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김덕신 선생님...
이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엄마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나서 큰 학교에 지레 겁먹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 내겐 있었지요.
그때 처음 만난 선생님이 '김덕신 선생님'이었습니다. 죄 많은 제자라 찾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재적 인간은 굳건한 신경을 갖고 있지만, 어린아이는 나약한 신경을 지니고 있다. 전자에게는 이성의 중요성이 막대하지만, 후자에게는 감수성이 거의 심신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러나 천재성 또한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감수성이 심신의 전부를 차지하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합니다.
선생님은 매를 들었지만 저는 매를 맞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습니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습니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의 악몽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명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은 집으로 보내는 생활기록부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승주나무는 수업시간에 딴 짓하고 장난을 잘 치는데, 자기 혼자 그러면 괜찮을 텐데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주니까 각별히 지도를 하시거나 아니면 전학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제가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된 지는 몰랐지만, 어린 마음에도 마음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옆의 친구에게 피해를 준다는 대목이 특히 슬펐습니다. 나랑 같이 장난치며 사이좋게 놀았던 초등학교 3학년의 추억은 선생님의 생활기록부에 적혀진 글귀의 그림자로 인해서 약간 어두운 색깔이 되었습니다.


▲ 초등학교 입학식 전경(사진 : 오마이뉴스)


쓰레기통에 책을 버린 선생님

우리 어린이들의 학교 생활이 어떤지 아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와는 달라져 있겠지요. 좋은 선생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과의 만남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그렇지 않든 초등학교 1학년때의 추억은 지금도 강렬히 남아 있ㅅ브니다.

이것은 제가 아는 분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으로 맞는 학급회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질문도 싫어하고 소란스러운 것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이 많은 여선생님이셨어요.

"머리가 똑똑한 아이는 설명이 끝난 다음에 바로 질문하지 않는다"고도 하고 "질문 많은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원천봉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충격적인 일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새 책을 나눠줬는데, 선생님이 일일이 나눠주지 않고 교실 뒤에 있으니까 한 권씩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지 책 챙기는 걸 잊고 방과후 교실에 갔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교실로 갔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셨다네요. 그래서 교과서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정말 기가 막혀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너무 심하게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혹 아이가 선생님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면 어쩌나 걱정 하면서 물었더니 다행히 선생님이 좀 이상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합니다. 이제 아이와 선생님은 만난 지 1달이 되었고, 남은 시간은 버거울 정도로 깁니다. 
  
이 글을 읽은 다른 어머니는 선생님의 결벽증도 문제라고 하네요. 선생님이 워낙 깔끔하고 꼼꼼해서 그 집 딸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그래서 준비물을 챙기는 날에는 온가족이 거의 비상사태라고 합니다.

학교란 거대한 권력의 성이고, 선생님들은 권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교단은 높고 선생님의 매는 무섭고 학생과 학부모는 너무 약해 보입니다. 학교가 학원보다 인기를 잃고 교권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결국 학교란 '선생님과 학생이 만나는 장소'라는 원초적인 사실로 돌아온다면 이 만남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가슴아픈 사연을 들으니 갑자기 저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추억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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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9-04-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과 같은 생각인데 초등학교 일학년때 선생님이가장중요하다,,
저도 일학년 딸아이를 둔 엄마로써 많이 동감이 가요
류 담임선생님도 좀 엄하신 분인데,,,,걱정이 조금되기는하는데요, 아이는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요,,

승주나무 2009-04-09 21:19   좋아요 0 | URL
선생님이 엄하신 것도 좋지만 사려가 깊으신 분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려가 얕으면서도 엄하기만 한 선생님은 질색...

연두부 2009-04-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딸아이 하나인데...올해 초등학교입학했어요...이래저래 아이도 우리부부도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하고 있는데..너무 공감가는 글이에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 딸을 가진 부모님은 특히 무서울 것 같아요. 공감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무스탕 2009-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니 저도 초등학교(저희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죠 ^^) 1학년 담임선생님이 생각나네요.눈치없이 들러붙는 저를 딸래미라며 귀여워 해주셨었는데.. (선생님이 아들만 둘이셨어요)
찾아뵙지는 못해도 몇년전까진 풍월에 선생님 소식 들었는데 요즘은 들리는 소식이 없는걸보니 정년퇴직하셨나봐요.
오랜만에 저도 첫 선생님 생각도 하고 좋았습니다 ^_^

아이들을 귀찮아 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은요.
엄마들끼리하는 말중에 '저 선생님은 1학년용이 아니야. 1학년용이야' 라고 농담식으로 하는데 엄마들은 분명히 알아요. 다만 내 아이에게 피해가 올까봐 쉬쉬하며 말을 아끼는거지요.

승주나무 2009-04-09 21:20   좋아요 0 | URL
저도 국민학교 출신이에요. 너무 오래 돼서 모를 까봐 그냥 초등학교라고 했죠~~
저도 어떤 엄마분이 초등학생 아이의 선생님 이야기를 하자 이 생각이 미쳤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인데 저도 그 분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