 엄마 아빠 동생입니다."
질문 공세가 시작됐습니다.
"동생이랑 친하게 지내고 맘에 들어요?"
윤기현 : 아니요.
"동생 칭찬 해준다면."
윤기현 : 우리 정현이는 그림을 잘 그려요.
"교과서 중에 어떤 게 제일 싫습니까. (이한결 어린이)
윤기현 : 수학입니다. 어려운 것도 있지만 좀 그래요.
"교과서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윤기현 : 체육.
"이한결 : 체육 중에서 어떤 체육을 가장 좋아합니까?"
윤기현 : 축구입니다.


기자 회견 놀이를 하면서 어린이들은 질문을 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질문은 그 자체로 요약능력을 높여주는데, '좋아하는 반찬은 무엇입니까?' '싫어하는 과목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을 하면서 어린이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접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하면서 자신이 싫어하는 반찬과 좋아하는 과목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감정이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할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이들이 서로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습니다.

다경이는 종이에 기자회견 내용을 빼곡이 써와서 읽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이 차차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질문의 내용 또한 제가 추가 질문이나 연결된 질문을 했더니 아이들이 곧잘 학습하며 수준 높은 질문들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구분이 없어지고 모두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와 질문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린이들과의 첫 번째 만남을 통해서 저는 자신감을 얻었고, 아이들과 함께 친구가 되며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책놀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몸으로 뛰어 노는 '책놀이 운동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강연장을 빠져나가는 어린이들의 표정에서 설렘이 읽혔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지역의 육아 카페에 후기를 올렸더니 책놀이 참여 어린이의 엄마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울 아들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던데요^^ 자신있게 나가서 자기 소개했다고.. 내일 책가지고 재미있는거 할꺼라고 벌써 들떠 있네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성공적으로 첫 번째 만남을 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허기졌습니다. 상으로 스스로에게 맛난 점심과 복숭아 한 봉지를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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