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he Message 메시지 구약 시가서

 

연초마다 세우는 올해의 계획은 매년 비슷비슷하다. 성경 읽기와 영어 공부. 다이어트는 아니다. 성경 읽기와 영어 공부와 다이어트를 포함하지 않는 운동. 야무지게 읽어보겠다고 오더블도 구입했다. 오더블은 몇 달 이용하다가 환율이 너무 올라서 멤버십을 취소했는데, 작년 말에 4개월 동안 7.9 달러라고 해서 다시 가입했다.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길고, 가장 장수가 많은(150) <시편>은 내게는 좀 특별한 성경이다. 길지 않은 인생, 말이 안 나오게 답답한 순간마다 시편을 펴서 읽는다. 미운 사람이 너무 미울 때 시편을 읽고, 기도가 안 나올 때 시편을 읽는다. 기쁨과 원망, 탄식과 기도, 노래와 찬양이 가득한 구절들 속에서 내 영혼은 잠깐 쉴 틈을 얻는다. 시편 49 20절은 시편 49 12절과 똑같다.

 


We aren’t immortal. We don’t last long. Like our dogs, we age and weaken. And die.

(Psalms 49 : 20)

  


















2. Josh and Hazel Guide to Not Dating

 

친구들과 함께 읽는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지만 두 사람이 오롯이 녹아 있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당연히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Christina Lauren도 필명이다.

 


I’m far more my mother’s daughter than my father’s, personality-wise, but I look exactly like my dad : dark hair, dark eyes, dimple in the left cheek, wiry and not as tall as I’d like to be. Mom, on the other hand, is tall, blond, and curvy in all the best snuggly-mom ways. (36p)


 

유전에서는 우와 열을 가르는 게 의미 없는 일이고, 그걸 선택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가까운 미래에 그게 가능해질 거라는 전망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주인공 헤이즐은 외모는 아빠 판박이지만 성격은 엄마 쪽이다. 그 반대였으면, 하는 생각을 1초간 했다.

 

큰아이는 외모도, 성격도 제 아빠를 닮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만, 한 번 싸우면 오래 간다. 작은 아이는 외모는 제 엄마와 아빠를 반씩 닮았고, 성격은 제 엄마를 닮았다. 우리 집에서 인기가 제일 많다. 나는 외모도, 성격도 아빠를 닮았다. 사고방식, 생활 태도, 인생관 자체가 비슷하다. 엄마가 나를 앞에 앉혀놓고 아빠 욕할 때, 팩폭처럼 느껴져 불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아빠를 싫어한다.

 




 













3. 눈먼 자들의 도시

 

모든 사람들이 눈멀었을 때 눈 뜬 사람, 사람들의 눈이 떠졌을 때 눈이 멀었던 단 한 사람. 지옥 같은 현실 한가운데서 윤리와 책임감, 용기와 연민이 그 여인 한 사람에게로 모인다. 인류 최후의 구원자는 여성이며, 여성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소설.

 

그 용감한 여인의 남편이 싫다. 나쁜 데다가 비겁한 그 의사가 싫다.

 





 












4.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집이다. 아렌트의 국가 없음개념을 중심에 두고 논의한 것임을 모르고 시작했다. 아렌트 님 너무 많이 나오신다. 특이 사항은 판형이 작고 분량이 적다는 것(140). 한 자리에서 후루룩 읽을 수 있겠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버틀러와 스피박이 누가 누가 더 어렵게 이야기하나 대결하는 건 아닌데, 쉬운 내용은 아니어서,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었다.

 


아렌트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사적인 영역(유색인종과 노예, 아동, 그리고 참정권이 없는 외국인이 물질적 삶의 재생산을 책임지는 영역)을 정치의 영역 밖으로 이해함으로써, 여러 인간 존재들의 배제를 통해 정치의 영역을 구성했다, 고 버틀러는 지적한다(23). 정체성의 정치 반대편에 서 있던 아렌트가 유대인도, 페미니스트도 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비극을 정치체의 부재때문이라고 했을 때, 아렌트가 대안적 정치체로 생각한 것은 연방주의(30)였다고 버틀러는 말한다. 『전체주의 기원』을 3분의 1밖에 읽지 못한 나로서는, 그 책을 얼른 읽고 이 책으로 다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자본의 전 지구화와 민족국가의 쇠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피박은 국가의 재발명이 민족 국가를 넘어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로 진행한다고 보았다(76). 다국적 자본의 힘이 개별 국가의 힘을 넘어서서 실제로는 경제권을 통한 전 세계적 만능 통치가 가능한 현재 상황에서 오래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건 확실한 듯하다.

