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책은 제목을 잘못 정했다. 결혼해도 괜찮아,라고 제목으로 버리면, 결혼해서 괜찮지 않은 사람들과 결혼해서 괜찮은 사람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표지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한글판의 제목을결혼해도 괜찮아라고 쓰겠다면, 어떤 식으로든 ‘committed’라는 원서의 제목이 도드라져 보여야 텐데, 내가 읽은 책에서는 절대반지 속에 새겨진 ‘committed’가 너무 은은하고 자연스럽. 그래서, 제목과 표지에서 각각 감점 5점하고 들어간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집필 직후, 아직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 ,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남자친구 펠리페와 약속한대로 세계를 오가며 함께 생활한다. 반복되는 재회와 이별, 장시간의 비행과 엄청난 항공비를 다소 지불하고 나서, 브라질 출신의 호주 시민권자인 펠리페는 필라델피아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입국, 3개월 체류, 잠시 외국 방문, 다시 입국의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 입국 심사 도중 펠리페는 국토안보부 직원들의 제지를 받게 되고, 미국에서 영구 퇴출당한다. 펠리페가 미국으로 입국할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길버트와의 결혼. 결혼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사람이었지만, 길버트는 펠리페와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국경 사고 이미 발생한 상태에서의 결혼은 당연히 의심받기 마련이어서, 사람의 입국 심사는 수개월에 걸쳐 계속 미뤄지고, 사람은 저렴한 돈으로 생활이 가능한 동남아시아 등지를 헤매고 다니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날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책은 쓰여진 책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지만, 결혼하고 싶지 않은, 그럼에도 그와 결혼하는 것이 최선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기 , 결혼에 대한 고민과 고찰. 



나는 결혼했으니, 아무래도 결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 만약 내게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크게 보인다면, 결혼 생활을 이어갈 없을 테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지만, 나는 이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무 생각없이 결혼한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놀라고 실망했던 경험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혼 생활을 통해 기쁨과 안정감, 정서적 지지를 얻는다는 점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 F. 케네디 부류냐, 해리 트루먼 부류냐>에서는 부부간의 불륜을 연구한 심리학자 셜리 P. 글래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글래스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건강한 부부 관계는 창문과 벽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창문은 부부가 세상에 공개하는 관계의 측면, 벽은 부부간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지키기 위한 신뢰의 장벽이라고 한다. 기혼자들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바로 여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른바 아무런 해악도 없는 우정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결혼 생활 안에 감춰야 은밀한 비밀들을 새로운 친구와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비밀가장 은밀한 욕망과 좌절들 털어놓고, 그렇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단단한 벽을 세워야 곳에 창문을 격이고, 이내 새로운 사람에게 심중을 털어놓게 된다. 괜히 배우자의 질투심을 부추기고 싶지 않기에 사소한 사실은 배우자에게 비밀로 한다. 이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런 장벽도 없이 빛과 공기가 마음껏 순환되어야 하는 부부 사이에 벽이 생긴 것이다. (149) 





그녀의 외가 여성들의 이야기가 특히 감동적이다. 외할머니 모드 모르콤 여사는 구개 파열로 입천장에 구멍이 생기고, 윗입술이 찢어진 태어났다. 수술을 받았지만 얼굴 가운데 눈에 띄는 흉터가 남았고, 게다가 말을 빨리 하지 못했으니 그녀의 불행에 대해서라면 안타까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의 불운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바로 이유 때문에 외가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정식 교육을 받을 있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성적이 뛰어났고,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버는 당시 미네소타 중부의 최대 돌연변이가 되었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자주적인 아가씨가 것이다(214). 



1931, 외할머니는 진짜 미용실에서 진짜 미용사에게 커트를 하고, 멋진 파마를 했다. 200달러나 주고 진짜 모피가 달린 화려한 와인색 코트를 사서 입고 다녔다. 그랬던 그녀가 사랑에 빠졌고, 외할아버지와 결혼했다.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시아버지, 도련님과 함께 살았다. 남자를 위해 요리와 청소를 도맡아야 했고, 농장 일꾼들의 식사까지 준비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이를 일곱 낳았다. 큰딸이 태어나자, 그토록 아끼던 와인색 코트를 뜯어서 새로 태어난 아기의 크리스마스 의상을 만들어주었다. 




