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떼는 말이야~의 완성형은 부모다. 선배는 잠깐이고, 직장 상사도 (요즈음은 근속연수가 예전처럼 길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잠깐이다. 라떼는 말이야,의 완성형은 부모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성경에 쓰여있지 않다 하더라도 진리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자식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삼종세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듣는 입장에서는 참 곤욕스러운 일일 테지만, 실제로 그 말을 하는 입장에서는 진심을 다한 말이다. 문제는 태도. 형식과 내용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훈계가 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꾸지람이 되기도 한다. 진심은 종종 전해지지 못 하고, 서운한 말들만 기억에 남는다. 최선은, 말하지 않는 것. 진심이 담겨있다 할지라도 받아들인 만하지 않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여성학자이며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님의 조언을 되새긴다. 아이를 손님으로 대해라. 그렇다. 손님에게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존재를 알았던 중학교 2학년 때로부터 어언 시간이참 많이도 흘렀다. 이렇게 야무지게 찰지고, 스펙터클하고, 영화로 옮겨도 손색없을 만한 완벽하고 훌륭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재미있는 소설을, 여태 읽지 않았다는데 스스로에게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자꾸만 말하고 싶어지고, 자꾸만 권하고 싶어진다. 아가야, 딸아, 아들아. 이 책을 읽어 보렴. 보아라, 엄마가 이 책을, 세 권 모두, 개정판으로, 문학동네판으로, 근사한 번역으로 구입하지 않았더냐. 나는 몰라서 못 읽었다. 나는 없어서 못 읽었다(이건 뻥!). 아가야, 읽어보렴. 딸롱아. 아롱아.



디오니소스의 주연을 방불케 하는 떠들썩한 술판(308)에 경찰서장, 검사 그리고 예심판사가 들이닥친다. (140년 된 소설이니 스포일러 걱정 없이 써본다.) 무죄를 주장하는 미챠와 그를 의심하는 검사 간의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를 저평가해서가 아니라, 140년 전에 이런 대화를 상상했다는 게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다. 현대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누구의 것을 빌려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등장 인물간의 대화, 상황 묘사는 너무나 현대적이다.     



부패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마자, 고인의 방에 들어오는 수도사들의 표정만 봐도 그들이 왜 왔는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들어와서 잠깐 서 있다가는, 밖에서 무리 지어 기다리는 다른 동료들에게 소문이 사실임을 한시바삐 확인해주기 위해 얼른 나가곤 했다.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는 슬픔에 젖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악의에 찬 눈길 속에 노골적으로 번쩍이는 기쁨을 아예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108)



그의 대단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의 풍경을 그려낸 부분이다. 질투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흔한 감정이다. 조시마 장로의 인격, 그의 위대함, 그리고 사랑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한 노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무리가 있었다. 장로의 죽음 이후 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자, 그들은 위대한장로에게 어찌 초자연적인일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자연적인시간보다 더 빨리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는가 의심을 품는다. 이를 종교적 언어를 이용해 그를 음해하는데 사용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 한다. 질투하며 존경했던 자의 몰락을 바라되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치졸한 범인들의 행태가 너무나 생생하다. 가장 추한 인간의 내면. 가장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들.




2권을 읽었고 이제 한 권이 남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그 존재를 알았음에도 나는 이제야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있는데, 마야 안젤루는 열 다섯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나 보다. 어제 읽은 그녀의 책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온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그럼 가서 쟁취해라.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음식값은 내가 주마. 비서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로 가. 비서들이 출근하면 따라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네가 읽는 그 두툼한 러시아 책 한 권 들고 가고.”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있었다. (72)

 








그가 말하더군요. "천국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고 지금 내 마음속에도 숨어 있으니,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천국은 나에게 정말로 나타나 평생토록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P50

인간이여, 동물들 앞에서 우쭐대지 말지어다. 그들은 죄 없는 창조물들이지만, 그대는 이 땅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그 위대함과 더불어 대지를 부패시키고 거기에 자신의 썩은 자취를 남기고 가니 - 오오, 슬픈지고, 우리 거의 모두가 그러하도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라, 그들 또한 천사처럼 죄가 없으며,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지표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니라.- P84

