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를 읽고 있다.

 


세 챕터를 읽었는데 다 읽지 못할 거 같아서 읽은 부분까지만 기록으로 남겨둔다. 제일 먼저 읽은 건 <산타클로스의 처형, 1952>이다. 제목에서 예상되는 것에 비해 전반적으로 좀 약하다. (재미가 없었다는 뜻) 두 번째로 읽은 건 이 책의 얼굴이자 센터이자 대표작 느낌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이다. 원주민들 사이에서 발견된 쿠루병(주된 부족의 언어에서 떨다를 뜻하는 쿠루병으로 불렸다)과 퇴행성 신경 질환인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사이의 유사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원주민 사이에서 실존했던 식인의 풍습에 대한 간단한 서술이 이어진다.

 

 

식인 풍습은 기근 시대에 식량을 보충하는 수단이나 인간의 살에 대한 욕구로서 식량과 관련 있을 수 있고, 죄인의 징벌이나 적에 대한 복수로서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 또 고인의 성품을 물려받거나 반대로 고인의 영혼을 멀리 보내기 위한 마법적인 성격, 혹은 종교의식, 장례와 제사, 성년식과 관련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고대 의학의 많은 처방에서 확인되듯이, 식인 풍습은 치유적인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유럽에서도 멀지 않은 과거에 그런 처방이 실제로 행해졌었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뇌하수체의 주입이나 뇌물질의 이식, 게다가 오늘날 흔히 시행되는 장기 이식은 치유적인 성격을 띤 식인 풍습의 범주에 속하는 게 분명하다. (127)

 

 

식인 풍습의 방점은 식인이라기 보다는 육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살을 먹는 것은 안 되고, 동물의 살을 먹는 것은 괜찮은가.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꽁치 김치조림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는데, 엄마 옆에서 그 맛에 감탄하고 있노라면, 엄마는 곧잘 대답하셨다. 남의 살이 들어가야 맛있지. 남의 살. 꽁치가 안 들어가도 맛있지만, 꽁치 들어가면 더 맛있다. 남의 살에 대한 욕망과 육식, 그리고 식인과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에 대해 생각한다. 건강검진에서 빈혈 판정을 받고, 빈혈 아니라고, 안 어지럽다고 우기다가 헤모글로빈 수치 들이미는 의사에게 6개월간 철분제를 먹어야 한다고 처방 받은 내가, 차분히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할례와 대리 출산>. 여성 할례에 대한 내 입장은 확고하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입장 밝히는 사람. 정치인도 아니면서 왜 입장 밝히나. 대통령이나 제대로 입장 밝혀라!)

 


남성 할례 역시 여성 할례처럼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 할례의 고통이 여성 할례의 고통보다 가볍다 여겨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자세는, 남자도 힘들어~~의 스탠스가 아니라, 이 상황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대책 마련일 것이다.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문화 상대주의가 모든 사안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여성 할례를, 사티를(인도의 아내 순장), 명예 살인을 문화와 풍습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복잡하게 설명할 수 있고, 길게 말할 수 있겠지만, 미소지니(misogyny), 여성 혐오라는 단어의 사용이 여전히 부담스럽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 시도, 그 잔인한 행위들을 멈추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대리 출산에 대한 부분도 여러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이제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불임 부부들이 혈통적 연결을 원하고 있기에 고비용의 힘든 불임 치료 과정을 지속하고 있다. 타인의 정자와 타인의 난자로 태어난 아이를 내 아이로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남편의 정자, 아내 난자의 수정을 통한 출산을 원하고 있다. 생물학적 연결에 대한 현대인의 갈망 혹은 유전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고대 히브리 사회의 형사취수혼(형이 죽은 뒤 동생이 형을 대신해 형수와 부부 생활을 지속해 대를 이어가는 혼인 풍습) 제도나 수단 누에르족의 망령결혼(친척 남자가 고인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조카로 양육하는 풍습)이 정자 주입과 다름없다고 여기고 있다. 티베트의 여러 명의 형제가 한 명의 부인을 공동으로 소유해 모든 자식을 장남의 자식으로 귀속시키는 것, 또는 이와 반대로 투피카와이브족의 경우처럼 한 남자가 자매 관계에 있는 여러 명의 여자와 결혼해 여자들이 자식들을 함께 키우는 경우도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혈족과 사회적 혈족 간의 갈등은 유럽에서 법률가와 윤리학자에게 골치 아픈 문제로 여겨지지만, 민족학자들이 연구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는 사회적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혈족과 사회적 혈족이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나 구성원의 의식에서 충돌하지 않는다. 유럽 사회가 그런 사회를 본받아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사회의 사례들에서 대리출산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이 상당히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어떤 하나의 방법이 절대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이유는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듯하다. (70)

 














당연히 마가렛 애트우드님의 <시녀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성적 쾌락을 금지하고 오로지 출산을 목적으로 성행위를 강요할 때, 그 일은 가능한가. 사정하는 남성은, ‘두 발 달린 자궁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감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가. 저자는 대리 출산에서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수정과 섹스, 즉 육체적 쾌락을 분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70). 그게 가능한가. 인간 심연의 감정과 욕망이 벌거벗은 채로 요동칠 때, 감정적이고 성적인 공유를 차단할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여기까지 읽고, 기특하게도 영어책을 읽었다. 꾸준히 안 읽어도 가끔 꾸준해지는 사람. 입장 요구 안 하는데 입장 밝히는 사람. 이 문단의 ‘He’는 엘리자베스에게 새로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이다.

 


His ex-wife had long insinuated that he wasn't Amanda's biological father, but he'd figured she'd only said it to hurt him. Sure, he and Amanda didn't look alike, but plenty of children don't look like their parents. Every time he held Amanda in his arms, he knew she was his; he could sense the deep, permanent biological connection. But his ex-wife's cruel insistence ate at him, and when paternity testing finally became available, he produced a blood sample. Five days later, he knew the truth. He and Amanda were total strangers. ... He'd stared at the test results, expecting to feel cheated or devastated or any of the other ways he'd guessed he was supposed to feel, but instead he'd felt completely nonplussed. The results didn't matter at all. Amanda was his daughter and he was her father. He loved her with all his heart. Biology was overrated. (<Lessons in chemistry, 209)

 

 

낳은 정, 기른 정, 무엇이 더 귀한가. 낳아보면 안다, 낳은 정 귀하다. 키워보면 안다, 키운 정 귀하다. 낳은 정, 기른 정,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낳은 정, 기른 정, 둘 다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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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4-16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묻지 않는 입장을 계속 밝히시다니…

단발머리 2024-04-16 18:16   좋아요 1 | URL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4-16 22:07   좋아요 0 | URL
그런데다가 제목에도 영어를 쓰시다니..

단발머리 2024-04-16 22:15   좋아요 1 | URL
참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