내게 이야기는 우리쪽 사람들에게 결혼이 어떤 것인지 가장 보여주는, 효과적인 메타포였다. 여기서우리 사람들이란 우리 집안의 여자들, 특히 뿌리이자 근원인 외가 여자들을 말한다. 왜냐하면 자식을 위해 평생 당신이 소유했던 물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물건을 포기한 일은 우리 외할머니 세대의 모든 여성들(아울러 이전의 여성들) 가족과 남편, 자식을 위해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217) 





책을 집필하면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던 저자가 외할머니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사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어요, 할머니? 그녀는 외할머니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던 , 재단사가 맞춰준 와인색 코트를 입고 돌아다녔던 때였을 거라 예상한다. 외할머니께서 답하신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외할아버지와 신혼 생활 하던 때였어. 올슨 가족 농장에서 함께 살던 . 저자는 말한다. 나는 외할머니의 말을 믿었지만, 외할머니를 이해하지는 했다. 하지만, 2006 자신의 집으로 그녀와 남자친구를 초대한 젊은 부부 케오와 노이를 보며 그녀는 깨닫는다. 




외할머니는 어떻게 1936년에 행복할 있었을까? 2006년에 노이가 행복한 것과 같은 이유다.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없어서는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반자가 있고, 동반자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에 확신이 있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219) 






자신만의 커리어를 가지고 직업적 성공을 이루기 직전, 남편의 비협조(이틀간의 휴가) 직장을 그만두었던 저자의 어머니의 역시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어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자신이 누린 엄청난 혜택은 엄마의 희생이라는 유골을 바탕으로 했다 말을 지면을 통해 남기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겹쳐져 들렸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어머니 사람으로서,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딸의 말이  딸의 말처럼 속에 울렸다. 딸이 그럴 같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후회한다면 인생의 17년이 모두 의미 없어질 테니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모순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모순 자체를 인정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한다. 만약 앞에 똑같은 선택지가 있다면 지금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어쩌면, 전업주부로서의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주 속에 존재한다면, 지금의 이런 생각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다른 생각, 다른 고민, 다른 갈등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밥을 엄청 많이 먹고, 뜨기 전에 일어나고, 하루 종일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애를 지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수영복, 발레복, 색색의 원피스, 핫팬츠, 옷에 맞는 니삭스에 깔맞춤 머리띠까지, 하루에 일곱 갈아입는 애를 지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막대에 원숭이처럼 매달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고, 소화기 안전핀을 뽑고서 태연하게 거품을 만지는 아이를 지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렇게 해준다면 우주는 우주와 같을 것이고, 나는 지금의 나일 것이다. 




하여, 이제 읽고 있는 , 읽다가 잠깐 멈춘 , 모른 하려했으나 서둘러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8 25. 우주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유럽 전역의 법정에서는 부를 경영하고 유지하려는 통제권을 더욱 강화할 목적으로 ‘일체(一體, coverture)‘라는 법적 개념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는 여성이 시민으로서 갖는 존재가 결혼하는 순간 사라진다는 개념이다. 이 시스템하에서는 아내가 남편에 의해 적절한 ‘보호(cover)‘를 받게 되므로, 더 이상 자신만의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어떤 개인 재산도 소유할 수 없다. 원래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곧 유럽 전역에 퍼져 영국 불문법에 깊이 뿌리내린다. 심지어 19세기에 와서도 영국의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 판사는 법정에서 일체 개념을 옹호하며 유부녀는 법적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여성의 존재는 보류된다˝고 썼다. 그런 이유로 블랙스톤은 설사 남편 본인이 원한다 해도 아내는 어떤 재산도 남편과 공유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것이 예전에 아내의 재산이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96