여기서 그대에게 구원의 길은 단 하나이니, 그대 자신을 사람들의 모든 죄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렇게 만들도록 하라. - P86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20-06-2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야 안젤루의 책에 저런 대목이 나오는군요. 보관함에 있던 것이 장바구니로 넘어가려 합니다..
전 도선생님을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저 두꺼운 분량에 차마 재독하는 게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나..
코로나 시국에 한번 시도해볼까 싶기도 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0-06-25 11:37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로 잘 넘어가셨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야 안젤루는 사랑입니다.
도선생님은 말 그대로 미리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인데, 전 반강제 진행중이라 헉헉대면서 간신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moonnight 2020-06-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ㅠㅠ 이제라도 읽어야 하는데 카.조.형ㅠㅠ;;;;;; 민음사와 열린책들 갖고 있는데 문학동네도 갖고 싶어요(읽기 전 모아놓기-_-) 올해 안에 꼭 읽기(시작이라도 하기;;)로 결심합니다^^

단발머리 2020-06-25 11:38   좋아요 0 | URL
전 열린책들 읽다가 도중 하차 기억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문학동네로 읽는데 새책이라 그럴까요?
가독성이 엄청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수연 2020-06-2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루고 미루었던 이 두껍디 두꺼운 책을 이번 기회에 실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심 고민중입니다.

단발머리 2020-06-25 11:40   좋아요 0 | URL
수연님은 또 현대소설도 신경쓰시느라... 또 에코페도 읽으셔야 하고. 많이 바쁘신줄 제가 잘 알지요^^

북극곰 2020-07-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아, 갑자기 저도 까라마조프를 읽고 싶어져가지고,
(요즘 도서관이 문을 안 여니 언젠간 읽어려구 사준 책들에 손을 댑니다.)
집에 있는 건 열린책들에서 나온 건데...... 도중에 하차하셨다고요?..... ㅠ.ㅠ
어쩌지....

단발머리 2020-07-04 12:24   좋아요 0 | URL
제가 이번에 도스토옙스키 챌린지 하면서 여러분들이 댓글 주셨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린책들 책으로 성공하신 분을 3분 보았고, 실패하신 분을 저까지 4명 보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래요.
만듦새 같은 경우는 문학동네가 이번에 새로 나온 책들이 너무 예쁘구요. 번역도 전 술술 읽히더라구요.
저도 큰 맘 먹고 온 가족 다 읽어라!의 심정으로 구매했어요. 일단 1인이 성공했습니다^^
 



친구가 화상채팅을 하자고 했다. 나는 좀 부끄럽다며 그냥 통화를 하자고 했는데, 친구가 괜찮다며 화상으로 하자고 했다. 친구가 메일로 초대장을 보내줬고, 그렇게 친구가 만들어준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둘이 통화한 사진을 찍어 친구가 보내줬는데, 친구는 정상으로 나왔고, 나는 너무 핸드폰에 가까이 다가간 관계로, 이마에서 코까지만 보이는…. 참 놀랍고도 신기한 모습으로 친구와 한참을 통화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친구들 만나기가 어렵다.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회 후배 집에 놀러가서 밥 먹고 차를 마셨고(3월 말), 친구와 만나 커피숍에 한 번 갔다. 그 때는 4월 말이었는데, 친구는 자발적자가격리 상태여서 코로나 이후 첫 외출이라 했다. 가족끼리 몇 번 외식을 하기는 했지만, 점점 더 조심하게 되어 꼭 필요한 일(엄마에게 다녀오거나 도서관에 안심 대출, 장보기)이 아니면 외출하지 않는다.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 학교 모임, 이른바 엄마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다니지 않아 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도 없다.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같이 구역예배를 드리는 구역식구들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교회도 주일 낮예배 빼고는 모든 모임이 중지상태다.


이런 상황이니 언감생심 친구를 만난다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자신이 확진자가 되었는데도 동선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거나, 심지어 거짓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방역 당국의 고심이 크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명확하게 잘못된 일이어서, 성인이라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지만, 확진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이나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만나는 사람도 고려해야 하니, 지금으로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럴 때 만약 알라딘 이웃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알라딘을 몰랐다면, 알라딘 서재를 몰랐다면, 알라딘 이웃들을 몰랐다면, 지금 내 삶은 더 팍팍하고 우울하지 않았을까. 알라딘 이웃 중에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얼굴을 아는 분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얼굴은 커녕 본명도 모른 채 알라딘 아이디만 아는 분들이다. 알라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책을 사고 감상을 적고 일상을 이야기한다. 어느새 서로를 알아가고 자연스레 더 많이 알게 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이제 알라딘은 내게 친구를 만날 수 없는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는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일전에, ‘창비 우롱 상자(오늘까지만 놀릴께요, 창비 sorry!)’ 사건 때에도 알라딘 이웃들과 서로의 택배 상자를 공개하고, 책 인증샷을 나누고, 심지어 이메일 내용까지 나누면서 우리는 같이 신나게 한 번 웃었다. ‘원하는 책을 두 권 알려주시면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결말은 흐뭇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했던 건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이웃, 친구들.  















