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열풍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왜 ‘서태지’가 그토록 대중의 광적인 사랑과 열정의 대상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최초의 아이돌, 압도적인 퍼포먼스, 한편으로 시대적인 상황이 맞물린 면이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자기 서사’를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실 이데아’, ‘컴백홈’을 노래하는 가수, 그런 아이돌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문의 다른 지점에 방탄소년단 BTS가 있다. BTS 성공 요인에 대한 분석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발하다고 하던데, 그건 다 성공 ‘이후의’ 덧붙임 같은 느낌이 든다. BTS에 특별한 점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가요 시장에서 BTS는 순전히 ‘one of them’ (보라색 님들 흥분하지 마시고요. 끝까지 들으세요)이고, 그래서 BTS의 미국 진출, 세계 시장에서의 선전 이유를, 오히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왜, 그런 거지? 왜 BTS지? 여러 가지 분석 중에 역시나 BTS의 ‘자기 서사’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탄소년단의 방, 방탄소년단의 기획자 방시혁은 예전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자율권을 주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요계도 유행이라는 게 있는데 BTS가 10대 학생으로서의 고충을 노래하는 이른바 ‘학원물’을 들고나오자, 그게 언제 적 유행이냐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 하지만 방시혁은 ‘지금 이게 너희들에게 고민거리이고, 너희 생각의 중심적 테마라면 그걸로 해보자’고 말했다는 거다. BTS는 계속 성장하고 나이가 먹고 스타가 되고 그리고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BTS 노래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이 노래다. Airplane pt. 2.
나는 열정적인 팬도 아니고 노래를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이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좋았다. 전주 부분부터 좋다. 쿵쾅쾅 쾅쾅 리드미컬한 북소리가 나다가 황금막내 정국이가 의자에 앉아 노래를 시작한다. 이상한 꼬마. 숨쉬 듯 노래했네. 어디든 좋아. 음악이 하고 싶었네. 오직 노래. 심장을 뛰게 하던 thing. 하나뿐이던. 길을 걸었지만.
이렇게 이어지던 노래는 슈가의 랩에서 절정(?)을 이룬다. 데뷔 초부터 방탄소년단은 한국 가요계에서 대형기획사에 속하지 않는 그룹들이 겪을 만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서러움을 충분히 경험했다. 방탄 같은 경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엑소’라는 거대 보이 그룹이 등장했기에 이런 견제가 더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래로, 실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서는 방탄소년단. 이제 막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게 되는 순간. 방탄의 슈가가 노래한다.
TV 나와서 하는 귀여운 돈 자랑들은 Fed up. 여권은 과로사 직전.
미디어의 혜택은 되려 너네가 받았지 깔깔깔깔.
야 야 셀럽 놀이는 너네가 더 잘해. 우리는 여전히 그때와 똑같아.
심지어 그 도구가, 아니다. 심지어, 라는 표현은 대중가요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겠다. 가요도, 대중가요도, 편하게 흥얼거리는 그 노래 속에서도 자기 서사가 가능하고, 자기 표현이 가능하고, 재현이 가능하다. 언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 가능하다, 충분히.
그래서, 어제도 일찍 일어났지만, 늦은 아침도 아닌 늦은 점심을 차려주었고. 설거지를 하면서, 외출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방탄의 노래를 들었다.
We goin’ from Mexico City. London to Paris.
우리가 가는 그곳이 어디든 Party.
El Mariachi. El Mariachi.
El Mariachi.