 


버틀러의 이 문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는 이 문장. “하지만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이미 자유를 실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수행적 발화 자체가 당장 나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요구한다는 것은 분명 이미 자유를 실행한 것입니다. 또한 이를 적법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행동은 자유의 행사와 현실의 간극을 공적 담론 안에서 공표함으로써 그것을 가시화하고 결집시킵니다. (68)

 


버틀러의 말을 잘 이해한다거나 버틀러의 사상에 크게 감동받아서는 아니고. 그냥. 버틀러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래서 읽는다. 내 스타일이다, 그냥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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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17 0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저 버틀러가 단발머리 님 스타일이라는 거 너무 잘 이해하겠는데요, 왜냐하면 저 사진을 보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밑에 스피박 보니, 오, 저는 스피박이 좋네요. ㅋㅋㅋㅋㅋ 스피박 좋은데요? 스피박이 제 스타일인 걸로... ㅎㅎㅎㅎ

버틀러와 스피박의 대담집이라니, 와 진짜. 멋짐의 끝판왕이네요. 140쪽이라니 저도 사고 싶지만, 읽을 자신이 없으므로 살짝 보류하겠습니다.

‘We aren’t immortal. We don’t last long. Like our dogs, we age and weaken. And die.‘
이 문장 세 번 읽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3-02-17 10:18   좋아요 1 | URL
너무 잘 이해가 된다고 하시니 저도 좋기는 한데.... 아, 나만 좋아해야 하는데, 그런 맘도 있습니다. 하하하. 두 분 너무 멋져요. 이런 대화가 있어요.

버틀러 : 제가 너무 오래 얘기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덧불이실 얘기가 많이 있겠지요?
스피박 : 하고 싶은 만큼 말씀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의 제일 주요한 논의 지점은 아렌트의 ‘국가 없음‘입니다. 고로 안 사셔도 되지만 다락방님 읽어야만 하는 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표현 : We aren’t immortal. We don’t last long. Like our dogs, we age and weaken. And die.

잠자냥 2023-02-17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갑자기 드는 궁금함.... 다락방 그 인간은 요즘 성경읽기 안 하나 봐요?

단발머리 2023-02-17 11:28   좋아요 2 | URL
작년에 1독을 마치셨습니다. 다락방 그 인간 ㅋㅋ아, 역시 저한테는 착착 안 붙네요.
다락방 그 분이요 ㅋㅋㅋㅋㅋㅋ 올해는 안 하시는 듯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2-17 11:27   좋아요 1 | URL
1독을 끝냈고 2독을 마음 먹고 있습니다만, 한 번 시작하면 매일 해야 하기 땜시롱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백수 되면 하려고요... (먼 산)

다락방 2023-02-17 11:28   좋아요 3 | URL
그리고 저 바빠요. 소설도 써야 돼요... (어쩐지 달려나간다)

단발머리 2023-02-17 12:27   좋아요 0 | URL
웅웅 바쁘시더라구요 ㅋㅋㅋㅋ 기대만발입니다. 다음회에 계속되는 빨간 ❤️이야기 ㅋㅋㅋ 아, 알라딘 이름 잘 지었네. 투비컨티뉴드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1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두분 사진 처음보는데요. 두분 분위기 비슷함요. 거기다가 너무 우아한거 아니예요? 제가 갖고 싶은 분위긴데 왜 나는 나이들수록 코믹버전만 늘어가는가말이죠. ㅠ.ㅠ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저 역시 노래 안합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3-02-20 11:22   좋아요 0 | URL
그르죠? ㅋㅋㅋㅋㅋㅋ 저는 버틀러를 좋아하고 스피박을 좋아합니다. 두 분의 공통점이라면 우아한 모습. 그리고 어려운, 너무나도 어려운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코믹을 추구하는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반갑습니다!!

서니데이 2023-03-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3-03-13 20:4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축하 댓글 감사해요! 편안하고 행복한 저녁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앤절라 Y. 데이비스는 산업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결과로 가정에서 여성의 의무가 줄어들고(69), 여성성 이데올로기가 생산자에서 아내와 어머니로 이동했다고 보았다(70). 백인 주부들에게 이상적인 여성은 완벽한 가정 속의 온화한 어머니, 순종적인 아내였고,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더 열등하게 만들었다.  

 


1833, 미국 노예제반대협회 창립대회에서 여성들에게 각성의 순간이 찾아왔다. 단 네 명의 여성만이 이 대회에 초대되었고, 그나마 그들은 자격을 갖춘 참가자가 아니라 청중이자 관중으로서 발코니로 안내되었기 때문이다. 개회식에서 루크리셔 모트는 발코니의 청중이자 관중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대회 직후 모트는 필라델피아 노예제반대 여성협회 창립 모임을 조직했다. 그제야 비로소, 백인 여성들은 자신들이 노예제 폐지 운동을 함께하는 동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자신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노예제 반대 운동을 하다가 알게 된 일이다.