결혼은 교회의 강력한 이혼 방지 정책과 결합되어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여성을 완전히 매장해버리는 제도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상류층에서 심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철저히 말소된 이 여성들이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발자크 (Balzac)는 결혼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 불행한 여인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들은 권태에 시달려 종교나 고양이, 강아지, 혹은 신을 거스르는 다른 열망에 빠져들었다.˝ 97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소위 ‘침입적 사고‘라고 부르는 상태로 이어지는데, 집착하는 대상 외에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일단 사랑에 미혹되기 시작되면,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것 외의 다른 모든 일, 대인 관계, 책임, 섭생, 수면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그 환상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계속 반복되어 우리의 진을 빼놓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의 작용까지 변해 마치 마약이나 자극제를 잔뜩 복용한 상태가 된다. 136

최근에 과학자들이 사랑에 미혹된 사람들의 뇌사진을 찍고 감정기복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상태가 마약 중독자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미혹 상태는 중독이고, 중독은 뇌에 상당한 화학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이자 미혹전문가인 헬렌 피셔(Helen Fisher) 박사는 사랑에 미혹된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마약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건강도 해치고, 치욕적이며, 심지어 신체적으로 위험한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36

하지만 실제로 심각한 경제 문제는 결혼 생활에 엄청난 압력을 가한다. 결혼 상담가라면 누구나 그 말에 동의할 것이다. 불륜과 폭력을 제외하고 가난, 파산, 빚보다 부부 관계를더 좀먹는 것은 없다. 199

나는 약자에게 병적일 정도로 감정이 이입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종종 펠리페에게 당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곤 했는데 그로 인해 긴장감만 더 커졌다. 펠리페는 멍청하거나 무능력한 사람들에게 일말의 참을성도 발휘하지 않는 반면, 나는 세상의 모든 무능력한 바보들이 사실은 좋은 사람들인데 어쩌다 오늘 하루 운이 없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의 차이는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평상시에는 거의 싸우지 않는 우리가 싸울 때는 대부분 이 문제 때문이다. 273

오해를 바로잡자면, 그 말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증거는 전혀 없다. 최근 미국의 양로원에서 자식이 있는 할머니들과 자식이 없는할머니들의 행복을 비교해 연구한 결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특별히 더 불행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전반적인 요소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가난과 질병이다. 그렇다면 자식이 있든 없든 처방은 분명하다. 열심히 저축하고, 치실을 사용하고, 안전벨트를 매고, 건강을 유지하라. 그러면 언젠가 행복한 노인이 될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리즈 이모가 공짜로 해주는 작은 충고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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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삿짐 정리 3일째. 실제로 하는 일은 없는거 같은데, 버릴 거, 가져갈 거 대답하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이 인생 어느 지점에서는 반드시 미니멀리즘, 실천해 보리라, 다짐에 다짐을 더하지만 아직은 안 될것 같아. 짐이 너무 많다. 



아이들 책, 영어책 정리할 거 정리하고 줄 거는 주고 버릴거는 버리고 있다. 내 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대충 봐도 내 책은 버릴 책이 없다. 하나도 없다. 모두 훌륭한 말씀이라 줄을 그었고, 색색깔 호화 찬란한 인덱스도 장난이 아니다. 내 책은 다 소장각이다. 




그 와중에 또 책을 산다. 이게 나의 가장 큰 사치, 가장 큰 호강이다. 

읽게 하소서! 부디 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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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1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신 거에요? ㅎㅎ ˝내 책은 다 소장각이다˝에서 빙그레~ ^______________________^

단발머리 2020-01-18 22:08   좋아요 0 | URL
이사 전 준비 작업중입니다. 이사는 3월인데, 버릴게 너무 많아서 일찍 시작했어요. 목표는 구정전인데... ㅠㅠ
제 책은 다 소장각입니다. 아시면서~~~~~~ ^_________________________^

moonnight 2020-01-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사준비 너무 힘드시겠어요ㅜㅜ 암요 암요 단발머리님 책은 다 소장각이지요 그토록 열심으로 읽으시는데요.^^

단발머리 2020-01-20 20:56   좋아요 0 | URL
조금 힘들었어요. 앞으로 힘들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의 소장각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해요., moonnight님!

무식쟁이 2020-01-1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한 줄을 긋는 순간 그 책은 내게 특별해버림.. 버릴수 없는 변명 하나가 더 추가된다는.