내가 도선생님과 외출하기 전, 츤데레 남성과 밀당하기 전,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있던 때였다. 말로만 듣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표작을 읽어 보리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책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감상을 적어 알라딘 서재에 올렸는데, 알라딘 이웃 한 분이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된 기사를 보내주셨다. 아직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여서, 그에 대한 비판 기사는 어려울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게다가 그 기사는 영어로 작성된 거였다. 쉽지 않은 글을, 이해되지 않은 채로 찬찬히 읽었다. 끝까지 다 읽지는 못 했다. 생각보다, 아니, 생각만큼 어려웠다. 영어로 된 신문 기사를 읽으며 내가 발견했던 건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발견한 건, 내가 오리엔탈리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찾아 링크를 보내주는 그 마음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읽는 책의 제목정도는 확인하지만, 딱 제목까지다. 친구들과 만나 책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사실 길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꽂힌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여기, ‘알라딘뿐이다.  




   <'Orientalism,' Then and Now, NYR Daily, Adam Shats>



『여성 혐오가 어쨌다고?』의 임옥희님의 글이었다고 기억나는데, 사실 정확하지는 않다. ‘하나의 통일된 자아로 구성되었다는 믿음은 환상이다라는 의미의 문장이 있었다. 물론이다. 사회적 역할로서 뿐 아니라 자아 역시 여러 측면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우, 알라딘의 단발머리는 실제의 나보다 낫다. 알라딘의 단발머리는 실제의 나보다 더 착하고, 더 배려심 있고, 더 노력지향적이다. 실제의 는 알라딘의 단발머리보다 더 못됐고, 더 이기적이며, 더 게으르다. 에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더 자연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알라딘의 단발머리 역시 나의 일부임이 확실하다. 밥하고, 청소하고, 노래하고, 피아노 치는 내가 나의 일부인 것처럼.



코로나19가 얼른 진정되기를 바란다. 내 나라, 내 조국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가족과 친구와 친구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다른 나라도 그러하길 바란다. 친구를 만날 수 없는 때에,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알라딘이 있어 다행이다. 어떤 뜨거운 날의 추억을 사진으로 꺼내본다. 올해의 더위가 모두 가기 전에 다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오늘 밤에는 기도를 좀 해보려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6-19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0-06-23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에 있다보니 더욱 소중한 공간이네요. 열심히 활동은 안하고 눈팅위주긴 하지만. 특히나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요!

사진을 보니 페미니즘 책과 맥주. 우와! 부러워요. 저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려나요 ㅜㅜ

단발머리 2020-06-25 11:49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같을 때는... 정말 알라딘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눈팅하면서 주고받는 좋아요~ 속에 애정과 사랑은 싹틉니다.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 전 생각해요.
그리고 언젠가 좋은 날에 페미니즘 책과 맥주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ㅠ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흑.
 



 













오전에는 그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 말로는 툴툴거리면서 좋아하는 마음에 은근슬쩍 챙겨주는 그런 캐릭터의 남자를 가리키는 말. 차도남이었나, 그건 아니고. 시크남이었나.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응팔의 류준열이 연기했던 정팔이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 츤데레, 그래 츤데레. 나는 츤데레 캐릭터를 싫어한다. 맘으로는 좋아하면서 실제로는 툴툴거리고 짜증내고 은근 뒤에서 챙겨주고 배려하는 스타일을 딱 싫어한다. 곰곰 생각하지 않고 대충 생각해봐도 내 인생에 그런 식으로 애정을 내비친 사람이 1도 없었는데, , 나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봤던가. 아무튼 츤데레 남주는 사양한다. 사양합니다, 츤데레.

 

『빌레뜨 2』를 읽으며 츤데레 남주에 대한 나의 적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어차피 여주는 제인에어이고, 남주는 로체스터일테니,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떤 경우에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 츤데레 남주에게 넘어가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결말에 도달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평생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 깊이 존경하고 심히 애정해 마지 않는 샬롯 브론테 선생님의 손길을 몇 번 거치고 나니, 나는 츤데레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

 


누렇게 바랜 사전과 다 낡은 문법책 사이에 참신하고 흥미로운 신간이나 달콤하게 무르익은 고전이 마법처럼 끼어 있었다. 바느질감을 담은 바구니 밖으로 로맨스 소설이 웃으며 내다보고 있고, 그 밑에는 소책자나 잡지가 숨어 있었다. (149)

 


이 츤데레의 치명적 약점에 대해 열거하자면 시간이 부족하다. 이 밤이 짧다. 나는 이런 츤데레 캐릭터가 싫다. 실제도 싫고, 상상도 싫다. 그런데! 참신하고 흥미로운 신간을 골라주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좀 흔들릴 것 같다. 달콤하게 무르익은 고전을 살짝 놓고 가는 사람이라면, 로맨스 소설을, 소책자나 잡지를 내 자리에 무심하게 남겨놓고 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츤데레이지만 참신하고 흥미로운 신간을 고르는 안목에, 살뜰히 신간을 전해주는 그런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다.


