 



그렇다, 백인 여성들은 흑인해방투쟁을 하려면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열렬히 지켜야 한다는 인식에 눈을 뜨게 된다.

 


여성운동에 관한 엘리너 플렉스너(Eleanor Flexner)의 출중한 연구가 보여주듯, 여성들은 노예제 폐지 운동을 통해 값진 정치적 경험을 축적했고,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10여 년 뒤 여성 권익 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들은 모금 기술을 발전시켰고, 문건을 배포하는 법과 회의를 소집하는 법을 배웠고, 일부는 위력적인 대중 연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여성 권익 운동에서 중요한 전략적 무기가 될 탄원서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들은 노예제에 반대하는 탄원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여성이 정치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80)

 


백인 여성들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들, 흑인들의 해방과 인권을 위해 일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녀들은 흑인 노예들을 돕고자 했고, 또 실제로 그들을 도왔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 일하면서 자신들의 처지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다.

 

 

노예제 반대 운동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백인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할 필요가 없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의사, 변호사, 판사, 상인, 공장주를 남편으로 둔 여성, 다시 말해서 중간계급과 신흥 부르주아 여성들이었다. (75)

 


 

경제력이 없는 여성들의 페미니즘은 역겨운 페미니즘’, ‘먹고 살 만한 여자들의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 책의 해제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쓰신 문장들은 그런페미니즘조차 왜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중산층의 경험은 모든 지식의 기반이다. 삶이 지나치게 고달픈 이들이나 부자들은 언어를 생산할 여력이나 이유가 없다. 모든 언어, 지식은 중산층의 삶의 경험에 기반한다(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 등도 마찬가지다). (<해제 : 정희진>, 21)

 


노예제 반대 운동의 참여와 이를 통한 각성, 그리고 여성 인권 운동은 그런 중산층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시작되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일할 필요가 없는여성들이었다. 의사, 변호사, 판사, 상인, 공장주의 아내들로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했고,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각성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도왔던 그 경험이 그녀들의 저항을 추동하는 가장 소중한 바탕이 되어 주었다. 다른 사람을 도왔던 바로 그 경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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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13 10: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선생님 매거진에서 그런 얘기 하셨었거든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다고요. 아마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어떤 것에 대해 상대에게 설명하다가 그전에 이해 안되던게 갑자기 이해가 됐던 그런 경험이 있어요. 저는 아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남을 돕는 경험에서 나의 위치를 깨닫게 되는 일이요.

이번 책에 대해 여러분들의 글을 읽는게 참 좋습니다.

단발머리 2023-02-17 10:20   좋아요 0 | URL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더 배울 수 있다는 거 참, 좋은 거 같아요. 저도 선생님 그 클립에서, 공부는 나누면 더 좋다고, 하신 거 기억나요. 공부도 사랑처럼 나누면 배가 되나 봅니다!!!

미미 2023-02-13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희진의 공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산층에 대해서요.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아요.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또 그 방식도 다르겠지만요.^^

단발머리 2023-02-17 10:23   좋아요 1 | URL
저는 오랫동안,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런 시간이 주는 ‘혜택‘ 뿐 아니라,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여지, 여건, 시간과 환경에 대해서요. 현장 강연이 있던 그 날에도 선생님이 비슷한 말씀 하셨거든요. 여러분들의 삶이 막 쉽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올 만한‘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요.
 



서태지 열풍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서태지가 그토록 대중의 광적인 사랑과 열정의 대상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최초의 아이돌, 압도적인 퍼포먼스, 한편으로 시대적인 상황이 맞물린 면이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자기 서사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실 이데아’, ‘컴백홈을 노래하는 가수, 그런 아이돌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문의 다른 지점에 방탄소년단 BTS가 있다. BTS 성공 요인에 대한 분석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발하다고 하던데, 그건 다 성공 이후의덧붙임 같은 느낌이 든다. BTS에 특별한 점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가요 시장에서 BTS는 순전히 ‘one of them’ (보라색 님들 흥분하지 마시고요. 끝까지 들으세요)이고, 그래서 BTS의 미국 진출, 세계 시장에서의 선전 이유를, 오히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 그런 거지? BTS? 여러 가지 분석 중에 역시나 BTS자기 서사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탄소년단의 방, 방탄소년단의 기획자 방시혁은 예전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자율권을 주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요계도 유행이라는 게 있는데 BTS10대 학생으로서의 고충을 노래하는 이른바 학원물을 들고나오자, 그게 언제 적 유행이냐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 하지만 방시혁은 지금 이게 너희들에게 고민거리이고, 너희 생각의 중심적 테마라면 그걸로 해보자고 말했다는 거다. BTS는 계속 성장하고 나이가 먹고 스타가 되고 그리고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BTS 노래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이 노래다. Airplane pt. 2.