단발머리 2020-01-20 20:5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전 도서관 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구입하는 책이라면 정말 줄을 긋기 위해 구입합니다.
근사한 변명이지요^^

보슬비 2020-01-1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 제책만 있기 때문에 소장도 정리도 다 제몫이예요 ^^ 나중을 생각해서는 정리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ㅠㅠ

단발머리 2020-01-20 20:58   좋아요 0 | URL
헤헤헤. 전 제 책이 별로 없다고 항상 주장하는 편인데, 요즘에 정리하다 보니 제 책도 꽤 되더라구요.
조금씩 정리하고 있어요. 헉헉...
 


















2020 1 1일부터 『Eat pray love』 읽기를 시작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단톡방이라 살그머니 발을 담갔다. 그간의 학습과 경험과 실패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외국어를 마스터하고 싶다면, 하루 18시간씩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밀도있고 집중적인 학습, 그리고 어마무시한 학습량만이 눈에 띄는 성과를 도출해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하루 15분씩, 가랑비에 젖는 방식의 학습 방법에 극히 회의적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하루에 챕터씩 오디오북을 듣고, 따라 읽고, 단어를 찾아보고, 문단을 따라 써보는 공부방에 들어갔다. 지금 당장은 하루에 18시간씩 6개월, 영어를 공부할 의지도 열정도 없지만, 언젠가 갑자기 내게 그런 필요가 생겼을 , 그렇게 해야만 , 냅다 뛰어나가기 위해서. 낡았기는 했어도 제일 편한 운동화를 일단 신고, 신발끈을 묶고 있는 정도의 준비로서. 




월요일의 단어는 androgynous였다. 발리의 심령치료사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에게 건넨 종이를 묘사할 나온 표현이다. 









Ketut said he could answer my question with a picture. He showed me a sketch he’d drawn once during meditation. It was an androgynous human figure, standing up, hands clasped in prayer. But this figure had four legs, and no head. Where the head should have been, there was only a wild foliage of ferns and flowers. There was a small, smiling face drawn over the heart. (29) 





습관대로 사전을 옮겨 적었다. 



















날의 공부를 마치고는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읽었다. 지난주여성주의 같이읽기친구들과 페미니즘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한 책은 어떤 있을까 댓글을 주고받다가 책을 추천했는데, 다시 펼쳐보니,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그래도 재미있는 거다. 차근히 따라 읽다가, 이런 문단을 만난다. 





결국 (파이어스톤) 지향하는 바는 재생산을 중심으로 성차를 나누는 방식 자체를 소멸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이루자는 겁니다. 성차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면 이상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응시나 그에 의거한 문화제도적 제한과 억압이 사라질 테니까요. 



저는 이런 입장을 안드로지니'(androgyny) 동일한 인간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분류했어요. 우리가 지렁이도 아니고자웅동체라고 번역하는 것은 부적절하겠죠? ‘양성적 인간이라고 하자니 성을 둘로나눈다는 비판을 받을 있고, 제일 적합한 말로동일한 인간성이라는 말을 골라 봅니다. (63)




나왔다. 안드로지니.


















잠자기 전에는 요즘 우리집에서 가장 핫한 ,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읽었다.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만난 놀람 포인트는 사제지간이자 연인관계였던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사람 중에 루스 베네딕트가 연상이자 스승이었다는 . 책의 제목이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아니라,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인지 나는 아직 확인하지 했다. 두번째 놀람 포인트는 루스 베네딕트의 놀라운 미모. 사진으로 풍겨나오는 지적이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한참이나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저자 루스 베네딕트다. 







글자를 어깨너머로 던지지 않고, 조용조용 따라 읽는다. 36 그리고 37. 





잡지와 기타 저술을 물론이고, 베네딕트와 미드가 1922년부터 서로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 어디를 보더라도 사람은 자신이나 상대방을레즈비언’(lesbian)이라는 용어로 지칭하지 않는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드가 가끔씩레즈비언이라는 말을 사용해 다른 여성들을 지칭하기는 했지만 베네딕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동성애자’(homosexual)이성애자’(heterosexual)라는 말을 썼다. 사람은 가끔씩도착자’(invert)변태’(pervert)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물론 베네딕트가 변태라는 말을 대개 반어적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1935 미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남녀양성’(androgyne)이라고 칭했다. (36-7) 





나왔다. androgyne. 단어의 가지 변형.   