츤데레 남주라도 용서하게 만드는 참신하고 흥미로운 신간으로는 이렇게 세 권을 꼽아본다. 『일곱 해의 마지막』,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김연수의 장편소설이다. 두 번째는 토마 피케티의자본과 이데올로기』.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1,300쪽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딱 한 권만 고르라고 하면 고르게 될 것 같은 책. 신간 아닌 고전. 고전인데 리커버 개정판이라 신간,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우리가 아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끝으로, 존경해 마지 않는 샬롯 브론테님의 흉내를 내보자면.

 


독자여, 결국 난 이 책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이 페이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주는 모든 즐거움은 이제 오롯이 그대의 것이다. 내가 누렸던 기쁨과 안타까움을, 분노와 좌절을,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그대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6-19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남자가 소설 속에 있네요. 샬롯 브론테 님, 상상력 너무 풍부하시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있어요, 참신하고 흥미로운 신간을 놓고 가는 그런 남자. 그런 남자 없어요, 없어. 흥!!

단발머리 2020-06-19 07:54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러긴 해요. 참신하고 흥미로운 신간 살포시 놓고 가는 그런 남자가 어디있대요. 골라와도 내 맘에 안 들면 어쩔....
신간은 그냥 내가 사는 걸로 해요. 내 신간은 내가 산다!!!

페넬로페 2020-06-1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팔의 류준열을 좋아했는데
덕선이 택이를 선택해서 많이 속상했었어요~~
아마 그 츤데레때문일듯 하네요^^
츤데레 로체스트!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단발머리 2020-06-19 10:56   좋아요 1 | URL
전 그 시리즈를 안 봤는데 제 주위에도 다 류준열 팬이라서 ㅎㅎㅎㅎㅎ 츤데레에 대한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츤데레 완결 캐릭터가 등장하기에 츤데레 좋아하신다면 더더욱 즐거운 독서타임 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비연 2020-06-2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책을 놓아두고 가는 츤데레 남자라니. 상상이 안 가네요. 그런 사람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한번쯤 마음이 가보려나요. 그러나 우리는 알지요... 없다는 거.. 내가 놔줘도 깔고 앉을 남자들만 있는 이눔의 세상...ㅜㅜㅜ

단발머리 2020-06-25 11:50   좋아요 0 | URL
내가 놔줘도 깔고 앉을 남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요.
신간이야, 신간! 말해줘도 깔고 앉는다면 그러게요. 이만 쩜쩜쩜입니다.

유부만두 2020-06-2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피케티 책을 사주는 대신 그 책에 따라오는 굿즈 동그란 금색 서진을 제게 주는 남자를 상상합니다.

신간은 내가 고르고 내가 사야죠. 내 취향을 하나 하나 따라오면서 알고 신간 까지 챙겨주는 사람은 .... 알라딘에만 있는 것 같아요. 현실엔 읍씀.

단발머리 2020-06-25 11:51   좋아요 0 | URL
내 취향을 알고 하나하나 따라오면서 신간 챙겨주는 남자 없죠. 없습니다. 다행히 ‘알라딘 추천마법사‘가 제 취향을 알더라구요.
다는 아니지만, 방향은 얼추 맞춰요. 헤헤헤.
 
















꼭 땡투를 해야한다. 마이리뷰, 마이페이퍼에 올라온 글 맨 끝에 <Thanks to>를 클릭하면 된다. 예전에는 땡투하는 사람과 땡투받는 사람에게 모두 적립금이 주어졌는데, 이젠 땡투받는 사람만 1% 땡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기쁜 일이기는 하나, 알라딘에서 주겠다면 난 그 1% 받고 싶은 마음이다.  



책을 가능한 사지 않고 빌려읽는 나의 '책 안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버리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옷은 그렇지 않다. 옷은 고르는 것도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쉽다. 고쳐야할 나쁜 습관이어서 올해는 여름티 한 장 사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모두 코로나 덕분이다. 책은 그렇지가 않다. 책에는 모두 제각각의 사연이 있고, 기억이 있고, 흔적이 있다. 집에 한 번 들어온 책을 밖으로 추방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감행해야 하는 큰 일이다. 이사하면서 책장 세 개를 버렸다. 그 안에 들었던 책의 반은 나눠주고 반의 반은 팔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이젠 책을 사지 않으리... 쩜쩜쩜. 