 





 

나는 열정적인 팬도 아니고 노래를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이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좋았다. 전주 부분부터 좋다. 쿵쾅쾅 쾅쾅 리드미컬한 북소리가 나다가 황금막내 정국이가 의자에 앉아 노래를 시작한다. 이상한 꼬마. 숨쉬 듯 노래했네. 어디든 좋아. 음악이 하고 싶었네. 오직 노래. 심장을 뛰게 하던 thing. 하나뿐이던. 길을 걸었지만.

 

 


이렇게 이어지던 노래는 슈가의 랩에서 절정(?)을 이룬다. 데뷔 초부터 방탄소년단은 한국 가요계에서 대형기획사에 속하지 않는 그룹들이 겪을 만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서러움을 충분히 경험했다. 방탄 같은 경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엑소라는 거대 보이 그룹이 등장했기에 이런 견제가 더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래로, 실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서는 방탄소년단. 이제 막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게 되는 순간. 방탄의 슈가가 노래한다.

 


TV 나와서 하는 귀여운 돈 자랑들은 Fed up. 여권은 과로사 직전

미디어의 혜택은 되려 너네가 받았지 깔깔깔깔

야 야 셀럽 놀이는 너네가 더 잘해. 우리는 여전히 그때와 똑같아.  

 

 


심지어 그 도구가, 아니다. 심지어, 라는 표현은 대중가요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겠다. 가요도, 대중가요도, 편하게 흥얼거리는 그 노래 속에서도 자기 서사가 가능하고, 자기 표현이 가능하고, 재현이 가능하다. 언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 가능하다, 충분히.

 

 


그래서, 어제도 일찍 일어났지만, 늦은 아침도 아닌 늦은 점심을 차려주었고. 설거지를 하면서, 외출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방탄의 노래를 들었다.

 



We goin’ from Mexico City. London to Paris. 

우리가 가는 그곳이 어디든 Party.

El Mariachi. El Mariachi.

El Mari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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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2-11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노래를 제일 좋아합니다 ㅋㅋㅋ넘 반갑네요 벌써 귓속에 맴도는 엘 마리아치

단발머리 2023-02-11 10:39   좋아요 1 | URL
방탄 노래 중 베스트로 ‘봄날‘ 꼽으신 분 많이 만나봤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 이 노래 제일 좋아하시는 분 첨 봐요!!
반가워요, 유수님!! (와락!!!!!!!!!!!!!!!)

유부만두 2023-02-11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 저요.;;;

단발머리 2023-02-11 10:43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제가 그 이야기 많이도 들었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봄날이 최고라고요 ㅋㅋㅋ ㅋㅋ

다락방 2023-02-11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모르는 노래입니다. 들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23-02-11 11:39   좋아요 0 | URL
제 스탈입니다. 참고 부탁 드리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2-1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탄 노래중에 다이너마이트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도 한때 서태지 좋아할 때가 있었는데요 ㅎㅎ

단발머리 2023-02-11 12:20   좋아요 0 | URL
다이너마이트 자매품은 버터이고요 ㅋㅋㅋㅋ 저는 가수들 좋아한 적이 없어요. HOT 너마저 좋은 적이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열성적 팬심으로요ㅋㅋㅋㅋㅋㅋ

yamoo 2023-02-11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탄이 뜨기 직전에 멕시코의 유명 프로듀서가 올린 영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그때 그 음악 프로듀서는 방탄을 보고 앞으로 이들의 시대가 오겠고, 전세계적으로 마이클 잭슨이 얻었던 인기를 얻을 것이고 21세기의 마이클잭슨이 될 거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 프로듀서가 말하길 방탄은 이제껏 봐왔던 보이그룹과는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서 세계가 곧 방탄을 알아볼 거라고 했는데, 그 영상을 보고 2달 후에 방탄이 각종 상이란 상을 죄다 휩쓸면서 전설이 됐죠. 저는 그 멕시코 프로듀서의 평가가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방탄의 거의 모든 곡들을 다 들었는데, 제 취향이 아니라서 광팬은 아니지만 방탄은 뮤지션이 아닌 아티스트라는 걸 저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정진하기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포레스텔라 덕후입니다..^^;;

단발머리 2023-02-17 10:25   좋아요 0 | URL
방탄의 퍼포먼스가 좀 어렵기로 유명하죠. 근데 개개인이 춤을 막 잘 춘다 그러지는 않고요. 연습과 끈기로 ㅎㅎㅎ
저도 방탄의 노래를 막 좋아하고 그러지는 않은데, 그냥 노래 말고도 방탄만의 독특한 매력 같은게 있는 거 같아요. 서로간의 우정도 끈끈한거 같고요.