나는 그냥 운동화를 신고 신발끈을 매었을 뿐인데, 사방에 널린 영어단어들은 각각 이런 저런 모양으로, 책에서, 화려한 몸짓과 신나는 음악으로 나를 맞이한. 뭐든열심히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인데, 운동화를 신고 신발끈을 맸 뿐인데, 이제 단어들은 어쩔 없이(?) 확실히 알아버렸다. 하루에 만났는데도 모른 하면, 그건 인간의 도리도 아닐 싶고. 



그래서, 월요일의 단어는 androgynous, androgyny, androg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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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근사한 페이퍼에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들이 묘하게 얽혀있어요! >.<

단발머리 2020-01-20 20: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곧 부자가 되어 찾아뵙겠어요^^

hnine 2020-01-18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drogen 이 남성호르몬 명칭이니까 androgynous 도 비슷하게 ‘남성적인‘ 뭐 이런 뜻일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배워갑니다.

단발머리 2020-01-20 20:59   좋아요 0 | URL
전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hnine님 댓글보니 또 그런 것 같네요. 저 역시 배워갑니다 : )

공쟝쟝 2020-01-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드로지니! 뭔가 어감도 이쁜단어네요, 신기해요!! ㅎㅎ

단발머리 2020-01-20 20:59   좋아요 0 | URL
안드로메다,가 전 제일먼저 떠올랐어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0-01-2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저 단발님께 땡투하고 며칠전에 [페미니즘의 역사] 구매했는데, 어젠가 그젠가는 이 책,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땡투하고 구매했어요. 단발님 이제 곧 부자될 준비 하세요. 제가 이렇게 팍팍 경제적으로 지원해드립니다. 빠샤!

단발머리 2020-01-20 09: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보내신 소중한 땡투 야무지게 적립되었습니다. 다락방님의 물질적, 정서적 지원에 전 조만간 큰 부자가 될것 같습니다. 그 후의 즐거운 일들도 기대해도 좋습니다. 빠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은 톨스토이에 대한 부분을 읽고 싶어 대출했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 통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의 기구한 삶에 대해 읽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남편의 성적인 욕구에 자신을 맞추었으며, 끊임없이 남편의 원고를 정서하였다. 수차례에 걸쳐전쟁과 평화』 정서하였으며, 일기 또한 계속해서 내려갔다. 그녀는 밖에도 꼼꼼히 교정하였으며, 나중에는 편집자로서 맡게 작품들의 출판에도 신경을 썼다. 그녀가 하루에 처리하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녀는 다섯 시간 이상을 적이 거의 없었다. 이런 모든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위안을 삼은 것은 톨스토이가 이와 같은희생 가치가 있는 천재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때면 혼란에 빠지곤 했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 107) 





『제2 성』에서도 불행하고 히스테릭하고 불만스러운 어머니의 예로 소피아 톨스토이가 등장한다. 그녀는 무용하고 공허한 자신의 삶에 대해 한탄한다. 그녀를 위로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이들의필요. 열두 이상이나 출산한 톨스토이 부인은 1905 1 25일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도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있다. 그러나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단지 아기를 돌보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할 뿐이다. 결국은 이것이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슬퍼지고 어제처럼 울고 싶어진다. (『2 성』, 686) 






특별할 없는 나의 중고등학교 독서 이력에서부활』 오랫동안 요지부동,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원탑이었다. 그랬던 톨스토이를 이제는 예전처럼 좋아할 없게 됐다. 그래도 톨스토이와 완벽하게안녕하기에는 아쉬워 톨스토이 부분을 일부러 찾아 읽는다. <02. 톨스토이 : 파문당한 성인의 >. 


<악처와 양처 사이>에서 저자 임헌영은 까다로운 천재이자 천의 얼굴을 가진 톨스토이라는 사나이의 아내 역할이 쉽지 않았을 거라며, 『전쟁과 평화』 일곱 번이나 고쳐 있도록 정서를 일만 보아도 소냐는 양처의 금메달급이라고 치하한다(91). 따라 읽다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문단을 만났다. 