페미니즘 책은 예외다. 페미니즘 책은 보고 다시 봐야 하고, 반드시! 줄 치며 읽어야 하기에 구입해 읽어야 한다. 딸아이 책 주문하면서 준비하는 마음으로 9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를 미리 구입했는데, 목차를 보자마자 선행학습 본능을 일으킨다. 마침 권김현영의 추천사도 그러하여 무척 만족스럽다. 사야 할 책을 샀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0-06-1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다움달 책사기 전에 땡스투하러 들어왓는데!! 히히

단발머리 2020-06-17 21:21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하이!
땡투 하고 장바구니에 넣고 나서 10일 안에 사야해요. 이미 알고 있겠지만요😜

공쟝쟝 2020-06-17 21:24   좋아요 0 | URL
룰루~! 조아요 조아요!

단발머리 2020-06-17 21:25   좋아요 0 | URL
이건 9월 도서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일단 6월 도서를 읽기로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푸핫!

공쟝쟝 2020-06-17 21:34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저러나 이런 프로선행(학습)러 단발님..

단발머리 2020-06-17 21:37   좋아요 0 | URL
몰래 선행 시작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막판에 헉헉대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님 많이 읽었나요? 에코페 완전 열공모드던데요? 연필로 줄을 쫘아악!

공쟝쟝 2020-06-17 21:37   좋아요 0 | URL
으아니여... 연차내는날만 기다려요. 그날은 에코펨이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0-06-17 21:39   좋아요 0 | URL
어제는 @@이 넘 늦었어요. 오늘은 어때요? 아~~~ 일이 많기도 하여라 ㅠㅠ

psyche 2020-06-18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몰랐어요 ㅜㅜ 책을 잘 안(못?)사긴 하지만 살때는 꼭 잊지말고 땡투해야겠네요!

단발머리 2020-06-19 07:28   좋아요 0 | URL
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전에는 주는 사람에게도 책 구매금액의 1%를 적립금으로 주었는데 이제는 받는 사람에게만 주다 보니 저도 가끔 깜빡하게 되고 그러더라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20-06-18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책상에 책이 놓인 사진, 정말 근사하네요!! >.<

단발머리 2020-06-19 07:29   좋아요 0 | URL
3초간 다른 책들도 놓고서 설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요. 허허허. 귀찮아서 그대로 찍었어요^^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빌레뜨 1 창비세계문학 81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왕자님 외모의 왕자님이 나만의 ‘그’가 되어주기를 바랬던 나는, 그에 대한 애정을 우정으로 축소하려는 ‘이성’의 호통 앞에서 한없이 쓸쓸했다. 장난기 어린 그의 미소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던지... 흑.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6-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뭐야 뭐야 뭔데요. 이 책 뭐야 ㅠㅠ 뭔데 평이 이래요. 너무 읽고싶잖아 ㅠㅠ 어쩐지 넘나 내 스타일일것만 같다.
저도 읽을래요, 빌레뜨 읽을래요. 후려치는 이성 앞에서 저는 울게될까요? 우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0-06-17 16:48   좋아요 0 | URL
슬픈거는 우리에게 내장된 ‘페미니즘’ 의식이 나도 모르게 검열한다는 것.
전 2권 아직 읽기 전이라 답을 정하지는 아니하였습니다 ㅠㅠㅠ

다락방 2020-06-1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창비한테 빌레뜨 달라고 할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0-06-17 16:48   좋아요 1 | URL
창비야! 다락방님께 빌레뜨를 내어 놓으렴! 그렇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잠자냥 2020-06-17 17:53   좋아요 1 | URL
주군의 연인하고 교환해 달라고 메일 보내 보세요. 푸하하하하하하하. 그 순간 진상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6-17 19:31   좋아요 0 | URL
되돌아보면 너무 슬픈 이야기 아닙니까.... 다락방님에게도 빌레뜨를! 빌레뜨를! 빌레뜨를!

다락방 2020-06-18 08:35   좋아요 0 | URL
제가 진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는건, 그렇다고 주군의 연인을 내보내고 싶지는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창비세계문학 81번은 표지 왜이렇게 예쁘게 만든거에요? ㅜㅜ

단발머리 2020-06-18 08:4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첨에는 빌레뜨는 그 시리즈가 아닌 줄 알았어요. 근데 <금색공책> 창비세계문학 73, 74번도 시리즈와 다른 표지더라구요. 더 팔고 싶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아, 너무 상업적 마인드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