이 댓글을 포레스텔라가 싫어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꼬마요정 2023-02-11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노래 좋아해요. 이 때 로브 같은 거 걸쳤는데 옷도 마음에 들더라구요. ㅎㅎㅎ
전 ‘House Of Cards‘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134340‘이랑 ‘마이크 드롭‘이랑... 제 안에는 뭐가 있는 걸까요 ㅎㅎ
방탄 노래는 대부분 좋아서 자주 듣게 되네요. 무대도 좋아서 자주 보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3-02-17 10:27   좋아요 1 | URL
어머!!!! 꼬마요정님! 저도 마이크 드롭 좋아해요! 이럴 수가 ㅋㅋㅋㅋㅋㅋㅋㅋ 134340은 명왕성에 대한 노래라는 건만 알고요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한 번 들어봐야겠어요.
노래도 좋지만 역시 아이돌은 춤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디오가 중요하죠, 아이돌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23-02-12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TS 모르는 일인-_-;;;;;;; 사과드립니다ㅠㅠ 요즘 SM 일 덕분에 아이돌그룹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네요. 제가 생각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지만-_-

단발머리 2023-02-17 10:26   좋아요 0 | URL
에구 무슨 사과의 말씀까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SM이 아주 시끄럽네요. 저도 이 글 쓸 때쯤 기사가 올라와서, 우아, 방시혁 대단한데 이랬는데, 아... 이수만이 더 대단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만년만의 외출.

극성 엄마답게 미용실 따라왔으나 앉아있을 분위기가 아니어서 근처 커피숍으로 대피. 미용실에서 읽겠다고 챙겨온 책을 딱 펼쳐놓고…..

북플 하는 중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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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2-09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거 블랙햅쌀고봉라떼 은근 맛있지 않나요? 커피에서 과자 씹히는 거 너무 희안한데 묘하게 맛있더라고요…

단발머리 2023-02-09 16:27   좋아요 0 | URL
저 오늘 처음 마셨는데 햅쌀이 뻥튀기 느낌이네요. 아주 맛있게 한 잔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2-09 16:50   좋아요 0 | URL
이름이 넘 웃기군요! ˝블랙햅쌀고봉라떼 ˝ 스벅에서 마셔봤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2-09 16:52   좋아요 0 | URL
깔끔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별로일것 같아요. 전 라떼파라서 도전해 보았습니다. 이 겨울 가기 전에 한 잔? ㅋㅋㅋㅋ☕️

책먼지 2023-02-09 17: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이름답게 밥만큼 배부르니 배고플 때 도전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독서괭 2023-02-09 19:02   좋아요 1 | URL
블랙햅쌀고봉라떼라니!! 도전해보고 싶은 메뉴네요 ㅋ

다락방 2023-02-09 1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오늘 아침에 시작했어요!!! >.<

단발머리 2023-02-09 17:11   좋아요 1 | URL
제가 훑고 있는데 (읽기 전에 훑는 편) 거다 러너, 브라운밀러, 파이어스톤… 난리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2-09 17:18   좋아요 3 | URL
다 저희가 한 번씩 다뤘던 인물들이군요. 후훗. (잘 몰라도 아는 이름들이라 으쓱한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2-09 17:20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슬쩍 봤는데도 이러하고 ㅋㅋㅋㅋ 다른 분들도 등장하시겠지요. 책만듬새도 좋고 행간, 자간도 적당해요 ㅋㅋㅋㅋ 책크기도 딱 좋고 400페이지 안 되니까 그것도 딱입니다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9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마침 출출하던 때에 이 사진을 보고 치즈케이크 한조각을 해치웠습니다 ㅋㅋ

단발머리 2023-02-09 21:05   좋아요 1 | URL
전 하트파이랑도 함께 했더니 배부르네요 ㅋㅋㅋㅋ그러면서 꿀떡 먹는 중 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2-09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이 책을 받았고, 한 시간 전에 이 책을 침대로 들고 왔고, 갑자기 보뱅의 책에 꽂혀 이 책을 일단 옆에 두고 보뱅을 읽는데,
저기 블랙햅쌀고봉라떼 저것이 무엇인고? 들여다 보기 시작했고~ㅋㅋㅋ
스벅엔 잘 안가서, 메뉴들이 참 신기하고, 먹음직스럽군요^^
블랙햅쌀이라 그런가요?
어째 책 표지 제목은 흑돌 바둑알 색깔 모냥처럼 블랙햅쌀 라떼색이랑 깔맞춤 하셨군요?
언제나 쎈스 넘치시는 단발님^^

건수하 2023-02-10 09:40   좋아요 1 | URL
아 라떼랑 책표지랑 맞추신 거였구나...
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

단발님 사진이 항상 참 예쁜데 이유를 잘 몰랐네요 ^^;

독서괭 2023-02-10 10:17   좋아요 2 | URL
저도 전혀 몰랐어요. 역시 센스쟁이들끼리는 알아보시는군요!