이런 와중에도 톨스토이의 욕정은 시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새까만 후배 고리키에게남자들에게 최대의 비극은 지금이나 앞으로나 바로 침실이란 이름의 비극이라고 털어놓았겠는가. 그의 노익장은 가히 세계 정상급이었다. … 1910 82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도 자제할 없었던 성욕으로 고민한 그는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52 은퇴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법하다. (97) 





나는 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학자로서, 교수로서 저자는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유럽 문학을 탐구했을 것이고, 결과물로서 책을 출판했을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문장.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법하다. 



죽을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는 욕정의 화신 톨스토이가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법하다는 무슨 뜻인가. 희망의 등불이 무엇인가. 무엇이 희망이고 무엇의 등불인가. 어디에서 희망이 보이고, 어느 지점의 어두움을 밝힌다는 뜻인가. 


식욕, 명예욕, 지적 욕구와 마찬가지로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하나일 뿐이다. 이에 대해 비난할 필요도, 비난한 이유도 없다. 하지만, 많이 먹으면 희망이 있는가. 많이 자면 등불이 있는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82 죽기 직전까지 성욕이 충만한 사람으로서 톨스토이가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하다니. 모든 노인들은 죽기 직전까지 성욕이 충만한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말인가. 그런 면에서 톨스토이가 부럽다는 말인가. 부러운가. 이게. 이게 부러워할 일인가. 


톨스토이와의 소박한 화해를 꿈꾸던 나의 작은 소망은 이렇게 내팽개쳐졌다. 우리시대 노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톨스토이는 작품이 아니라 성욕을 통해 추앙받고 있지 않은가. 희망의 등불, 희망의 등불이라니. 





『우리는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도망치고자 책을 펼친 나의 잘못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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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1-1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운 ㅠㅠ 비꼬아 말하려는 의도 같지도 않고 유머로 보이지도 않고요.

단발머리 2020-01-15 20:52   좋아요 0 | URL
유머로 볼 수는 없을것 같아요. 진지한 글이기도 하고, 유머라면 다같이 웃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요.

2020-01-12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5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5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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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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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2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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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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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1-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톨스토이 싫어.. 82세의 희망의 등불.... 저자도 싫어...

단발머리 2020-01-20 21:00   좋아요 0 | URL
안나 카레니나, 아직 다 못 읽었는데... 걱정이 좀 됩니다. 저도 톨스토이가 싫어지고 있어서요 ㅠㅠ
 


















어제는 친구 블로그에서 책을 봤다. 


<핵심패턴 시리즈>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인데, 독일어는 표지가 갈색이었다. 다른 시리즈도 있던데 하며 알라딘에게 물어보니,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하늘색, 분홍색 표지의 다양한 책들이 보인다. 나는 중에 보라색미드 영어회화 핵심패턴 233』 맘에 들어,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검색창에 '미드'라고만 쳤더니, 100권이 넘는 책들이 쏟아졌는데, ‘미드 근거해 이런 책이 검색됐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20세기 , 남성중심적이었던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사람의 삶과 이론을 밝혀내어 문화적 담론으로서 조명한다. 저자 로이스 배너가 책의 주된 목표로 꼽는 것은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다. <알라딘 책소개>





마거릿 미드라면, 단발머리 지정 2019 올해의 분노와 애정』 <마거릿 미드 - 할머니가 되어> 마거릿 미드가 아닌가.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조금 찾아보니사모아의 청소년』 대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 독일어 회화 핵심패턴 233에서 미드 영어회화 핵심패턴 233으로, 그리고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를 넘어 사모아의 청소년으로. 책은 검색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노동의 구조와 문화를 지탱하는 노동윤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기본소득이 어째서 정당하며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지, 유토피아적 사유가 어떤 효용을 갖는지 이런 개별의 주장이나 범주를 뛰어넘어, 일의 조직화와 의미에 대해 가지 기초적인 진문을 던지려는 것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62) 





성실한 노동, 시간의 노동이 고결하다는 가정에 대한 반박과 내가 희망하는 세계를 열어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한껏 기대한다. 고미숙 선생님의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같이 읽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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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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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1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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