단발머리 2023-02-10 11:02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 제가 그걸 의도한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매장 앞에 서서 저거요, 저거!! 그래가지고 저걸 시켰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책나무님 댓글 읽고 사진 보니 진짜 그렇네요 ㅋㅋㅋㅋㅋ 우아, 신기합니다!

수하님 / 제 사진이 예쁜 것은.... 잘 찍는 친구들 옆에서 맨날 구경하고 사진 좀 달라고 그러고 친구가 쓰는 앱을 따라쓰고ㅋㅋ

독서괭님 / 책나무님이 센스쟁이십니다. 수하님도 그러신거 같고, 독서괭님도 ㅋㅋㅋ 전 센스 충전 좀 하고 오겠습니다.

건수하 2023-02-10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하트파이도 스벅 것인가요?
전 얼마전 스벅에 외부 음식이 반입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직 반입해본 적은 없지만 다른 (더 맛있는) 집 빵을 들고 가보고 싶어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2-10 10:17   좋아요 1 | URL
정말요?
외부음식 반입이 가능합니까?
와.....넘 좋은데요?^^
그럼 저도 이제부터....ㅋㅋㅋ
근데 저는 스벅이 멀어서...ㅜㅜ

건수하 2023-02-10 11:06   좋아요 1 | URL
저도 근처에 없어서 잘 안가긴 합니다… ^^;;;

단발머리 2023-02-10 11:50   좋아요 2 | URL
수하님 / 아.... 아직 그걸 모르셨군요. 네, 스벅은 외부음식 반입 가능합니다. 그게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고 하대요. 빵 들고 스벅 입성하시면 그 사진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나무님 / 스벅은 멀지만 책나무님 집 앞에는 할리스가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2-10 11:13   좋아요 2 | URL
전 사실 어제 간 곳에 아주 예쁜 디저트 & 커피 전문점이 있었는데요. 들어갔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혼자서도 잘 놀고 그런 사람인데도 거기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에요. 둘둘이 남녀, 둘둘이 여성ㅋㅋㅋㅋㅋ 앉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길 건너서 스벅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혼자서 공부하는 분들이 우글우글 ㅋㅋㅋ 저도 혼자 앉아서 책을 펴고 ㅋㅋㅋㅋ 북플 ㅋㅋㅋ

다락방 2023-02-10 14:52   좋아요 2 | URL
헐. 스벅은 외부음식 반입 가능하다는 거 여기서 지금 알고 갑니다.. 세상에!!

책읽는나무 2023-02-10 14:54   좋아요 1 | URL
이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야 합니다ㅋㅋㅋ

건수하 2023-02-10 15:00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역시 알고 계셨군요! 그 가게 디저트를 들고 스벅으로 가시지 그랬… ㅎㅎ

다락방님/ 다락방님도 모르셨다니 반갑습니다 ㅋㅋ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있다.

 


1. 혹 스포일러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가능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2. ‘어디 갔었어의 짧은 글 이전에, 내가 쓴 글이 강제적 이성애와 무성애의 섬 (feat. 수하님)’이었다는 걸 기억하면서 썼다. 그 글에서 내가 생각했던 지점, 즉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어니즘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의 무성애 (청정) 지역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는 뜻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실명한 사람들이 정신 병원에 격리되는 과정에서부터 그곳에서의 처참한 모습들은 아우슈비츠와 꼭 닮아있다. 그 순간, 그 모습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한 사람은 눈이 멀지 않았다. 그 지옥 같은 아수라장에서 그녀가 말한다.

 


안과 의사의 부인인 이 여자는 지칠 줄 모르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168)

 



인간답다는 건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인간도 동물이라는 걸 안다. 온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도 부족한 맹목적인 인간 중심주의. 오랫동안 아니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제 더는 부인할 수 없다. 인간도 동물이다. 그저 동물의 한 종류일 뿐이다. 그렇다면 동물인 우리 인간은 어느 때에, 인간 아닌 동물이 되는 걸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뭘까. 욕망 발현의 한계점을 어디에 두어야 인간인가. 어디에 두면 동물인가.

 

 


너무 옛날 모델이라 부끄럽기는 하지만, 지금 기억나는 게 이것밖에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에 의하면, 인간은 아래쪽에서부터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소속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눈먼 자들이 격리된 정신 병원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마저 위협받는 곳이다. 생리적 욕구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sis(항상성), excretion(배설)’에 대한 욕구를 뜻한다.

 


나는 먹는 것보다 자는 걸 선택하는 사람이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견디지 못한다. 잠을 4-5시간밖에 자지 못한 그다음 날에는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고, 내가 차려서 먹어야 한다면, 귀찮음과 배고픔 중에 항상 귀찮음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에서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고, 미래의 내가 배고픔으로 고통당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내게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 될 것이고, 나는 음식에 대한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내게 가장 강력한 욕망은 음식을 향할 것이다.

 


이 소설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눈먼 이들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격리되었고, 언제 음식이 공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인간으로서 존재하기에 충분한 양의 기초적인 재화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sis(항상성), excretion(배설)’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렬했다. 그중에서도 그들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은 건 음식에 대한 욕구였을 것이다. 그랬던 그들에게 외부의 압력이 작용한다. 음식을 얻는 것에만 몰두했던 그들이, 오로지 먹을 것만 생각했던 그들이……

 


각 병실에서는 서로 점차 익숙해지면서 관능적인 욕구가 시들해지고 있었는데, 피해갈 수 없는 임박한 수모의 위협이 자극제가 되면서 갑자기 그 욕구가 기승을 부렸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빼앗기기 전에 그 몸에 자신의 표식을 남기려고 필사적인 것 같았다. 여자들은 가능하면 거부하고 싶은 감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기억 속에 자발적으로 경험하는 감각들을 가득 채워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243)

 

 

예전에 참여했던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지도 선생님은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하며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고 내게 충고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님의 지적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고, (어쩌면 그래서) 선생님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아무튼 선생님은 나의 이 생각을 영원히 모르실 테고. 그보다는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그 말을 떠올렸다.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

 


정확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246쪽에서 247쪽까지다. 이 소설은 포르투갈어로 쓰였지만, 이 책의 번역자는 믿고 읽는정영목 님이시고. 나는 한글로 이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이 두 쪽을 세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 이게 정말. 말이 되나. 이게 정말 가능한가. 이게 정말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인간이 동물로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욕구, 즉 생리적 욕구는 ‘breathing, food, water, sex, sleep, homeostasis(항상성), excretion(배설)’이다. 수면욕구 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욕구는 강력하고, 음식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섹스에 대한 욕구는 강렬할 텐데. 그런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끈질긴 욕구는 역시 섹스에 대한 욕구란 말인가. 이때쯤 다시 찾아보는 필립 로스.

 
















오직 섹스를 할 때만 인생에서 싫어하는 모든 것과 인생에서 패배했던 모든 것에 순간적으로나마 순수하게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오직 그때에만 가장 깨끗하게 살아 있고 가장 깨끗하게 자기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야. 부패한 건 섹스가 아니야 - 섹스 아닌 나머지가 부패한 거야. 섹스는 단순히 마찰과 얕은 재미가 아니야. 섹스는 죽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해. 죽음을 잊지 마. 절대 그걸 잊지 마. 그래, 섹스도 그 힘에 한계가 있어. 나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아. 하지만 말해봐, 섹스보다 큰 힘이 어디 있어? (<죽어가는 짐승>, 88)

 

 


소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에 소설을 읽는다. 나와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환경에 처하고, 다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관찰하고, 그 영광과 파멸을 바라본다. 말 그대로 함께한다. 눈먼 사람들과 눈 뜬 한 명의 여자와 함께 그 복도를 거닐고, 그녀가 보는 것을 함께 보는 과정이 내내 괴로웠지만, 특히 저 부분은 읽기 힘들었다. 나의 분노는 무엇 때문인가. 사회적 인습과 모노아모리에 대한 강박 때문인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만드는 그 남자가 미웠다. 죽도록 미웠다. 그 여자도 미웠다. 그리고 남겨진 여자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는 점심을 건너뛰고 오후 늦게 이른 저녁으로 메밀소바와 밀크티를 마셨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소설을 따라 읽으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여러 번 책을 덮었다. 아직 다 읽지 못했고 곧 마저 읽을 테지만,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한동안 읽지 못할 것 같다.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내게는 너무 어렵다.

 


쉬어야 한다, 잠시. 건조하고 담백한 문장을 만나 봐야겠다. 이를테면 아렌트.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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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07 1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섹스가 뭘까요? 눈 먼 상황에서 급박하게 찾는게 섹스인가요? 나를 나로 만드는게 섹스인가요? 전 ..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영화속에서도 말씀하신 그 장면이 보여집니다. 아내는 눈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목격을 하는 그 장면요. 모두 눈이 멀었을 때 나 혼자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인것 같아요. 섹스는 뭘까요?

좀 다른 얘긴데 좀비 영화 <28일 후>를 보면요, 살아 남은 인간들이 살고자 하고 다른 생존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몇몇 생존자들과 맞닥뜨리거든요. 그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이 주인공과 함께 하는 사람들중엔 여자가 있었단 말이예요? 바깥은 좀비가 창궐하는 이 와중에 이 생존자남1 은 이 여성을 강간하려고 시도하더군요. 그 상황에서 강간을 할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가끔 인간은 너무 징그러워요.

단발머리 2023-02-08 13: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그 장면 아신다고 하니.... 참..... 나의 괴로움 아는 사람 1인 추가합니다. 영화보다는 전, 책의 그 장면이 정말 싫었어요. 아... 아직도 괴로운 나....

고고한 하늘의 문장으로 솟구치거나 어디 별사탕 세상으로 피해야지 싶습니다. 아..... 괴롭....

공쟝쟝 2023-02-08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도 잠이 먼저 라고 합니다. 밥은.... 까먹지 않고 먹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입니다 ㅋㅋ
필립 로스 섹스에 의미 부여하는 거 꼴비기 싫으네요 ㅋㅋㅋ 저도 어제 아렌트 새책 쓰다듬으면서(읽지는 않음) 즐거운 저녁(?)을 보냈어요.

엉성한 사회의 도덕적 잣대로 문학을 보는 것은 저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윤리를 발명하기 위해서 문학을 읽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영화보다, 유튜브보다 때로는 삶보다. 책 읽기가 (중간중간 멈추어 생각할 수 있으므로) 특히 문학 읽기가 자신을 심문해서 얻는 자기만의 윤리를 적립하는 데 좋은 재료라고 생각하고요. 알라딘에서 그런 사람들 만나서 넘 좋음요.

(문득 번뜩 하면서 드는 생각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여기에 있는 것 같네요.)

단발머리 2023-02-08 14:06   좋아요 1 | URL
밥은 챙겨 먹자고요.... 아 힘들다 ㅋㅋ

자신만의 윤리를 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보통 그런 사람들은 말이 길고 ㅋㅋㅋㅋㅋ 그런 분들은 산에 가세요, 전 이런 편인데... 나도 말이 많고 말이 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책읽는 제가 좋지만 이제 대세는 영화쪽으로 간 거 같아요. 드라마, 영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조금 더 쉽게, 더 강력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공쟝쟝 2023-02-08 14:04   좋아요 1 | URL
잘 챙겨먹어요. 제때에!!!
단발님이 말씀하시는 건 산에가셔야 하는 분들은…. 제가 생각한 자신만의 윤리라기 보다는 자기 합리화인 것 같아요! 전“윤리”요!! 푸코가 말하는 윤리. 에 더 가깝습니다.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내 위치를 알고 거기에 합당하게 사는 거요, 자기배려. 자기이해에 입각한 좋은 삶으로 가기 위한 노력요.

그냥 좋은 게 다 좋은 거다로 믿어보마 살았더니 저는 인생 망하게 생겨서요… 분명히 도덕적으로 살았는 데 인생이 왤케됐지??? 이제 어떻게든 사회가 제시한다고 그대로 따르고 그러면 안될 거 같아요. 나중에 누굴 탓할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그러려면 생각을 해야하는데 영상매체는 아무래도 과몰입은 되는데 중간에 생각하기는 좀 힘들죠? 나중에 영화감상문을 꼭 써야겠네요!!

난티나무 2023-02-08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꼴비기 싫다 22222222

단발머리님 글 보면서 하 이 소설 다시 읽어봐야 하나 싶어요. 오래전에 읽었어서 지금 읽으면 분명 다르게 읽힐 텐데 그런데 너무 괴로울 것같고...@@ 읽다 던진 <눈뜬 자들의 도시>도 지금은 읽히려나 싶고요?ㅎㅎㅎ

저도 메밀소바 좋아합니다!

단발머리 2023-02-09 07:45   좋아요 0 | URL
일단 괴롭고 힘든 시간을 간신히 마쳤습니다. 대단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힘들더라구요. 헉헉. 전 당분간은 주제 사라마구 안 읽으려고요. 잠깐 쉬는 타임 ㅋㅋㅋㅋㅋㅋㅋㅋ

필립 로스 꼴비기 싫으시죠? 저도 그래요. 제 길티 플레저. 나의 사랑, 나의 죄책감.... 로스가 제겐 그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